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목케 하는 예배/레3:1-9 /2002-02-20

화목케 하는 예배/레3:1-9 /2002-02-20

화목케 하는 예배
레3:1-9





어렸을 때 심하게 싸워보신 경험이 있으신가요? 그 싸움의 기억이 남아 있으신
가요? 저는 별로 많이 싸우면서 크진 않았기 때문에 많은 기억은 없지만 한번
은 국민학교 3학년 때 친구가 운동장으로 나가자는 것입니다. 며칠 전 싸울 때
자기 머리가 잡아 뜯겼으니 오늘은 자기가 저의 머리를 좀 뽑아야 하겠다는 것
입니다. 며칠 전에 잡아 뜯었던 사람이 오늘 쉽사리 뜯길 리가 있습니까? 친구
의 앙탈을 한 마디로 무시했지만, 그 친구와 친하게 되어 1년을 잘 지냈던 그
런 기억이 있습니다. 5학년 때인가? 무슨 일로 친구와 밀치며 싸웠는데 제가
밀리면서 책상 모서리에 뒤통수를 부딪쳤습니다. 아차, 싶으면서 아!~ 평생 머
리를 보존하려면 싸우질 말아야하겠구나 그런 생각이 스쳐 지나가더군요. 아무
상처는 없었습니다. 하하

그 뒤론 몸 싸움을 벌이면서 싸워본 기억은 없고, 그저 말다툼 정도의 기억만
있을 뿐, 별 탈 없이 잘 지내왔습니다.

싸움의 기억이 뭐 자랑이겠습니까? 어떤 분들은 하도 많이 싸우며 자라서 기억
도 다 할 수 없는 경우도 있겠고, 싸움이라면 두려워서 피하기만 했던 착한?
친구들도 있겠죠, 그러나 세상은 어찌도 그리 전쟁과 다툼이 많은지, 인류의 역
사 속에 전쟁이 없었던 날이 며칠 되지 않는다죠?

인간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라고도 말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지금 미국과 아프카니스탄, 혹은 빈 라덴이라는 테러 세력과 그 비호세
력을 향한 전쟁 일보직전의 상황에 놓여있습니다.
바로 이런 시점에서 [화평케 하는 예배]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알려
주실 메시지가 있다고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민족에게 하나님을 섬기며 사는 백성의 외면
적 표시로서 몇가지 종류의 제사를 제정하시고 그 방법에 대하여 설명하여 주
셨습니다.

레위기 1장에는 번제에 대한 설명이 나옵니다. 번제는 소나 양이나 비둘기와
같은 짐승을 잡아서 껍질만 남기고 몽땅 태워서 드리는 제사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번제의 제사를 드리게 하신 이유는 철저한 헌신과 복종을 의미하
는 것입니다. 예배의 근본정신이 여기 있습니다. 지난 주일에 로마서 12장 1절
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너희 몸을 거룩한 산 제사로 하나님께 드리라 하였지
요? 우리는 살았지만 우리 몸을 모두 다 제물로 드리는 각오로 살아가야 합니
다.

2장에는 소제에 대한 설명이 나옵니다. 소제는 번제나 화목제와 함께 드리는
곡식의 가루를 가지고 드리는 제사입니다.

3장에는 오늘 우리가 묵상하려는 화목제에 대한 설명이 나옵니다. 화목제는 히
브리어 쉐렘이라고 해서, 보답하다, 배상하다, 다시 주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하
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화목제를 제정하신 이유는 단지 하나님께만 예배 드릴
뿐만 아니라 백성들 사이에 불화를 극복하고 소외된 자가 없게 하고 화평한 삶
을 살게 하시려는 데 그 근본 정신이 있습니다.

