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께 예배할지어다 시29:1-2, 눅2:46-50
세상의 모든 것에는 기본이 있습니다. 운동에도 기본기가 있어야 하고 학문에는 기초학문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학교에서는 교양과목이 있어서 그 어떤 전공을 하더라도 교양과목은 필수적으로 수강해야 합니다. 사람이 세상속에 살면서 기본기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기본적인 도덕과 윤리의식을 갖추어야 합니다.
상식적인 것을 모르거나 대다수의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하는 일을 제대로 못하면 기본이 안되어 있다고 비난하거나 흉을 봅니다. 마찬가지로 신앙생활도 기본이 되어야 합니다. 신앙생활의 기본이 무엇입니까? 예배입니다. 한 두 가지를 더 말씀드리면, 전도와 봉사입니다. 기초가 무너지면 다 무너지듯이 기본자세가 흐트러지면 좋은 실력이 나오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성도는 예배가 성공하면 모든 인생이 성공합니다. 그러나 예배가 흐트러지거나 예배가 무너지면 모든 것이 무너집니다. 즉 예배의 성공은 모든 것이 성공하는 것이요, 예배의 실패는 모든 것이 실패합니다.
우리 예수님도 보면 가장 귀하게 여긴 것이 예배였습니다. 오늘 신약의 말씀인 누가복음 2장에 보면 예수님이 소년시절에 있었던 사건 하나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가장 큰 명절이 유월절입니다. 유월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는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절기입니다. 애굽에서의 430년 종살이를 청산하고 해방되는 날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이 절기는 하나님이 명하신 절기로서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그런데 이들은 이 명절을 지키기 위해서는 전국에 흩어져 살다가도 예루살렘으로 올라옵니다. 예수님의 가족들도 나사렛에 살았기 때문에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왔다가 행사가 다 끝나고 집으로 가는데 예수님의 부모가 아들을 챙기지 않고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어른들끼리 만나 얘기하는데 정신이 팔려 있었습니다. 하룻길을 가다가 예수님을 찾아보니 예수님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찾아 물어물어 다시 예루살렘까지 가는데 사흘이 소요되었습니다. 결국은 예루살렘 성전까지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때까지 예수님은 성전에 머물러 있으면서 서기관들이나 제사장들 사이에서 성경말씀을 듣기도 하고 궁금한 것은 질문하는 등 아무 재미있게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른들이 예수님이 성경에 대해 말할 때 그 지혜와 대답하는 것을 보고는 모두가 놀랬습니다.
이런 광경을 목격한 예수님의 부모님이 예수님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아이야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보라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 이때 예수님은 말하기를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 집에 있어야 할 줄을 몰랐습니까?라고 되물었습니다.
여러분, 공적인 예배를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공적인 예배란 공공의 장소, 예배를 드리도록 지정된 장소에서 드리는 예배를 말합니다. 예배는 어디서든지 드릴 수 있습니다. 지난 수요일에 요한복음4장을 강해할 때에 사마리아 수가라는 동리 우물가에서 예수님이 한 여인을 만나 대화하는 가운데 나타난 말씀을 가지고 예배에 대한 말씀을 드렸습니다. 거기에서 보면 여인이 예배 장소에 대한 내용을 언급하면서 예수님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예배를 어디에서 드리느냐가 문제였습니다. 왜냐하면 남북의 왕들이 서로가 자신들이 만들어놓은 제단에서 드려야 된다고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의 ‘이 산’이란 그리심산을 말합니다. 예루살렘이란 남유다의 수도로서 그곳에는 시온산이 있습니다. 그리심산에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주장과 시온산에서 드려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예배 장소도 대단히 중요합니다만 그러나 장소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배를 누구에게 드리는냐? 어떤 자세로 드리는가, 즉 어떻게 드리는가, 그리고 왜 드리는가가 더 중요합니다. 그 다음으로 장소문제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대답하십니다. 21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예배는 오직 아버지께 드려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예배를 안방에서 드릴 수도 있고 거실에서도 드릴 수도 있습니다. 다만 예배를 누구에게 드리는냐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예배의 대상이 중요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사마리아 사람들은 예배를 드리기는 드렸으나 알지 못하는 것에 예배했습니다. 22절에“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
북 이스라엘 사람들은 누구에게 예배를 드려야 하는지조차도 몰랐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마리아 사람들은 예배를 누구에게 드려야 하는지 예배의 대상을 모르고 드렸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무리 화려한 곳에서 좋은 제물을 드렸더라도 그 예배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이 여인은 지금 예배 장소에 문제점을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여인에게 예배의 대상이 누구인가가 중요함을 그르쳐 주었던 것입니다.
