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삭을 줍지말라

이삭을 줍지 말라

(레위기 19:9-10)

 

이삭을 줍지 말라는 오늘 설교제목을 보면서 추수철도 아닌 한 겨울에 무슨 이삭 줍는 이야기를 하는가, 농부도 아닌 우리들에게 무슨 이삭 줍는 이야기를 하는가 이상하게 생각하신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이삭을 줍지 말라는 이 말을 올 한 해, 아니 우리의 평생에 삶에 간직하고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최근에 새삼 들어 깨닫게 되는 것이 우리나라가 참으로 대단하다는 것입니다. 2차 세계 대전 후에 100여개의 나라가 독립되었습니다. 그 중에 경제발전을 하여 OECD에 가입한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한 나라입니다. 또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는 세계 역사상 우리나라가 처음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가 육이오 때를 비롯해서 많은 원조를 받았습니다. 지금 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아이티에서도 우리나라가 육이오 때 원조를 받았다고 합니다. 우리나라가 지난해부터 공식적으로 다른 나라를 원조하는 원조국가가 되었습니다.

 

지난해 12월 28일 한남동의 유엔 건물에서 유엔기 중 하나가 하강되어 영원히 내려졌습니다. UNDP 유엔 개발원조위원회의 깃발이 내려진 것입니다. 저는 48년 동안 받던 원조가 완전히 끝나는 역사적인 장면을 매스컴을 통해서 보면서 감개가 무량했습니다.

 

중국과 우리나라는 수천 년 동안 관계를 맺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오랜 기간 동안 우리나라는 중국에 늘 짓밟히고 살았습니다. 중국 사람에게 도움과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유일하게 지난 몇 십 년 동안 우리나라가 중국 사람들을 가르치고 도움을 주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중국 여행을 가면 늘 발마사지를 받는데 생각해보면 참으로 엄청난 일입니다. 지난 수천 년 동안 우리나라 사람들이 중국 사람들의 마사지를 하고 섬기며 살았습니다. 중국 사람에게 발마사지를 받는다는 것이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이제 얼마 있으면 끝이 날 것 같아서 여러분 중에 아직 중국 여행을 가보지 못한 분들은 한번 꼭 가셔서 받아보시길 바랍니다.

 

우리나라는 세계 경제 위기 속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회복되는 나라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G20 세계 20개 경제 대국들이 모이는 경제회의에서 우리나라가 의장국이 되었습니다. 지난 한 해 우리나라의 수출입 규모가 세계의 9번째입니다. 우리나라를 앞서는 나라가 많지 않습니다. 단군이래로 이렇게 번영을 이룬 때가 없었습니다.

 