화목제는 소나 양이나 염소로 드리면서 피는 제단에 뿌리고, 꼬리와 내장과 기
름은 발라서 태우고 남은 고기를 나누어 먹는데 가족 중에 자녀와 노비와 그
성중에 거하는 레위 인을 초청하여 함께 먹도록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화목제를 드리는 경우는 감사제, 서원제, 자원제 세가지 경
우로서 어떤 감사한 일이 있을 때에, 추수가 끝났다든지, 가정과 국가에 기쁘고
즐거운 일이 있을 때에 드렸고, 서원제는 어떤 행위를 하나님 앞에 약속하는
의미로서 화목제를 드렸으며, 혹은 다투고 불화하던 사이를 화평케 하기로 평
화조약을 맺으면서도 그 증거로서 화목제를 드릴 수 있었겠죠? 자원제라는 것
은 낙헌제라고도 하는데 특별한 이유가 없어도 범사에 감사하고, 다툼이 없어
도 더욱 화평하기 원하고, 하나님 앞에 기쁨으로 예배하기 원할 때에 드릴 수
있는 제사였습니다.

번제는 하나님께 마땅히 드려야할 의무적인 예배이며, 정기적으로 제물을 다
태워서 드리는 예배였고, 속죄제나 속건제는 고의로 혹은 실수로 범죄하였을
때에 죄값을 치루고 용서받기 위해서 드리는 제사였던 반면에 화목제는 기쁘고
즐거운 일들로 인하여 감사와 화해와 화평을 위하여 드리는 제사였으므로 오히
려 그 의미가 특별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여러분의 삶 속에 화목제와 같은 제사, 그런 예배가 충
만하기를 축원합니다. 감사한 제목이 많아서 늘 감사의 예배를 드리실 수 있기
를 바랍니다. 취직을 해서 감사하고, 첫 월급을 받아서 감사하고, 질병이 낳아
서 감사하고, 학교에 입학해서 감사하고, 졸업해서 감사하고, 어려운 문제들이
해결되어 감사한 일이 있을 때마다 그 기쁨과 감사를 하나님께 돌리시고, 또
그 기쁨을 곁에 있는 형제와 자매들과 함께 나누실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화목제의 특징은 제사하고 남은 제물을 가족과 친척과 주위의 사람들 신분이
높거나 낮거나 함께 나누어 먹는데 특징이 있습니다. 특히 레위인을 초청하여
함께 식사하라고 했는데, 당시 레위인은 하나님의 일을 섬기고, 성전의 일을 봉
사하고, 제사하는 일들을 거들기 위하여 농사도 목축도 소유의 땅도 없이 살던
유대 지파였습니다. 십일조의 정신은 바로 거기서 출발합니다. 열 두 지파 중에
서 열한 지파는 자기 땅을 가지고 열심히 농사도 짓고 목축도 하고 산업을 통
해서 먹고살게 하고 한 지파는 농사 짓지 않아도 양떼를 치지 않아도 자기 땅
이 없어도 먹고 살 수 있게 하신 것은 인간 세상이 살맛이 나게 하시려는 하나
님의 아름다운 배려이며, 레위인들에게는 하나님을 섬기는 일만 하고도 사는
데 염려 없게 하시는 헌신된 삶을 사는 자들의 모범이 되게하신 뜻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정신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지난 번 부흥회 때 김동호 목사님이 자기 교회 청년들에게 첫 월급을 타면 하
나님께 드리고, 두 번째 월급에선 부모님과 목사님께 선물하도록 하게 하신 다
는 말씀을 하셨죠.
그 말씀을 듣고 그대로 실천하신 분들이 있었습니다. 받는 것은 감사하지만, 저
는 김동호 목사님처럼 셀 수 없이 많은 넥타이와 탈랜트 같이 많은 와이셔츠를
원하지 않습니다. Cash만 받을까요? 아닙니다. 오늘 우리 시대는 헌금함으로써
하나님께 드릴 수 있고, 목회자에게 선물하기 보다는 공동체에서 나눔으로 십
일조의 정신, 화목제의 정신을 실천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저는 또한 여러분의 삶 속에, 서원제로서의 화목제, 화목의 제사와 예배가 풍성
하기를 축원합니다. 서원이라는 것이 남발되어서, 하나님께 약속을 하고도 지키
지 않는 경우가 많고, 혹은 섯부른 판단으로 서원하고는 지킬 수도 없는 상황
이 되어 곤란해지지 않도록 경솔한 서원을 하지 말도록 권하기도 하지만, 우리
는 하나님 앞에서, 사람 앞에서 자기의 확실한 결정과 다짐을 나타내 보일 필
요가 있습니다.