예배드리는 장소, 시간, 형식의 문제가 아니라 예배자가 예배의 대상과 어떤 관계 속에서 드려지는가가 중요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배의 대상이 가장 중요합니다. 알지 못하는 신에게 가서 예배드리고 있으면 안 됩니다.
예배의 대상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 한분입니다. 그 외에는 예배를 받으실 분이 없습니다. 창세기24장에 보면 여호와께 경배하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구약의 본문인 시편29:1-2절 말씀, “너희 권능 있는 자들아 영광과 능력을 여호와께 돌리고 돌릴지어다 / 여호와께 그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며 거룩한 옷을 입고 여호와께 예배할지어다” 우선은 예배의 대상은 하나님입니다.
예배라는 이름을 걸고 드리는 것이라면 예배의 대상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께만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오직 예배를 받으실 분은 하나님 한분밖에 없습니다. 다양한 예배가 있습니다만 그 어떤 예배도 예배의 자리에 인간이 앉아 있으면 안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공적인 예배는 오직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를 말합니다. 공적인 예배를 잘 드려야 합니다. 공적인 예배가 잘 드려지지 않고서는 우리의 삶속에서 드려져야 하는 산제사가 제대로 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여인에게 다시 예배는 여호와께 드리지만 드리는 방법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23-24절 말씀,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본문에서 ‘신령’이란 ‘영’이라는 뜻이고, ‘진정’이란 ‘진리’라는 의미입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린다는 것은 영이신 하나님께 진리 안에서 영적으로, 참되게 예배드림을 의미합니다. 신령한 하나님을 만나 진실된 마음으로 드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께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를 찾으시느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자는 찾으신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예배가 있으나 진정으로 받으실만한 예배를 드리는 자를 찾으신다고 했습니다. 찾으신다는 것은 많이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진심으로 드리는 예배자를 찾기가 힘들다는 것입니다. 예배의 형식을 강조하고 예배의 본질인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과의 교제는 제대로 하지 않는 삶을 살면서 의식을 강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예배는 영광이 나타나야 합니다. 시편29편 1절에 보면 여호와께 영광을 돌려라고 하셨습니다. 영광이란 단어는 영어로는 Glory라고 일컫고 히브리어로는 ‘kabod’ 헬라어로는 ‘doxa’라 합니다. 영광을 정의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 영광리는 단어는 하나님의 완전성, 탁월성, 임재를 표현하기 위해 특별히 씌어지는 용어입니다.
한편으로는 사물이나 인간의 뛰어난 것, 선미한 것, 빛나는 것 등을 말하는데도 씌어 졌습니다. 그러나 주로는, 하나님의 나타나심, 임재, 이에 대한 하나님 찬양에 있어서 씌어졌습니다. 구약에 있어서는, 하나님은 시내산을 덮는 구름, 이스라엘의 성막위에 머문 구름에 의해 친히 그 임재를 보여주시고, 그 영광을 나타내셨습니다.
