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마가복음 4:1-9)
요즈음 너나 할 것 없이 웰빙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특별히 많은 사람들이 웰빙 음식을 선호하고 있습니다. 옛날에는 먹을 것이 없어서 무슨 음식이든지 배불리 먹으면 좋겠다고 했지만 이제는 어떻게 하면 건강에 좋은 음식을 먹을까 하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되었습니다. 건강에 좋은 먹거리라면 더 말할 것도 없이 오염이 되지 않은 음식, 비료와 농약을 사용하지 않은 유기농식품을 말합니다. 세상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요즘 우리나라 사람들이 생선이나 농산물이나 중국산이냐 우리나라 산이냐를 따져서 우리나라 산을 좋아하지만 우리나라가 언제부터 중국을 우습게 여기고 언제부터 우리나라 것을 좋아하게 되었는지 격세지감을 느낍니다.
농약과 비료를 사용하지 않고 농사를 짓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고추를 재배할 때 고추씨를 파종해서 고추를 말리기까지 농가에서 26번의 농약을 친다고 합니다. 고추가 농약 덩어리입니다. 비료 안주고 농사를 지으면 수확이 떨어집니다. 북한에 가면 비료를 안 주어서 농작물이 다 자라다가 말았습니다. 제가 몇 년 전에 지축동에서 살면서 농사를 지은 적이 있었습니다. 비료와 농약을 주지 않고 농사를 짓는 것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습니다. 농약을 안 주면 병충해 때문에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몇 번 농사를 실패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유기농으로 농사를 지을 수 있을까 유기농을 하시는 분을 찾아가기도 하고 유기농에 대한 책을 읽기도 했습니다.
제가 마지막에 알게 된 사실은 씨의 문제도 아니고 모종의 문제도 아니고 땅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땅이 비옥하고 힘이 있으면 비료를 안주고 농약을 안주어도 농사를 지을 수 있는데 땅이 메마르고 비옥하지 않으면 농사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지력(地力)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땅이라고 다 똑같은 땅이 아닙니다. 어떤 땅은 힘이 있고 어떤 땅은 메마르고 힘이 없습니다. 힘이 있는 땅에 농사를 지으면 농작물이 잘 자라고 좋은 결실을 맺게 됩니다. 지력이 있으면 농약을 치지 않아도 병충해에 끄떡하지 않습니다.
의사들의 말을 들어보면 우리 모두의 몸속에 암 세포가 있는데 몸이 약하고 스트레스가 많은 사람은 몸속의 암세포가 암을 유발시키지만 건강한 사람은 아무리 우리 몸에 암세포가 있어도 견딜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식물들도 튼튼한 비옥한 땅에서 자라는 식물은 어떤 병충해에도 건강하게 자라는 것입니다. 농사를 잘 짓기 위해서는 땅부터 바꾸어야 합니다. 당장의 소출을 어떻게 많이 얻을까 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땅을 만들어야 합니다. 땅의 힘이 문제입니다. 지력을 높여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마가복음 4장에서 예수님께서는 땅에는 4종류가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첫째 길바닥 같이 딱딱한 땅이 있고 돌멩이가 섞여 있는 돌짝밭 같은 땅이 있고 또하나는 가시덩쿨이 있는 땅이 있고 마지막 비옥한 옥토가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길가에 뿌려진 씨앗은 절대로 자라나지 못하고 돌짝밭에 뿌려진 씨앗은 싹이 나는 듯 하지만 곧 말라 버리고 가시떨기 속에 뿌려진 씨앗은 싹이 나고 자라지만 결실을 맺지 못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옥토에 뿌려진 씨앗만이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맺는다는 것입니다. 농사가 안 되는 것은 씨앗의 잘못이 아니라 땅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왜 갑자기 땅의 이야기를 하시는지 궁금하게 생각했습니다. 이 말씀은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도 기록되어 있는데 제자들이 궁금하게 생각하는 것을 아시고 예수님께서 잘 설명해주셨습니다. 이 비유의 말씀은 농사에 대한 것이 아니라 농사 짓는 것에 비유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것입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축복된 말씀을 들으면서도 어떤 사람은 아무런 축복을 받지 못하고 어떤 사람은 큰 축복을 받게 되는가 하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비유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많은 사람들에게 천국 복음을 가르치셨는데 특별히 제자들에게 가르치셨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예수님의 이 말씀을 많은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했고 심지어는 제자들도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나라의 신비한 비밀 진리의 말씀을 가르쳐주시는데 그 말씀을 듣는 사람들은 그 말씀이 얼마나 중요하고 값진 것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우리 인생이 다른 사람이 보기에도 행복하고 멋진 것이어야 하고 우리가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멋진 것이어야 합니다. 내 인생이 참으로 행복하고 하나님의 축복이 넘친다고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늘 불평하고 불만하고 짜증을 내고 분노하고 고달픈 인생을 살아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멋진 인생을 살 수 있는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말씀을 진지하게 듣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오직 예수님만이 가르쳐줄 수 있는 말씀입니다. 그 옛날 예언자나 선지자도 이 말씀을 듣고 싶어 했지만 들을 수 없었던 말을 가르쳐주는데 들어도 듣지 못하고 보기는 하지만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자기들이 얼마나 큰 축복을 누리는지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안타까운 마음을 여기저기 토로하셨습니다. 들을 귀 있는 자는 복이 있다 차라리 돼지 앞에 진주를 놓는 것보다 못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피리를 불어도 춤을 출줄 모르고 통곡을 해도 울 줄 모르는 세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3년 동안만 이 세상에서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늘 들을 수 있는 말씀이 아니라는 것을 사람들은 알지 못하고 언제든지 들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씨뿌리는 비유의 말씀은 사람들의 이와 같은 안타까운 모습을 보고 하신 비유입니다.
