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부흥에 대한 약속 욜2:28-32
구약 성경에는 다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예언자들이 등장합니다. 이 예언자들은 저마다 다른 시대, 다른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그런데 이 예언자들의 메시지를 분석해 보면 하나의 공통된 구조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심판과 회복이라는 구조입니다.
먼저 심판의 내育?이렇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런 저런 죄를 저질렀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진노하셨고, 이런 저런 것으로 심판하실 것이다.” 다음으로 회복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면 하나님께서 이러 저렇게 치료하시고 구원하시고 회복시키실 것이다.”
요엘서도 이런 전형적인 예언서의 구조를 따르고 있습니다.
먼저 심판의 메시지가 선포됩니다. 1장을 보면 두 가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감당키 어려운 큰 재앙이 선포됩니다. 하나는 메뚜기 재앙이고, 다른 하나는 극심한 가뭄 재앙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이렇게 재앙을 만나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다름 아닌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생활의 문제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마땅히 드려야 할 제사를 제대로 드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요엘은 그래서 하나님께서 진노하셨고 이런 재앙을 내리셨다고 외쳤습니다.
다음으로 회복의 메시지가 선포됩니다. 2:12에 보면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며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말씀했습니다. 하나님께 회개하고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사랑을 회복하시겠고, 재앙을 다 거두실 것이고, 재앙으로 황폐해 진 땅을 복구해 주실 것이고, 나아가 하나님과의 언약의 관계를 회복시켜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요엘서는 전형적인 예언서의 메시지 구조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살펴보면 요엘서가 다른 예언서와 다른 점이 나타납니다. 오늘 본문에는 기존의 예언서 구조에서 다루지 않던 특별한 내용이 첨가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요약해 보면 지금 심판을 받고 있는 내용이 회복되는 것을 뛰어넘어 본질적인 회복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대하지도 생각지도 못했던 엄청난 축복이 선포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다른 예언서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놀라운 축복의 약속입니다. 이 놀라운 축복의 약속을 살펴보겠습니다.
1. 성령을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28절을 보면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성령을 모든 사람들에게 부어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물론 모든 사람은 여호와께로 돌아온 다시 말해서 회개한 모든 사람을 말합니다.
여기서 만민에게라는 말씀을 주목해야 합니다. 히브리어 원어 성경을 보면 만민은 “콜 바사르”라는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콜은 ‘모든’이라는 뜻이고, 바사르는 ‘육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모든 육체에게 성령을 부어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성령을 부어주시겠다고 하지 않고 하필이면 모든 육체에게 성령을 부어주시겠다고 하셨을까요? 여기에 중요한 메시지가 숨어있습니다.
창세기 6장 1-3을 보면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노아의 홍수가 시작되기 직전 세상에 죄악이 가득 차게 되어서 하나님을 잘 믿고 섬기던 하나님의 백성들마저도 변해 버리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타락하고 죄 앞에 무능하고 연약한 인간 즉 육체가 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저주와 심판이 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서 성령을 거두시고 말았습니다. 게다가 영원히 성령이 육체가 된 인간들과는 함께 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들의 수명도 120까지로 단축시켜버리셨습니다. 그리고 홍수로 육체가 된 인간들을 심판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그 옛날 육체가 된 인간에게 내렸던 저주가 풀릴 것이라는 놀라운 약속인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임했던 재앙이 걷히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역사가 바로 잡히고 회복되는 것을 말하는 정도가 아닙니다. 태고 때부터 있었던 저주가 끊기고 인류의 원역사가 복원되는 놀라운 약속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면 성령이 부어지는 것이 도대체 왜 그렇게 큰 축복이 될까요?
28절을 보면 “너희 자녀들은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라고 말씀했습니다. 여기서 장래의 일을 말한다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들은 것을 말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영적인 귀가 열렸다는 것을 말합니다. 꿈을 꾼다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계시를 받게 되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상을 본다는 것은 영적인 눈이 열렸다는 것을 말합니다.
실제로 이 예언이 행 2장에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 때 이 말씀 그대로 성령받은 모든 사람들이 영적인 눈이 열렸고, 능력을 받고 큰 기쁨을 맛보았습니다.