세계 여러 나라가 우리나라를 주목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도 연설을 하면서 긍정적인 면으로 다른 나라의 예를 들 때 가장 많이 언급하는 나라가 우리나라입니다. 사실 우리 교육의 현실이 그렇게 자랑스럽지만은 않습니다. 아무튼 세계 모든 사람들이 우리나라를 놀라운 눈으로 기적을 이룬 나라로 보고 있습니다. 우리들 스스로도 기적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기적을 이루고 우리들 모두가 기적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세계 모든 사람들이 이것을 알고 있는데 우리나라 사람들만 우리가 얼마나 대단한 일을 했는지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제 발전뿐만 민주주의도 이루어 아시아에서 가장 괄목할 민주주의를 이룩하였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우리 자신도 궁금하기 짝이 없는 일입니다. 우리나라가 지하자원이 풍부한 나라도 아니고 석유나 가스가 나지도 않습니다. 국토가 넓은 것도 아닙니다. 조그마한 땅덩어리입니다. 그렇다고 조상들에게 물려받은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일본이나 독일이 경제개발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조상들에게 많은 기술을 이어받아 그 바탕 위에 이룬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4-50년 전 경제 개발을 이룰 때 자전거 만드는 기술도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천혜의 특혜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어떤 나라는 하나님이 주신 천혜의 아름다운 경치만으로도 먹고 살 걱정을 하지 않고도 살아갑니다. 조그마한 나라이고 일본의 식민지에서 시달렸으며 그것도 반쪽으로 나뉘어졌습니다. 참혹한 전쟁으로 인한 지독한 가난과 폐허의 황폐한 땅에서 이런 큰 기적을 이루었습니다. 그것도 경제발전뿐만 아니라 민주주의 기적까지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사람이 한 일 같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오천 년 동안 살아왔지만 갑자기 이 시대에 위대한 사람이 되어서 이런 기적을 이루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오천 년 동안 살던 보잘 것 없이 살았던 조상들과 다를 것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정직하게 말해서 우리가 잘 나서 기적을 이루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사람이 아닌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 하나님이 하시지 않고는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부인할 수 없는 분명한 사실입니다. 이것밖에 다른 대답이 없습니다. 경제적인 발전과 민주주의 발전을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나라의 기독교 신앙의 발전과 비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기독교가 활발했던 70년대 기독교와 함께 우리나라의 경제와 민주주의도 발전했습니다. 복음전파로 인한 기독교의 발전과 함께 우리나라가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이 사실은 하나님이 하셨다는 증거입니다. 세계 어느 민족도 이루지 못한 기적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다른 나라에 비해 잘나고 똑똑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 교회의 온 성도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열심히 기도한 결과 하나님께서 이 민족을 긍휼히 여기고 축복을 하셔 이만한 축복을 이루었다고 말해도 아무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저는 최근에 이르러 우리 조상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았는가 하는 것을 문서를 통해서 간간히 접하면서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을 축복하실 수밖에 없었겠구나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가 이렇게 잘 먹고 잘 살게 된 것이 우리가 잘해서가 아니라 우리 조상들이 축복을 받을만한 심성과 자질을 가지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선조들이 어떻게 서로 돕고 살았는가 하는 풍습이 여기저기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옛날 우리 조상들은 눈이 오면 노인들만 사는 집, 과부만 사는 집, 병든 사람이 있는 집은 공굴이라고 해서 동네 장정들이 다 함께 모여서 치웠다고 합니다. 어려운 사람들의 짐을 나눠지고 한 식구로 살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새벽에 부잣집 앞의 눈을 깨끗이 쓸어놓으면 주인이 아침 일찍 일어나서 그것을 보고 누군가 식량이 떨어졌다는 신호로 알았다고 합니다. 그러면 사람들에게 수소문해서 그 사람을 찾아서 그 집 식구들이 몇 명인지 알아서 보름치의 식량을 보냈다고 합니다. 배고픈 사람은 절대로 먹을 것을 달라고 못합니다. 배고픈 사람의 마지막 자존심입니다. 주위에서 배고픈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아채고 먹을 것을 주어야 합니다. 배고픈 사람들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켜주어야 합니다. 우리 조산들은 가난한 사람을 배려하는 깊은 아량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 정부가 북한에서 달라고 하고 무엇을 하면 주겠다고 하는데 이것은 우리 조상들이 가졌던 마음과 다른 것입니다. 배고픈 사람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켜주어야 합니다. 배고픈 사람에게 무엇을 주면서 조건을 붙이면 안 됩니다. 모른 척하고 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 조상들이 가졌던 마음이었으며 가난한 사람을 돌보는 아량이었습니다. 가난한 이웃을 도우면서도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아야 합니다.

 

