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를 새롭게 하라

예배를 새롭게 하라/전5:3

예배를 새롭게 하라
전5:3




(예절을 갖추어라)

1하나님의 집으로 갈 때에, 발걸음을 조심하여라. 어리석은 사람은 악한 일을 하면서도 깨닫지 못하고, 재물이나 바치면 되는 줄 알지만, 그보다는 말씀을 들으러 갈 일이다. 2하나님 앞에서 말을 꺼낼 때에, 함부로 입을 열지 말아라. 마음을 조급하게 가져서도 안 된다.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 위에 있으니, 말을 많이 하지 않도록 하여라.


[마태복음 22:9-14]

8그리고 자기 종들에게 말하였다. \"혼인 잔치는 준비되었는데, 초대받은 사람들은 이것을 받을만한 자격이 없다. 9그러니 너희는 네거리로 나가서, 아무나 만나는 대로 잔치에 청해 오너라.\" 10종들은 큰길로 나가서, 악한 사람이나, 선한 사람이나, 만나는 대로 다 데려왔다. 그래서 혼인 잔치 자리는 손님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11임금이 손님들을 만나러 들어갔다가, 거기에 혼인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이 한 명 있는 것을 보고서 12\"친구여, 그대는 혼인 예복을 입지 않았는데, 어떻게 여기에 들어왔는가?\" 하고 물으니,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13그 때에 임금이 종들에게 말하기를 \"이 사람의 손발을 묶어서, 바깥 어두운 데로 내던져라. 거기에서 슬피 울며 이를 갈 것이다.\" 하였다. 14부름받은 사람은 많으나, 뽑힌 사람은 적다.\"[표준새번역]




예배를 새롭게 하라(1)은 예배하기 전에 준비되어야 할 영적 건강을 점검하였습니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하나님의 신비를 지각하며 찬양할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예배를 새롭게 하라(2)에서는 하나님의 일에 동참함으로써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하는 원리를 점검하였습니다. 삶의 자리에서 삶으로 표현되는 예배를 주님은 기뻐하십니다.



이상의 말씀을 요약하면, 예배를 새롭게 하자면 먼저, 예배가 사람 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옮겨져야 한다는 점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통하여 예배하는 영적 예배가 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형식보다 내용을 중시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내용만 중요하고 형식은 필요없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예배를 새롭게 하라(3)은 예배의 형식을 통하여 어떻게 내용을 담아낼 것인 지를 생각하기로 합니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궤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속담은 아무리 좋은 내용이라 할지라도 형식이 없이는 전달이 될 수 없습니다. 주일 예배의 형식도 이와같이 하나님의 찬양하는 내용을 담아내는 그릇으로 훌륭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 뜻에서 우리 예배의 형식에 담아야 할 내용을 함께 생각하기로 합니다.


우리 교회의 예배 형식은 두 번째로 바뀌었습니다. 저 역시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감사와 찬양, 우리의 충성과 헌신을 잘 담아낼까 하는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예배 양식을 만들면서 두 가지 원칙을 두었습니다.

첫째는, 이 예배의 형식이 하나님 앞에 경박하지 않고 무례하지 않으며, 예절을 다 갖출 수 있되, 그러나 지루하거나, 형식을 위한 형식이 되어 내용을 억제하지 않도록 해야 하며 핵심을 잘 담아낼 수 있는 간결함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둘째로는 예배는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사람의 행위임과 동시에 하나님께서 사람을 부르시고 만나주시는 시간이기에 예배의 내용이 충분히 살아나고 표현되어야 한다는 점과 하나님의 뜻이 충분히 표현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중시하였습니다.

이러한 원칙 아래 예배를 모두 4단계로 구성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만나 뵙고 돌아가는 예배 행위를 4단계에 걸쳐 표현하고 연출하는 것입니다.