최근 [잃어버린 20년]이란 책을 낸 김재홍씨가 장안의 화재가 되고 있습니다. 이 분은 1982년에 감기약 부작용의 약화 사고로 실명을 해서 20년 동안을 실명상태로 보내야 했습니다. 최근에 인공각막 이식 수술로 시력이 0.3까지 회복되어 드디어 20년만에 세상을 보게 되었답니다. 이분이 눈을 뜨고 나서 처음 한 말이 “20년 만에 본 아내가 얼마나 예쁘던지... ” 이 책에서 김재홍씨는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아내의 흰 머리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빛을 잃어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을 것입니다” 눈을 뜨고 난 뒤에 이 분의 인생이 달라졌습니다. 너무 행복하고 너무 감격스럽고...
그렇습니다. 우리가 성령을 받았다는 것은 새롭게 영적인 눈을 뜬 것을 말합니다. 새롭게 열린 심령의 눈으로 하나님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과거에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다고 할 때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지만 이제는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고 할 때 믿어지지가 않았었지만 이제는 믿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어떻게 일하고 계신지, 나를 위해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신지 새삼 확인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기쁨은 말로 설명할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그뿐 아니라 그 인생 자체가 변화되었습니다.
시 51:11을 보면 다윗이 이렇게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다윗이 밧세바를 범한 뒤에 가장 두려워했던 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성령을 거두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발 다른 것은 몰라도 성령만은 거두지 마시옵소서라고 하나님께 눈물로 호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성령이 부어지는 것은 그 무엇보다도 놀라운 축복입니다. 반면에 우리에게 성령이 거두어지는 것은 그 무엇보다도 끔찍한 사건입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에게서 성령이 거두어지면 안 됩니다.
모든 육체에 성령이 부어지는 것이 도대체 왜 그렇게 큰 축복일까요?
본문을 보면 회개하는 모든 육체에 성령이 부어질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민 11:29을 보면 “모세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나를 위하여 시기하느냐 여호와께서 그 신을 그 모든 백성에게 주사 다 선지자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12:2을 보면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셨느냐 우리와도 말씀하지 아니하셨느냐 하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와 같은 특정인들에게만 주의 신을 부어주셨기 때문에 모세도 부담스럽고 다른 사람들이 시기하는 일도 일어났다는 것을 보여주는 내용입니다.
실제로 구약시대에 성령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특정한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임했습니다. 그리고 예언자나 제사장 그리고 때로는 왕과 같은 특정 직분을 맡은 사람들에게만 주의 신이 부어졌습니다. 그래서 일반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는 주의 신을 받은 사람들을 찾아가서 그들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상황이 달라지게 된 것입니다. 본문에 보면 회개한 하나님의 백성이면 누구에게나 성령이 부어지게 될 것이라는 약속이 선포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뿐 아닙니다. 29절을 보면 “그 때에 내 신으로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라고 말씀했습니다. 여기서 종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부리는 이방인 종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이 이방인 노예에게까지도 차별이 없이 하나님의 영이 부어질 것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더 나아가 여종에게까지 주의 영이 부어질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여자는 인간 이하의 인간 취급을 받던 시대입니다. 이런 여자에게까지 성령이 부어질 것이라는 약속이 선언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령이 부어지되 특정인 특정 직분 맡은 사람들에게만 부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만 부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남자에게만 부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야말로 남녀노소 신분 차별도, 성차별도, 모든 인위적인 차별도 없이 모든 사람에게 성령이 부어질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 성령 강림 사건에서 그 자리에 참여했던 120문도 모두에게 예외 없이 성령이 강림했습니다. 사도들은 물론이고 일반 평신도들에게도 모두 각 사람 위에 성령이 강림했습니다. 과거 구약시대에는 상상도 할 수 없던 일이었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이방인 고넬료의 가정에도, 에베소를 비롯한 이방 지역에도 성령이 강림했습니다. 그뿐입니까? 전혀 예수 믿을 수 없던 우리 민족에게도 성령이 강림했습니다. 그리고 저와 여러분에게도 성령이 강림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제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누구라도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할 수 있고, 누구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들을 수 있고, 누구라도 하나님과 영적인 교통함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축복입니까?
2.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구원을 받겠다는 약속입니다.
32절을 보면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이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30절과 31절을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선 30절을 보면 “내가 이적을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이것은 큰 재앙이 임할 것을 예고하는 말씀입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할 때 애굽 땅의 그 엄청난 재앙의 상황을 연상시켜줍니다. 당시 애굽의 물은 다 피로 변했었습니다. 불덩이가 우박과 함께 섞여서 내려 땅 위에 온통 불덩이가 가득했고, 그 결과 곳곳에서 연기 기둥이 피어올랐습니다. 바로 지옥 그 자체의 모습입니다.
