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당예배의 의미

   입당 예배의 의미/막2:21-22

입당 예배의 의미
막2:21-22





우리교회가 입당을 맞이하면서 먼저 입당예배를 드리기 전에 성도님들에게 크게 두 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러니까 입당에 대한 의미와 입당 후에 우리의 자세에 대한 내용입니다.



먼저 우리교회의 입당이 ‘기념’적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남기고 가는 것이 많이 있습니다. 무엇을 남기느냐 따라 세상을 잘 살았다 못살았다가 결정 나게 되지요. 빚을 잔득 남기고 떠났다면 그 분은 잘 못 산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와 아픔을 남기도 떠났다면 그 분 또한 세상을 잘 못산 것이지요. 그런데 사회에 많은 것을 환원했다든지 많은 가난한자와 선교사와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름이 기억된다면 그 분은 잘 산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들은 지금까지 무엇을 남겼습니까? ‘우리 남편이 남긴 것은 소주병 밖에 없다.’ ‘우리 아내가 남긴 것은 잔소리 밖에 없다.’ 그러면 곤란합니다. 아내나 남편에게 사랑의 추억을 남기고 자녀들에게 귀한 교훈을 남겼다면 그 분은 잘 산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삶을 살았던 족적에는 ‘기념’ 또는 ‘역사’ 또는 ‘가치’라는 기록을 남기게 됩니다. 기념이란 오랫동안 그 사적을 전하여 잊지 않도록 하는 것이지요. 연관해서 말씀을 드린다면 기념비, 기념식, 기념절, 기념지, 기념품, 기념호, 기념행사, 기념탑 등의 말이 있습니다.

그러면 성경에서 기념에 대한 말을 어떻게 동원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호세아 12:5 ‘저는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시라 여호와는 그의 기념 칭호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의 뜻은 이스라엘의 금세와 내세에서 영원토록 하나님의 존재하심과 창조하심과 통치하심 그리고 보존하심과 섭리, 더더욱이 구속의 역사를 전하고 잊지 아니해야 될 이름이란 말씀입니다.

시편 102:12 ‘여호와여 주는 영원히 계시고 주의 기념 명칭은 대대에 이르리이라’ 하나님은 영원히 계신데, 그 계심에 대한 증거를 체험이나 깨달음이나 기적들을 통해서 대대로 하나님이 영원하시다는 것을 알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시편 145:7에는 ‘저희가 주의 크신 은혜를 기념하여 말하며 주의 의를 노래하리이다’ 그러니까 주님께서 하신 모든 일들이 내 마음에 기억되어 지울 수 없는 표식으로 기념되어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것입니다.

민수기 16:39-40 ‘제사장 엘르아살이 불탄 자들의 드렸던 놋 향로를 취하여 쳐서 제단을 싸서 이스라엘 자손이 아닌 외인은 여호와 앞에 분향하려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함이며 또 고라와 그 무리와 같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 여호와께서 모세로 그에게 명하신 대로 하였더라’ 저 광야교회에서 모세와 아론의 지도권에 도전하여 자기들끼리 따로 분향하던 250명을 하나님은 불로 태워 심판하셨습니다. 그 후에 저들이 드렸던 놋향로를 쳐서 그것으로 제단을 만들고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경계의 기념물로 삼으라고 한 경우가 바로 기념의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기념은 하나의 교훈이 되고 도전이 되고 경계심을 가지게 하는 것이지요.

여호수아 4:1-9의 말씀을 보면 여호수아가 요단강을 건너는 것이 무사히 끝났을 때 하나님께서 요단강 속에서 취하였던 열두 돌을 함께 모으고 이것을 통해서 이스라엘자손들에게 영원한 기념이 되게하라고 하셨습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이 인도하시고 지켜주시지 않았다면 이스라엘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너지 못했을 것입니다. 무사히 요단강을 건널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이고 이것을 기념해서 후대에 하나님이 함께하심으로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메고 요단강을 건널 때 요단강이 마르고 그 곳으로 이스라엘백성들이 요단을 무사히 건넌 것을 후대에게 알리라는 것입니다.

