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을 주러 오셨다는 예수님

칼을 주러 오셨다는 예수님

(마태복음 10:34-39)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평화를 주러 오신 것이 아니라 검을 주러 오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칼을 주러 오셨다니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은 마땅히 칼을 가진 사람이어야 합니다. 여러분 모두 예수님께서 주신 칼을 가지고 계십니까?

 

칼은 싸움을 할 때 쓰던 무기입니다. 칼을 잘 쓰는 사람이 장수가 되었고 칼을 잘 쓰는 군대가 전쟁에서 이겼습니다. 이 무기를 우리에게 주시려고 예수님께서 오신 것입니다. 개인 간의 싸움도 처음에는 말싸움으로 시작되어 좀 지나면 주먹질을 하고 본격적으로 싸울 때는 칼싸움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칼부림이란 말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칼을 주러 오셨다는 것은 우리에게 싸움을 일으키러 오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싸움을 붙이러 오셨다는 말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직접 하신 말씀입니다. 하던 싸움도 말리실 예수님께서 그러실 리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정말 칼을 주러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우리는 보통 예수님을 평화의 왕이라고 말합니다. 미움을 사랑으로 갈등이 있는 곳에 평화를 주러 오신 분입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실 때 천사들이 이 땅에 평화를 주로 오신 분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은 우리의 이런 상식과는 달리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칼을 주러 오셨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혹시 우리가 잘못 생각할까봐 강조해서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저는 혹시 이 말씀을 기록한 마태가 잠시 착각해서 기록한 말씀은 아닐까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누가복음 12장 51절에 똑같은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아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쟁하게 하려 함이로라 이렇게 보면 마태의 착각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이 무슨 뜻인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다보면 예수님이 하신 말씀 중에 도무지 그 뜻을 이해할 수 없는 알쏭달쏭한 말씀이 더러 있습니다. 예를 들면 마태복음 10장 16절을 보면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뱀과 비둘기가 어울리지 않는데도 뱀과 비둘기가 같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장 8절에는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이요 나중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분명이 다른 처음과 나중, 알파와 오메가가 되라는 알쏭달쏭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0장 27절에도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으뜸이 되기 위해서는 올라가야 하는데 내려가고 종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해할 수 없는 말입니다. 그럴 듯한 말씀이긴 하지만 비현실적인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잘 생각해보면 깊은 뜻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예수님의 말씀 하나하나에 지구의 무게와 같은 무게가 있는 말씀입니다.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온 것이 아니라 검을 주러 왔다는 이 말에도 높고 깊은 뜻이 있습니다. 평화란 그냥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칼이 있어야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칼은 잘라냄, 베어냄을 말합니다. 무엇을 끊어내는 결단이고 아픔입니다. 그러므로 평화는 무엇인가 베어내고 잘라내는 결단이 있고 아픔이 있을 때 비로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평화는 값없이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치열한 싸움, 비장한 결단, 우리의 삶속에서 무엇인가를 베어내는 아픔 속에서 얻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와 같은 평화에 대한 깊은 뜻은 35-36절 말씀을 보면 더욱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우리가 세상에서 한 평생 살면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식구입니다. 부모와 자식, 아내와 남편, 평생 동안 함께 살아야 할 우리 인생의 한 부분입니다. 때로는 이 사람들 때문에 웃고 울고 행복하고 속상하고 불행하다고 생각합니다. 때로는 목숨을 바쳐 사랑하고 때로는 미워하고 원망합니다. 때로는 이들 때문에 죽고 싶기도 하고 때로는 이들 때문에 살맛이 나기도 합니다. 평생 동안 이렇게 보이지 않는 끈으로 묶여져 웃고 울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많이 사랑하고 가장 미워하고 원망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가장 감사하고 가장 원망하는 사람도 이들이며, 나를 행복하게 하기도 하고 나를 불행하게 하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사실을 정확하게 아시고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라고 말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칼을 주신 것은 평생을 살아가면서 놓지 못하는 끈을 끊어내라고 주신 것입니다. 부부가 한 평생을 살면서 사랑한다고 하지만 나중에는 집착이 됩니다. 우리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도 집착으로 변하는 것을 봅니다. 서로가 집착을 하기 때문에 남편은 아내에게, 아내는 남편에게 기대하게 됩니다.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불평하고 원망하고 싸움을 하게 됩니다. 부부싸움은 상대에 대한 집착과 욕심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서로에 대한 집착의 끈을 끊어야 편안할 수 있습니다.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집착의 끈에 매여 있는 한 어떤 경우에도 상대방에게 감사할 수 없습니다. 서로가 자유로워질 때 서로에 대한 감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자식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식에 대해서 불안해하고 믿지 못하는 것은 자식에 대한 사랑 때문이 아니라 집착 때문입니다. 이 끈을 끊어야 합니다. 자식에 대해서 자유로울 때 자식과의 관계가 아름다운 관계 행복한 관계가 될 수 있습니다. 자식에 대한 집착의 끈으로 묶어놓으면 나중에는 견디다 못해 질식하게 됩니다. 자식을 묶고 있던 집착을 끈을 끊어서 자식이 자유롭게 해주어야 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묶어놓는 집착의 끈을 끊어내야 자유로울 수 있고 행복할 수 있습니다.