나중에 사이가 안좋아지거나 이혼하게 될 것이 두려워서 결혼하기를 망설이는
사람이 있다면 차라리 함께 살지 않는 편이 나을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것도 마음으로만 믿으면 되었지, 뭐하러 교회에 나가고, 등록도 하
고, 세례도 받고 해야하냐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없기를 바랍니다.

마음의 다짐은 입으로 말하고 몸으로 실천할 때 더욱 확고한 것이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여러분이 결혼식 때 신랑이 신부에게, 신부가 신랑에게
확실하고 큰 목소리로 I Do! 네, 평생 이 사람만 사랑하고 살겠습니다. 다짐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남자도 다 죽어가는 소리로, 네..하지 말고, 여자라고 고
개만 살짝 숙이며 들릴까 말까 한 목소리로 할 것이 뭐 있습니까? 크게 하십시
오.

이달 말에는 학습, 세례, 입교 문답이 있고 10월 첫주에 세례식이 있을 텐데,
아직 까지 세례 받지 않으신 분들은 이번 기회에 꼭 세례도 받고 입교도 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는 윌로 크릭 교회에서 세례 주는 장면들을 영상으로 보여줄 때 얼마나 감격
하고 눈물 흘렸는지 모릅니다. 그 표정들이 정말 기쁨으로 가득하고, 물 속에
품 잠겼다가 다시 나올 때의 감격이 마치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나는 내 죄에
대하여 죽고 예수님의 용서와 구원으로 다시 살았습니다. 하는 표현이 생생하
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례 받는 행위가 중요합니다. 제 마음의 소원은 교회가 일년
겨우 두 번 몇 않되는 사람들에게 세례 주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내년에 청년부는 새롭게 예수 믿는 분들이 많아져서 두세달에 한번씩 청년부
예배에서 세례 줄 수 있게 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간증도 하고, 같이 축복
도 해 주고, 예수 믿는 것이 얼마나 감격스럽고 기쁘고 즐거운 일인지 알게 될
것입니다.

그 뿐 아니라, 여러분의 삶 속에 미움이 물러가고 다툼에서 화해함으로 화목제
를 드리시게 되기를 바랍니다. 기쁘고 감사한 일을 간증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
만, 결혼이나 세례식 같이, 싸웠던 것을 남에게 알리고 화해하는 표시를 꼭 할
필요가 뭐 있습니까? 서로 화해하고 안싸우기로 했으면 되었지...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남과 북이 3년 동안 죽어라고 싸우다가 그나마 정전협
상을 하고 서로 싸인을 했으니 지난 50년 동안 전쟁 없이 지내온 것이 아닙니
까? 세상의 전쟁도 서로 그만 싸우기로 작정하고 세상에 공포하고 화해해야 하
듯이, 개인의 삶 속에서도 미움과 다툼이 있었다면 용서하고 화해하는 일을 확
실하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반드시 무슨 식을 하지는 않는다 할 지라도.

예를 들면 마음속에 다짐을 글로 적어 전달하던지, 서로 손을 맞잡고 기도하며
축복하며 용서할 수 있겠죠.

그런데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제사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제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에 제물을 드리는 것을 통해서
예배하는 자들의 마음의 확고함을 드러내시기를 원하십니다.

화평케 되는 데에도 제물이 필요합니다. 희생을 통하여 화평케 됨이 완성됩니
다.
구약의 시대에는 소와 양과 염소를 희생하였지만, 우리 시대에는 예수 그리스
도께서 희생 제물이 되십니다. 불완전한 희생 제물이 아니라 완전한 화목제물
이...

