안식일의 의미

안식일의 의미-예배의 완성/출20:8-11,신5:12-15/2001-10-18

안식일의 의미-예배의 완성
출20:8-11,신5:12-15





인간은 누구나 평화와 안식을 원합니다. 안녕과 행복과 평화를 추구하지만 세상은 평화와 기쁨을 주기 보단 고통과 신음소리를 내지 않으면 안되는 어려움이 있는 곳입니다. 그래서 이 땅을 표현하기를 고해와 같은 세상, 인생의 길을 나그네 세월이라고도 합니다.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매일 부딪치는 어려움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직장에서 정리해고 되지 않기 위해 얼마나 마음을 조리고 사십니까? 왜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이러한 불안과 불평등과 염려와 수고가 자리를 잡고 있을까요?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후에 인간에게 안식을 허락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계를 묵상하며 언제나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면서 승리하고 생육하고 번성할 수 있는 복을 받았던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의 인간은 참 평화와 안식이 있었던 삶이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교만하여 하나님과 같아지기 위하여 범죄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인간은 누구나 이 땅에 살아가면서 수고의 땀을 더욱 흘리며 노동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안식일 지금의 주일을 오해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이 날이 우리2를 얽어매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우리가 주일을 보내는 마음은 어떻습니까? 마지못해서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은 아닙니까? 좀 더 자고 싶었는데, 다른 곳에 가야 할 중요한 약속이 있었는데, 즉 결혼식에 가야하고 직장에 출근해야 하고 사업을 위하여 골프장에 나가야 했는데 어쩔 수 없어 억지로 와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 한 번 생각해 봅시다.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언제 제정해 주셨습니까? 그 진정한 의미가 무엇입니까? 천지를 창조하신 이후에 인간들이 그 안식을 누리라고 안식일을 제정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십계명이 말씀하는 시기는 언제입니까? 다시 안식일을 상기시키고 있는 사건이 언제냐는 것입니다. 바로 애굽에서의 해방 이후입니다. 해방 전에 노예로 살던 때가 아닌, 애굽에서 해방된 하나님의 백성 즉 자유백성들이 누려야 할 시간이 바로 안식일이라는 것입니다.

안식일을 지키는 진정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제4계명의 원리(출 20:11/신 5:12, 창1:26-2:3)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①창조의 완성입니다 - \"안식\"의 개념...\'솨바트\'( ) = \"쉬다\" \"일을 그치다\" (창 2:2,3)...안식일은 바로 창조의 법입니다. / 2)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

②참 예배의 시간입니다. (출 20:8-11)...8)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9)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10) 제 칠 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 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11)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 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③구원의 완성 - 출애굽 사건에서 찾아야 됩니다. 신 5:12-15 / 15)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너를 거기서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를 명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
그렇다면 출애굽 사건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죽음에서의 구원입니다. 유월절 사건, 장자 죽음을 보게 되었고 그 중에 이스라엘 백성의 구원이 있었습니다. 포로생활에서 자유를 얻은 것입니다. 안식은 애굽에서 나와 가나안 복지, 약속의 땅으로 들어감을 말합니다. 이 사건의 연장에서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안식일을 기억하라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우리는 영원히 지옥가야 할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이 분주한 세상 생활 속에서 살다보니 예수 믿고 구원받았다고 하는 놀라운 사실을 잊고 지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주일(안식일) 만이라도 와서 다시 한번 이 구원의 감격을 다시 회복하라는 말입니다. 우리의 양심과 육신이, 그리고 과거생활이 종 되었던 자리에 놓여 있었지만 이제는 우리가 악마의 사슬에서 놓임을 받고 자유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거룩한 주일날 하나님 앞에 나와 찬송할 때에 우리는 우리가 받은 이 자유를 만끽하는 이 아름다운 날이 곧 주일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날은 하나님이 약속의 땅을 약속해 주시는 날입니다. 주일예배를 통하여 앞으로 누려야 할 영원한 천국을 사모하며 그 나라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순간까지 약속을 바라보게 하는 역사가 있습니다.

