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예배

   바른 예배/전5:1-7

바른 예배
전5:1-7





\"너는 하나님의 전에 들어갈 때에 네 발을 삼갈지어다 가까이 하여 말씀을 듣는 것이 우매자의 제사드리는 것보다 나으니 저희는 악을 행하면서도 깨닫지 못함이니라 너는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 급한 마음으로 말을 내지 말라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음이니라 그런즉 마땅히 말을 적게 할 것이라 일이 많으면 꿈이 생기고 말이 많으면 우매자의 소리가 나타나느니라 네가 하나님께 서원하였거든 갚기를 더디게 말라 하나님은 우매자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서원한 것을 갚으라 서원하고 갚지 아니하는 것보다 서원하지 아니하는 것이 나으니 네 입으로 네 육체를 범죄케 말라 사자 앞에서 내가 서원한 것이 실수라고 말하지 말라 어찌 하나님으로 네 말소리를 진노하사 네 손으로 한 것을 멸하시게 하랴 꿈이 많으면 헛된 것이 많고 말이 많아도 그러하니 오직 너는 하나님을 경외할지니라\"



전도서의 대주제는 헛됨입니다. 오늘 본문의 제목도 「바른 예배」입니다. 우매자의 제사라는 말은 알지 못하고 드리는 제사를 말합니다. 바로 알고 바로 드리는 것이 온전한 예배입니다. 오늘은 말씀을 통해 어떤 것이 하나님 앞에 드리는 바른 예배인가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우리는 늘 예배드리러 옵니다. 제가 어려서 교회에서 운영하는 학교를 다녔습니다. 학교에 가면 첫시간을 예배로 시작했습니다. 수업시간마다 시작을 기도로 했습니다. 너무 예배와 기도가 많으니까 지긋지긋했습니다. 예배의 몰랐기 때문에 그랬습니다. 지금도 우리가 알지 못하고 계속 예배를 드린다면 우매자의 예배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 통해서 예배에 관한 말씀을 드리려고 하는데 반드시 이렇게 예배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바르게 알고 바른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으로부터 귀한 축복을 받게 됩니다.



1. 예배는 하나님 앞에 예의를 갖추는 것입니다.



\"너는 하나님의 전에 들어갈 때에 네 발을 삼갈지어다 .....\"(전5:1)

예배는 하나님 앞에 예의를 갖추어 절한다는 뜻입니다. 높은 사람을 대할수록 그에게 갖추는 예의가 복잡합니다. 어떤 사람이 결혼을 해서 처가집에 가서 절을 하고 나오기만 하면 \'못된 놈, 못 배워 먹은 놈\'하면서 욕을 하는 것입니다. 처가가 충청도 양반집안입니다. 절을 하고 난 뒤에 곧바로 앉는 것이 아니라 일어났다가 예를 갖추고 앉아야 합니다. 그 예를 갖추지 않은 것입니다. 부모님 잎에서도 갖춰야 할 예가 있습니다. 옛날 왕들 앞에서는 얼마나 철저하게 예를 갖추었습니까? 불신자들이 제사하는 것만 봐도 얼마나 복잡하고 지극정성을 다하는지 모릅니다. 하물며 우리가 높으신 하나님, 이 세상의 어떤 신보다도 더 높으시고, 어떤 왕보다도 더 높으시며, 우리의 영적인 아버지이신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어떤 자세와 태도를 갖춰야 할까요?

이사야 6장을 보면 이사야가 환상 가운데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천사들이 여섯 날개가 있는데 위에 두 날개로는 얼굴을 가리우고, 아래 두 날개로는 두 발을 가리우고 두 날개로 날며 거룩하다 거룩하다 노래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그와 같은 예를 갖춰야 합니다. 그게 예배입니다.

