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제와 격려
(본문 : 롬 12:15)
우리가 하나님과의 사귐을 통해서 끊임없이 격려를 받게 되듯이 성도 상호간에도 격려를 아끼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사귐 가운데는 다분히 계산적인 유형의 것들도 적지 않게 있습니다. 즉 자신의 어떤 이기적 목적을 위해서 사귐을 갖다가 그것이 충족되거나 그밖에 다른 사유로 더 이상 교제할 이유가 없게 되면 단절하는 그런 것들인데, 성도의 교제는 이런 성격을 띠어서는 결코 안됩니다. 그리스도의 몸으로 표현되는 교회의 지체로서 서로에 대한 격려가 필요하므로 조건 없이 사귀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1. 더불어 사는 삶(눅10:37)
1) 사회에 대한 바른 인식
성도가 이웃과 올바른 인간 관계를 유지하고 더불어 사는 삶을 살고자 하면 먼저 사회를 바르게 인식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올바른 사회관을 가질 수 있고 이웃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사회는 우리가 혜택을 입고 있는, 즉 우리에게 혜택을 주는 곳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사회가 주는 혜택은 조금도 생각지 않고 불평만 늘어놓는데, 분별력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우리는 사회라는 조직을 통해 늘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수도와 전기, 그밖에 많은 편의 시설들을 사회가 우리에게 제공하는 혜택이며, 모든 사람은 잉 대해 고마움을 느껴야 합니다. 성도는 사회를 하나의 유기체로 이해하는 것이 합당합니다. 너, 혹은 나만의 개인주의가 아니라 우리라는 의식을 지녀야만 비로소 정상적인 자리를 찾을 수 있는 유기적인 조직체가 바로 사회인 것입니다. 따라서 아무도 자신의 입장만을 생각하고 자신의 유익만을 추구해서는 안됩니다. 이것이 사회를 병들게 하는 요인입니다.
2) 하나님이 명하신 역할
더불어 사는 삶은 사회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함께 하나님이 명하신 역할을 이해할 때에 비로소 가능하게 됩니다. 성도들 중에 다수가 자신의 사회적 역할을 축소시키거나 외면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도 아닙니다. 가장 큰 계명과 이웃이 누구인가를 묻는 한 율법사에게 주께서 들려주신 비유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명하신 사회적 역할과 책임에 대해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넘어진 자들을 일으켜 세워야 합니다. 용기를 잃고,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북돋워 주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며, 세파에 지쳐 탈진 상태에 있는 사람들이 다시 일어나 싸울 수 있도록 격려해 주는 것이 우리의 할 일입니다. 특별히 성도 상호간에 더욱 이 일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2. 관용이 요구되는 삶(빌4:5)
1) 실수하기 쉬운 인간
성도 상호간에 격려가 필요하고 관용이 요구되는 것은 실수하기 쉬운 인간의 약점 때문입니다. 신앙이 좋고 경건하다 하여 약점이 전혀 없는 게 아닙니다. 누구라도 실수하기 쉽고 또 실수할 수밖에 없는 게 사람이므로 우리는 누가 실수하고 허물이 있다 하여 정죄하려 해서는 안되겠습니다. 오히려 이것을 통해 자신을 성찰하고 각성하는 계기로 삼도록 해야함은 물론이고 그의 상처가 속히 치유되도록 격려를 아끼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넘어뜨리는 것은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쉬운 일입니다. 그러나 일으켜 세우기가 어려우며, 우리는 이 어려운 일을 하도록 책임을 맡았습니다. 마귀가 하는 일은 넘어뜨리는 것이나(요10:10) 우리 주님은 일으켜 세우는 분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자신을 바로 알고 은혜를 아는 사람들은 주께서 십자가 위에서 강도를 용납하셨듯이 모든 사람에 대해 관용을 베풉니다.
2) 관용을 통한 유대 관계
사람이 이웃의 허물을 덮어 주고 관용을 베풀면 유대가 돈독하게 된다는 것은 상식입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예수를 믿는 성도들이 불신자들보다도 관용을 베푸는 데 있어서 더 인색합니다. 이러한 사실은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가지고 있는 신앙 인격의 실상을 여실히 보여 주는 것으로 철저한 각성이 요구된다 하겠습니다. 사랑을 가장 많이 말하면서도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이 찾아오면 공수로 돌려보냅니다. 용서를 가장 많이 말하면서도 자신에게 해를 끼친 사람이 있으면 그와 두터운 담을 쌓으며 그가 망하게 되기를 염원합니다. 선행을 가장 많이 말하면서도 가능하다면 어떤 악이라도 동원하여 이기적 목적을 채우려고 합니다. 살아 있는 믿음을 가져야 할 우리 교회를 이와 같은 현실을 철저히 회개하고 관용을 실천해야 합니다.
3. 일으켜 세우는 이(고후1:4)
1) 환난을 당하는 이들
성도의 교제는 일으켜 세우고자 힘쓸 때 그 진가를 인정받게 되며, 이 세상에는 일으켜 세워야할 \'환난을 당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로 많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무슨 연유로 환난을 당하는지 정확하게 알지는 못할지라도 확실한 것은 그들이 매우 심각한 괴로움 가운데서 신음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이들은 사업의 실패로 인해 좌절에 빠져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원치 않는 이별로 인해 실의에 빠져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불치의 질병으로 인해 절망에 처해 있고, 또 어떤 이들은 실직으로 인해 후유증을 앓고 있기도 합니다. 비록 그 형태는 다를지라도 우리 주변에는 나름대로 심각하게 받아들여지는 환난을 만난 사람들이 수없이 많으므로 격려가 요청됩니다.
2) 하나님께서 위로를 주신 목적
바울은 하나님께서 환난 가운데 있는 우리에게 위로를 주신 목적이 그 위로를 통해 동일한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위로하게 하시기 위함이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위로가 어떠 것인가를 잘 알고 있으며, 따라서 이 위로로 곤경에 처한 이웃을 위로하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받기만 하고 줄줄을 모르면 열매 없는 자가 되고 말며, 하나님께 받은 것을 소용대로 쓰지 않으면 후일에 책망을 면치 못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위로받기보다는 위로하는 자가 되도록 힘쓰고, 사랑받기보다는 나누어 주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물건을 만들 때에도 용도가 있게 마련이고 일꾼을 기용할 때에도 목적이 있듯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위로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데 활용되어야 합니다.
결론
격려란 더불어 사는 삶의 필수적인 요소이며, 성도의 관용을 사람들에게 보이는 기회도 되고, 넘어진 자를 일으켜 세우는 일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교제가 격려라는 모양으로 나타나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기도
환난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신 하나님, 오늘 우리가 환난에 처한 형제들을 위로할 수 있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더불어 사는 삶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주신 우리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게 하시고, 인간은 누구나 실수하기 쉬운 존재임을 알아 관용을 베풀도록 하시며, 넘어진 자들을 일으켜 세울 수 있게 하시옵소서. 우리를 위로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