예수님은 우리들을 위하여 화목제물이 되셨습니다.

사람이 올려 드리는 희생 제물은 불완전합니다. 하나님이 소와 양과 염소를 받
으시겠습니까? 하나님이 고기를 좋아하고 고기 타는 냄새를 좋아하시겠습니까?
서울 마포에 가면 주물럭 소고기, 돼지 갈비 그런 것이 유명합니다. 고3과 재수
시절을 그 동네에서 지냈는데 밤늦게 공부하고 집에 가다보면 온 동네에 타는
고기냄새... 음 고통스럽죠. 하나님이 그런 것을 좋아하실 것 같지 않아요.

단지, 화목케 됨을 상징하는 징표로서 소와 양을 드리고 남은 고기를 나누어
먹음으로 화평케 되기를 바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온전한 희생은 오히려 하나님께서 외아들을 보내셔서, 예수님이 희생
제물이 되실 때 화평케 됨이 완성되었던 것입니다.

지난 금요일 The Day of Prayer and Remembrance 전국의 기도와 추모의 날에
National Cathedral에서 빌리 그래함 목사님 그런 메시지를 하셨죠, 이번 테러로
고통 당한 이들, 죽음을 당한 이들의 아픔을 무슨 말로도 설명하고 위로할 수
없지만,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들의 죄악과 고통을 이해하시고, 그것들
을 예수님이 대신 지게 하셨고,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들을 사랑한다고 말씀하
신다고 설교 하셨습니다.

Here in this majestic National Cathedral we see all around us the symbols of the Cross.
For the Christian, I\\\'m speaking for the Christian now, the Cross tells us that God
understands our sin and our suffering, for He took them upon Himself in the person of
Jesus Christ our sins and our suffering. And from the Cross, God declares, \\\"I love you. I
know the heartaches and the sorrows and the pains that you feel. But I love you.\\\"
The story does not end with the Cross, for Easter points us beyond the tragedy of the
Cross to the empty tomb that tells us that there is hope for eternal life, for Christ has
conquered evil and death, and hell. Yes, there is hope.

예수님이 어떻게 우리의 죄와 아픔을 대신 지실 수 있었습니까? 그분이 희생
제물이 되시고, 화목 제물이 되셨기 때문에 우리 모두의 아픔도 아시고 고통도
아시고 죄의 값으로 말미암아 죽는 것이 무엇인지 다 체험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어느 때 보다 위로와 평안, 하나님의 평화가 필요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참된 희생 제물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삶 속에, 이 나라와 또한
전쟁을 눈앞에 둔 시점에서 주님의 평화가 모든 나라 모든 백성들의 마음을 다
스려 주시도록 기도합시다.

어떻게 하여야 이 땅 위에 평화와 화평함이 찾아올 수 있습니까?

모든 사람들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함을 누리지 않으면 그런 평
화는 찾아오지 않는다고 봅니다.

하나님과 화해하지 않은 자들이 인간과 화해할 수 없고, 서로 용서치 않은 자
들은 하나님 앞에 용서함 받지도, 화평케 되지도 않습니다.

주기도문에서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
하여 주옵시고라고 기도하지 않습니까?

하나님께 용서함 받는 자는 형제와 자매를 용서하는 자요, 형제와 자매와 화평
케 된 자들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과도 화평케 될 것을 믿습니다.

그러면 이와 같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화평케 된 자들은 그것으로만 만족하며
살아야 합니까?

요한 일서 2:2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아니요! 우리는 또한 다른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케 됨을 누리도
록, 평화의 소식을 전하는 agent로서 살아야 합니다.

평화 전하며 복된 소식을 알리네, 주 다스리시네.

예수님은 화평케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자녀라고 인정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
셨습니다. 마태 5:9 Blessed are the peacemakers, for they will be called sons of
God.

사랑하는 여러분! 평화의 왕, 온전한 화목 제물이 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로 말미암아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 안에서 온전한 화해와 평화를 누리고, 우리
안에 그 평화와 용서를 세상의 모든 사람에게도 증거하며 살 수 있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시다.