이런 기념적인 사건은 모든 삶의 주인이 하나님임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역사와 구원역사를 잊지 않고 기억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일의 주체였던 하나님 자신의 이름뿐 아니라 그 하나님께 부름을 받아 그 영예로운 사역에 동참한 사람들의 역사와 이름을 기념하고 그 신앙을 본받아 라는 것이지요.

그런 차원에서 출애굽기 20:24 ‘내게 토단을 쌓고 그 위에 너의 양과 소로 너의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라 내가 무릇 내 이름을 기념하게 하는 곳에서 네게 강림하여 복을 주리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릴 때 주님의 축복을 기억합니다. 은혜와 감사와 인도하심과 선하심을 기억하고 오늘도 예배 중에 함께하실 주님을 부를 때 그 곳이 복된 곳이고 하나님이 임재해서 복을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는 예배드리는 곳이요, 주님이 강림하는 곳이요, 복을 받는 곳입니다.

시편 73:17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야 저희 결국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시편 기자가 믿지 않는 자의 형통을 보고 시험에 들었습니다. 그런데 어디서 깨닫게 되었냐하면 성소에 들어가서야 비로소 내가 생각한 것이 잘못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성소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간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소에 기념되는 일들을 시편저가가 보았기 때문이지요. 우리가 이 성전에서 기념된 만한 일들을 많이 남깁시다. 이미 우리는 성전건축을 통해서 간증과 기념비를 남긴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다른 교회가 우리교회의 기념비를 보고 그들도 새롭게 성전건축에 도전하는 힘을 줄 것입니다. 분명히 저희교회는 하나님이 하신 일이였습니다. 세부적인 간증을 듣기 원하시는 분은 제 사무실로 오십시오. 구제적인 자료도 있습니다.



업체를 선정하는 문제나, 또 그 업체가 바뀐 것이나, 여러분들이 보시면 잘 아시겠습니다마는 주위가 가정주택입니다. 이런 주택에 교회가 서려고 하니까 많은 민원문제가 제기되었습니다. 그것으로 인해 지하주차장을 못했는데 지하주차장을 만든 교회목사님들 마다 잘 했다는 것입니다. ‘영명교회 공사차량 출입금지’라는 현수막이 양쪽에 붙어 있을 때는 굉장히 난감했습니다마는 목사님들이 그것을 보고 평소에 우리교회를 놓고 기도 안했는데, 지방회 목사님들이 기도해 주시고 또 그 현수막으로 인해 주위 사람들이 교회건축을 반대하기보다 오히려 찬성하고 있다는 것을 주님들이나 구청이 아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지금도 잊어지지 않는데, 이웃 사람들이 불법현수막을 철거하라고 33명이 사인을 해서 동사무소에 제출한 것입니다. 이웃 사람의 80%가 넘는 찬성입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성전건축 되는데 주민들의 반발로 인한 어려움은 크게 없었습니다. 성전건축으로 인해 많은 기념비적인 일들이 있었습니다. 결국 하나님이 하셨다는 고백 밖에 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이런 간증들을 마음에 세기고 기념비를 만들어서 우리 후대에 교훈과 위대한 신앙을 물려주는 복된 교회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교회가 입당예배를 하나님께 드립니다. 정말 귀하고 복된 은혜와 감격이 있는 날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런 새 성전을 지어놓고 우리만 만족하고 끝난다면 새 성전에 대한 의미가 없어지고 말 것입니다. 이제 이 성전에서 새로운 기념비적 일들을 주님과 함께 이루어나가야 되겠습니다.