안식일을 어떻게 지켜야 하나? - 유대인들의 39가지 안식일 항목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또한 10절을 보면 명령이 또 하나 있습니다. 제 칠일 즉, 안식일은 아무 일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안식일 계명을 지키기 위해서 안식일에 하지 말아야 할 것들에 대해서 39가지에 이르는 항목을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에다 그 항목을 어떻게 잘 지킬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끝없는 주석을 달았습니다. 600여가지의 항목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입니다.

안식일 날 짐을 들어서는 안된다는 항목이 있는데 여기에 이런 주석이 붙어 있습니다. \"마른 무화과 열매의 무게나 그보다 무거운 것은 짐이다. 그러므로 안식일에 무화과 반쪽을 들고 다니는 것은 허용이 되지만 만일 그것을 놓았다가 다시 들어올리면 조금 전에 반쪽을 들은 것에 또 반쪽을 들은 것이 됨으로 무화과 열매 한쪽의 무게를 든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안식일을 범한 것이다.\"
이처럼 짐을 들어서는 안된다는 항목에 그럼 짐은 어떤 것들이 있는가? 라는 주석이 달려 있고 또 거기에 따라 세세한 여러 목록들을 만들어 수많은 올가미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또 이런 것도 있습니다. \"만일 누가 한 장소에서 과일 한 쪽을 들고 가다가 안식일이 시작되면 그는 그 순간에 그 과일을 떨어뜨려야 된다. 그렇지 않으면 그는 짐을 다른 장소로 옮기는 것이 됨으로 안식일을 범하는 것이다.\"

\"안식일에는 틀니도 끼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틀니가 빠질 수 있기 때문이면 그렇게 되면 틀니 주인은 그것을 주우려 하는 유혹을 받아서 안식일을 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39개의 항목에는 안식일에 여행을 하는 것을 금하고 있는데요. 여기에도 끝없는 주석이 붙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안식일에 이천 규빛(약 1Km)을 여행해서는 안된다.\"
이 규정은 안식일에 만나를 모으기 위해 진을 떠나지 못하도록 금지한 모세 시대에 그 기원을 두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출 16:29). 그리고 이 거리는 감람산에서 예루살렘까지의 거리 정도 됩니다. 그러나 예외 규정이 있는데 도시 안에서는 상관없었습니다. 또한 우스운 것은 사람의 몸에 이럽이라는 끈을 만들어 길게 늘어뜨리면 그 끈이 끝나는 지점에서부터 2000규빗을 계산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도시에서는 집집마다 끈을 연결을 해서 그 도시 안에는 마음놓고 다니게 하는 일도 생길 정도였습니다. 나아가 만일 어떤 사람이 안식일 전날에 1km 이상 여행하기 위해서는 그곳에 미리 두 끼 식사를 하기에 충분한 음식을 맡겨 놓았다면 그는 그 곳을 주거지로 삼고 1km를 더 여행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 안식일에는 일하는 것을 금하고 있는데 그 일에 대한 주석을 보면 \"안식일에는 거울을 보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있다\" 그 이유인 즉은 여인들이 거울을 통하여 자신의 흰머리를 보고는 그것을 뽑으려 하여 안식일을 범할 수 있는 우려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또 안식일에는 자신의 손수건 외에 침을 뱉는 것을 금하고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땅에 침을 뱉고 홀 실수로 그 침을 발로 문지를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발로 땅을 문지르는 것은 땅을 경작하는 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아무 일도 하지 말라는 말씀을 지키기 위해서 수많은 조항을 만들어 놓고 그것으로 자신들을 가두었습니다.

이런 예를 철저하게 따르던 청교도들은 면도를 하다가도 안식일이 시작되면 면도를 중단하고 주일 예배에 참석을 하기도 했습니다. 또 우리 조상들도 이런 청교도적인 신앙을 물려받아 이런 정신을 지키려 무척 애를 썼는데. 옛날 시골 교회에서는 토요일에 마당에 널어놓은 고추를 주일에 거두어 들어야 하느냐? 마느냐? 또 이렇게 고추가 널려 있는데 비가 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하는 것을 가르치던 경우도 있었습니다. 다 유대인들의 영향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현재를 사는 우리 성도들도 주일에 대한 여러 가지 질문들을 가지게 됩니다. 주일날 기차를 타는 것은 어떻습니까? 차비를 내는 것은 옳습니까? 물건을 사는 것은 어떻습니까? 장로교 헌법에 이에 대한 것을 명확하게 제시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이 규정들은 주객이 전도되는 현상을 감지하게 됩니다.
아무 일도 하지 말라(10절)

