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예배자가 되라/벧전2:4-5,9 2001-11-08 10:35:16 read : 353
모 여집사님 한 분이 설교시간에 무언가 열심히 받아쓰고 있었습니다. 평상시 예배 때에는 그냥 듣고만 있었던 집사님이라, 설교를 하던 목사님은 관심이 집중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목사님은 설교를 하면서 속으로 \'오늘은 저 집사님이 설교 듣는 태도가 달라졌구나\'하고 기쁘게 생각했습니다. 예배가 끝나고 목사님은 그 집사님에게 물었습니다
. \"집사님, 오늘부터 예배시간에 설교를 기록하면서 듣기로 하셨군요.\" 그러자 그 여자 집사님은 \"목사님 설교요, 아니예요. 곗돈 순번 짜고 있었어요.\" 요즈음 예배드리는 형태도 천태만상입니다. 어느 글에서 예배 드리는 여러 가지 모습에 대해 기록해 놓은 것을 적어 보았습니다. 멀거니 강단을 응시하는 딴생각파, 주보에 밑줄 긋고 교정까지 보는 읽기파, 예배를 시작하면 졸기 시작하는 수편파,
수시로 시계를 들여다보는 시간 절약파, 옆 사람과 글로 대화하는 쪽지파, 예배 후에 있는 회의를 준비하는 회의파, 예배 시간에 성경 읽기로 시간을 때우는 독서파, 주위에 있는 아기에게 눈을 맞추고 아기에게 집중하는 유모파, 설교 꼬뚜리 잡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시험 채점파, 처음부터 끝까지 팔장을 낀채 예배를 구경하는 관람객파,등 천태만상의 형태가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예배 태도는 예배 드리기 자세가 아닙니다. 예배 견디기 자세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단지 예배가 끝날 때까지 인내하며 참고 견디는 예배 견디기 자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예배 태도를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그저 종교적인 의무로 드리는 형식적인 예배를 하나님께서는 받으시지 않습니다. 그러한 자세로 드리는 예배에 성령께서 역사하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그러한 자세로 예배드리는 사람들을 책망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사1:10~12)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
너희 소돔의 관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너희 고모라의 백성아 우리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내 마당만 밟을 뿐이라.\" 하나님께서는 형식적으로 성전 뜰만 밟고 가는 사람들을 기뻐하신 적이 한번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예배를 구경하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예배 구경꾼을 찾으신 적이 한번도 없습니다.
1) 주님은 예배자를 찾으신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예배를 가장 기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무엇보다도 예배자를 찾으십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받아준 사람들은 많습니다. 상처받은 사람들, 가난하고 굶주린 자들, 죄인들도 주님께서 기뻐 받아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참으로 예배하는 참된 예배자를 찾으십니다. 다같이 (요4:23) 말씀을 보겠습니다. \"아버지께서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라.\" 하나님은 봉사자보다도, 전도자보다도, 가장 먼저는 예배자를 찾으십니다. 그리고 예배자를 기뻐하십니다.
이러한 사실이 (눅10:39~40)에서 언급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한번은 나사로의 집으로 가셨습니다. 그 때 그의 누이 마르다는 예수님을 대접하기 위하여 부엌에서 무엇인가 열심히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반면에 동생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아래 앉아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우리가 피상적으로 생각하면 마리아는 너무 이기주의적인 행동을 하였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르다는 역시 언니답게 헌신한 아름다운 모습을 보였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어떠한 반응을 보이셨습니까?
예수님은 언니 마르다를 타이르셨습니다. 그것은 마르다가 중요한 일을 등한시했기 때문입니다. 그날 마르다는 예수님을 접대할 좋은 음식을 위하여 준비하느라, 동생 마리아처럼 예수님과의 참 교제를 통하여 얻게 될 영적 양식을 놓쳐버리고 말았습니다. 다시 말하면 마르다는 정작 중요한 주님과의 만남을 소홀히 해버렸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마리아를 칭찬하시고 마르다를 책망하신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가장 안타까운 사람이 예배 시간에 예배는 드리지 못하고 봉사한다고 왔다 갔다 하는 분들입니다
. 물론 음지에서 수고하고 헌신하는 사람들로 인하여 교회가 돌아가고 있고, 그 분들로 인하여 적절한 예배환경이 만들어집니다. 저는 유초등부 어린이들을 사랑으로 돌보느라 수고하시는 교사 선생님들이라든지, 유아실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선생님이라든지, 2층 방송실에서 음향, 비디오, 컴퓨터 작업등을 하는 분들이라든지, 예배부에서 안내 등으로 섬기는 분들에게 항상 감사를 드립니다. 또 그 분들을 위하여 많이 기도합니다.