그것은 또한 하나님의 은혜, 선, 긍휼사심의 계시인데, 피조물인 인간은, 이 하나님을 직접 볼 수가 없으므로, 다만 그 영광을 간접적으로 우러러 보았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영광에 접할 때 사람들은 그 광채에 감탄하고, 스스로의 죄를 통회하며(수7:19), 하나님을 전심으로 찬양했습니다. 신약에 있어서는,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시고(요1:14), 하나님의영광의 광채시오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고 히브리서 1장3절에 말씀했습니다
. 특히 그리스도의 부활은 하나님의 영광의 나타나심이라고 로마서 6장4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는 것은 우리의 모든 의식이나 삶을 통해서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나타내거나 보여주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하는 말이나 행동에서 하나님의 임재의 현상이 나타나야 합니다. 우리만 느끼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그렇게 느끼도록 해야 합니다. “영광 영광 할렐루야 영광 영광 할렐루야”라고 찬송을 부른다고 영광이 돌려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의 임재하심과 하나님의 탁월함과 하나님의 선함과 의로움이 드러나도록 해야 합니다. 적어도 우리가 공적인 예배를 교회에서 드릴 때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경험해야 합니다. 지금 이시간에 하나님이 나타나셨음을 경험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임재하셨다면 여러분의 마음은 어떤 마음이어야 합니까? 감격하는 마음이어야 합니다. 마음에 감격이 있어야 합니다. 찬송을 불러도 감격스럽고 기도를 해도 주님이 나의 소리를 듣고 계심을 느껴야 합니다. 이 시간 말씀을 들을 때 하나님의 소리를 듣는 것 같아야 합니다. 지금도 하나님이 이곳에 임재해 계십니다. 하나님이 임재해 계신다면 당신의 예배드리는 태도가 어떠해야 할까요?
시편29편 2절 말씀에 보면 여호와께 합당한 영광을 돌려라고 했습니다. 역대상16장29절 말씀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그에게 돌릴지어다 제물을 들고 그 앞에 들어갈지어다 아름답고 거룩한 것으로 여호와께 경배할지어다” 인간관계 속에서도 마음가짐이나 태도가 상대가 누군가에 따라 달라집니다. 친구를 만났을 때는 영광을 돌릴 수 있는 태도가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대통령 앞에 서면 전혀 다른 태도가 나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 앞,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예배드리는데 우리의 태도는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함부로 해서는 안됩니다.
따라서 우선 몸가짐이 달라야 합니다. 단정한 옷차림을 가져야 합니다. 경건한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예의바른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젊은 여성이 교회에 나올 때 꼭 배꼽티를 입고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하도 민망하게 생각한 담임 목사가 그 아가씨에게 조심스럽게 말했습니다. \\\\\\\"자매님, 교회 열심히 나오는 것은 고맙지만 교회 올 때 복장을 좀 점잖케 입고 올 수 없어요?\\\\\\\" \\\\\\\"왜요, 목사님, 배꼽티를 입고 왔다고 해서요?\\\\\\\" \\\\\\\"그래요\\\\\\\" \\\\\\\"아니 목사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중심을 보시는 분이시잖아요. 그래서 난 나의 중심을 보여 드리기 위해서 배꼽티를 입고 나오는데 목사님은 그것도 모르세요? 하나님이 잘 보이시도록 꼭 깨끗이 씻고 온다구요.\\\\\\\"
몸가짐은 마음가짐에서 비롯됩니다. 그러므로 마음가짐이 잘 되어야 합니다. 마음가짐에 있어서, 우선은 죄를 고백해야 합니다. 사 59:1,2말씀에 보면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하지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 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
감사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헌신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사모하고 갈망하는 심정이 있어야 합니다. 시편 42:1-4절 말씀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 / 사람들이 종일 내게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오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 / 내가 전에 성일을 지키는 무리와 동행하여 기쁨과 감사의 소리를 내며 그들을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였더니 이제 이 일을 기억하고 내 마음이 상하는도다”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면서 영광을 돌리는 예배가 되기 위해서는 버려야 할 마음이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보면 “거룩한 옷을 입고 여호와께 예배할지어다”옷은 행실을 말할 때 주로 사용했습니다. 우리의 삶속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으로 살아야 함을 말합니다. 예배는 공적인 예배에서 드려진 것이 생활속에 드러나야 합니다.
그 향취가 나타나야 합니다. 따라서 마음과 행실이 올바르게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만 세상에 살다보면 더러워집니다. 그래서 회개도 해야 합니다. 우리는 예배드리는 자리에 나와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세상에서 묻었던 더러운 것들을 제거하는 일입니다. 그것이 곧 회개입니다.
