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역 한글성경

개역한글성경|━━ ■ 성경
 

대한성서공회에서 1961년에 발행한 \'개역한글판\'
1994년 1월에 한국의 보수 기독교단들이 모여 성경공회를 창립하고 정통 개혁주의 신학에 근거한 새로운 한글번역 성경 발행을 위한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1. 역본은 원본이나 사본을 대신해서 하나님께서 택자에게 당신을 직접 계시해 주시는 가장 현실적인 성경입니다.
 
  당시 에디오피아는 나일강 상류에 \'구스\' 족속의 후손들이 세운 나라였으며, \'메로에 왕국\'과 \'나비다 왕국\'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그 중에서 메로에 왕국을 통치한 것이 바로 본문에 나오는 \"간다게\" 왕조였습니다.  즉 여기의 \'간다게\'는 여왕의 이름이 아니라, 애굽의 \'바로\'처럼 그 왕조의 왕을 가리키는 일반적인 칭호였습니다.  그 에디오피아의 \"국고를 맡은 큰 권세 있는 내시\"라고 했으니 일종의 재무장관과도 같은 높은 직위를 가진 사람이었는데, 그 내시가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고국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의 병거 안에서 읽고 있던 책이 바로 \"선지자 이사야의 글\"이었습니다.
  이 \"선지자 이사야의 글\"은 물론 이사야서인데, 그 이사야서가 포함된 책은 과연 어떤 것이었습니까?  우선 이때는 아직 신약성경이 기록되기 전이었으므로 그것이 구약성경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으며, 나중에 32절과 33절에 인용된 내용을 볼 때, 그것은 바로 \'70인역(Septuagint 혹은 LXX)\'이라고 불린 성경이었습니다.  이것은 주전 270년경에 완성된, 가장 오래 된 \'헬라어역 구약성경\'입니다.
  구약 시대에 앗수르 제국과 바벨론 제국의 침략으로 남북조의 이스라엘이 망하게 되었을 때 뮌?유대인들이 이방 지역으로 흩어지게 되었고 로마제국 시대까지도 제국 산하의 각국에 섞여서 살고 있었는데, 우리는 이들을 가리켜 \'디아스포라(흩어진) 유대인\'이라고 부릅니다.
  물론 그 디아스포라 유대인들 역시 어디를 가도 구약성경책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문제는 그들의 자녀들이 점점 히브리어로 된 성경책을 읽지 못하게 되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당시 로마제국 산하에서는 그리스어, 즉 헬라어가 통용되고 있었기 때문에 유대인의 어린 자녀들은 헬라어만 알게 되고 히브리어를 모르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디아스포라 유대인 2세들에게 성경을 가르치기 위한 목적으로, 원래는 히브리어로 되어 있던 구약을 헬라어로 번역해서 만든 것이 바로 이 \'70인역\'이었습니다.  원래 선지자나 사도의 친필로 기록된 \'원본\' 성경은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것은 신구약 66권 중에 단 한 권도 없습니다.
 
  오늘 본문만 하더라도 나중에 37절에 보면 \"(없음)\"이라고 되어 있는데, 이것은 이 37절이 일부 사본들에는 나와 있고 성경에 장과 절을 표기하기 시작했던 초기의 역본은 그런 사본을 따라서 번역을 했으며 저 유명한 \'흠정역(King James Version)\'도 그 한 예이지만, 보다 권위 있는 중요 사본들에는 이 37절의 내용이 없는 까닭에 오늘날 새로 번역된 대부분의 역본들은 이 절을 성경에 포함시키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이 사도행전이 기록될 당시에도 이미 구약성경의 원본은 없었고 사본만 남아 있었지만, 초대교회에서 실제로 가장 많이 쓰이고 있던 성경은 바로 이 \'70인역\'이었습니다.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일으킬 때에도, 그가 95개조의 반박문을 위텐베르크 대학의 정문에 갖다 붙인 것보다 실제적으로 더 중요한 일은 바로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성경책은 마침 발명되었던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에 힘입어서 많은 대중들의 손에 직접 쥐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됨으로써 비로소 평신도들도 자기 손에 성경을 소유하고 자기네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성경을 직접 읽을 수 있게 되었던 것이며, 그처럼 성경 말씀으로 무장된 평신도들이 결국 종교개혁의 주력부대가 되었던 것입니다.