사람에게 무엇을 주는 것이 참 어려운 일입니다. 성경에서도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했습니다. 잘못하다가는 다른 사람을 돕는다는 것이 그 사람을 아프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줄 때는 잘 주어야 합니다. 주면서도 욕먹고 원수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이런 지혜가 있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동네에서 아낙네들이 시시때때로 부잣집에 가서 허드렛일을 하면 집안일을 도왔습니다. 이것이 바로 먹을 것이 떨어졌다는 신호입니다. 그러면 그 집 마님은 그 말하지 않아도 그 신호를 알아차리고 의례히 돌아갈 때 식구들 수보다 세 사람의 몫을 더 주어서 보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것을 세 사람 몫을 덧붙여서 주는 것이라고 \'세덧\'이라고 하고, 세 사람에게 덕을 베푼다고 해서 \'세덕\'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부엌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꼭 알아야 할 말입니다. 자기 식구들을 위해서 밥 짓고 음식을 만들며 일하는 사람들이 동네의 가난한 사람들, 배고픈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조상들은 배고픈 사람이 있으면 아무 말 않고 세 사람 몫을 더 주는 세덕, 세덧을 베풀며 살았습니다. 만약 이것을 안 하는 마님은 덕이 없는 사람이라고 동네에서 인심을 잃게 되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바닷가에서 살았습니다. 가난한 아낙네들이 바다에서 낙지도 잡고 조개도 잡고 꽃게를 잡아 한바구니 가득 담아 부잣집에 가져가서 거저 드시라고 내놓았습니다. 이것이 식량을 달라는 것입니다. 산골 마을에서 사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여서 산에서 나물을 뜯어 부잣집 마당에서 말렸다고 합니다. 그러면 넉넉한 부잣집 마님이 곡식을 듬뿍 담아서 주었다고 합니다.

 

제가 어렸을 때 할아버지께서 저에게 절대로 바닷가에 들어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친구들은 바다에 들어가 망둥이도 잡고 낙지도 잡고 조개도 잡고 하는데 못 가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행세하는 양반집이라고 그러나보다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아닙니다. 바닷가에 사는 사람 중에 먹고 살만한 사람은 절대로 바다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바다는 가난한 사람의 것입니다. 먹고 살만한 사람이 고기를 잡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산도 마찬가지입니다. 먹고살 만한 사람은 산에서 나물을 뜯으면 안 됩니다. 산은 가난한 사람이 먹고살아야 할 삶의 터전입니다.

 

옛날에 농사를 짓고 추수를 한 후에 이삭을 줍는 것은 주인이 아니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 과부나 농사지을 땅이 없는 가난한 사람들이 줍는 것이었습니다. 과일 나무의 과일을 따고 나면 다시 또 따지 않았습니다. 나머지는 가난한 사람들의 몫이었습니다. 이것이 우리 조상들이 가졌던 마음이었습니다. 아이가 태어나면 돈이 있는 사람은 곡식을 내어놓았고 가난한 집은 복돼지, 명돼지라고 불리는 돼지를 내어놓았습니다. 이렇게 좋은 일을 해야 그 아이가 복을 받고 오래 산다고 생각했습니다. 곡식으로 생긴 이자 이곡으로 가난한 사람에게 병든 사람을 돌보고 나그네들을 거두었습니다. 가난한 사람에게 돼지를 주어 그 집이 먹고 살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장례가 나면 보통 삼일장을 하지만 부잣집에서는 오일장도 하고 칠일장도 했습니다. 물론 조상에 대한 효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큰 뜻이 있었습니다. 장례 때는 온 동네 사람들이 그 집에 살고 인근의 가난한 사람들이 다 그 집에 와서 살았습니다. 잔치는 가난한 사람을 돕는 선을 쌓는 일이었습니다. 장례식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일이었습니다.

 

저는 요즘 우리 조상들이 이런 선한 마음을 가지고 가난한 사람들을 돕고 살았던 덕에 우리가 잘 살게 되었다는 생각을 합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그렇게 가르치셨습니다. 우리 조상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도우며 덕을 세우며 살았던 것처럼 살라는 말이 성경에 그대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 조상들이 성경을 읽고 살았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는 성경을 일고 알면서도 그대로 살지 못하는데 우리 조상들은 성경을 읽지도 않았는데 성경의 가르침대로 살았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 레위기 19장 9절 말씀을 보면 너희가 너희의 땅에서 곡식을 거둘 때에 너는 밭 모퉁이까지 다 거두지 말고 네 떨어진 이삭도 줍지 말며 네 포도원의 열매를 다 따지 말며 네 포도원에 떨어진 열매도 줍지 말고 가난한 사람과 거류민을 위하여 버려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떤 성경에서는 짐승들을 위해서도 남겨두라고 했습니다. 요즘 멧돼지들이 민가에 내려오는 이유가 사람들이 멧돼지들이 먹을 음식을 다 먹기 때문에 먹을 것이 없어서 내려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동물들이 먹을 것까지 다 먹는 것입니다.

