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중심 으로 살자

 예배 중심으로 살자/신12:1-7

예배 중심으로 살자
신12:1-7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만물은 존재하는 목적이 있습니다. 그와 더불어 모든 사람은 삶의 목적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지으실 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기뻐하는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즉, 우리의 삶에 있어서 가장 궁극적인 목적이라면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겠습니까? 우선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사랑함으로써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예수님을 닮아감으로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에게 주신 은사로 다른 사람들을 섬길 때 하나님을 영광을 받으십니다. 나아가서는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에 대해 말함으로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삶을 통해서 영광을 취하시는 분입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우선순위에 두어야 할 것은 바로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은 항상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습니다. 늘 말씀은 드립니다만 예배는 인간이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최고로 가치 있는 행위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못한다면 하나님께 합당한 인생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언제나 삶의 중심에 예배의 단을 세우고 자신을 온전한 예배자로 세우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삶의 본질과 가치가 온전해 질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심을 받은 인간은 하나님을 예배할 때, 우리에게서 하나님의 형상이 온전히 회복되며 그 능력이 충만한 존재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행군할 때 제일 중앙에 하나님의 언약궤를 모셔두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은 언제나 진 중앙에 있는 성막에 떠오르는 구름을 보고 삶의 자리를 정했습니다. 성막에 떠오르는 구름은 곧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그들의 삶이 결정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들의 삶의 중심에는 언제나 하나님이 계셨고, 언제나 하나님을 향한 예배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삶의 자리와 생활의 중심이 하나님의 임재와 예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구원받은 성도의 삶은 언제나 그 중심에 계신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고 예배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들을 찾고 계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진정으로 자기를 찾는 자들을 축복하시고, 진심으로 예배하는 자들을 기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삶의 중심에 예배의 단을 쌓고 언제나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본문을 중심으로 우리의 삶의 중심에 예배의 단을 쌓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면서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삶의 자리를 정화하라


2절과 3절의 말씀을 읽겠습니다. “너희가 쫓아낼 민족들이 그 신들을 섬기는 곳은 높은 산이든지 작은 산이든지 푸른 나무 아래든지 무론 하고 그 모든 곳을 너희가 마땅히 파멸하며 그 단을 헐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상을 불사르고 또 그 조각한 신상들을 찍어서 그 이름을 그 곳에서 멸하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에게는 너희가 그처럼 행하지 말고”


오늘 본문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하나님을 예배하기 전에 가장 먼저 그 땅의 타락한 종교를 파괴하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가장 곤혹스럽고 해석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면 바로 이런 부분입니다. 이미 그 땅에 살고 있는 주민들을 다 몰아내고 그 문화도 파괴하고 우상도 파멸하고 하십니다.


심지어 여호수아를 보면 가나안 모든 거민들을 철저하게 멸절(滅絶)시키도록 명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불신자들은 이 부분을 말씀을 읽고 “어떻게 사랑의 하나님께서 그렇게 무자비하실 수 있는가?”라고 비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문자적인 해석이 아니라 당시의 역사적인 상황과 연관지어서 깊이 생각해볼 때, 하나님의 깊은 섭리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갈 당시 가나안 사람들은 매우 발전된 문화를 이룩하고 있었습니다. 독자적인 언어가 존재했으며, 뛰어난 건축술과 함께, 음악, 그림, 그리고 화려한 종교의식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광야에서 40년 동안 문화적으로 무미건조한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갔을 때, 가나안 사람들의 찬란한 문화에 매혹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가나안의 문화를 구성하고 있는 기본 요소가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기는 이방종교문화에서부터 비롯되었다는데 있었습니다. 가나안 사람들은 풍요를 가져다준다고 믿는 바알과 아스다롯을 숭배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바알과 아스다롯의 성적 관계를 통해 풍요를 보장받는다고 믿었습니다. 실제로 바알 성전에 거하는 여 사제들은 아스다롯을 상징하는 매춘부들이었습니다. 가나안의 사람들은 한 해의 농사에 대한 수학을 기원하기 위해 바알 성전에 와서 예물을 드리고 성전 매춘부들과 성적 관계를 맺고는 바알의 축복을 약속 받았다고 믿었습니다.


이렇게 오랫동안 가나안 사람들이 지켜 온 바알과 아스다롯을 숭배하는 종교의식은 그 사회를 성적으로 윤리적으로 문란하게 만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으로부터 영적으로,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철저하게 거룩한 생활을 하도록 요구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런 타락한 가나안의 문화는 독약과도 같은 것입니다.


