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의 요소와 법칙 레6:1-30
I 서론: 예배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1. 얼마전에 한 교계 신문사로부터 ‘열린 예배’에 대한 의견을 묻는 설문지를 받는 적이 있습니다. 열린 예배란 것은 사실 윌로우크릭이라는 교회의 구도자 예배와 같이 전통적인 예배 모범을 탈피한 예배들을 한국말로 표현한 것입니다. 물론 윌로우 크릭 교회의 구도자 예배는 예배라기 보다는 예배를 인도하는 사람들이 연극과 같은 형태를 통해 말씀을 전파합니다. 반면, 한국교회에서 열린 예배라고 불려지는 예배는 전통적인 예배 형식을 탈피하여 찬양과 설교 중심의 예배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형식을 배제하는 것에서는 비슷하지만, 그러나 열린 예배는 전통적인 형식을 갖추지는 않지만, 찬양으로 인도되는 자유로운 예배 흐름을 통해서 성령이 임재하시는 예배를 드린다는 취지입니다.
2. 물론 저는 이런 열린 예배를 반대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런 종류의 열린 예배가 우리 시대의 흐름에 꼭 적합한 예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또 이 열린 예배가 무형식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엄밀히 형식이 없는 예배는 있을 수 없습니다. 단지 전통적인 예배처럼 묵도로부터 시작하여 축도로 끝나는 일련의 순서가 많이 단순화되었다는 것 뿐입니다.
3. 그런데, 분명한 것은 예배는—그것이 전통적인 형식의 예배건, 자유로운 형식의 열린 예배건 간에 예배라면 최소한 성경이 정한 규칙 내에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이 규칙에서 벗어난다면 그것은 예배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찬양과 설교만 있으면 예배란 생각은 잘못입니다. 그렇다면 복음 성가 가수의 전도 집회와 예배는 어떻게 구별할 수 있습니까? 세미나와 같은 집회와 예배를 어떻게 구분할 수 있습니까? ‘찬양 전도집회’를 목회자가 인도한다고 합시다. 많은 찬양을 하면서, 간증하면서, 복음 설교를 했습니다. 그렇다면 찬양 전도 집회가 예배입니까, 아닙니까? 세미나를 열었습니다. 강사가 목사입니다. 복음에 대하여 강의를 했습니다. 시작할 때 기도했고, 마칠 때 주기도문으로 마쳤습니다. 그렇다면 그 세미나는 예배입니까?
4. 자 그러면, 이 수수께끼를 한번 풀어가 보십시오. 찬양과 복음 설교가 있으면 다 예배입니까? 그렇지 않은 것이 분명해 졌습니다. 찬양 집회도 세미나도 찬양하고 복음 전파가 있지만 예배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예배 형식에 따라서 예배이고, 아니고를 구분할 수 있습니까? 그것도 아닌 것이 분명해 졌습니다. 찬양집회도 세미나도 예배 형식을 갖추고 있다고 해서 예배라고 부를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해졌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강의와 찬양집회를 교회에서 하면 예배가 됩니까? 평일날 하지 않고 주일날 하면 예배가 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왜 찬양 집회를 예배라 할 수 없으며, 세미나를 예배라고 부를 수 없습니까? 그것은 찬양 집회와 세미나에는 예배의 규칙, 혹은 예배의 요소가 들어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그 예배의 규칙 혹은 예배의 요소는 무엇입니까? 오늘은 바로 그것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는 어떤 요소를 가졌을 때 예배라고 부르느냐 그것을 배워야 합니다.
II 레위기의 제사 규칙과 예배
1. 레위기는 우리들에게 신약의 예배 규칙이 무엇이며, 예배의 필수적인 요소가 무엇이어야 할 것인가를 우리들에게 가르쳐 줍니다. 레위기란 책은 우리가 잘 읽지 않은, 먼지에 쌓인 책입니다. 여러가지 제사법과 정결법, 의식법등이 제정되어 있는 책이기 때문에 이 책을 읽는 것은 자칫 지루하고 짜증나기 쉽습니다. 하지만, 비록 우리가 읽기 싫은 책이긴 하지만, 이 레위기에 제시된 여러가지 제사법의 원리와 그 정신을 제대로 이해하지 않으면 우리는 신앙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문제가 생겨납니다.