화목케 하는 예배
레3:1-9





어렸을 때 심하게 싸워보신 경험이 있으신가요? 그 싸움의 기억이 남아 있으신
가요? 저는 별로 많이 싸우면서 크진 않았기 때문에 많은 기억은 없지만 한번
은 국민학교 3학년 때 친구가 운동장으로 나가자는 것입니다. 며칠 전 싸울 때
자기 머리가 잡아 뜯겼으니 오늘은 자기가 저의 머리를 좀 뽑아야 하겠다는 것
입니다. 며칠 전에 잡아 뜯었던 사람이 오늘 쉽사리 뜯길 리가 있습니까? 친구
의 앙탈을 한 마디로 무시했지만, 그 친구와 친하게 되어 1년을 잘 지냈던 그
런 기억이 있습니다. 5학년 때인가? 무슨 일로 친구와 밀치며 싸웠는데 제가
밀리면서 책상 모서리에 뒤통수를 부딪쳤습니다. 아차, 싶으면서 아!~ 평생 머
리를 보존하려면 싸우질 말아야하겠구나 그런 생각이 스쳐 지나가더군요. 아무
상처는 없었습니다. 하하

그 뒤론 몸 싸움을 벌이면서 싸워본 기억은 없고, 그저 말다툼 정도의 기억만
있을 뿐, 별 탈 없이 잘 지내왔습니다.

싸움의 기억이 뭐 자랑이겠습니까? 어떤 분들은 하도 많이 싸우며 자라서 기억
도 다 할 수 없는 경우도 있겠고, 싸움이라면 두려워서 피하기만 했던 착한?
친구들도 있겠죠, 그러나 세상은 어찌도 그리 전쟁과 다툼이 많은지, 인류의 역
사 속에 전쟁이 없었던 날이 며칠 되지 않는다죠?

인간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라고도 말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지금 미국과 아프카니스탄, 혹은 빈 라덴이라는 테러 세력과 그 비호세
력을 향한 전쟁 일보직전의 상황에 놓여있습니다.
바로 이런 시점에서 [화평케 하는 예배]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알려
주실 메시지가 있다고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민족에게 하나님을 섬기며 사는 백성의 외면
적 표시로서 몇가지 종류의 제사를 제정하시고 그 방법에 대하여 설명하여 주
셨습니다.

레위기 1장에는 번제에 대한 설명이 나옵니다. 번제는 소나 양이나 비둘기와
같은 짐승을 잡아서 껍질만 남기고 몽땅 태워서 드리는 제사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번제의 제사를 드리게 하신 이유는 철저한 헌신과 복종을 의미하
는 것입니다. 예배의 근본정신이 여기 있습니다. 지난 주일에 로마서 12장 1절
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너희 몸을 거룩한 산 제사로 하나님께 드리라 하였지
요? 우리는 살았지만 우리 몸을 모두 다 제물로 드리는 각오로 살아가야 합니
다.

2장에는 소제에 대한 설명이 나옵니다. 소제는 번제나 화목제와 함께 드리는
곡식의 가루를 가지고 드리는 제사입니다.

3장에는 오늘 우리가 묵상하려는 화목제에 대한 설명이 나옵니다. 화목제는 히
브리어 쉐렘이라고 해서, 보답하다, 배상하다, 다시 주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하
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화목제를 제정하신 이유는 단지 하나님께만 예배 드릴
뿐만 아니라 백성들 사이에 불화를 극복하고 소외된 자가 없게 하고 화평한 삶
을 살게 하시려는 데 그 근본 정신이 있습니다.