만일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의 문화를 그대로 흡수하고 받아들여서 그들처럼 음란하게 살아간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 땅으로 이끌어내신 하나님의 거룩한 뜻은 완전히 무너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 땅의 거민들을 다 몰아내고 그들이 섬기던 우상의 제단들과 타락한 종교문화들을 파괴할 것을 명령하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신앙의 순수성과 영적인 가치관을 얼마나 바르게 지키고 사는가? 하는데 있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들을 향한 관심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은 자신의 삶의 자리를 거룩하게 구별하는 것으로부터 하나님께 대한 자신의 신앙고백을 드릴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삶의 자리가 깨끗하지 않은데 어떻게 우리의 삶을 거룩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정말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를 원한다면 바로 우리가 예배를 드려야 할 그 삶의 자리를 거룩하게 구별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입니다.


항상 말씀을 드리지만, 우리가 삶아가고 있는 세상은 하나님의 요구가 고리타분하게 여겨질 만큼 찬란하고 화려함으로 치장하고 우리들의 거룩성을 시험하고 있습니다. 믿음을 온전히 지키고 거룩하게 살기에는 손해가 너무 클 것 같아서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서 끊임없이 긴장하며, 갈등하며 사는 것이 우리들의 현실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쾌락을 찾고 유흥을 즐기려 합니다.


우리 주변에는 우리들을 파멸시킬 수 있는 유혹들이 찬란한 네온사인으로 위장한 채 우리를 넘보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술 취함과 방탕함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뇌물에 떨어져 나가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음란의 문화에 노출되어 가정이 파괴되는 아픔을 겪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도박에 빠져있습니다. 마약과 약물에 정신과 육신이 무너져 내리기도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탄이 만들어 놓은 세상문화의 덫은 그리스도인들을 예외로 여기지 않는 다는 사실입니다. 오히려 더 강력하게 그리스도인들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우리가 이런 타락한 세상의 문화에 휩쓸려 더럽혀진 모습으로 하나님께 나아간다면 하나님은 결코 기쁘게 받으시지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가장 먼저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의 자리를 거룩하게 구별하도록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의 자리를 거룩하게 구별하고, 깨끗한 모습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진정한 예배 자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로 영광을 돌리시기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우리의 거룩하지 못한 삶의 습관들을 고치시기 바랍니다. 깨끗하지 못한 생각들을 버리시기 바랍니다. 추악한 죄악덩어리들을 철저하게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함으로 깨끗하게 정화된 삶의 자리에서부터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는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최고의 것을 하나님께 드리라


예배는 하나님께 드리는 최고로 가치 있는 행위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최고의 것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입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모든 것을 하나님이 지으셨고, 우리의 생명 역시도 하나님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최고로 가치 있는 것을 드리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이것이 예배입니다. 그리고 그 예배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제물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모든 만물로부터 최고의 예배와 최고의 제물을 받으실 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할 때, 최고의 제물을 준비하여 드리는 것은 피조물로서 당연한 의무요 책임입니다.


성경에서도 보면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들이 최고의 제물을 준비하여 드릴 때, 그 예배를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벨은 자기 소유의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습니다. 아브라함은 100세에 난 아들 이삭을 제물로 드렸습니다. 솔로몬은 일천번제를 드렸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몸을 온 인류의 속죄 제물로 드렸습니다.


베드로를 비롯한 수많은 사도들과 성도들이 자신의 생명을 순교의 제물로 바쳤습니다. 이것이 예배입니다. 여러분들이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어떤 제물을 드리느냐가 그 제사를 결정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흠 없고 온전한 것, 최고의 것으로 제물을 준비하는 것은 예배의 기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기뻐하실 최고의 제물은 무엇이겠습니까?


먼저, 몸을 드리는 것입니다.


5절의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오직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너희 모든 지파 중에서 택하신 곳인 그 거하실 곳으로 찾아 나아가서”


성경은 우리들의 몸을 드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약시대의 예배의 장소는 예루살렘 성전 한 곳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서는 각지에서 예루살렘을 향해 가야 했습니다. 먼 곳에 사는 사람은 며칠 전부터 예루살렘을 향해 순례의 길을 걸어야 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제단이 있는 곳을 찾아가는 것을 정말 소중하게 여겼습니다.