2. 강의와 예배가 다른 점은 전통적인 형식이 있고 없고 때문이 아닙니다. 찬양을 많이하고 적게 하는 차이도 아닙니다. 복음을 전파하는 설교가 있고 없고의 차이가 아닙니다. 주일날이나 혹은 평일날 드려지는 시간의 차이도 아닙니다. 또 성전에서 드려지느냐 교실에서 드려지느냐 장소의 차이도 아닙니다. 예배가 예배인 것은 첫째로 예배에서는 “속죄”가 행해진다는 것입니다. ‘속죄’란 예배의 중요한 한 요소이며, 제사의 규칙입니다. 레위기에서 하나님이 성도들에게 제사를 드릴 것을 명령하신 그 이유는 성도들의 죄를 속하여, 용서하시기 위함입니다. 따라서 예배와 세미나가, 예배와 찬양집회가 다른 점은 예배에는 ‘속죄’가 있지만, 집회나 강의에는 ‘속죄’가 없다는 것입니다.
3. 오늘 본문 레위기 6장에는 구약 제사의 여러가지 종류들을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특별히 레위기 1-7장까지에는 구약에서 드려진 다섯가지 중요한 제사들이 설명되어 있습니다. 그 다섯가지 제사 중에 한가지는 번제가 있습니다. 이 번제가 속죄제나 속건제와 다른 것은 번제도 자신의 죄를 속하기 위해서 드리는 제사의 일종이기는 하지만 어떤 특별한 범죄행위를 대속하기 위함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자기 자신을 주님께 다 태워드리고, 자기의 모든 죄를 다 하나님 앞에 불사르는 일반적이고도 전반적인 제사입니다. 반면, 속죄제와 속건제는 하나님 앞에 자신의 죄를 사함 받기 위하여 드리는 제사인데, 속죄제는 하나님 앞에 범죄한 것을 속하는 제사이며, 속건제는 이웃에게 범죄하여 결과적으로는 하나님 앞에 범죄한 죄를 속하기 위한 제사입니다. 화목제는 하나님과 이웃과의 평화를 회복하기 위한 감사와 서원의 성격을 가진 제사이며, 소제란 동물류가 아닌 식물류로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의미하였습니다.
4. 그래서, 성도가 주님 앞에 나와서 제사를 드릴 때 여러가지 제물을 가지고 나와 제사를 드렸습니다. 동물을 드릴 때는 난지 8일부터 시작하여 3년 미만이 된 흠없는 숫소, 양, 염소를 드렸으며, 가난한 자들을 위해서는 비둘기가 사용되었습니다. 반면, 식물류의 제사를 드릴 때에는 밀가루, 떡, 구운과자, 전제로 바치는 포도주가 드렸습니다. 그런데 왜 제물로 야생동물이나 물고기는 제물로 사용하지 않고, 집에서 키운 동물이나 사람이 키운 식물을 사용합니까? 그 근본 이유는 이 제물을 집에서 사람의 손으로 키운 것을 제물로 삼음으로써 제사를 드리는 사람과 동일시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5. 왜 제물을 드릴 때 이 제물과 드리는 사람이 동일시 되어야 합니까? 그것은 레위기에 나오는 희생 제사의 목적은 제사를 드리는 사람을 위해 속죄의 효과가 나타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레위기 17:11에서 하나님은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이스라엘의 희생제사의 목적은 제물의 피를 성도의 생명과 동일시하고 피가 생명을 위해 대속한다라는 원리를 제시하고 있다. 바로 이 때문에, 이렇게 제물을 하나님께 드려 제사를 드릴 때 제사장은 손가락에 그 피를 찍어 뿌림으로써 (4:6, 17, 25, 30, 34; 9:9; 14:16, 27) 성도의 생명을 앗아갈 죄를 속하였습니다. 이때 피를 찍는다는 히브리어 단어 ‘타발’ (lb;j\')은 헬라어로 ‘밥토’(ba,ptw)인데 이 밥토와 동일한 어근을 가지는 것이 ‘세례’를 의미하는 ‘밥티조’라는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손가락에 피를 찍는다는 말이나, 손가락에 피를 담근다는 말이나 사실은 동일한 어근을 가진다는 것입니다. 결국, 동물 제사를 통해 제사를 드리는 사람이 그 제물에 손을 얹어 자신과 제물을 동일시 하여 그 제물을 죽이고, 그 피에 제사장이 손을 담가 뿌리는 것은 결국 제사 드리는 이의 죽음과 죄의 씻음입니다. 죄로 인한 죽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피를 뿌림으로 인하여 그 죄를 용서하는 것입니다. 구약의 성도들이 왜 제사를 드렸습니까? 그것은 그들의 죄를 속하기 위해서입니다.