1단계 - 초대와 교제(감사)

예배는 사람의 필요 때문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초대에 응하는 것입니다. 꼿 한 송이를 보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느낄 수 있었다면 당신은 그 꽃 한 송이를 통하여 부르시는 주님의 손 짓을 본 것입니다. 아침안개 속에서 신비한 하나님의 숨결을 느낄 수 있었다면 당신은 그 안개를 통하여 초대하는 하나님의 손 짓을 본 것입니다. 예배는 이와같이 생활 속에서 섭리하며 사람을 부르시고 그 부르심에 응답하여 하나님께 나아오는 사람들의 행위입니다. 어떤 사람은 가슴벅찬 감격을 맛보고 나온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절박한 위기 앞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듣고 나온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절망과 좌절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나아온 사람도 있습니다. 모든 경험이 다를 지라도 공통된 점은 모두가 하나니님의 초대를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예배실에 들어서는 모든 사람들은 그 속 사정은 각각 다를 지라도 한 가지 사실 하나님께서 부르셨고 그 부르심에 감사하며 응답하여 나오셨다는 점입니다. 그 점에서 예배에 나아온 사람 모두는 같은 목적으로 지니고 있습니다. 뭔가 잘 통할 것 같지 않습니까?

친교는 이와같은 동질성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배는 하나님을 찬양하러 모인 사람들이 그 기쁨이나 하나님을 만난 감격을 나누는 것입니다. 간증으로 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고백한다면 하나님의 기쁨실 것입니다. 더나아가 한 식구임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같은 순례의 길을 가는 좋은 이웃으로 친교를 나누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이 일을 기뻐하십니다. 당신이 초대한 사람들이 한 몸처럼 친밀해진다면 얼마나 기쁜 일이겠습니까? 예배시간이 이미 지난 시간에 도착하여 헐레벌떡 들어오는 것은 죄송한 일이지만 그다지 예의바른 초대손님이 아닙니다. 예의바른 초대손님은 시간보다 미리 와서 함께 온 사람들과 교제를 나누며 오시기로 약속하신 그 분을 기다리는 사람일 것입니다. 기쁨을 함께 나누면 배가 됩니다. 고통 역시 나누면 절반으로 줄어듭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 혼자 가는 것보다 함께 가는 이웃이 많으면 더 기쁩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여러분께 말합니다. 예배의 첫 순서부터 준비를 잘 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예배가 효과적이기를 바랍니다. 기도도 효과적인 기도가 있습니다. 기도하는 일마다 즉시 응답받는 기도가 있는가 하면, 아무리 기도하여도 하나님의 귓전에 전달되지 못하는 기도가 있습니다. 예배도 마찬가지입니다. 백 날을 예배하여도 하나님께서 한 번도 받지 못했다고 할 예배가 있습니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모든 단추 역시 잘못 끼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의 예배가 이 원리를 빗나가지 않기를 바랍니다. 새벽부터, 아침 일찍부터 주일학교에서 성가대에서 봉사하며 예배를 준비하는 이들이 하나님을 진정으로 기쁘게 해 드립니다. 주일 아침 예배를 서둘러 주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초대하셨는데 가슴이 설레이지도 않는다는 말입니까? 鍹잠이 웬 말입니까? 하나님의 초대에 정중하게 응답하십시오. 기쁨과 설레임으로 응답하십시오. 주님을 사모하며 기다리십시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영화관람이나 쇼 관람 정도 수준도 못되게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을 초대하신 하나님께 여러분의 최상의 예절을 갖추시기 바랍니다. 복받는 생명의 예배로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주님께로 나아가며 모두 합창합시다. \"우리의 예배를 받아주시옵소서\"


2단계 - 죄의 고백과 용서(은혜)