또한 31절을 보면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같이 변하려니와”라고 말씀했습니다. 주님께서 재림하시기 직전 이 우주에 정말 끔찍한 재앙이 임할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30절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역사적 정황 속에서 일어나는 재앙이라면, 31절은 앞으로 주님의 재림 때에 나타날 엄청난 우주적인 큰 재앙을 말합니다.
이런 재앙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재앙의 바다인 애굽을 피해서 출애굽했던 것처럼 애굽을 떠나야 합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당할 때 롯의 일가가 한 밤중에 그 땅을 피해서 나왔던 것처럼 도망쳐 나와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탈출구가 없다는 것입니다.
언젠가 큰 호텔 나이트 클럽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춤을 추고 야단법석일 때 누전으로 그곳에 불이 났던 일이 있습니다. 건물 자재가 인화물질이 많아서 불길은 삽시간에 크게 번져서 앞문에서 불길이 타오르자 사람들이 우와 좌왕 비상구를 찾아서 밀려왔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 비상구는 큰 자물통으로 굳게 닫혀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탈출하려고 몸부림치다가 굳게 닫힌 비상구 앞에서 뜨거운 불길에 휩싸이고 말았습니다.
이게 오늘 이 땅의 사람들의 현주소입니다. 아무런 대책 없이 바쁘게 어디론가 뛰어갑니다. 그러다 막상 인생의 위기를 만나게 되고, 자기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을 만나게 됩니다. 그러나 아무리 둘러봐도 탈출구가 없습니다. 막다른 길 앞에서 절망하고 주저앉고 맙니다. 이것이 바로 프랑스의 철학자 사르뜨르가 간파했던 현대의 비극입니다. 바로 “No Exit!”(탈출구가 없다!)는 바로 그 모습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32절에서 하나님께서 이렇게 약속하고 계십니다.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탈출구가 있다는 것입니다.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약속은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정말 놀라운 약속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 율법을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철저하게 율법 규정을 엄수할 때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단 한가지 율법 조항을 어기기만 해도 율법을 지키지 못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본문은 전혀 새로운 구원의 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바로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면 구원을 받겠다는 것입니다. 과거 율법을 어겼을지라도, 앞으로 율법 조항을 있는 그대로 다 지킬 자신이 없을지라도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기만 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약속인 것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약속입니까?
그러면 여호와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여호와께 기도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여호와께 기도하는 것을 말합니다. 시 50:15을 보면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래 전입니다만 한 권사님댁에 심방을 갔습니다. 심방을 가기로 약속을 했는데 권사님 말씀이 저희 집에 오시면 우편함 안을 손으로 더듬어 보세요! 그러시더라구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심방을 갔습니다. 문을 두드려도 대답이 없습니다. 소리를 쳐 봐도 대답이 없습니다. 문득 권사님 말씀이 생각이 났습니다. 우편함 안을 더듬어 봤더니 그 안에 초인종이 있다라구요. 그것을 누르니 안에서 알아듣고는 문을 여는 것이었습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워낙 잡상인도 많고 장난치는 사람도 많아서 초인종을 숨겨놓았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기도는 하늘 문을 여는 초인종입니다. 기도하면 구원의 문이 활짝 열립니다. 우리는 그 초인종의 위치를 잘 알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여호와께 예배하는 것을 말합니다.
다음으로 여호와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하나님께 참된 예배를 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창 12:7-8을 보면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그가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를 위하여 그곳에 단을 쌓고 ... 그가 그곳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여호와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바로 여호와께 제사드리는 것이요, 하나님께 진정한 예배를 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찾는 작업입니다. 평상시에 잊고 살던 하나님을 찾아서 만나고 대화하고 교제하는 작업이 예배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을 제대로 찾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나타나 주셔야만 하나님을 찾고 만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배에서 가장 중요한 작업이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일입니다. 우리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를 때 주님께서 나타나 만나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배 현장에서 여호와를 찾으려는 간절한 마음으로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여호와께 나아갈 때 여호와께서 우리를 만나주시고, 우리를 구원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이 또한 우리에게 더할 수 없는 축복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본문에서 주님은 우리에게 두 가지 놀라운 약속을 하고 계십니다. 하나는 성령을 주시겠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면 구원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 약속을 굳게 붙잡고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