그리고 교만한 마음과 비판적인 마음을 버려야 합니다. 의심을 버려야 합니다. 외식과 위선을 버려야 합니다. 특히 속된 마음과 잡념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릴 때는 오직 집중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하는 모든 일, 공부를 하던, 일을 하든, 놀던 그것이 재미가 있고 성공하기 위해서는 집중해야 합니다. 달릴 준비를 하는 마라톤 선수가 옷을 벗어던지듯 무슨 일을 시작할 때는 잡념을 벗어던져야 합니다.
예배가 하나님께 드려지려면, 성공하는 예배가 되려면 집중해야 합니다. 집중이란 영어 단어를 보면 “concentration”입니다. 이 단어는 두 단어가 합성되어 있습니다. ‘con\\\\\\\'과 ‘cent’입니다. 앞의 ‘con\\\\\\\'은 ’함께‘라는 뜻을 가졌고, 뒤의 ’cent\\\\\\\'는 ‘중심’이란 뜻입니다.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중심으로 함께 나아가는 것이 집중입니다.
무슨 일이든지 집중이 되어야 성공합니다. 자기가 하는 일에 집중할 때 전문가가 됩니다. 자기가 하는 일에 집중할 때 능률이 오르고 효과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예배에 집중하고 있습니까? 말씀을 듣는 일에 집중하고 있습니까? 찬송을 부르면 가사에 집중하고 있습니까? 기도를 하면 간절한 마음으로 그분께로 향하여 집중하고 있습니까? 집중하지 않고는 성공적인 예배를 드릴 수 없습니다.
한 불평이 많은 청년이 왕을 찾아와 인생을 성공적으로 사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졸랐습니다. 왕은 잔에 포도주를 가득 부어 청년에게 주면서 말했습니다. “포도주 잔을 들고 시내를 한 바퀴 돌아오면 성공비결을 가르쳐 주겠다. 단, 포도주를 엎지르면 네 목을 베리라.”
청년은 땀을 뻘뻘 흘리며 시내를 한 바퀴 돌아왔습니다. 그러자 왕이 물었습니다. “시내를 돌며 무엇을 보았느냐. 거리의 거지와 장사꾼들을 보았느냐?” “혹시 술집에서 새어 나오는 노래 소리를 들었느냐?\\\\\\\" 청년이 대답했습니다. “포도주 잔에 신경을 쓰느라 아무 것도 보고 듣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왕이 말했습니다. “바로 그것이 성공의 비결이다. 인생의 목표를 확고하게 세우고 일에 집중하면 주위의 유혹과 비난이 들리지 않을 것이다”
일하지 않는 사람은 불평이 많습니다. 일을 열심히 하는 분들은 다른 소리를 잘 듣지 못합니다. 일 안하는 사람들은 남의 이야기를 잘 듣습니다. 그것도 좋은 이야기 보다는 나쁜 이야기가 더 많습니다. 분명한 인생관을 갖고 일에 몰입하는 사람은 불평할 틈이 없습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열심히 충성하고 봉사하는 사람들은 다른 소리가 들리지 않고 다른 사람의 일을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 사람들은 한번을 교회에 나오더라도 남의 소리가 들리고 다른 사람이 잘못하는 일만 보입니다. 예배를 드려도 마찬가지입니다. 찬송을 불러도 기도를 드려도 설교를 들어도 집중해서 드리는 분들은 다른 사람의 것이 귀나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오직 자신의 마음과 온 정신이 집중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배에 참석하면서도 하나님 아버지 외에 잡다한 많은 것을 지니고 있습니다. 마음이 흐트러지면 안 됩니다. 예배 순서 하나하나에 집중해야 하시기를 바랍니다. 예배에 집중하면 출석부터 집중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설명할 때, 대통령 앞에서 행동하는 것을 말할 때가 많습니다. 그것은 나라 안에서는 가장 높임을 받는 직위가 대통령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대통령 앞에서 행동하고 말할 때 어떻게 하겠습니까?