만약 오늘 이 자리에 도지사가 온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정신이 퍼뜩 날 것입니다. 김영삼 대통령이 우리 교회에 예배하러 온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높은 사람 우리 앞에 오거나 우리가 그 앞에 갈 때도 긴장하고 예의를 갖추고 나갈 텐데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갈 때 얼마나 올바른 마음자세와 태도를 갖추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때 수학여행을 서울로 가서 중앙청을 갔습니다. 그때 거기서 제가 처음으로 나이론 장판이 깔린 것을 보았습니다. 그곳에 들어갈 때 그렇게 안 해도 되는데 시골뜨기들이기 때문에 다 신발을 벗어 들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오면서 그 정도만큼이라도 생각과 예를 갖추고 있을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예배를 어떻게 드리느냐를 가지고 그 사람의 신앙의 척도를 가늠할 수 있습니다. 주일날과 삼일 날 교회에 오는 것은 하나님과의 약속입니다. 이 하나님과의 약속을 우리는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합니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이는 하나님처럼 섬기면 하나님이 거기 임하시고 그를 통해서 하나님은 역사하십니다.

말라기서에서는 너희의 드리는 제물을 총독에게 드려보라 저희가 받겠느냐 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눈먼 희생으로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으로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 이제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느냐 너를 가납하겠느냐\"(말1:8)

우리는 인간의 왕보다도 못하게 하나님을 섬기고 있습니다. 교회에 나올 때는 어떤 옷차림을 하고 나오는 게 좋을까요? 결혼식, 회갑집과 같은 잔치집에 가보면 옷들이 그렇게 화려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교회에 나오는 옷차림은 얼마나 무성의한지 모릅니다. 교회 와서 하나님을 만나는 것과 결혼식에 가서 신랑 신부 만나는 것 중에 어떤 것이 더 중요합니까? 하나님과의 만남을 중요하게 여겨야 합니다.

예배드리러 오기 위하여 좋은 옷을 사 입을 필요까지는 없겠지만 여러분이 중요한 자리에 갈 때 입는 옷 정도는 입고 올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예의를 갖추는 것이 예배임을 언제나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나 여기 있습니다. 나 좀 보세요.\" 하는 것이 예배입니다.

구약에서의 성전 개념이 지금은 없어졌습니다. 오늘날 교회를 성전이라고 할 때 구약의 개념으로 말하는 게 아닙니다. 똑같은 집인데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해서 구별했습니다. 그런 의미로서의 성전입니다. 똑같은 물건인데 하나님께 드려질 때 성구가 됩니다. 똑같은 돈인데 하나님 앞에 드릴 때 성물이 됩니다. 하나님에게 드려진 것이기에 우리가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이런 마음이 모아져서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네 발을 삼가하라\'는 말씀은 구약이나 신약이나 다같이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언행심사가 하나님 앞에서 이루어지는 일임을 깨닫고 매사에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믿음은 살아 계신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집에도 계시고, 누워서 잘 때도 함께 계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특별히 하나님을 만나러 왔습니다. 우리의 자세를 늘 살피고 경건한 마음으로 예배드리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2. 가까이 하여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 가까이 하여 말씀을 듣는 것이 ............\"(전5:1)

예배의 중심은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말씀이 없는 예배는 헛된 예배입니다. 종교개혁에 천주교는 형식적인 예배를 드렸습니다. 이 성경을 라틴어 성경으로만 읽었습니다. 신도들이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와서 듣고는 그냥 가버리는 것입니다. 그들은 성경을 신도들로 하여금 읽지도 못하게 했습니다. 루터가 오직 성경이라는 목표를 정하고 성경을 번역하여 신도들로 하여금 읽게 했습니다.

말씀을 듣는 것은 구약이나 신약이나 똑같습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듣는 것을 예배의 중심으로 삼아야 합니다. 오늘 여러분들은 말씀을 듣고 예배드리러 왔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러 왔습니다. 제가 설교를 통해서 하나님 말씀을 여러분들에게 드립니다. 하나님은 여러분들에게 필요한 말씀을 전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듣는 것이 얼마나 우리에게 좋은 일입니까?

