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과거에는 능력이 나타났는데 지금은 왜 타락했을까? 성령의 능력이 아니었나?
그래서 「능력」이라면 아예 얼씬도 않는가 하면 반대로 어디 신기한 일이 나타난다면 정신 없이 쫓아다니는 사람도 많다. 성령의 사역을 제대로 모르기 때문에 신비주의에 빠지거나 반대로 무조건 반대하여 성령을 훼방하게 되는 것이다.
약속된, 능력있는 신앙생활을 위해서는 성령의 사역을 잘 알고 분별해야 한다.
(1) 성령을 힘입어
성령 충만함에 따른 이적과 기사는 구약시대에도 많이 나타난다.
예수께서 오시기 전에도 요한이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입고(눅1:15) 요한의 어머니가 성령 충만했다(눅1:41). 예수께서 부활하셔서 성령을 보내주시기 전에도 병 고치고, 이적과 환상도 있었다.
그러나 이때에는 「여호와의 신이 감동하여」 「능력을 힘 입어」 「충만함을 입어」 라고 표현되어 있다. 『때에 성신이 삼십인의 두목 아마새에게 감동하시고...』(대상12:18) 옷을 입듯이 성령의 능력을 덧입은 것을 말한다.
성령을 힘입어 능력을 행하다가도 그들의 믿음과 경건함이 사라지면 능력도 떠났다.(삼상16:23, 사63:10)
(2) 성령의 은사
은사(恩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셨다」는 뜻이다. 직분에 따른 성령의 사역, 성령께서 일하실 때 나타나는 표적과 능력을 말한다.
이러한 은사는 주시는 방법에 따라 두가지로 구별될 수 있다. 한번 주신 다음에는 상관하지 않는 경우이다. 예를 들어 방언은 한번 주시면 사용을 하든지 안하든지 없어지지 않는다.
반면에 「선물로 주고, 준 사람이 아직 붙들고 있으면서 관리하는」 은사도 있다. 병 고치는 은사가 그 예이다.(고전12:7-11)
다른 은사들이 한번 주어버린 물건과 같다면 병 고치는 은사는 발전소에서 공급하는 전기에 비유할 수 있다. 가정에서 스위치를 켜도 발전소에서 전기를 보내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전기는 완전히 주어버린 것이 아니라 계속 공급해주어야 한다. 병 고치는 은사도 하나님께서 계속적으로 공급해주어야 한다. 병 고치는 은사를 받았어도 성령으로 충만하지 않고 계속적으로 사모하지 않으면 은사가 나타나지 않는다.(살전5:19-22)
(3) 보혜사 성령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며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요16:7)
보혜사 성령은 예수께서 승천하시고 열흘 후에 오셨다.(행2:1-4)
『저는 진리의 영이라...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요14:17)
보혜사 성령은 우리 밖에서 역사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임하신다. 그리고 소멸되지 않고 영원히 함께 하신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요14:16)
은사는 소멸되기도 하지만 성령이 내주(內住)하시면 떠나시지 않는다.
그리고 은사는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경건한 믿음을 가진 자들에게 특별히 주어졌으나 보혜사 성령은 구원받은 자들 누구에게나 오신다.
『너희는 각각 회개하여 주 예수 이름으로 침례를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라』
(4) 보혜사 성령의 사역
인간의 입장에서 본다면 보혜사 성령은 우리의 믿음을 보증하신다.
『저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 마음에 주셨느니라』(고후1:22)
보혜사 성령의 공적인 사역은 예수를 변호하는 일이다. 예수의 증인이 되게 하는 것이다.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요15:26)
예수를 변호하는 것과 전도는 다르다. 전도자들은 단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 소식을 전하는 자들이다. 전도자들이 증인이 될 수는 없다. 보혜사가 임하심으로만이 예수의 증인, 변호자가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