그렇다면 이런 유대인의 삶에 참 안식이 있었을까요? 외형적으로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쉬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겠습니다. 하루에 약 1Km 이상 움직이지도 않고 과일 하나 드는 것도 짐을 드는 것이 되고 바로 땅을 비비는 것도 경작하는 것이 되니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또 이런 것들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신경을 써야 했겠습니까? 겉으로는 정말 아무 것도 하지 않아 안식하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저들의 내면에는 참 안식이 없었을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자칫 실수해서 발을 비빈다든지 흰머리를 뽑는다든지 과일을 들어서 안식을 범하면 어떻게 하는가? 아마 지금 우리들에게 이런 것들을 요구한다면 노이로제에 걸리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이들에게는 참 안식이 없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겠습니다. \"이들은 안식일을 지키기 위해서 참 안식을 버렸다\".

아무 것도 하지 말라고 하신 근본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소극적인 의미로서 알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연약함을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안식일에 쉬게 하신 것은 인간이 6일 동안은 일을 하고 7일째 되는 날을 쉬도록 창조되었기 때문에 쉬어야 하는 것입니다. 육체는 6일을 일하고 7일째 쉬어야 합니다. 칠 일째 쉬시면서 그날을 복 주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쉬지 않고 일하는 것이 빨리 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그것이 늦게 가는 것입니다. 인간이 일주일 중에 하루를 쉬는 것은 사회적, 산업적, 인체 공학적 측면에서 필수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보다 더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복되고 거룩하게 한 날이기 때문입니다.

11절을 보면 하나님은 안식일을 복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것이 온 세상에 미친 영향은 실로 엄청납니다. 모든 자연 뿐 아니라 모든 사람이 \'안식일\'의 복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막2:27). 그렇다면 그 날을 복 주셔서 거룩하게 하셨다는 것은 도대체 무슨 뜻일까요? 이 안식일이 어떤 의미가 있기에 하나님께서는 이 날을 복 주셔서 거룩하게 하셨을까요?

이 뜻을 알기 위해서 구약에서 안식일이 어떻게 발전되고 또 그런 날들에는 어떤 일들이 행해 졌는가를 함께 살펴봐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 것처럼 구약의 이스라엘의 문화는 안식일 문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안식일을 중심으로 해서 여러 일들이 이루어집니다. 잘 아는 것처럼 안식일은 7일마다 한 번씩 옵니다. 그런데 이 안식일은 안식일로 끝나지 않고 7년이 되면 안식년으로 발전하며 또 7년의 7회가 되는 해 희년으로 발전을 하게 됩니다. 레 25장에 있는 말씀을 보면 이 말씀은 안식년 또 희년에 대해 매우 상세하게 말씀하고 계시는데,

(레 25:1) \"여호와께서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 말씀 역시 우리가 지금 살피고 있는 출애굽기하고 같은 배경이다. 2-5절 말씀을 보면. \"(2)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주는 땅에 들어간 후에 그 땅으로 여호와 앞에 안식하게 하라 (3) 너는 육년 동안 그 밭에 파종하며 육년 동안 그 포도원을 다스려 그 열매를 거둘 것이나 (4) 제 칠 년에는 땅으로 쉬어 안식하게 할지니 여호와께 대한 안식이라 너는 그 밭에 파종하거나 포도원을 다스리지 말며 (5) 너의 곡물의 스스로 난 것을 거두지 말고 다스리지 아니한 포도나무의 맺은 열매를 거두지 말라 이는 땅의 안식년임이니라\"