그래서 그 분들을 위하여 주일 예배를 1부와 2부로 나누어서 드리면 이 문제가 해결될 것 같아 이를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아무튼지 예배시간에 예배드리지 못하고 봉사하시는 분들이 가장 안타깝습니다. 또 그 분들의 영적인 갈급 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클 것입니다. 그러한 분들을 위해서 기도 많이 해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은 예배를 원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주님은 예배자를 찾으시는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여러분들이 마르다와 같이 일 때문에 예배에 소홀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이 사역 때문에 주님과의 교제를 소홀히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오히려 마리아처럼 주님과의 만남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시기 바랍니다. 예배를 그 어떠한 것보다도 가장 중요하게 여기시기 바랍니다.
교회에는 예배, 교육, 선교, 등의 3대 사명이 있지만, 그 중에서 예배는 가장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교육보다도, 복음전파보다도, 성도간의 교제보다도, 그 어떠한 것보다도 예배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십니다. 경배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십니다. 그런데 어떤 분들은 \'교회가 세상은 돌보지 아니하고, 불신자들에게는 나아가지 아니하고, 교회당 안에만 모여 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는 분들은 교회론에 대해서 모르기 때문입니다. 교회에서의 첫 번째 사역은 예배입니다. 교육보다도, 전도보다도, 구제보다도 하나님께서 예배드리는 일이 가장 먼저입니다. 9절을 보면 그러한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본문 9절을 보겠습니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주님께 예배 드리는 일이 최우선이라는 것입니다. 왕 같은 제사장들로서 먼저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나서, 그 다음에 \'세상에 나가 주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라는 것\'입니다. 교회는 단지 사회를 위한 곳이 아닙니다. 먼저는 하나님을 위한 곳입니다. 교회는 단지 사회 개혁을 위해 세워진 곳이 아닙니다. 교회는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곳입니다. 교회는 예배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예배당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 드리는데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저는 누가 뭐라고 해도 예배를 가장 중요시하려고 합니다. 예배자 입장에서, 설교자 입장에서, 목사 입장에서 에배에 목숨걸려고 합니다.
저는 설교시간에 어떤 사람을 반박하는 내용의 이야기를 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그리고 이제까지 제가 기억하기로는 그러한 형태의 말씀을 가급적이면 드리지 않을려고 했습니다만, 예배에 대한 분명한 정리를 위해서 오늘은 말씀을 드릴까 합니다. 1월3일에 저희 청년 홈페이지 게시판에 어느 분이 무명으로 글을 올렸습니다. 그 글은 제가 올린 글에 대한 반박 형식의 글이었습니다. 저는 이 글을 읽고 또 읽고 그리고 오랫동안 생각하고 또 생각했습니다. 제가 그 중에 한 부분을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교회에서 제일 중요한 건 극장 못지 않은 사운드와 시스템이 아니라, 진정한 성령님이 임재하며 은혜 충만한 찬양이다.\" 참으로 맞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맞습니다. 중요한 건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예배, 은혜 충만한 예배입니다. 그러한 예배를 저는 소원하며 꿈꾸고 있습니다. 저도 그러한 예배를 평생동안 드려봤으면 하는 소원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를 위해 저는 종종 밤을 세웁니다. 또 이를 위해서 저희 교회에서는 30여명의 골방 기도팀의 지체들이 매일 연쇄적으로 금식하며 기도합니다. 매일 새벽마다 새벽기도회에서 각종 집회와 예배를 위해서 부르짖어 기도합니다.