 

자식에 대한 집착의 끈, 부부에 대한 집착의 끈, 사람에 대한 집착의 끈을 끊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칼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칼을 주시러 오신 것입니다. 우리들 모두는 보이지 않는 끈에 꽁꽁 묶여서 살아갑니다. 직장이라는 끈에, 일이라는 끈에 꽁꽁 묶여서 꼼짝 못하고 살아갑니다. 돈이라는 끈에 묶여 돈 때문에 쩔쩔 매며 살아갑니다. 명예, 권력의 끈으로 묶여서 걱정하고 속상해 하며 살아갑니다.

 

저는 일찍부터 모든 끈을 끊어보자 생각하고 자식에 대해서도 돈에 대해서도 끊고 살아가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놓지 못하는 것이 명예에 대한 끈이었습니다. 무엇인가 되어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이 욕심을 끊어내려고 결심하였습니다. 제 마음속에 앞으로 무엇을 해야지, 어떤 자리에 올라가야지 하는 마음이 전혀 없습니다. 제가 무엇인가 되어보려는 끈을 버리고 난 후 얼마나 편안하고 자유로운지 모릅니다. 집착에서 벗어나니까 무엇이 되어보려는 욕심에서 벗어나니까 한없이 자유롭고 마음에 평화가 넘치고 마음에 기쁨이 넘칩니다.

 

우리가 좋아하는 기색을 보이면 끈이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습니다. 돈도 좋아하는 기색만 보이면 찰싹 달라붙어 우리를 동여맵니다. 돈에 대한 욕심과 집착의 끈을 끊어내고 돈의 위력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돈이 있으면 쓰고 없으면 말고 돈에서 자유로워야 합니다. 명예도 권력도 마찬가지고 자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아하는 기색만 보이면 우리에게 꼭 달라붙어서 떨어지지 않습니다. 꼼짝하지 못하게 우리의 목을 조여 맵니다.

 

우리가 가진 집착의 끈을 끊어내기 위한 칼이 있어야 합니다. 무딘 칼로는 안 되고 날선 칼이어야 합니다. 우리를 조여매고 있는 끈이 워낙 질기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젊은이들은 부모에 대한 욕심, 집착의 끈을 끊어야 합니다. 부모들에 대해서도 쿨 해야 합니다. 부모들이 자식에 대한 기대와 집착의 끈을 끊어야 하는 것처럼 자식들도 부모에 대한 욕심과 집착도 끊어야 합니다. 자식을 출가시킨 부모들은 늘 자식을 기다리고 전화 한 통이 없는 것을 섭섭해 합니다. 그런 것도 다 끊어야 합니다. 자기들이 잘 살면 그것으로 됐습니다. 오면 고맙고 안 와도 그만입니다. 효도는 자식이 자라면서 다 한 것입니다. 태중에 있을 때 우리에게 기쁨을 주었으며 자라면서 온갖 재롱을 떨고 학교에 들어가고 그런 것들이 다 우리가 받은 효도입니다. 그 다음부터 자식들이 잘 하는 것 다 덤입니다.

 

건강도 마찬가지입니다. 건강 앞에서 쩔쩔 매지 말고 건강하면 건강한 대로 병들면 병든 대로 살아야 합니다. 건강해야 한다는 집착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집착하면 그것이 병이 듭니다. 끈을 끊으면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끈에 매이면 평생 동안 꼼짝하지 못하고 질질 끌려서 살게 됩니다. 자존심도 끊어야 합니다. 지금 남과 북이 막혀 있는데 제가 보기엔 자존심 때문입니다. 하고 싶은데 자존심에 매여서 어려운 길로 가고 있습니다. 일의 끈도 끊어야 합니다. 먹고 살만큼만 일하고 기쁘고 즐겁게 살아야 합니다. 내가 없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천만의 말씀입니다. 세상은 내가 없어도 아무 일 없이 돌아갑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사람들이 근심과 걱정에 매여 행복하지 못하고 고달픈 인생을 사는 것을 보셨습니다. 돈과 부모와 자녀와 명예와 권력에 꼭꼭 묶여서 종처럼 살아가는 것을 보셨습니다. 저 끈을 끊어야 인간이 행복하고 즐겁게 살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칼을 주신 것입니다. 우리를 얽어매고 있는 집착의 끈 욕심의 끈을 끊고 마음의 평화와 행복이 넘치게 해주시려고 칼을 주려고 오신 것입니다. 우리를 얽어매고 있는 끈을 끊고 거기에서 자유로워야 우리 인생이 행복하고 기쁨이 넘치는 인생이 될 것입니다.

 

나는 무슨 끈에 매여 있는가, 내 목을 감고 있는 끈은 무엇인지 가만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를 꼼짝 못하게 하는 끈이 돈, 명예, 자존심, 권력, 자식 그 무엇인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칼을 손에 들고 하나하나 끊어내야 합니다. 에베소서 6장 17절에서 말씀하시는 성령의 검으로 끈을 끊어버려야 합니다. 그 끈으로부터 벗어나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칼을 주시는 것입니다. 칼을 주시려고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끈을 끊어버리고 다시는 종의 멍에를 지지 않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를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게 하시려고 우리에게 칼을 주신 것입니다. 이 귀한 은혜가 여러분에게 넘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