화목제는 소나 양이나 염소로 드리면서 피는 제단에 뿌리고, 꼬리와 내장과 기
름은 발라서 태우고 남은 고기를 나누어 먹는데 가족 중에 자녀와 노비와 그
성중에 거하는 레위 인을 초청하여 함께 먹도록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화목제를 드리는 경우는 감사제, 서원제, 자원제 세가지 경
우로서 어떤 감사한 일이 있을 때에, 추수가 끝났다든지, 가정과 국가에 기쁘고
즐거운 일이 있을 때에 드렸고, 서원제는 어떤 행위를 하나님 앞에 약속하는
의미로서 화목제를 드렸으며, 혹은 다투고 불화하던 사이를 화평케 하기로 평
화조약을 맺으면서도 그 증거로서 화목제를 드릴 수 있었겠죠? 자원제라는 것
은 낙헌제라고도 하는데 특별한 이유가 없어도 범사에 감사하고, 다툼이 없어
도 더욱 화평하기 원하고, 하나님 앞에 기쁨으로 예배하기 원할 때에 드릴 수
있는 제사였습니다.

번제는 하나님께 마땅히 드려야할 의무적인 예배이며, 정기적으로 제물을 다
태워서 드리는 예배였고, 속죄제나 속건제는 고의로 혹은 실수로 범죄하였을
때에 죄값을 치루고 용서받기 위해서 드리는 제사였던 반면에 화목제는 기쁘고
즐거운 일들로 인하여 감사와 화해와 화평을 위하여 드리는 제사였으므로 오히
려 그 의미가 특별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여러분의 삶 속에 화목제와 같은 제사, 그런 예배가 충
만하기를 축원합니다. 감사한 제목이 많아서 늘 감사의 예배를 드리실 수 있기
를 바랍니다. 취직을 해서 감사하고, 첫 월급을 받아서 감사하고, 질병이 낳아
서 감사하고, 학교에 입학해서 감사하고, 졸업해서 감사하고, 어려운 문제들이
해결되어 감사한 일이 있을 때마다 그 기쁨과 감사를 하나님께 돌리시고, 또
그 기쁨을 곁에 있는 형제와 자매들과 함께 나누실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화목제의 특징은 제사하고 남은 제물을 가족과 친척과 주위의 사람들 신분이
높거나 낮거나 함께 나누어 먹는데 특징이 있습니다. 특히 레위인을 초청하여
함께 식사하라고 했는데, 당시 레위인은 하나님의 일을 섬기고, 성전의 일을 봉
사하고, 제사하는 일들을 거들기 위하여 농사도 목축도 소유의 땅도 없이 살던
유대 지파였습니다. 십일조의 정신은 바로 거기서 출발합니다. 열 두 지파 중에
서 열한 지파는 자기 땅을 가지고 열심히 농사도 짓고 목축도 하고 산업을 통
해서 먹고살게 하고 한 지파는 농사 짓지 않아도 양떼를 치지 않아도 자기 땅
이 없어도 먹고 살 수 있게 하신 것은 인간 세상이 살맛이 나게 하시려는 하나
님의 아름다운 배려이며, 레위인들에게는 하나님을 섬기는 일만 하고도 사는
데 염려 없게 하시는 헌신된 삶을 사는 자들의 모범이 되게하신 뜻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정신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지난 번 부흥회 때 김동호 목사님이 자기 교회 청년들에게 첫 월급을 타면 하
나님께 드리고, 두 번째 월급에선 부모님과 목사님께 선물하도록 하게 하신 다
는 말씀을 하셨죠.
그 말씀을 듣고 그대로 실천하신 분들이 있었습니다. 받는 것은 감사하지만, 저
는 김동호 목사님처럼 셀 수 없이 많은 넥타이와 탈랜트 같이 많은 와이셔츠를
원하지 않습니다. Cash만 받을까요? 아닙니다. 오늘 우리 시대는 헌금함으로써
하나님께 드릴 수 있고, 목회자에게 선물하기 보다는 공동체에서 나눔으로 십
일조의 정신, 화목제의 정신을 실천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저는 또한 여러분의 삶 속에, 서원제로서의 화목제, 화목의 제사와 예배가 풍성
하기를 축원합니다. 서원이라는 것이 남발되어서, 하나님께 약속을 하고도 지키
지 않는 경우가 많고, 혹은 섯부른 판단으로 서원하고는 지킬 수도 없는 상황
이 되어 곤란해지지 않도록 경솔한 서원을 하지 말도록 권하기도 하지만, 우리
는 하나님 앞에서, 사람 앞에서 자기의 확실한 결정과 다짐을 나타내 보일 필
요가 있습니다.