이 구절들에는 안식년이 등장을 하는데. 안식년은 7년에 한 번씩 돌아옵니다. 마치 칠일에 한 번 씩 돌아오는 안식일과 흡사합니다. 그런데 이 때는 땅으로 쉬게 하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러면 안식일은 사람과 육축이 쉬는 것이고, 또 안식년은 땅이 쉬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안식년이 다시 6번 지나고 나면 희년이 옵니다. 즉, 49년이 지나고 50년째가 되는 해가 희년인데. 희년의 특징이 무엇일까요? 예, 자유가 선포된다는 점입니다. 즉,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해 종 되었던 사람들이 각기 자기 집으로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사정에 의해 다른 사람에게 팔았던 땅들도 주인에게 돌려 진다는 점입니다. 이처럼 희년이 되면 자유가 선포되고 놓임 받는 일이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안식일 안식년 희년에는 참 자유함과 쉼이 있는 날들이 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온 땅의 주인이심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참 안식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인간은 일의 노예가 아니며 아울러 장차 올 영원한 안식을 누리게 되는데 이 땅에서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복된 날들을 잘 지킴으로 말미암아 미리 천국을 맛보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히4:10)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과 같이 자기 일을 쉬느니라

유대인들의 오해

그러나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안식일을 왜곡하고 그 의미를 희석시키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안식일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많이 하는지 모릅니다. 그렇기에 안식일을 위한 규정이 그렇게 많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안식일과 주일(The Lord\'s Day)의 관계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그러나 문제는 교회가 구약에서처럼 \'일곱째 날\'을 \'안식일\'로 지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 교회는 \'안식일 다음날\'을 \'주일\'로 지키는가? 구약의 \"안식일\"과 신약의 \"주일\"은 무슨 관계가 있는가? \'주일성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가 생각해야 할 문제들입니다.
안식일은 한 주간의 마지막 날로서 여호와가 엿새 동안 창조의 역사를 마치고 쉬신 날을 기념한 날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유대인의 율법에 의하면 안식일에 일을 할 수 없습니다. 밥을 지을 수도 없고, 무거운 짐을 운반할 수도 없고, 컴퓨터를 칠 수도 없고, 산책을 할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일을 하지 않으시고 쉬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인 자신들도 역시 일하지 않고 쉬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초기에 안식일은 노동으로부터 해방되는 자유로운 휴식일이었으며 하나님의 성소에서 예배를 드리는 구별된 날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문자적으로 이해하며 그 의미보다 형식을 중요시하는 인간의 편협성은 점차 안식일의 참된 의미를 희석시키게 되었고 외적 준수만을 더욱 강조하는 결과를 낳게 되었습니다.

신약에 오면서 예수께서는 안식일의 형식적 준수에만 얽매이는 유대인들의 율법주의를 통렬히 비난하면서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막2:27)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안식일의 본래 의미를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주일은 바로 한 주간의 첫 날로서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인자 되신 주님께서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날이 신약성도들의 안식일이 되었습니다. 본질상 진노의 자식들이었고, 사망의 권세 아래 잡혀 살았던 우리 인생들이 진정한 자유와 평안을 주님의 부활로 얻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주일은 예수님의 구속의 역사를 통해서 우리에게 줄 영원한 안식의 표증이 되는 새로운 안식 곧 영원한 안식을 미리 맛보게 한 날입니다

예수님의 병자를 고치신 사건

우리는 예수님의 치유의 사건을 통하여 알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신 사건을 통해(요 4:43-54 신하의 아들을 고침; 5:1-18 베데스다 못가의 병자를 고침) 안식을 범한 것으로 오해하고 시비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에 일을 하였을 뿐 아니라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이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말씀하시며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주장에 대하여 바리새인들과 종교지도자들은 분노했던 것입니다.

구약은 안식일에 육신의 일만 쉬는 것을 말하고 있지만 신약은 육신의 일은 쉬고 신령한 일은 힘써 할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안식일은 평소의 하던 일을 쉬고 하나님의 창조와 구원사업을 기억하고 여기에 참여하는 기쁜 날인 것입니다.