어떤 사람은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을 찾아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한 여행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수년간 땀 흘려 일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정성과 사랑이 담긴 순례자의 예배를 하나님은 기뻐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를 통해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는 정말 우리는 자기 자신을 제물로 드리는 자세로 예배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수고를 아깝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힘들고 피곤하지만 그 몸으로 하나님께 나아와 예배드리는 수고를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로마서 12:1에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고 했습니다. 우리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산제사로 드리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자신을 제물로 드리라는 뜻입니다. 그것은 구체적으로 우리의 시간을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수고를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손과 발과 몸을 움직여서 하나님을 찬송하고 경배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구약의 형식적인 예배가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지 못했음으로 그 마음 중심을 보신다고 하신 말씀을 곡해하는 경우가 참으로 많습니다. 그래서 몸보다는 마음을 드려 예배를 대신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몸이 없는 마음은 거짓입니다. 마음 같아서는 교사도 하고 싶고, 성가대도 하고 싶고, 헌금도 드리고 싶고, 선교도 하고 싶고, 구제도하고 싶습니다. 마음은 언제나 하나님께 있다고 말합니다. 마음은 늘 기도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마음이 없는 물질, 마음이 없는 헌신, 마음이 없는 찬송이 거짓인 것처럼, 구체적 헌신이 없는 마음 역시 거짓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마음의 소원대로 우리의 몸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을 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거룩하게 구별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 드려지는 모든 예배의 시간들을 정성껏 구별하여 드릴 줄 아는 성도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예배를 빠뜨리는 것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일상이 바쁘고 힘들지만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이 너무나 귀중하기 때문에 모든 삶의 우선순위를 예배드리는 것에 두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배 시간에 늦는 것은 하나님을 경멸하는 태도입니다. 여러분이 정말 중요한 사람을 만날 때, 시간 약속을 어길 수 있습니까? 하물며 하나님을 만나는 예배 시간을 어떻게 제멋대로 생각합니까? 그래서 일찍부터 하나님의 전에 나와서 은혜 받기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고, 하나님의 임재를 사모하며 열심히 찬양하면, 그날의 예배는 감격과 기쁨이 충만하고 기적과 역사나 일어나는 축복의 시간이 될 줄로 믿습니다.


두 번째로 물질을 드리는 것입니다.


6절의 말씀을 읽습니다. “너희 번제와 너희 희생과 너희의 십일조와 너희 손의 거제와 너희 서원제와 낙헌 예물과 너희 우양의 처음 낳은 것들을 너희는 그리로 가져다가 드리고”


마음이 있는 곳에는 몸으로 드리는 헌신과 희생도 있고, 더불어서 물질도 있습니다. 물질은 언제나 마음과 함께 가는 것입니다. 물질에 대한 태도가 하나님께 대한 태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인간은 물질에 마음을 잡혀 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대한 마음은 물질을 통해서 나타나고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온전히 예배하려면 반드시 제물이 준비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제물이 없는 예배는 없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소나 양이나 염소, 그리고 비둘기를 준비했습니다. 그것도 흠이 없는 것으로 가장 좋은 것을 구별하여 하나님의 제단에 바쳤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올바른 헌금 생활을 해야 합니다. 헌금은 내 마음과 몸의 구체적인 표현입니다. 구체적인 표현으로 드리는 제물이 바로 십일조와 서원제물과 낙헌제와 첫 열매입니다. 이것을 오늘날 우리의 신앙에 대비하면 우리의 일상의 삶에서 주어지는 모든 축복들이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표현하는 헌금을 통해서 하나님을 예배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헌금이라고 다 같은 헌금이 아닙니다. 땀을 흘리고, 눈물을 흘리고 열심히 수고해서 드리는 헌금이 진정으로 가치 있는 헌금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최고의 제물을 원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가장 귀중하다고 여기는 물질을 제물로 바칠 줄 아는 참된 예배자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시기 바랍니다.


삶을 축하하라


7절의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거기 곧 너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먹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손으로 수고한 일에 복 주심을 인하여 너희와 너희 가족이 즐거워할지니라”


예배는 축제가 되어야 합니다. 온 가족이 함께 드리는 예배, 온 가족이 이른 아침부터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해 마음과 정성과 힘을 다해야 합니다. 예배는 온 가족이 기뻐하는 축제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 세상을 둘러보면 모든 것들이 은혜요 축복입니다. 감사하지 않을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감사하는 것이야 말로 우리의 인생을 축하하는 것입니다. 또한 사랑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다 떠난 후에 끝까지 우리 곁에 남아서 우리를 지켜주는 힘은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하며 사는 것이야 말로 우리의 삶을 축하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입니다. 가족들이 함께 손을 맞잡고 서로에게 감사하고, 서로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면서 살아갈 수 있다면 하나님은 그 삶의 자리에서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행위임과 동시에 우리들에게는 축복의 시간입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릴 때, 예배가 우리의 삶과 모든 발걸음을 지켜줍니다. 예배는 우리에게 생명을 공급해주는 생명 줄입니다. 영적으로 살아있는 예배,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예배를 드릴 때, 영혼이 살아납니다. 삶에 빛이 납니다. 여러분의 삶의 자리에 예배의 단을 쌓아 날마다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놀라운 은혜와 축복들을 누리며 사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