한 번도 만나본적은 없지만 어떻게 할 것 같습니까? 만남의 약속을 어길 수 있습니까? 만날 시간에 지각할 수 있습니까? 뉴스에서 보면 대통령이 제일 먼저 등장합니까? 만날 사람들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습니까? 이미 하나님은 임재해 계신다고 하지만 우리는 예배 시간 지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은 아주 나쁜 습관입니다. 대통령이 나가지 않는데 나가는 분 보았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대통령과는 비교도 안되는 전능하시고 거룩하시고 영광받으실 하나님께 예배드리면서 우리의 몸가짐과 마음가짐이 그렇게 흐트러져서야 되겠습니까?
끝으로 중요한 것은 예배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공적인 예배에 참여하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신명기26장10절 “여호와여 이제 내가 주께서 내게 주신 토지소산의 맏물을 가져왔나이다 하고 너는 그것을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두고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경배할 것이며” 역대상16장26-29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만국의 모든 신은 헛것이나 여호와께서는 하늘을 지으셨도다 / 존귀와 위엄이 그의 앞에 있으며 능력과 즐거움이 그의 처소에 있도다 / 여러 나라의 종족들아 영광과 권능을 여호와께 돌릴지어다 여호와께 돌릴지어다 /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그에게 돌릴지어다 제물을 들고 그 앞에 들어갈지어다 아름답고 거룩한 것으로 여호와께 경배할지어다” 예수님도 명령하셨습니다.
요한복음4장23절 “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누가복음4:8절에서 예수님이 사단에게 시험을 받을 때 사단이 자기에게 경배하라고 했을 때 예수님이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하나님께만 경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직 그분만 섬겨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성전에 머물기를 좋아했습니다. 유월절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성전에 머물고 계셨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영광을 돌리는 예배,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 거룩한 옷을 입고 드리는 예배는 자신이 참여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참여라는 것은 어디까지입니까? 여러분, 학생들이 수업에 참여했다는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입니다. 중간에 나가는 방법은 조퇴하는 방법입니다.
조퇴는 아무 때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데 조퇴해서 되겠습니까? 예수님은 유월절 행사가 다 끝나고 다른 사람들은 다 집에 돌아갔는데도, 심지어 아버지 어머니도 돌아가셨는데도 자신은 성전에 남아 있었던 모습을 닮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의 자녀들이나 가족들이 교회에 있다고 하면 그대로 두세요. 다른 곳에 가 있는 것보다야 훨씬 낫지 않습니까? 왜냐하면 교회는 우리 하나님 아버지 집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부모님에게 뭐라고 대답했습니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배의 성공자가 됩시다. 예배의 성공은 인생의 성공을 가져다 줍니다. 성경에서 보여준 인물들 가운데 예배와 관계된 사람들을 살펴볼까요? 가인, 롯, 에서, 사울왕의 공통점은 하나님이 인정하지 않으셨다는 사실입니다.
무엇이 그렇게도 잘못된 것인가? 정말로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잘못이 있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가인이 물론 동생을 죽인 것입니다. 그런데 원인은 단을 제대로 쌓지 못했습니다. 대충했습니다. 롯도 단을 쌓았다는 이야기가 없습니다. 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울왕도 단을 쌓긴 했으나 엉망으로 쌓았습니다. 여기서 단이란 제사요 오늘의 예배를 말합니다.
그런데 아벨은 단을 잘 쌓았습니다. 아브라함도 아내를 누이동생이라 하는 등 단점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단을 잘 쌓았습니다. 야곱은 약삭빠르고 꾀가 많고 도둑놈 같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단을 잘 쌓았습니다. “야곱이 잠깨어 일어난 후 돌단을 쌓은 것 본받아서”
다윗도 실수가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아내가 많아서 아이들도 많이 낳았습니다. 단을 잘 쌓았습니다. 단을 잘 쌓은 사람은 실수와 허물이 있어도 하나님이 복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단을 제대로 쌓지 못한 사람은 복을 받지 못했습니다. 예배는 은혜의 통로입니다. 우리가 은혜 받지 못하면 살 수 없습니다. 죄를 짓지 않고 살 수 있는 힘도 은혜속에 있습니다. 그 은혜는 예배를 통해서 받습니다. 성공적인 예배를 통해서 승리하는 삶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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