6. 이것은 우리가 예배를 왜 드리는가 하는 것과 맞닿아 있습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리는 것은 우리의 죄를 씻어 용서함 받기 위해서 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우리의 죄를 씻기 위하여 제물을 드리지 않습니까? 그것은 예수님께서 단한번에 자신의 생명을 모든 사람을 위한 희생제물로 드렸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9:12에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 가셨느니라”. 이렇게 예수님이 희생제물이 되어 단 한번 그 생명을 드림으로 말미암아 모든 인류의 죄를 속했으며,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죄를 속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신약의 성도는 예배시에 반복해서 동물을 잡아 드리지 않아도 됩니다.
7. 그러나, 우리가 신약의 예배에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비록, 우리가 동물을 잡아 그 피로 우리의 죄를 씻어 속죄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우리는 예배 때 마다, 우리를 위해 단한번 흘리신 예수님의 보혈에 의지하여 우리의 죄를 주님께 전가 시키는 회개와 그것을 통한 속죄와 용서가 행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일반적으로 내가 죄인임으로 드리는 번제와 하나님 앞에 특별히 범죄한 죄와 내 이웃에게 범한 여러가지 죄와 허물들을 예배를 통해 예수님께 전가시키고, 그 보혈로 인하여 깨끗하게 씻음을 받는 ‘죄의 고백과 용서’가 반드시 있어야 하고, 이를 통해 하나님과 이웃과 더불어 화목하고 평화해야 합니다. 바로 이 점이 바로 찬양집회와 강의와 예배의 차이입니다. ‘속죄’는 예배를 드리는 모든 성도가 예수님의 보혈에 의지하여 죄를 회개하고 용서를 빌 때 일어납니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에는 마땅히 이런 속죄가 일어나야 될 줄로 믿습니다.
III 레위기의 두번째 제사 규칙
1. 레위기에서 제사법을 말씀할 때 제사의 두번째 요소 혹은 법칙은 ‘하나님의 임재’, 곧 성령으로 태워드리는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찬양 집회와 강의, 그리고 예배를 구별짓는 중요한 점입니다. 찬양 집회와 세미나 시간에는 비록 찬양이 있고, 복음이 전파된다 하더라도 거기에 하나님이 반드시 임재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임재 하시지 않아도 됩니다. 물론 일반적인 의미에서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시기 때문에 집회 시간에도, 강의시간에도, 찬양 중에도 하나님은 함께 하실 것입니다. 하지만, 예배와 다른 것은 바로 그 예배를 통하여 드려지는 예배자의 헌신과 경배를 받으시기 위하여 하나님이 임재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이 예배의 대상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찬양 집회와 세미나의 대상은 청중이지 하나님이 아닙니다. 레위기의 제사에서 이런 제사를 받으시는 하나님의 임재는 ‘제단의 불’로 상징되었습니다.