나중에 사이가 안좋아지거나 이혼하게 될 것이 두려워서 결혼하기를 망설이는
사람이 있다면 차라리 함께 살지 않는 편이 나을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것도 마음으로만 믿으면 되었지, 뭐하러 교회에 나가고, 등록도 하
고, 세례도 받고 해야하냐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없기를 바랍니다.

마음의 다짐은 입으로 말하고 몸으로 실천할 때 더욱 확고한 것이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여러분이 결혼식 때 신랑이 신부에게, 신부가 신랑에게
확실하고 큰 목소리로 I Do! 네, 평생 이 사람만 사랑하고 살겠습니다. 다짐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남자도 다 죽어가는 소리로, 네..하지 말고, 여자라고 고
개만 살짝 숙이며 들릴까 말까 한 목소리로 할 것이 뭐 있습니까? 크게 하십시
오.

이달 말에는 학습, 세례, 입교 문답이 있고 10월 첫주에 세례식이 있을 텐데,
아직 까지 세례 받지 않으신 분들은 이번 기회에 꼭 세례도 받고 입교도 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는 윌로 크릭 교회에서 세례 주는 장면들을 영상으로 보여줄 때 얼마나 감격
하고 눈물 흘렸는지 모릅니다. 그 표정들이 정말 기쁨으로 가득하고, 물 속에
품 잠겼다가 다시 나올 때의 감격이 마치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나는 내 죄에
대하여 죽고 예수님의 용서와 구원으로 다시 살았습니다. 하는 표현이 생생하
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례 받는 행위가 중요합니다. 제 마음의 소원은 교회가 일년
겨우 두 번 몇 않되는 사람들에게 세례 주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내년에 청년부는 새롭게 예수 믿는 분들이 많아져서 두세달에 한번씩 청년부
예배에서 세례 줄 수 있게 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간증도 하고, 같이 축복
도 해 주고, 예수 믿는 것이 얼마나 감격스럽고 기쁘고 즐거운 일인지 알게 될
것입니다.

그 뿐 아니라, 여러분의 삶 속에 미움이 물러가고 다툼에서 화해함으로 화목제
를 드리시게 되기를 바랍니다. 기쁘고 감사한 일을 간증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
만, 결혼이나 세례식 같이, 싸웠던 것을 남에게 알리고 화해하는 표시를 꼭 할
필요가 뭐 있습니까? 서로 화해하고 안싸우기로 했으면 되었지...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남과 북이 3년 동안 죽어라고 싸우다가 그나마 정전협
상을 하고 서로 싸인을 했으니 지난 50년 동안 전쟁 없이 지내온 것이 아닙니
까? 세상의 전쟁도 서로 그만 싸우기로 작정하고 세상에 공포하고 화해해야 하
듯이, 개인의 삶 속에서도 미움과 다툼이 있었다면 용서하고 화해하는 일을 확
실하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반드시 무슨 식을 하지는 않는다 할 지라도.

예를 들면 마음속에 다짐을 글로 적어 전달하던지, 서로 손을 맞잡고 기도하며
축복하며 용서할 수 있겠죠.

그런데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제사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제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에 제물을 드리는 것을 통해서
예배하는 자들의 마음의 확고함을 드러내시기를 원하십니다.

화평케 되는 데에도 제물이 필요합니다. 희생을 통하여 화평케 됨이 완성됩니
다.
구약의 시대에는 소와 양과 염소를 희생하였지만, 우리 시대에는 예수 그리스
도께서 희생 제물이 되십니다. 불완전한 희생 제물이 아니라 완전한 화목제물
이...

예수님은 우리들을 위하여 화목제물이 되셨습니다.