 

신명기 24장 19-21절 말씀에는 네가 밭에서 곡식을 벨 때에 그 한 뭇을 밭에 잊어버렸거든 다시 가서 가져오지 말고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남겨두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리시리라 네가 네 감람나무를 떤 후에 그 가지를 다시 살피지 말고 그 남은 것은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남겨두며 네가 네 포도원의 포도를 딴 후에 그 남은 것을 다시 따지 말고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남겨두라 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리겠다고 하셨습니다.

 

지금 우리 민족이 이렇게 잘 사는 것은 우리 조상들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덕을 베풀면서 살았기 때문에 복을 내리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이 말씀대로 살아서 세계 정치, 경제, 과학, 문학, 예술 모든 분야에게 두각을 나타내며 살게 된 것입니다. 미국의 변호사 70만 명 중의 14만명이 유대인이라고 합니다. 미국 재벌 400명 가운데 23%가 유대인이고 노벨상을 받은 200명 중에 삼분의 일이 유대인이라고 합니다. 성경의 말씀대로 했더니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리시리라 는 말씀대로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조상들이 한 대로 축복해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조상이 한 일을 보고 복을 내리신 것입니다.

 

이 시대를 사는 우리들은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하나님이 보시기에 우리들이 착한 일을 하고 선한 일을 하는 것을 보시고 우리 후손에게 복을 주실 만큼 살고 있습니까? 우리는 조상들 덕분에 복을 받고 살고 있지만 우리들 덕분에 우리 후손들도 복을 받고 살 수 있는가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남이야 굶든 말든 우리만 잘 먹고 북녘의 동포가 굶고 있는데 우리만 잘 먹으면 된다고 나만 생각하고 내 가족, 내 자식만 생각하고 살면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것으로 생각하십니까? 우리 아이들이 좋은 학교만 가면 잘되는 것이 아닙니다. 미국 유학을 가고 큰 회사에 취직만 하면 잘 될 것 같지만 아닙니다. 하늘이 도와야 합니다. 하늘이 복을 주어야 합니다. 착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사람이 하는 일은 한계가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잘나고 똑똑해도 하늘이 돕지 않으면 제대로 살 수 없습니다.

 

이삭을 줍지 말라는 말은 가난한 사람을 도우라는 것입니다. 지갑을 열어놓고 살라는 것입니다. 호주머니를 열고 흘리면서 살라는 것입니다. 가난한 아낙이 오면 세 사람의 몫을 더 주던 후덕한 마님의 모습이 우리의 부엌 속에서 보여져야 합니다. 아침에 나가 마당을 쓸은 것을 보고 배고픈 사람이 있구나 짐작하고 찾아서 보름치의 먹을 것을 주던 후덕한 집주인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달라고 해서가 아니라 달라고 하기 전에 그들의 아픔과 가난을 함께 나누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복을 받고 우리 후손들이 복을 받는 것입니다. 그렇게 인색하고 지갑을 꼭 닫고 살면 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넉넉한 마음을 가지고 가난한 사람을 돌보며 살아야 합니다. 그들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말고 그들을 돌보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잔칫상에 가난한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풍성한 식탁에 가난한 사람의 자리가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늘이 감동하셔서 하나님이 복을 주십니다. 금년 한해 세상을 살면서 여러분의 삶에 넉넉함이 있으시길 바랍니다. 인색함을 버리시기 바랍니다. 지갑을 열고 호주머니를 열고 넉넉하게 사십시오. 가난한 사람들이 도와달라고 하면 거절하지 마십시오. 가난한 사람이 떼를 쓰면 져주고 가난한 사람들이 달라고 하면 양보하고 물러서야 합니다. 이렇게 살 때 하나님이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리시리라 약속하신 대로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우리 조상들 때문에 우리가 복을 받고 사는 것처럼 이스라엘 조상들 때문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복을 받고 사는 것처럼 이삭을 줍지 않고 살아가는 우리의 삶으로 말미암아 우리 후손들이 큰 복을 받는 은혜가 우리 민족에게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