첫째로는 우리교회가 성별의 집으로 표적을 남기기를 원합니다. 이 집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집입니다. 진리의 기둥과 터로서 세상의 집이나 회관이나 상가나 이런 것과는 완전히 구별됩니다. 이 집은 하나님의 집으로 만민이 기도하는 집입니다. 세상과 구별되어 한적한 곳에 주님을 구주로 고백한 심령들이 모여서 거룩하게 예배드리는 곳입니다. 그리고 이 교회는 많은 사람들을 초청해서 생명을 살리는 구속적 사명을 감당하는 곳입니다. 분명히 세상과는 다른 곳입니다. 여러분 생명을 살리는 곳은, 다시 말해서 구원을 이루는 곳은 세상에 어디를 가도 없습니다. 복음의 진리의 말씀을 듣는 곳은 세상에 어디를 가도 없습니다. 은혜를 알고 감격이 있고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가 있는 곳은 세상에 어디를 가도 없습니다. 교회 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주님을 섬기고 주님이 함께하고 주님이 임재하는 성령이 충만한 곳은 교회 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이 교회는 성별된 곳이고 이 곳에서 영적인 간증을 많이 남기세요. 신앙의 흔적을 많이 남기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성도들마다 기념적인 간증이 남아 있는 교회가 되실 축복합니다.



두 번째, 복된 공동체의 집으로 삼기 원합니다. 이 입당예배는 모든 성도들이 참여하는 복된 행사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건축한다는 것이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이며 위대한 일인지 모릅니다. 70년대는 많은 신앙인들이 천국에 가서 성전을 건축했다는 고백을 하고 싶다는 열정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70년대에 많은 교회가 건축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 일은 거룩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고 하나님께 이 전을 바치는 봉헌식이야 말로 큰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귀한 일에 우리 성도들이 함께 하셔서 식사도 준비하고, 또 성가대로 하나님께 영광의 예배를 준비하고 안내와 주차봉사로 이 귀한 일을 함께 해 나가시길 원합니다. 그리고 이 입당예배가 우리교회에 기념이 되는 은혜가 있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일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자들에 의해서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이 축복스러운 평화시대를 살면서 하나님의 집을 지어 21세기 종말 세계 선교의 센터의 역할을 감당하고 그리고 우리의 후손들에게 계승하게 되면 여러분과 저가 생애에 가장 큰 축복이요, 가장 큰 영광이요 자랑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영광 가운데 머무는 이 성전에 여러분의 이름이 헌당 기념 판에 새겨짐으로 우리가 받은 축복의 표적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와 우리의 후손들이 이 성전과 입당기념을 기억할 때마다 하나님을 향한 예배와 기도 감사와 찬양의 표적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의 영광 복음의 영광 교회의 영광을 위하여 죽고자 하였을 때 살았다고 하는 에벤에셀의 표적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크게 두 번째 우리교회가 입당을 하면서 이제 새롭게 변화되는 은혜가 있기를 원합니다.

요즘 언어로 페러다임 쉬프트(paradigm shift)라는 말을 많이 사용합니다. 전통적 사고의 전환이나 고정관념이나 의식의 변화를 뜻합니다. 새로운 변화를 위하여 그 동안에 젖어 있거나 익숙해져 있는 습성으로부터 과감한 도약을 시도하라는 말입니다. 사실 새로운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게 되면 비교의식이나 소외감을 갖게 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서 교회가 개척당시 약 20명 정도가 출석을 했습니다. 그때는 가족적인 분위기고 서로 말도 잘 통하고 재미있었습니다. 그런데 자꾸 교회가 커가고 모르는 사람들이 생기면 옛날이 좋았다면서 자꾸 옛날을 그리워하고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럴 때 과거와 비교도 하고 또 사람들 사이에서 소외감도 느끼고 한다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2:21-22을 보면 예수님께서 페러다임 쉬프트의 선구자라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기운 새것이 낡은 그것을 당기어 헤어짐이 더하게 되느니라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와 부대를 버리게 되느니라 오직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느니라 하시니라’ 옛날에는 유리병이나 플라스틱제품의 그릇이 없었기 때문에 가죽 부대를 사용하였습니다. 특히 중동지방의 유목민들은 양이나 염소를 잡을 때 목 부분만 잘라 가죽을 그대로 벗겨서 말리면 그것으로 하나의 좋은 부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속에 포도주를 넣어 가지고 여행을 다녔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몇 년을 두고 오래 쓰다 보면 가죽 부대의 신축성이 없어져 만약 거기에다가 아직 발효되지 않은 새 술을 넣으면 어느 순간 가죽부대가 터지고 맙니다.