솔로몬은 지혜로운 왕이었습니다. 그래서 시바 여왕은 \"당신의 사람들은 날마다 이 지혜로운 말씀을 들을 수 있으니 얼마나 복된 사람들입니까?\" 말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솔로몬보다 더 지혜로운 자가 여기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솔로몬의 말보다 귀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 모릅니다. 하나님이 무슨 말씀을 들려 주실까? 하나님이 나에게 주시는 말씀을 잘 들어야 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그 말씀을 경청하기 위해서 예배하고자 하나님 앞에 오는 것입니다. 예배드리러 오는 사람의 자세는 기쁨을 가지고 큰 기대감을 가져야 합니다. 시간이 되었기에 마지못해 와서 시간 때우고 가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여자들이 점심을 때우고, 저녁을 때운다는 말을 잘합니다. 무슨 구멍입니까? 때우게. 사람에게는 먹고 사는 일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래서 여자들이 식단을 짜고 음식을 만드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정성을 다해 맛있게 식사를 해야지 왜 때웁니까? 때울 바에는 안 먹는 것이 낫습니다.

자칫하면 예배도 그런 식으로 때울 수 있습니다. 예배는 나의 가장 중요한 시간을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게 예배입니다. 그것을 하나님이 귀하게 받으십니다. 저녁예배 드리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중요한 일이 많을지라도 만사를 젖혀놓고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보고 듣고 배우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하나님이 사랑하십니다. 노부모님들이 어떤 자녀들을 좋아하는지 압니까? 말씀을 잘 듣는 자녀들입니다. 말씀을 주고 싶은데 듣지 않으면 얼마나 답답하고 어리석은 처사입니까? 그런데 마귀는 예배시간에 졸음까지 줍니다.

3. 바른 삶으로 결단하는 것이 예배입니다.



본문을 보면 결단하는 것을 서원이라고 말했습니다.

\"너는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 급한 마음으로 말을 내지 말라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음이니라 그런즉 마땅히 말을 적게 할 것이라 일이 많으면 꿈이 생기고 말이 많으면 우매자의 소리가 나타나느니라 네가 하나님께 서원하였거든 갚기를 더디게 말라 하나님은 우매자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서원한 것을 갚으라 서원하고 갚지 아니하는 것보다 서원하지 아니하는 것이 나으니 네 입으로 네 육체를 범죄케 말라 사자 앞에서 내가 서원한 것이 실수라고 말하지 말라 어찌 하나님으로 네 말소리를 진노하사 네 손으로 한 것을 멸하시게 하랴 꿈이 많으면 헛된 것이 많고 말이 많아도 그러하니 오직 너는 하나님을 경외할지니라\"(전5:2-7)

서원은 크게 두 가지 경우에 합니다. 첫 번째 말씀을 받았을 때는 반드시 서원해야 합니다. 성경에서 제일 먼저 서원한 사람이 야곱입니다. 서원은 다급할 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야곱이 형을 피하여 외삼촌의 집으로 다망하다가 벧엘에서 돌베개를 하고 잤습니다. 꿈에 사닥다리가 나타났습니다.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어서 동서남북에 편만할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창28:13-15)

아침에 일어나 야곱은 그곳이 하나님이 계신 곳임을 알았습니다. 베개하였던 돌을 가져다 세우고 기름을 부으며 서원했습니다.

\"야곱이 서원하여 가로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사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주사 나로 평안히 아비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창28:20-22)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으면 마음에 결단이 생기게 됩니다. 하나님은 내게 말씀을 하시고 나는 주신 말씀을 가지고 서원하고 결단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른 예배입니다. 은혜만 받는 것이 예배가 아닙니다. 주신 말씀이 옳다면 그 말씀대로 살기로 결단하고 서원해야 합니다. 만일 제가 십일조 설교를 했고 여러분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십일조를 하기로 결단해야 합니다. 진정으로 은혜받은 사람은 결단한 사람입니다. 하나님 앞에 말씀대로 새로운 삶을 살아가기로 결단한 사람입니다.