2. 오늘 본문의 말씀, 레위기 6:8-13에는 다음과 같이 제단의 불을 끄지 말라는 말씀이 본문에는 9, 12, 13절에 세 번이나 강조 되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아론과 그 자손에게 명하여 이르라 번제의 규례는 이러하니라 번제물은 단윗 석쇠 위에 아침까지 두고 단의 불로 그 위에서 꺼지지 않게 할 것이요”… “단 위에 불은 항상 피워 꺼지지 않게 할지니 제사장은 아침마다 나무를 그 위에 태우고 번제물을 그 위에 벌여놓고 화목제의 기름을 그 위에 사를지며 불은 끊이지 않고 단 위에 피워 꺼지지 않게 할지니라”. 구약 제사에서 제사장의 역할 중에 가장 중요한 임무 중 하나는 번제단 위에 불이 결코 꺼져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3. 그렇다면, 이 제단의 불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모세의 장막에서, 또 솔로몬의 성전에서 처음 제사가 드려질 때, 그 제물을 태우는 불은 하늘로부터 내려왔습니다 (레 9:24, 대하 7:1). 갈멜산에서 제사하던 엘리야에게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그 제물을 태웠습니다 (왕상 18:38). 이 불은 출애굽기 40:34-38에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영광의 빛인 쉐키나로 그 백성 가운데 함께 하셨던 하나님 임재를 상징하였습니다. 불이 꺼지지 않도록 하신 것은 하나님은 언제나 그 제물을 불사르는 불로 그 백성과 함께 하심을 보여주는 중요한 상징이었습니다.
4. 그렇기 때문에 제사를 드릴 때 이 하나님의 제단 불 외에 다른 불로 제사를 드릴 수 없었습니다. 레위기 10:1-2에 보면 제단의 불을 꺼뜨린 일이 있는데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제단의 불이 꺼지자, 다른 불을 가지고 하나님께 제사하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여호와 앞에 악하여 제단에서 나온 불이 그들을 삼키니 즉시 죽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제사를 드리는 이들은 제단의 불을 가지고 제물을 태워야 하고 다른 불로 제사를 드리면 안되는 것입니까? 왜 제사장들은 이 제단의 불을 꺼트리면 안됩니까? 그것은 이 불이 하나님으로부터 왔고, 그것은 곧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구약 성도의 제사를 받으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이 제물을 그 불로 태우심으로 그곳에 임재하신 하나님과 제사를 받으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5. 그렇다면, 신약 성도인 우리들의 예배는 어떠해야 합니까? 우리의 예배를 하나님이 받으셔야 하고, 우리의 예배 가운데 하나님이 임재하셔서, 우리와 함께 하셔야만 비로서 예배라고 하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신약에서 제단의 불로서 하나님의 임재는 어떻게 나타납니까? 성도 여러분, 이런 하나님의 임재는 신약 성도에게 성령의 강림으로 묘사됩니다. 사도행전 2장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주시되, ‘불의 혀와 같이 갈라지는 모습’으로 임재 하셨습니다. 바울 사도는 이 성령을 소멸치 말라 (살전 5:16), 곧 우리가 이 말씀을 바꾸어 보면 이 성령을 끄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배할 때 우리는 성령님의 임재하심으로 우리 자신을 성령으로 태워 주님 앞에 드려야 합니다.
6.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우리의 예배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릴 때 성령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며, 성령의 불로 우리를 태우지 않으면, 우리의 예배가 하나님 앞에 열납되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성령님으로 하나님이 우리 예배 중에 임재하시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것은, 우리가 감정적으로 격해져서, 눈물을 콧물을 흘리며 울며 찬양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박수를 치면서 열광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과 동일시할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만약 성령님으로 우리의 몸을 태워 산제사로 하나님께 예배할 때 나와 세상은 간 곳이 없을 것입니다. 구속한 주님만 바라보게 될 것입니다. 거기에는 감격이 있어서, 눈물 콧물 흘리며 찬양하고 기도할 것입니다. 거기에는 기쁨이 있어서 박수치며 찬양할 것입니다.