성령충만하고 은혜 충만한 예배를 원하지 않는 목사가 어디 있습니까? 저는 은혜충만, 성령충만한 예배를 날마다 소원하고 있습니다. 그 분의 글을 계속해서 읽어보겠습니다. \"보다 빠른 컴퓨터와 보다 좋은 음향을 위해 쓰여졌을 돈이 정말 타지에서 고생하는 목회자님들과 선교사님들 그리고 불쌍한 이웃에게 돌아가는 것이 더욱더 값지고 또한 교회가 꼭 해야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저는 이 말에 어느 정도 동의는 하지만,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을 지으시고, 우리를 창조하신 가장 첫 번째 목적은 우리로 말미암아 찬미를 받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즉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고, 우리와 교제를 하시기 위해서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꼭 교회가 해야할 첫 번째 일은 타지에서 고생하는 목회자님들과 선교사님들 그리고 불쌍한 이웃을 돌보는 일이 아니라, 예배인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예배를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성공적인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는 그것이 음향기기 구입이든, 악기 구입이든, 심령의 엎그레이드이든, 심령의 갱신이든, 무엇이든지 간에 최선을 다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것이 너무 과해서 사치가 되고 허영이 된다면 재고해 보아야 하지만, 한도 내에서 예배를 위한 아낌없는 투자가 필요합니다.
사실 친교실 증축은 늦게 해도 좋습니다. 교육관 증축은 늦게 해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예배를 위한 시설은 우선적으로 준비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사택 구입은 안 해도 좋습니다. 하지만, 예배를 위한 음향시설을 우선적으로 준비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시설을 준비하여 예배에 최선을 다할 뿐 아니라, 전심을 다해 예배에 힘을 쏟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예배에 목숨걸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예배를 기뻐하시고, 예배자를 찾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친교와 선교보다 예배를 더 기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교사보다 먼저 예배자를 찾으십니다. 선교사보다 예배자를 찾으십니다. 믿으십니까? 그런데 누가 예배자가 될 수 있습니까? 어떤 사람이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 있습니까?
2) 예배는 아무나 드릴 수 없다
예배는 아무나 드릴 수 없습니다. 죄송하지만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 있는 자격이 있습니다. 과거 구약시대에는 레위지파 출신의 제사장들이 성소에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제사장들이 짐승의 피를 가지고 하나님께 피의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 외에는 아무도 직접 하나님께 제사드릴 수 없었습니다. 일반 백성들은 단지 제사장만을 통하여 예배드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졌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히10:19~22)을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나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과거에는 제사장들만 하나님 앞에 나아 갈 수 있었는데,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도록 보증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6.25전쟁 때에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북한 공산군이 갑자기 남침하는 바람에 국군은 낙동강까지 밀려내려왔으나 군비를 정돈하고 유엔군의 도움을 받아 3.8선을 넘어 북진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중공군의 개입으로 인해 눈물을 머금고 다시 후퇴하게 된 것이 1951.1.4후퇴였습니다. 이때에 어떤 목사님이 교인들과 함께 피난민의 무리에 섞여 남하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나가는 동리마다 설치된 검문소에서 신분증을 조사하며 공산군인지 아닌지를 구별하고 있었습니다.
교인들은 검문소를 지날 때마다 신분을 증명하기 위해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때마다 동행하던 그 목사님은 자신의 신분증을 보이며 \"이 사람들은 모두 제가 지도하는 교인들인데 제가 신분을 책임을 지겠습니다\"라고 말하면 아무 문제없이 그대로 통과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죄인인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만한 아무 자격이 없습니다. 아무도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우리의 신분을 보증해주시므로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예배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는 특권층의 사람들인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수 있는 특혜를 받은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예배를 드려야 할까요? 어떻게 예배를 드릴 때, 성공적인 예배를 드릴 수가 있을까요?
3) 주님의 방법대로 드려라
예배는 예배의 주인이신 주님께서 원하시는 방법으로 드려야 합니다. 예배는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주님의 방법대로 드려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우리 생각대로, 우리 방법대로 드리면 헛수고할 수밖에 없습니다. 교회에서 12월 중순에 저에게 핸드폰을 구입해 주었습니다. 그 후 약 2주 동안 저는 전화를 걸기만 했지, 걸려오는 전화를 거의 받지 못했습니다. 저는 아무도 2주동안 전화를 하지 않은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음성 메시지가 수없이 많이 들어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모르고 2주 동안 음성 메시지를 열어 보지 않았던 것입니다.