우리가 기도를 했든지, 말씀을 들었든지 했다면 내가 받은 은혜만큼 하나님 앞에 헌신하기로 결단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함부로 서원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지키지 못할 바에야 서원하지 말라는 말씀은 서원 자체를 금한 것이 아니라 지키라는 점을 강조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오늘 하나님의 성전에 왔고, 하나님의 말씀도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주신 결심대로 결단하시고 서원하시기 바랍니다. 그게 없으면 예배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삶을 결단하는 것이 서원입니다. 우리가 서원하면 그대로 할 수 있도록 성령께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결심하고 서원했다면 반드시 실행되어야 한다고 본문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느 때는 자기 스스로 은혜받고 결단할 때가 있습니다.

어떤 여집사님이 기도 중에 하나님이 큰 은혜를 주셨습니다. 너무나 그 은혜가 감사해서 어린 아들을 하나님께 드려 주의 종을 삼겠다고 서원했습니다. 아이가 자라 가는데 너무 총명하고 지혜롭습니다. 학교에서 늘 수석을 다퉜습니다. 대학교를 들어가는데 신학을 배워 목사님이 되게 하려니까 너무 아까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각을 바꿔 의과대학에 진학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머리가 너무 좋고 공부에 너무 빠져서 그런지 아이가 어느날 정신이 돌아버렸습니다. 옷을 벗고 발가벗은 모습으로 길거리로 뛰어나갔습니다. 그때 집사님이 뭐라고 소리친지 압니까?

\"주의 종이 뛰어나간다!\"

정신이 돌아버려 쓸데없어 지니까 주의 종이 될 몸이니 하나님이 책임지라고 한 것입니다. 얼마나 인간이 간교합니까? 하나님은 그런 비겁함에 속지 않습니다. 순간 순간 은혜받고 결단하시기 바랍니다. 은혜받고 감동받은 것으로 끝내 버리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실천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결단하고, 그 결단한 것을 삶으로 실행하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또한 경건한 예배의 삶입니다.

미국에서 너무나 가난했던 깁슨이라는 사람이 피눈물 나는 노력 끝에 큰 재벌이 되었습니다. 신문기자들이 찾아와 부자가 된 비결을 물었습니다. 그때 깁슨은 세 가지를 말했습니다. 첫째, 술을 마시지 말라. 둘째, 고생을 두려워하지 말고 열심히 일하라. 셋째, 하나님을 의뢰하고 소망을 가지라. 기자 중 한 사람이 말했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다 아는 것 아닙니까? 다른 특별한 것은 없습니까?\"

\"다른 사람들은 다 알고만 있었지 실행은 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아는 바는 반드시 행동으로 실천했습니다.\"

모든 일은 아는 것으로 되지 않고 실천하는 것으로 됩니다. 은혜받은 것만큼 복을 받으려면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한나는 서원하고 그 서원한 바를 실천했더니 하나님이 사무엘을 위대한 선지자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사무엘 외에 다른 자녀들도 주셨습니다. 우리는 은혜받은 뒤에 얼마나 많이 하나님 앞에 결단합니까? 그런데 잠시 시간이 지나면 다 잊어버리고 맙니다.

김제의 어느 장로님이 제가 집회를 인도할 때 은혜를 받고 넓은 땅을 드려서 교회를 짓겠다고 서원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 그곳의 땅값이 올라가자 그 서원을 취소해 버렸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네 입으로 네 육체를 범죄케 말라 사자 앞에서 내가 서원한 것이 실수라고 말하지 말라 어찌 하나님으로 네 말소리를 진노하사 네 손으로 한 것을 멸하시게 하랴\"(전5:6)

하나님 앞에 드리기로 했다가 안 드리면 그게 그 사람 손에 남아 있을까요? 하나님이 불어 버리니까 하루 아침에 날아가 버렸습니다. 하나님 앞에 서원한 것이 있다면 실행하시고 더 큰 복으로 받으시기 바랍니다.

결론을 말씀드립니다. 하나님 앞에 바른 예배는 무엇입니까? 예배는 하나님 앞에 예의를 갖추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서 있다는 것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가 그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음성을 좇아 반응하고 결단합시다. 그리고 그 결단을 매일의 삶에 실천하는 사람이 바른 예배를 드리는 사람입니다. 하나님 앞에 바른 예배를 드림으로 하나님을 바로 경외하고 하나님 앞에 복을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