하나님께서 우리를 초청하셨지만 우리 자신이 의로와서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여전히 죄로부터 자유롭지 못합니다. 여전히 허물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러주셔서 이 자리에 온 것입니다. 우리가 먼저해야 할 예절은 우리의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이 예절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규정하는 매우 중요한 것으로서 이 단계를 거치지 않고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며 용서하시는 관계입니다. 우리가 주님께 받은 최대의 은혜가 있다면 그것은 단연코 죄의 용서입니다. 십자가는 이 죄의 용서를 드러내주는 상징입니다. 기독교는 이 복음 위에 세워졌습니다. 진심으로 뉘우치고 회개하는 사람만이 주님을 기쁘게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미 주님께 부름을 받고 이 자리에 온 것 자체가 회개를 위한 것입니다. 뉘우치고 참회하며 주님께로 돌아와야한다는 사실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인의 생명은 여기서 시작됩니다. 진심으로 회개하십시오. 입에 발린 소리는 사람도 다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의 중심을 보시는 주님은 여러분의 마음을 다 읽으십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진심으로 참회 하여야 합니다. 이참회는 일 주일 내내 생활속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죄에 대하여 민감하여야 합니다. 타락한 시대는 죄에 대하여 둔감한 시대입니다. 오늘 우리의 양심이 얼마나 죄에 대하여 민감한 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정치인들이 떡값이라는 명목으로 받는 돈이억대에 이르면, 그것을 처벌할 수 없다고 한다면, 우리 사회는 이미 양심의 생명은 없는 것입니다. 죄에 대하여 그렇게도 둔한 사람들이 지도층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면 나라의 운명은 부패하여 몰락하고 말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죄에 대하여 둔감하고 하나님에 대하여 두려움이 없다면 신앙은 부패하고 타락하고 맙니다. 목회자가 죄에 대하여 둔감하면 목회 현장을 정치현장으로 만들거나 교회를 장사하는 소굴로 만들고 맙니다. 죄에 심각한 두려움을 가져야 합니다. 참회의 시간은 하나님께서 죄를 얼마나 심각하게 여기시는 지를 알고, 하나님의 용서의 은총이 얼마나 큰 것인 지를 고백하고 확인합니다.


3단계 - 말씀선포(순종)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합니다. 이 것이 예배에 어떤 의미가 있는가? 많은 사람들은 개신교회의 예배 중심은 무엇보다 \"말씀\"이라는 말을 서슴없이 합니다. 목회의 가장 핵심적인 일은 \"설교\"라고도 합니다. 초대교회 사도들도 역시 \"기도와 말씀 전하는 일에만 전념\" 하였습니다. 그렇다고 하여 다른 순서가 무시되어서는 안됩니다. 모두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순서입니다.

말씀이 왜 중요한 예배의 순서인가요?

어찌보면 예배순서에 맞지 않는 것 같기도 합니다. 물론 가톨릭은 말씀보다는 전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부르시고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일까 성경을 통하여 생각해 보면 그것은 뭐니뭐니하여도 \"말씀하시는 하나님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경청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다가오셔서 당신의 말씀을 통하여 당신의 계획과 목적을 드러내시고자 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이십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경청하여 순종하며 사는 이들로 기뻐하십니다. 이는 하나님의 사랑방식입니다. 신명기 28장은 이를 잘 말해 줍니다. 복의 근원은 말씀을 경청하여 순종하며 지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사람이 될 때야 가능합니다. 예배는 하나님께서 말씀하게 하시며, 사람은 순종하며 경청하여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주일 예배는 예배의 시작이기도 합니다. 세상으로 나아가 순종하며 살 때에 진정한 예배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말씀을 경청하여 순종하며 지킴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잘 듣는 일 주님을 기쁘게 하는 일임을 잊지 마십시오. 설교시간만 되면 잠자는 분이 계십니까? 영적으로 병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초대를 받고 오신 분이 어떻게 면전에서 말씀을 듣지 않고 잠을 잘 수 있다는 말입니까? 말씀으로 계시는 분이 주님이십니다. 말씀으로 모든 일을 하십니다. 말씀으로 우리에게 오십니다. 말씀을 듣지 않고서는 주님을 만날 수도 없고 알 수도 없습니다. 알지 못하는 예배는 우상일뿐입니다. 주님이 여러분에게 말씀하게 하십시오. 그것은 잘 경청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절입니다.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십시오.


