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와 함께 부활하라

예수와 함께 부활하라

(갈라디아서 2:20-21)

 

예수님께서 사망의 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신 아침입니다. 죽음의 어둠을 깨치고 부활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능력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의 삶에 드리워진 근심과 어두움의 걱정이 다 물러나길 바랍니다. 여러분의 삶 속에 실망과 절망 답답한 여러 가지 일들이 우리 주님 예수의 부활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다 물러가고 희망과 기쁨과 소망이 넘치게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삶에 하늘의 평화가 넘치길 바랍니다. 근심과 걱정이 다 물러가고 고달픈 인생이 축복과 감사가 넘치게 되길 바랍니다. 여러분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힘들고 어려운 일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권세로 이길 수 있는 부활의 은혜가 여러분 모두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병든 이들이 고침을 받고 영육 간에 강건하게 되는 하나님의 은혜가 여러분의 삶에 있기를 바랍니다.

 

부활은 죽었던 사람이 다시 살아나는 것입니다. 예수님 전에도 없었고 예수님 후에도 없었고 지금까지 없었던 일입니다. 병든 사람이 낫는 일도 있고 망했던 사업이 흥하게 되는 일도 있습니다. 실패한 사람이 성공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죽어서 무덤에 묻혔던 사람이 다시 살아났다는 말은 성경에서 처음 들어봅니다. 성경에는 예수님을 장사지냈던 무덤이 텅 비었다고 말합니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예수님을 만난 사람도 있고 예수님과 같이 밥을 먹은 사람도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도마는 예수님이 살아났다는 것을 믿지 못했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옆구리에 손을 넣어보고서 믿게 되었다는 증언도 있습니다. 분명 예수님은 죽으셨으나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이것은 분명한 역사적 사실입니다. 교리가 아닙니다. 누가 만들어낸 이야기가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사실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부활의 사건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일이 있습니다. 저는 부활절만 되면 이 문제에 대해 깊이 묵상을 하고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난 엄청난 일이 실제로 역사적으로 일어났고 신앙적으로 보면 2000년 전에만 일어난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의 삶 가운데 부활의 역사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2000년 전 부활의 사건을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 예수님께서 어둠의 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신다는 사실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 엄청난 부활의 사건이 일어났는데 세상이 너무 조용하다는 것입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조용한 것입니다. 세상에서 그렇다면 예수님을 믿는 교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야 하는데 교회도 조용하고 예수를 믿는 사람들도 조용한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 가운데 부활의 사건이 있습니까? 혹시 예수님이 부활하신 이 아침에 병든 사람이 낫는 부활의 사건이 일어났습니까? 생각해보면 참으로 이상하기 그지없습니다. 천암함이 두 동강이 나서 바다에 침몰한 사건으로 열흘 가까이 온 나라가 시끌합니다. 김연아 선수가 금메달을 땄다고 온 나라가 기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면 온 세상이 발칵 뒤집혀야 마땅합니다. 더구나 우리처럼 그 주인공인 예수님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면 더더욱 그래야 합니다. 그런데 세상도 조용하고 우리들에게도 아무런 미동도 없이 조용합니다.

 

예수님은 어둠의 권세를 물리치고 절망을 딛고 소망으로 나가셨다는데 여전히 우리의 삶에는 근심과 걱정이 떠나지 않고 여전히 우리의 삶은 고달프기만 합니다. 병든 사람도 그대로 있고 많은 사람들이 마음아파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전히 속상하고 힘든 일이 많고 절망과 실망 가운데 살아갑니다. 도대체 예수님의 부활이 우리의 삶에 아무런 관계도 없습니다. 지구 반대편의 아이티나 칠레에서 지진이 일어나도 온 나라가 들썩이는데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저는 이 문제 때문에 오랜 동안 고민하고 씨름하던 신앙의 숙제였습니다. 부활절만 되면 여러분에게 예수님이 모든 어둠의 세력을 이기고 부활하셨다고 말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면 우리들의 삶 가운데 변화가 일어나야 하는데 여전히 근심과 걱정이 있고 여전히 속상하고 여전히 힘들고 고달픕니다. 우리 사회에도 마찬가지로 근심과 걱정으로 속상한 일만 계속됩니다. 때때로 부활절 전날 잠을 자면서 내일은 부활절이니 세상이 바뀌겠지 생각하지만 시청 앞에서 2만 명이 모여 예수님이 부활하셨다고 찬송을 부르는데 세상은 그냥 그대로 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셨다는 부활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입니까?