여기서 주님의 말씀은 새로운 변화를 과감하게 수용하라는 것입니다. 율법에 매여 있지 말고 과거의 관습에 매여 있지 말고 드디어 역사의 새 지평을 열어갈 메시야가 왔으니까 모두 다 새로운 변화를 받아 새 인생을 시작하라는 혁명적인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제 우리가 기도하고 기대해 왔던 새 성전에서 새로운 비전과 헌신으로 주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함께 하고 있습니다. 모든 분위기가 옛날과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좌석도 420석이나 됩니다. 부속시설도 많이 늘어났습니다. 이제 3층에는 휴게실을 만들 계획으로 있습니다. 이제 달라진 곳에서 우리의 마음과 자세도 달라져야합니다. 회사원이 진급을 하면 그 직급에 따라 사람이 달라져야하지요. 군인들도 대령에서 장군이 되면 모든 것이 달라진다고 합니다. 교회의 본질은 절대로 바뀌면 안되겠지만, 제도나 형식은 이제 새롭게 바뀌는 상황이면 바꿔야합니다. 더군다나 좀더 새로운 성전에서 새로운 각오와 헌신과 영적인 생활에 보다 더 열심을 내고 헌신하는 좋은 계기로 바꿔야합니다. 한국이 겨울이라고 필리핀을 갈 때 겨울옷 가지고 가면 안 되듯이, 20평 아파트에 살다가 40평으로 가면 청소부터 시작해서 유지비까지 모든 것이 달라지는 것처럼, 우리교회가 새 성전에서 새로운 마인드와 헌신과 계획으로 신앙생활을 하야합니다. 좀더 전도에 열중 내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400석이란 자리를 만들어 놓았기에 이런 계기를 통해 빈 자리를 채우는 일을 해야 됩니다. 청소할 곳도 몇 배 더 늘어났습니다. 식사의 불량도 더 늘어났습니다. 이것이 부담으로 생각하면 절대로 안 됩니다. 새로운 변화로 생각하셔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더 큰 사명을 주셨고 더 큰 상급을 예비하셨고 더 큰 은혜를 준비하고 계시다는 사실로 인식하셔야합니다.

사실 이 말씀의 주제는 새롭게 봉사하고 헌신하라는 뜻만 강조되는 것이 아니라 핵심주제는 속사람이 변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나야하고 날마다 예수성품으로 변화를 받아야 됩니다. 새 성전에서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될 것이 더 나은 예배를 드리고, 더 좋은 환경에서 기도하고, 교제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속사람이 새로워지는 은혜가 있어야 됩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안에서 새로운 존재로 확인되는 은혜가 날마다 충만하길 원합니다.

우리가 새 부대에 넣어야할 것 중에 잊지 말아야 될 것이 성령충만입니다. 성령님만이 우리의 속사람을 변화시켜주십니다. 우리의 근본을 거듭나게 하십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성격 우리 마음대로 되지도 않지 않습니까? 우리의 모난 성격을 도려내실 분이 성령님이십니다. 에스겔 36:26 ‘너희에게 새로운 마음을 주고 너희 속에 새로운 영을 넣어 주며 너희 몸에서 돌같이 굳은 마음을 없애고 살갗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다’ 성령이 새로운 마음을 주지 않으면 새로운 영을 넣어주지 않으면 다시 말씀드려서 완전히 개조하지 않으면 우리 성격은 변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성령께서 이렇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께 맡길 수밖에 없습니다. 자식도, 가정도, 건강도, 물질도 성령께 맡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교회가 성령역사를 통해 새롭게 심령이 변화되는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 다음에 가정이 새롭게 변화되기를 소망합니다.