7. 우리는 하나님 앞에 예배드릴 때 불꺼진 모습으로 드리지는 않는지, 우리 자신을 점검해야 합니다. 성령님으로 뜨거워져야 하고, 우리가 성령으로 예배하여야 하는데, 우리는 불꺼진 모습으로 예배하고 있지 않는지 되돌아 봐야 합니다. 예배를 드리는데 뜨거워지지 않습니다. 예배를 드리는데 감격과 기쁨이 일어나지를 않습니다. 예배를 드리는데 자꾸 나의 모습과 이웃 성도의 모습이 보입니다. 예배를 드리는데 자꾸 세상사에 대한 걱정과 염려가 일어납니다. 집생각이 납니다. 모두 불꺼진 모습 입니다.
8. 우리들의 불은 왜 꺼집니까? 어떤 사람은 집이 너무 어려워 불이 꺼진 사람이 있습니다. 너무 세상 살이에 바빠서 꺼진 사람도 있고, 영적인 일에는 도무지 관심이 없어서 꺼진 이도 있고, 어떤 이들은 아예 이 불이 붙지도 않은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너무 열심을 내고 자신의 생각에 가득 차 있다가 꺼진 사람도 있습니다.
9. 이제 여러분, 예배를 통해, 아니면 예배를 드릴 때 꺼진 가슴에 성령의 불을 붙이시기 바랍니다. 이 성령의 불이 없이 드리는 예배는 이미 예배가 아니라, 찬양 집회이며, 세미나이며, 강의입니다. 성령의 불로 우리 모두를 태워 드리고, 나와 세상이 간곳이 없어지는 감격과 기쁨이 넘칠 때, 비로서 우리는 그것을 예배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IV 예배의 세번째 요소: 거룩
1. 찬양 집회와 세미나가 예배와 다른 세번째 요소는 ‘거룩과 경건’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성화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성도는 예배를 드리면서 거룩하게 구별되어야 하고, 이런 구별을 통해서 자신이 거룩해 져야 합니다. 거룩이란 구별은 예배를 드리는 나와 집에 있던 내가 구별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2. 여러분 우리는 똑 같은 의자이지만, 예배당에 놓여 있는 의자는 ‘성구’라고 하지만, 우리 집에 놓여 있는 의자를 ‘성구’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우리가 똑 같은 책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것을 ‘성경’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유명한 잠언을 기록했다고 해서 그것을 ‘성경’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이슬람의 코란을, 공자와 맹자의 사서 삼경을 ‘성경’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불경을 ‘성경’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성경은 책이지만, 거룩하게 구별된 책이기 때문에 ‘성경’이라고 부릅니다.
3. 레위기 제사에서 제사를 드리는 사람과 제사에 드리는 제물과 제사를 집례하는 제사장은 모두 거룩하게 구별되어야 했습니다. 제사를 드리는 사람이 가정에서 사는 사람과 다른 사람이 아닙니다. 하지만, 제사를 드리는 사람은 거룩하게 구별되어야 합니다. 제사에 드려지는 제물도 거룩하게 구별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제사장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말씀이 레위기 6:14-30 입니다
\"소제의 규례는 이러하니라… 아론의 자손은 그것을 단 앞 여호와 앞에 드리되… 그 나머지는 거룩한 곳 회막 뜰에서 먹을지니라… [소제는] 속죄제와 속건제같이 지극히 거룩한즉… 이를 만지는 자마다 거룩하니라.” “속죄제의 규례는 이러하니라 속죄제 희생은 지극히 거룩하니… 제사장이 그것을 먹되 곧 회막 뜰 거룩 한 곳에서 먹을 것이며 무릇 그 고기에 접촉하는 자는 거룩할 것이며 그 피가 어떤 옷에든지 묻었으면 묻은 그것을 거룩한 곳에서 빨 것이요… 그 고기는 지극히 거룩하니 제사장의 남자마다 먹을 것이니라.”