 

그런데 성경에 보면 예수님이 부활하셨던 2000년 전에도 지금과 똑같았습니다. 예수님은 다시 살아나셨는데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던 사람들은 그대로 있었습니다. 헤롯왕도 그대로 나라를 다스렸고 예수님께 온갖 모욕과 핍박을 주었던 제사장들도 여전히 온전하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내주었던 빌라도도 여전히 건재하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던 군인들도 멀쩡했습니다. 예수님을 따라다니던 제자들에게도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베드로는 갈릴리로 고기잡으러 떠났고 예수님은 부활하셨는데 실망한 제자들은 엠마오로 떠나는 두 제자처럼 낙향을 합니다. 다른 제자들은 무서워서 벌벌 떱니다. 제자들에게조차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다만 성경에 보면 막달라 마리아와 몇 몇 여인들만이 예수님이 살아나신 것을 보며 놀란 가슴으로 떨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온 세상은 아무 일도 없이 조용했습니다. 2000년 전에도 똑같았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셨다는 이 엄청난 사건이 우리들에게 이 세상에 무슨 의미가 있는 것입니까? 냉정하게 이 문제에 대해서 생각하고 궁금해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부활절만이라도 예수님은 죽음에서 살아나셨는데 왜 내 삶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는가 의문을 가져야 합니다. 이 문제는 그냥 적당히 넘어갈 문제가 아닙니다. 부활신앙은 예수를 믿는 사람들의 신앙의 핵심입니다. 부활신앙이 없는 기독교는 헛것입니다. 다른 종교와 기독교의 다른 점은 바로 이 부활의 신앙입니다.

 

제가 얼마 전에 불교방송에서 스님이 설법하시는 것을 들었는데 \"여러분, 불교는 불교를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행복하고 바른 삶을 살기 위해서 불교가 있는 것입니다.\" 라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이 말은 제가 늘 하던 말이 아닙니까? 그러니 다른 종교와 기독교가 다를 바가 없습니다. 비슷한데 다만 한 가지 기도교에는 부활의 신앙이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불교 스님과 가까운 분이 있는데 성탄절에는 난도 보내고 축하글도 보내지만 부활절에는 그런 것이 없습니다. 불교에서도 부활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는 것입니다. 부활은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신앙의 핵심입니다.

 

예수님이 모든 어둠의 세력을 이기신 것을 믿는 것이 바로 부활신앙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런데 도대체 이런 위대한 부활의 신앙을 믿는 우리들에게는 부활의 사건이 없는 것입니까? 왜 세상에 쩔쩔매며 근심과 욕심의 무덤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입니까? 이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부활의 신앙을 믿는 우리가 여전히 세상의 그늘과 세상의 욕심에 매여서 살아간다면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부활과는 관계없는 세상의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우리의 삶에 부활의 사건이 있어야 합니다. 세상의 근심과 걱정을 다 헤쳐나갈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을 이길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그렇게 세상을 살아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본문 갈라디아서 2장 20-21절 말씀은 아주 중요한 말씀으로 우리의 궁금증에 대해 해답이 될 수 있는 말씀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나에게서 부활의 역사가 일어나려면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는데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놀라운 부활의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것은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힐 때 함께 못 박히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 살아나실 때 우리가 살아날 일이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지도 않고 고난을 당한 일도 없으면서 부활을 기다리는 것은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죽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다시 살아나느냐는 것입니다. 살아있는 사람이 다시 살아날 일이 없는 것입니다.

 

부활과 십자가는 하나입니다. 십자가 없는 부활은 있을 수 없습니다. 예수의 부활의 능력이 없는 것은 십자가의 고난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에서 죽지 않고 부활의 기적만을 구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부활의 능력이 필요한 사람은 먼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의 못 박혀 고난을 당하면 예수님이 부활할 때 우리도 따라서 부활하게 됩니다. 이것이 없기 때문에 예수님이 부활하셔도 우리의 삶에 부활의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일이 없으니까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를 지지 않았으니까 부활이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에 부활의 능력이 없는 것은 고달픈 삶에서 헤쳐나가지 못하는 것은 예수님과 함께 죽지 않았으니 당연히 그런 기적이 일어날 일이 없는 것입니다.

 

금년 부활절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셨지만 우리들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은 예수님과 함께 고난당한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내년 부활절이 또다시 다가오겠지만 예수님과 함께 고난당하는 삶을 살지 않으면 내년 부활절도 마찬가지로 우리와 아무런 상관없는 부활절이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의 삶에 기적이 필요합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일이 우리의 삶에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셔야 할 일이 우리의 삶 가운데 많이 있습니다. 사업이 만만하지 않습니다. 직장에서의 일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자식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건강을 내 힘으로 지킬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셔야 합니다. 우리 주위에서 많은 어려운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서해 앞바다에서 저런 참사가 일어나고 아이티나 칠레에서 자연재해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한계가 있습니다. 아직도 인간의 힘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우리에게 기적이 필요합니다. 인간관계도 그렇습니다. 사람과 함께 산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부부가 함께 사는 것도 그렇고 주위에 이웃들과 함께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모릅니다. 부대끼고 상처받고 인간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셔야 합니다. 부활의 능력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예수님님의 부활이 우리의 삶 가운데 있어야 합니다.

 

기적이 필요하면 부활의 능력이 필요하면 여러분의 삶 가운데 부활의 권세가 필요하다면 예수님과 함께 죽어야 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고난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여러분의 삶 가운데 모십시오. 우리 안에 있는 예수님이 부활하시면 우리도 함께 부활할 것입니다. 능력 있는 삶이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은혜와 깨달음이 여러분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예수님 따로 나 따로가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님이 권세가 우리의 가정에 이 땅위에 놀라운 기적의 역사를 이루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