병자를 고치신 이 사건들에는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가 있습니다. 병자들은 그 삶이 어떻습니까? 병원에 심방을 가면 어떻게 할 수 없을까 안타까움이 너무 많이 듭니다.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셔서 기도하기만 하면 환자들이 다 나았으면 얼마나 좋을까? 소원해봅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사실 환자들에게는 진정한 안식이 없습니다. 육신의 고통으로 인하여 그 시달림이 얼마나 큰지 어떤 때는 아픈 것보다 그냥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요한복음에 등장하는 이 사람들도 자기 스스로 자신을 고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사탄의 결박에 메여 지난 세월 고통 중에 살았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병을 고치시면서 생명의 통치를 실현하신 것입니다. 안식일의 원래 의미는 완전한 아름다움을 즐김과 쉼에 있으나 안식일이 인간에 의해 망가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구원의 완성은 종말에 이루어집니다. 제4계명은 태초의 완전한 안식일의 의미를 기념하는 것이고, 새 창조의 소망을 기원하는 것입니다. 병자를 고치신 예수님은 바로 완전한 안식일이 있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바로 이 38년 된 병자는 안식일의 필요성을 극적으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구약의 안식일은 6일 동안 완성된 심히 아름다운 창조에 대한 축제였습니다. 이 안식일은 바로 하나님께서 생명이 충만한 창조주이심을 선포하는 날입니다. 그러한 인간이 사탄의 꼬임에 넘어가 스스로 하나님이 되기를 소원하였는데 교만하게 된 인간은 죄를 범하게 되었고, 그 때부터 인간은 참 안식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사단의 말을 들으므로 사단의 통치 아래 떨어진 인간은 내재의 자원- 즉 자신이 가진 자원으로 자신의 안녕과 행복을 확보하겠다고 주창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교만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떠나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야 하는 인간은 언제나 평안이 없습니다. 항상 부족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혜가 부족하고 사랑이 부족하고 능력이 부족하여 갈등의 구조 속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서로 시기하고 분쟁하고 남을 이기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어리석은 존재들이 되었습니다. 이 증상들은 바로 죽음의 증상입니다. 즉 안식이 없는 상태입니다. 죄에 빠져 있던 인간은 그 누구도 진정한 자유와 기쁨을 누리지 못합니다.

세상의 것이 아무리 많을지라도 그것들이 사람의 마음에 평화를 주지 못합니다.
우리가 생업을 가지고 일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세상에는 가진 것이 많아 일하지 않고도 먹는 것이 풍부한 사람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이 진정 행복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누구나 일을 해야 합니다. 그 일로 인하여 우리가 누릴 것을 확보하기 위한 것입니다. 일하지 않으면 먹을 수 없는 세상이라는 것이죠.

그런데 일주일 중에 하루 즉 주일을 쉬어야 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쉬는 것이 아닙니다. 이 날에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께서 주실 은혜를 사모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살아 있는 예배를 한 번 드려 보십시오. 이 예배가 여러분들에 얼마나 큰 감동을 줍니까? 이 예배를 통해 가슴이 뜨거워 옴을 느끼지 않습니까? 지친 내 영혼에 새로운 용기를 얻지 않습니까? 믿음대로 살아야 하겠다는 새로운 다짐이 생기지 않습니까?

혹 여러분들 중에 살아 있는 예배를 드리게 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면 그 이유를 찾아보십시오. 종종 보면 주일날 상습적으로 피곤에 지쳐 있는 분들을 봅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왜 늘 피곤함으로 예배에 참석하셔서 눈을 감고 명상을 하셔야 합니까? 여러분들이 주일날 살아 있는 예배를 드려 힘을 공급받지 않는다면 일주일 역시 안식할 수 없습니다. 주일에 영적인 힘을 공급받기 위해서 여러분들을 방해하는 것들을 다 자르십시오. 거기서부터 여러분들의 예배가 시작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본래 내가 누릴 풍요를 확보하기 위하여 일을 해야 하는데; 쉼(안식, 예배)으로 인하여 나의 힘으로 그것을 확보하는 것을 중단하고, \'나의 생명과 안녕과 행복은 오직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즉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살 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립니다. 은혜주셔서 승리하는 성도들이 되어지게 하소서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나의 유익을 위하여 남들을 착취하는 것은 잘못된 입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죽어라고 일하기에 40대에 빨리 죽게 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아무리 많은 것을 얻었다 할지라도 자신의 생명이 끝나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우리는 죽어라 일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일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이웃을 섬기기 위하여 우리에게 맡겨주신 소명대로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들을 재분배하며 공동체에 유익을 주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곳에 샬롬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안식이며 평안입니다. 이렇게 고백하는 성도들은 다가오는 6일 동안 참 안식의 마음을 가지고 그렇게 살수밖에 없습니다.

안식일은 예배의 완성입니다. 하나님과의 교제의 회복이며 영원한 천국의 소망을 회복하는 날입니다. 억지로가 아니라 기쁨으로 영광을 돌리는 복된 날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