4단계 - 헌신과 축복

주님께서 당신을 부르신 목적은 충성되고 헌신된 사람으로 인도하시고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사람으로 만드시고자 하는 것입니다. 당신의 군대로 만드시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군인은 무엇입니까? 국가에 충성을 서약하고 헌신된 사람들입니다. 조국을 위하여 목숨도 바치기로 한 사람들이 군인입니다. 기독교인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충성을 맹세하고 헌신을 하기로 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신앙은 군대정신으로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한 시간을 헌신하는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일생을 두고 일편단심으로 헌신하는 고백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헌신의 표(表)로 헌금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헌금을 하나님께 드리는 선물 정도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아닙니다. 선물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구제금인 것으로 생각하는 이도 있습니다. 아닙니다. 구제하기 위하여 모금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 운영비를 모급하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헌신의 표(表)입니다. 일생을 헌신하기로 다짐하는 표(表)가 되는 것은 무슨 이유 때문입니까?

여러분이 일 주일 동안 사는 일에 대부분이 무엇을 위한 것입니까? 돈 버는 일이지 않습니까? 돈을 버는 일이 결코 나쁜 일이 아닙니다. 돈을 많이 버는 일은 중요한 일입니다. 여러분에게 돈은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돈이면 안되는 일이 없을 정도로 오늘날에 돈은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만 하나님 보다 더 돈을 좋아하거나 의지해서는 안되는 것이 기독교의 진리입니다. 하나님을 최 우선으로 사랑한다하여도 돈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먼저가 있고 나중이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은 첫째, 우리가 세상에서 제일 중요하다고 여기는 돈을 하나님께 드림으로써 하나님께 최우선으로 순종하며 헌신하겠다는 헌신의 표시입니다. 돈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겠다는 다짐의 표입니다. 돈보다 하나님을 더 의지한다는 표(表)입니다.

돈을 드린다고 하여 헌신의 표가 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어떻게 드리느냐입니다. 헌금을 할 때에는 그것이 곧 자신의 헌신을 나타내는 척도가 됩니다. 부인하고 쉽지만 사실이 그렇습니다. 돈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한계이면서 우리의 솔직한 표현입니다. 가볍게 헌금하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 가벼운 사람입니다. 천원짜리 헌금은 하나님과 천원짜리 관계만을 바라고 있습니다. 천원짜리 헌신을 나타내는 표(表)입니다. 헌금은 믿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헌신을 보여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도록 보여드리는 것입니다. 실망하도록 하는 것은 예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헌금을 하실 때는 약간의 부담이 되도록 하는 것이 영적 건강에 좋습니다. 힘에 부칠 정도로 한다면 주님을 섬기고 헌신하는 믿음을 도리어 자신이 기쁨으로 돌려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헌금 방법은 십일조와 감사헌금입니다. 십일조는 하나님 자녀의 의무입니다.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 원리입니다. 하나님과 계산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물질이 하나님의 것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물질에 묶이지 않고 주님을 따른다는 표입니다. 십일조는 얼마냐 보다는 얼마나 정확하게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정확한 십일조를 드리십시오. 정확한 십일조는 하나님과 더 정확한 관계가 형성되게 할 것입니다.

주일헌금은 예배 헌금입니다. 우리 교회는 예배헌금을 감사헌금이라 부릅니다. 부르심을 받은 이들이 나아올 때 가지는 태도는 감사함입니다. 감사함은 하나님을 만나는 기본 예절입니다. 감사하지 않으면서 예배하러 오십니까? 지난 한 주간 하나님의 섭리 없이 살았습니까? 하나님께 받은 은혜가 아무 것도 없었습니까? 그렇다면 예배한다는 것은 모순입니다. 우리의 헌금은 보험 보장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헌신하는 표(表)로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헌신을 표시하십시오. 여러분의 감사를 표시하십시오. 여러분의 믿음을 보여주십시오. 하나님을 향한 여러분의 헌신이 예식장이나 극장표 앞에 부끄러워지지 않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주일 예배 형식은 여러분의 헌신을 담는 그릇입니다. 여러분의 믿음을 담아내는 그릇입니다. 여러분의 신앙 내용을 담는 그릇입니다. 그릇그릇마다 텅 비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그릇마다 가득채워 주님을 기쁘게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의 삶이 하나님과 함께 하는 예배의 삶이 되어 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