수년 전에 핸드폰을 두 번씩이나 바꾸어 가며 사용했던 때는 음성 메시지를 녹음하는 디지털 핸드폰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저는 음성 메시지를 듣는 방법을 알지 못했습니다. 제가 핸드폰을 살 때, 받은 매뉴얼을 보고 매뉴얼대로 했으면 음성 메시지를 들을 수 있는데, 매뉴얼을 무시해 버렸던 것입니다. 그 결과 몇몇 분으로부터 음성메시지를 듣고도 회신해 주지 않았다고 오해도 받았습니다. 여러분! 핸드폰을 잘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은 핸드폰 매뉴얼대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예배를 잘 드릴 수 있는 방법은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매뉴얼대로 드려야 할 줄로 믿습니다.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방법대로 예배를 드려야 할 줄로 믿습니다.
(1) 성령과 진리 안에서 드려야
첫 번째 우리는 신령과 진리 안에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요한복음 4장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 예배할 장소를 묻는 사마리아 여인의 질문에 대하여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예수님께서는 예배자의 자세와 예배 드리는 방법에 대해서 가르쳐주셨습니다. \'신령과 진정으로\'라는 이 말을 헬라어 원어로 \'성령과 진리 안에서\'(in Spirit and Truth)\'라고 읽습니다
. 예수님께서는 참된 예배는 \'어디서\'라는 장소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라는 방법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예배를 드려야 합니까? 성령과 진리의 말씀 안에서 드려야 합니다. 두 가지 중에서 하나라도 빠지면 참된 예배가 아닙니다. 본질적으로 영이신 하나님께 예배할 때,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며 성령의 능력으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예배 가운데 성령께서 운행하시도록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의지하며 모셔드려야 합니다. 또한 예배는 진리 안에서 드려야 합니다. 예배는 어느 개인의 소견대로 따라서는 안됩니다. 어느 교파나 단체나 목사의 방법을 따라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2) 기쁨으로 드려야
둘째로 예배는 기쁨으로 드려야 합니다. 예배는 노동이 아닙니다. 예배는 기쁨입니다. 예배는 축제입니다.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면 마음이 설레고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마찬가지로 가장 나를 사랑하시고 은혜 주시는 하나님을 예배드리는 것이 감격스러워야 합니다. 기뻐야 합니다. 본문 5절에서 이와 같은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도 산 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가 예배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기쁨으로 드리는 것이 주님이 받으시는 예배입니다.
(3) 정성으로 드려야
예배는 준비가 필요합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예배를 드리는 데에 정성이 필요합니다. 제가 경험해보니, 시민권을 수여를 하는 Ceremony에 참석을 할 때도 미리 준비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예정시간보다 미리 도착하여 준비합니다. 영국 여왕대신 단상에 등장하는 시장을 만나기 위해 정갈한 복장을 합니다. 하물며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가 되시는 하나님을 예배하는데, 10분씩, 20분씩 늦어서 되겠습니까? 또 하나님 앞에 나오는데 대충 입고 나와서 되겠습니까? 여러분! 정성으로 예배를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배를 내 방식대로 내 기준대로 드리지 마시고 하나님 방식대로 하나님 기준대로 드리시기를 바랍니다. 성령과 진리 안에서, 기쁨으로, 정성을 다해 드리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예배에 성공하시기 바랍니다. 거룩한 예배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희 교회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려진 두 개의 글을 소개하고 오늘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탈북자 선교를 감당하는 예랑 선교회의 가조선교사라는 가명으로 작년 6월에 올려진 글의 일부입니다. <아침에 다시 날이 밝고 햇살이 온 땅에 퍼질 때 또 한 날을 살게 하신 하나님께 나는 감사합니다. 오늘 하루도 찬양하고 형제들을 보살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부자와 같은 마음입니다. 저 많은 옷들을 내일은 북한의 형제들에게 보낼 일을 생각하니 너무도 가슴 뿌듯합니다. 어제는 쌀과 약품을 보냈습니다. 북한의 지하교회 형제들이 당분간은 버틸 수 있을 것입니다. 카세트와 설교 테이프도 보냈습니다.