어떻게 하면 기적의 삶, 행복한 삶, 성공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듣는 사람의 마음밭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천국의 복음은 길가 같은 마음, 돌짝밭 같은 마음, 가시떨기가 무성한 마음은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마음을 고치지 않고는 결실을 얻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에 여러 가지 돌멩이가 박혀 있습니다. 욕심과 미움, 염려와 걱정이라는 돌멩이, 불평불만이 가득한 돌멩이, 분노, 시기의 돌멩이, 다른 사람을 찌르고 상처를 주는 돌멩이도 있습니다. 이와 같은 돌멩이들이 있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싹이 날 수 없고 결실을 맺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만난 지 10년, 20년, 30년이 되어 수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삶가운데 자라나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혀 우리 인생이 행복하고 축복이 넘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아직도 우리 인생이 힘들고 염려와 걱정을 하고 고달픈 것은 기준을 정해서 그 범위에서 신앙생활을 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은 길바닥처럼 딱딱한 마음을 가져서 누가 무슨 말을 해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아무리 좋은 말씀을 들어도 참고 사항일뿐 내 삶과 가치와 생활을 바꾸어야겠다는 결단이 없습니다. 자기 기준에 맞지 않으면 그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아무리 외치고 설교를 해도 소용이 없고 변화되는 것이 없습니다. 그날이 그날이고 지난 주와 똑같은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마음밭이 길바닥처럼 딱딱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떨어져도 정착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않으니까 씨가 자랄 수 없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말씀을 들으니까 변화하지 않는 것입니다. 아무리 오래 믿어도 그 모습 그대로 입니다. 말씀을 들으면 뭔가 결단을 하고 내 생각을 바꾸어야겠다고 하지 않고 내가 정해놓은 규칙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좋아하는 찬송이 214장 내 모습 이대로 주 받아주시옵소서 하는 찬양입니다. 길바닥과 같은 딱딱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스스로 변화를 거부합니다. 그만큼 이야기하면 한번쯤 해보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실수라도 해볼만한데, 마음에 감동이 될만도 한데 딱 정해놓은 범위 안에서 듣고 생각하고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입니다. 절대로 그 삶에 행복과 축복과 기적이 있을 수 없습니다. 평생 걱정하고 고생하는 메마른 삶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다 한 평생을 마치는 초라한 인생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꼭 해야 할 일 중에 하나가 거울을 자주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얼굴을 마음의 표시입니다. 자기 얼굴을 자세히 보면 욕심이 있는 사람은 욕심이 미움이 있는 사람은 미움이 얼굴에 나타납니다. 분노가 있는 사람은 분노가 나타납니다. 마음을 고쳐야 합니다. 우리들의 마음에 미움과 분노와 시기와 욕심이 있는 한 절대로 편안할 수 없습니다.
좋은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땅을 바꾸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행복과 성공을 가져다주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마음밭을 바꾸어야 합니다. 마음 밭은 바꾸지 않으면 복음의 씨앗이 싹이 나고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땅을 바꾸기 위해 거름을 주고 퇴비를 주어야 하는 것처럼 우리의 마음밭을 바꾸기 위해서는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하면 우리 마음밭의 여러 가지 돌멩이가 보입니다. 욕심의 돌멩이, 미움의 돌멩이, 분노의 돌멩이를 기도로 걷어내야 합니다. 기도밖에는 그 돌멩이를 골라낼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가시와도 같은 것을 걷어내기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향한 시기와 미움과 불평과 불만과 분노가 없어야 합니다. 딱딱한 마음밭을 갈아엎어야 합니다. 땀 흘려 봉사하고 헌신하는 삶을 살 때 딱딱한 마음이 녹아집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 흘리는 눈물로 마음밭을 기름지게 가꾸어야 합니다.
우리들 모두는 누구든지 다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지금보다 더 보람있게 살 수 있습니다. 절대로 후회하지 않는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볼 때 아름답고 멋진 인생을 산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마음에 감동하는 아름다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사랑받고 존경을 받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돈과 명예와 권력과 지위가 있어서 존경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이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향한 미움과 분노와 시기가 우리 마음속에 있으면 절대로 결실을 맺을 수 없습니다. 우리 마음에 욕심과 불만이 있으면 축복과 기적이 일어날 수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밭에 거름을 주어야 합니다. 피눈물 나는 기도로 욕심과 분노와 걱정과 근심을 몰아내고 갈아엎어야 합니다. 봉사와 헌신의 눈물과 우리가 흘리는 땀으로 옥토로 바꾸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을 바꾸어야 하나님의 말씀이 뿌리를 내려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맺을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5장에 보면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고 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하고자 하는 모든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우리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의 마음밭에는 돌멩이가 있고 가시덩쿨이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밭을 기도로 봉사와 헌신으로 눈물로 땀으로 우리 마음밭은 적셔서 하나님이 말씀이 우리의 삶 가운데 뿌리를 내리고 열매를 맺어 30배, 60배, 100배의 축복과 기적과 행복의 열매가 맺어지길 바랍니다. 이 귀한 은혜가 여러분 모두에게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