  게다가 천주교의 미사라는 것은 성경을 읽고 설교하는 것이 아니라 라틴어로 된 예식서(the Liturgy)만 낭독하면서 진행하는 판에 박힌 것이었습니다.  천주교 사제들은 라틴어에 무슨 특별한 영감이나 들어있는 것처럼 행세했겠지만, 아무 것도 알아들을 수 없었던 평신도들에게 그런 전례식문이나 기도문은 무슨 마술적인 주문처럼만 들렸을 것입니다.


  정확한 1미터의 절대치라는 것은 지구 자오선 길이의 4천만 분의 1에 해당되는 길이이며, 프랑스 어디엔가 그 \'1미터의 원본\'이라는 것이 상징적으로 달려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실제로 사용하는 자들은 그 원본을 기준으로 하여 만들어진 것들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하나님의(of) 말씀\"으로 믿습니다.
  하지만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성경을 \'하나님에 관한(about) 말\'로 받아들입니다.

  대한성서공회에서 1977년에 발행한 \'공동번역\'은 천주교와 자유주의 기독교의 합작품으로서, 번역상의 문제는 두말할 것도 없고, 우선 성경이 아닌 외경 7권들까지 포함시키고 있는 책입니다.   교회의 권위를 성경보다 더 높이고 있는 천주교의 이단적 신학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대한성서공회에서 1993년에 소위 \"보수적인 정신과 한국 교회의 전통을 존중한다는 원칙을 바탕으로\" 해서 발행했다는 \'표준새번역\'의 경우 역시 그 번역자들 중에서 \'보수주의\' 신학자는 소수에 불과하고 또한 그들을 선정하는 과정도 \'한국 교회\'들의 교단적인 추천이나 파송의 절차도 없이 독단적으로만 진행됨으로써, 같은 잘못을 반복하는 결과가 되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표준새번역\'은 \'여호와\'라는 명칭을 \'주\'라고 바꾸어 버렸는데, 비록 유대인들이 구약 성경을 읽을 때 \'여호와\'라는 성호를 감히 부를 수 없다고 해서 \'주\'라고 바꾸어 읽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유대인들이 성경 읽을 때의 문제였을 뿐이지, 성경의 원문에 어엿이 기록되어 있는 하나님의 이름을 어떻게 번역자들이 함부로 바꾸어 놓을 수 있다는 말입니까?

  그는 아펜젤러 선교사와 함께 1887년에 상임성서위원회를 조직하고서 마가복음 등 그 이전의 선교사들이 그랬던 것처럼 단권 성경들을 번역하기를 시작했는데, 이것은 선교사들 자신이 성경 번역의 필요성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을 뿐 아니라 한문으로 된 성경을 읽을 수 없었던 서민 출신의 기독교인들이 우리나라말로 번역된 성경책을 실로 간절히 열망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분위기를 잘 보여 주는 한 예가 바로 1898년 5월 4일 자 \'대한 크리스도인 회보\'라는 신문에 실린 기사입니다.
  \"평양 사는 교우의 편지\"라는 제목으로 실린 그 투고 기사에 보면 \"한문성경을 국문으로 번역하는 일은 어찌 되었는지 답답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의 양식은 성경이온데 한문을 모르는 사람은 남녀 간에 국문으로 번역한 성경 나려 보내시기를 배고픈 자의 밥과 목마른 자의 물같이 기다리오니...\"라는 호소가 실려 있습니다.
   바로 그 선교사들의 성경번역 활동이 점점 더 발전되어 지금의 대한성서공회의 모체가 되었으며 여러 단편 성경들이 출간되다가 1911년에 신구약을 합친 \'성경젼서\'가 나왔으며 이것이 계속 수정 보완되고 \'한글맞춤법 통일안\'에 따라 개정되어서 아까 서론에서 언급했던 \'개역한글성경,\' 바로 오늘 우리가 쓰고 있는 우리나라말 역본 성경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