우리 믿음의 형제들을 통해서 필요한 모든 것을 때에 따라 보내 주신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 수고와 정성을 아끼지 않는 남쪽의 믿는 형제들과 예랑 선교회의 일꾼들에게도 감사합니다. 오늘은 나도 멋진 옷 하나를 챙겨 입겠습니다. 내일은 주일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땅굴 속에서 드리는 예배일 지라도 마음만은 정성 것 드리고 싶어서입니다. 어떤 한 형제가 \"남쪽에서 보내준 옷을 입으니 서울사람 같투레 하구만!\" 해서 모두 웃었습니다. 여기 형제들은 남쪽의 목사님들을 한번 만나보는 것이 소원이랍니다.
테이프로 목소리만 듣던 목사님들을 직접 만나 설교도 듣고 기도도 받기를 그렇게도 바란답니다. 그리고 목사님들은 무척 멋있고, 아마 예수님과 비슷한 분들 일거라고 생각들 한답니다. 어제 밤에는 희미한 관솔불 밑에서 죄와 회개, 용서와 화해를 가르쳤습니다. 오늘밤에는 사랑을 가르치겠습니다. 이들이 주님의 참사랑을 배워 북한에 돌아가면 조금씩 조금씩 북녘하늘이 밝아질 줄로 믿습니다.>
또 작년 8월에 올려진 글의 일부입니다. <함경북도 00지역에 지하교회가 세워졌습니다. 탈북한 한 형제가 우리 선교사들에게 신앙을 훈련받고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서 주변 친척과 친구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들은 드디어 함경북도 00시 한 형제의 집 으슥한 골방에 모여 목소리를 낮춰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을 한 뒤 찬송가 405장을 소곤거리듯 불렀고, 열왕기하 5장 1절부터 14절까지를 낭독한 뒤 \"나아만 장군 앞에선 소녀\" 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습니다.
설교의 내용은 \"포로로 잡혀온 소녀는 적장에게까지 주의 종을 소개하고 결국 구원받게 했는데 우리는 제나라에서 제 가족, 제 형제를 구원의 길로 인도하지 못할 것이 무엇이겠는가? 두려워하지 말고 주께로 인도합시다.\" 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이렇게 첫 예배드린 날이 1998년 11월 3일 오전 10시였습니다. 이날 13명이 모이기로 했었는데 교통편이 허락지 못해서 11명만 모였습니다. 예배를 마친 이들은 자기들 모임을 00시 000교회라고 자기들 스스로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선포했습니다. 그런데 이 일이 있은 후 함경도 지방에서는 10여명 정도 예배드리는 작은 모임이 수없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런 모임을 지하교회라고 합니다. 이렇게 지하교회가 눈부시게 퍼져나가는 중 금년 2월 10일에는 함경북도 무산시에서 리영희 성도가 순교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또 집안에서 성경책이 나왔다고 일가족 6명을 모두 총살 한 적도 있습니다. 지금 북한의 지하교회는 말할 수 없는 핍박을 받고있습니다. 간첩 소탕작전을 하듯 지하교회 성도들을 색출하고 있습니다. 리명희 성도의 순교이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 믿는다는 이유로 공개 총살을 당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예배에 목숨건다는 말이 이해가 되십니까? 예배에 목숨건다는 말이 피부에 와 닿습니까? 하나님께 예배 한번 드리기 위해 총살형을 무릅쓰고 있는 북한의 형제들이 상상이 되십니까? 우리는 지금까지 너무 안일한 예배를 드려왔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북한형제들이 드리는 이러한 예배를 다른 어떤 예배보다도 기뻐 받으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들의 예배가 거룩한 예배라고 믿습니다. 그들이 바로 거룩한 예배자라고 믿습니다. 주님은 북한 형제들과 같은 예배자를 찾으십니다. 거룩한 예배자를 찾으십니다.
오늘 이 아침에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도 산 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저는 저와 여러분들이 돈보다도, 명예보다도, 더 나아가 가장 귀하게 여기는 생명보다도 예배를 가장 최우선으로 하는 거룩한 예배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성령과 말씀 안에서 최선을 다하여 예배드리는 거룩한 예배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북한에 있는 형제들처럼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리는 거룩한 예배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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