사람이 올려 드리는 희생 제물은 불완전합니다. 하나님이 소와 양과 염소를 받
으시겠습니까? 하나님이 고기를 좋아하고 고기 타는 냄새를 좋아하시겠습니까?
서울 마포에 가면 주물럭 소고기, 돼지 갈비 그런 것이 유명합니다. 고3과 재수
시절을 그 동네에서 지냈는데 밤늦게 공부하고 집에 가다보면 온 동네에 타는
고기냄새... 음 고통스럽죠. 하나님이 그런 것을 좋아하실 것 같지 않아요.

단지, 화목케 됨을 상징하는 징표로서 소와 양을 드리고 남은 고기를 나누어
먹음으로 화평케 되기를 바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온전한 희생은 오히려 하나님께서 외아들을 보내셔서, 예수님이 희생
제물이 되실 때 화평케 됨이 완성되었던 것입니다.

지난 금요일 The Day of Prayer and Remembrance 전국의 기도와 추모의 날에
National Cathedral에서 빌리 그래함 목사님 그런 메시지를 하셨죠, 이번 테러로
고통 당한 이들, 죽음을 당한 이들의 아픔을 무슨 말로도 설명하고 위로할 수
없지만,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들의 죄악과 고통을 이해하시고, 그것들
을 예수님이 대신 지게 하셨고,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들을 사랑한다고 말씀하
신다고 설교 하셨습니다.

Here in this majestic National Cathedral we see all around us the symbols of the Cross.
For the Christian, I\\\'m speaking for the Christian now, the Cross tells us that God
understands our sin and our suffering, for He took them upon Himself in the person of
Jesus Christ our sins and our suffering. And from the Cross, God declares, \\\"I love you. I
know the heartaches and the sorrows and the pains that you feel. But I love you.\\\"
The story does not end with the Cross, for Easter points us beyond the tragedy of the
Cross to the empty tomb that tells us that there is hope for eternal life, for Christ has
conquered evil and death, and hell. Yes, there is hope.

예수님이 어떻게 우리의 죄와 아픔을 대신 지실 수 있었습니까? 그분이 희생
제물이 되시고, 화목 제물이 되셨기 때문에 우리 모두의 아픔도 아시고 고통도
아시고 죄의 값으로 말미암아 죽는 것이 무엇인지 다 체험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어느 때 보다 위로와 평안, 하나님의 평화가 필요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참된 희생 제물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삶 속에, 이 나라와 또한
전쟁을 눈앞에 둔 시점에서 주님의 평화가 모든 나라 모든 백성들의 마음을 다
스려 주시도록 기도합시다.

어떻게 하여야 이 땅 위에 평화와 화평함이 찾아올 수 있습니까?

모든 사람들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함을 누리지 않으면 그런 평
화는 찾아오지 않는다고 봅니다.

하나님과 화해하지 않은 자들이 인간과 화해할 수 없고, 서로 용서치 않은 자
들은 하나님 앞에 용서함 받지도, 화평케 되지도 않습니다.

주기도문에서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
하여 주옵시고라고 기도하지 않습니까?

하나님께 용서함 받는 자는 형제와 자매를 용서하는 자요, 형제와 자매와 화평
케 된 자들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과도 화평케 될 것을 믿습니다.

그러면 이와 같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화평케 된 자들은 그것으로만 만족하며
살아야 합니까?

요한 일서 2:2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아니요! 우리는 또한 다른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케 됨을 누리도
록, 평화의 소식을 전하는 agent로서 살아야 합니다.

평화 전하며 복된 소식을 알리네, 주 다스리시네.

예수님은 화평케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자녀라고 인정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
셨습니다. 마태 5:9 Blessed are the peacemakers, for they will be called sons of
God.

사랑하는 여러분! 평화의 왕, 온전한 화목 제물이 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로 말미암아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 안에서 온전한 화해와 평화를 누리고, 우리
안에 그 평화와 용서를 세상의 모든 사람에게도 증거하며 살 수 있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