4. 이 말씀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소제의 경우에 일반 백성들이 드리는 소제는 “그것을 만지는 자가 거룩하게(성별) 될 것\"이라는 언급입니다. 속죄제에 대한 명령에 있어서 강조되는 것은 제사시의 고기와 피가 지닌 거룩한 특징입니다. 그 고기가 접촉하는 것이 사람이건 물건이건 거룩하게 되어야만 했습니다. 제사장이 고기를 먹기 위해 사용했던 그릇도 거룩해야 했습니다. 만일 용기가 진흙으로 되었다면 부숴뜨려야 했습니다. 아마도 이것은 거룩하게 구별된 제물의 기름이 토기에는 좀 더 깊이 침투하여 씻어 낼 수 없기 때문이라 여겨집니다. 그것을 통해 하나님은 하나님께 속하였던 것이 일반 음식을 담는 용기로 사용되는 것을 금하셨습니다. 제물의 피가 묻는 그 어떤 옷이라도 거룩한 장소에서 씻어져야 했습니다. 그것을 통해 하나님은 그 거룩한 피가 성소를 벗어나 뿌려진 옷과 함께 일반의 삶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으셨습니다. 그것이 지닌 신적인 속성을 더럽히지 않게 하신 것입니다. 이런 것을 통해 말씀하여 지는 레위기의 주제는 단 한마디입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우리는 예배자로서 하나님이 거룩하신 것 같이, 이 거룩한 하나님 앞에 나아온 우리들도 거룩하여 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5. 그렇다면, 예배자로서 성도의 거룩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죄악된 세상과의 구별입니다. 내가 가정에서 지낼 때, 세상의 죄로 더럽혀져 있다면 비록 성전 안에서 예배할 때 사람은 동일한 사람이로되 나는 거룩하게 구별되어야 합니다. 예수의 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함 받고, 나의 모자라고 부족한 것들을 예수의 피에 의지하여 완전케 됨으로 세상의 나와 구별되어야 합니다. 또, 나의 행동도 거룩하게 구별되어야 하고 이것을 우리는 경건이라고 말합니다. 적어도 성전에서의 나의 행동은 세상에서의 나의 행동과 구별되어야 합니다. 만약, 성전에 나와서 나의 행동이 직장에서 하던 내 행동과 다를 바 없다면 이것은 예배가 아닙니다. 성전에서 예배드리면서 세상에서 쓰던 욕설과 비난과 흉측한 언어들, 다른 사람을 참소하는 언어들을 여전히 사용한다면 그것은 이미 예배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예배가 찬양 집회와 세미나와 다른 점은 예배는 예배 하는 사람과 예배를 집례하는 사람과 예배가운데 거하시는 예수님이 모두 거룩합니다. 구별되어야 합니다.
6.어떤 싸움을 하는 교회들이 예배 시간에 편이 갈려서 예배를 드립니다. 한쪽 예배자들이 다른 쪽 편의 예배자들을 향하여 삿대질 하고, 격한 감정을 드러냅니다. 그러면서 찬양하고 기도합니다. 그것이 예배입니까? 물론 아니지요. 성전에서 기도하고 찬양한다고 해서 예배가 아닙니다. 왜냐면, 거기에는 거룩과 경건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배를 드리면서 자꾸 교회당 밖의 일들을 생각합니다. 예배를 드리면서 자꾸 쪽지를 전달합니다. 예배를 드리면서 자꾸 졸음이 옵니다. 이것은 모두 예배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예배란 구별된 장소에서, 구별된 사람들이, 구별된 시간에, 구별된 몸을 하나님께 드리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V 결론
레위기의 제사법은 세가지의 요소, 세가지의 법칙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가지는 속죄이며, 제단의 불을 꺼트리지 아니하는 것이며, 거룩함입니다. 이것은 오늘 신약 성도의 예배에서도 영속적으로 이어져야 할 예배의 중요한 요소입니다. 예배를 통해 우리는 회개와 속죄의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이 임재하시고, 성령께서 우리 예배를 주관하시는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우리의 예배는 거룩하고 경건되게 구별되어야 합니다. 바로 이런 예배를 바른 예배라 하고, 우리는 이런 예배를 드려야 할 줄로 믿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