신앙생활 하면서 신앙의 열매를 가정에서 맺어야합니다. 아무리 신앙이 좋다고 하지만 가정사역에서 실패하면 그는 모든 것을 실패한 것과 다름없습니다. 가정의 달을 맞이해서 가정에 대해 설교를 했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말씀을 드리지는 않겠습니다마는 신앙생활하면서 가정생활에 변화를 받아야 된다는 것을 절대로 잊지 마십시오. 부부사이가 더 좋아지고 자녀와의 관계가 더욱 좋아지고 이웃과의 관계도 더욱 좋아져야합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남편이 반찬 투정을 하는데 아이가 하나일 경우에 ‘맛 없어? 내일 기다려봐! 맛있는 것 만들어 줄게’ 애가 둘일 때는 아내가 반찬을 확 걷어가면서 이렇게 말한답니다. ‘배불렀군! 배불렀어. 며칠 굶어봐야 정신을 차리지’ 그런답니다. 그리고 어쩌다가 남편이 감기에 걸렸을 때, 애가 하나일 경우 ‘당신이 건강해야 우리 식구가 건강하죠, 약 드세용’ 애가 둘 일 때는 ‘밤새 술 퍼먹고, 줄 담배 피는데 안 아픈게 용한 거지 응?’ 애가 셋일 때는 남편이 콧물만 훌쩍이는 소리만 들려도 이렇게 말한답니다. ‘애들한테 옮기면 죽을 줄 알어! 알았어? 저 방가서 자!’ 저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하면 그래도 여자 분들이 신앙생활을 많이 하잖아요? 무조건 여자들이 참으라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경제가 좋지 못하다 보니까 개고 숙이고 다니는 남자 분들이 많은데 이럴 때 일수록 기도 많이 하셔야 됩니다. 이럴 때 일수록 가정에서 자신감과 용기를 불어넣어주어야 됩니다. 가정이 아니면 이렇게 할 장소가 없습니다.

어느 모임에서 고등학생들을 모아놓고 이런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의 아버지가 어느 때 가장 불쌍하다고 느껴집니까? 했더니 첫째가 아버지가 어머니한테 야단맞을 때이고, 둘째는 아버지가 밤늦게 회사에서 돌아와 가방을 힘없이 내던지고 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흐느껴 우실 때이고, 셋째는 아버지가 라디오나 텔레비전을 보다가 말고 갑자기 나가셔서 혼자 복권을 맞추어 보실 때였다고 합니다. 가슴 아픈 얘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다윗이 위기를 맞을 때 친구들이 새처럼 산으로 도망하라고 했지만 다윗은 성전으로 왔습니다. 피할 길은 주님 품밖에 없다는 것을 다윗은 알았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주님이 임재 하는 장소기에 예배장소요 기도하는 집이기에 구원이 있고 위로가 있고 감격이 있습니다. 가정은 회복 될 수 있고 행복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함께하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통해서 공급되는 말씀이 가정에서 기쁨과 즐거움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변하여 가정이 새롭게 변화되는 축복이 있기를 축원 합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첫 번째는 기념적인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마리아가 옥합을 깨고 그 향유를 주님의 머리에 부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비난 했지만 예수님은 ‘저가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사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 이 여인은 예수님의 죽으심을 미리 준비하며 향유를 주님의 머리에 부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마가복음 14:9에 ‘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 하시니라’ 이 여인이 주님께 헌신된 믿음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 기념이 되었습니다. 더럽고 추악한 죄 때문에 이미 형벌을 받아 마땅한 자인데 심판을 받아 멸망을 당해야할 처지인데, 주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담당하시고 죽으신 그 은혜야 말로 이 값진 향유로 비유되겠습니까? 이 여인은 이런 마음으로 헌신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이 교회에서 성도들의 가슴에 기념이 되는 신앙의 흔적을 남기는 복된 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이제 새롭게 건축된 교회에서 새롭게 변화를 받아 주님의 성품으로 좋은 열매를 많이 맺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