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흥을 노래하자 겔47:1-12
사람도 두 종류의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적극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과 소극적인 사람입니다. 삶의 태도도 언제나 긍정적인 사람이 있고 부정적인 사람이 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사람은 결코 그의 삶에서 얻을 것이 없습니다. 삶을 변화시키는 것은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사람의 생각입니다.
바울과 실라가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혔습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풍전등화와 같은 인생이였습니다. 밤이 깊어왔습니다. 이렇게 허무하게 죽는구나 하고 부정적이고 소극적으로 주저앉아 있었다면 그들의 생애는 그것으로 끝나고 말았을 것입니다. 감옥에 갖혀 있지만, 내일을 기약할 수 없었지만 그들은 예수님을 바라보고 소망을 노래했습니다. 감옥문이 열린줄 믿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는 미래에 대한 소망이 있어야 합니다. 비록 난세에 살아가고 있지만 이 어두움의 장막이 걷히고 광명한 새벽이 온다는 희망을 노래해야 합니다. 여러분!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의 결과의 시작은 별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시간이 지난 뒤 긍정적인 태도를 가진사람은 긍정적인 열매를 맺고 부정적인 사람은 일생동안 살아도 축복도, 번영도 못하고 인생을 마치게 됩니다. 로마서 12:12절에 보면 \\\"소망중에 즐거워하라\\\"고 하셨습니다. 희망을 노래합시다. 소망을 노래합시다. 회복과 부흥을 노래합시다.
에스겔은 희망의 예언자입니다. 본문은 에스겔 선지자가 절망중에 있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머지않아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소망을 주는 말씀입니다. 오늘 에스겔처럼 부흥을 노래하는 희망의 사람들이 바로 우리가 될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가장 귀중한 것 중의 하나가 물입니다. 물이 없으면 하루도 살아가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고기가 물이 없으면 살지 못하고 죽듯이 인간에게도 물은 절대 필요한 것입니다.
인체도 물이 80%이며 초목도 물 없으면 죽습니다. 그래서 물은 생명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물이 생명을 살려주는 것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막 지대인 팔레스틴에서 물은 생존에 있어서 제일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모든 성읍은 샘이나 강곁에 세워지고 예루살렘의 성전 뜰의 지하는 석회석 암반에 저장통을 만들어 약 7,000리터의 물을 저장할 수 있었습니다. 물을 긷는 것은 여자의 일이었으며 운반과 휴대는 가죽 부대를 사용했었습니다.
그러기에 성경에는 물과 관련된 말씀이 많습니다. 이사야 5:1절 말씀을 보면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에스겔 선지자가 체험한 은혜의 상징입니다. 성전 문지방 밑에서 물이 흘러 나왔는데 그 물은 점점 흘러 넘쳐 강수가 되었고 그 물이 닿는 곳마다 모든 생물이 소생하는 생명수가 되었습니다.
본문이 주는 중요한 교훈은 물이 이르는 곳에 나타난 결과입니다.
첫째, 나무가 살아나고 실과가 열렸습니다. 7절을 보면 \\\"강좌우편에 나무가 심히 많더라\\\"고 했고, 12절을 보면 \\\"강좌우에 각종 실과나무가 자라서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달마다 새 실과를 맺으리니\\\"라고 했습니다. 나무가 자라고 실과가 맺으려면 물이 절대로 필요합니다. 물 없으면 나무도 짐승도 사람도 죽습니다.
프랭크린 홀은 사람이 생명을 유지하려면 네가지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공 기, 음식, 수면, 물입니다.
물은 두 종류가 있습니다. 살리는 물과 죽이는 물입니다. 썩은 물은 마실 수도 없 고, 농업용수나 공업용수로도 사용할 수 없습니다. 썩은 물에서는 물고기도 살지 못합 니다. 썩은 물은 사람도 썩게 만들고 예술도, 사상도, 교육도, 문화도 썩게 만듭니다. 썩은 물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무신론, 유물주의, 세속주의, 향락주의입니다. 50년 대나 60년대는 배고파서 도둑질을 했습니다만 그러나 지금은 술 마시고 여자친구 선 물 사주고 마약사기 위해 도둑질을 합니다.
미국에서 열린 신경과학회에서 \\\'앤드리어스 바텔스\\\'가 자신의 연구결과를 발표했습 니다. 남녀 17명의 뇌를 자기공명영상장치로 촬영을 했는데 사랑하는 사람의 사진을 보여주었을 때 20여군데 뇌 부위에 혈류량이 증가하는 것을 확인했다는 것입니다. 다 른 사람을 사랑하면 맨 먼저 뇌에 반응이 나타난다는 실험결과인 것입니다. 뇌는 각 지체의 행동을 결정하고 지시하는 총사령부입니다. 그 뇌 속에 썩은 정신, 썩은 문 화, 썩은 예술, 썩은 사상이 주입되고 자리잡으면 그 사람의 행동은 파괴적이고 파행 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생명, 예수생수로 가득 차면 죽은 것이 살아나고 썩은 물이 고쳐지는 것 입니다. 예수운동만 이 민족과 이 나라를 살릴 수 있습니다.
둘째,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9절을 보면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 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 들어가므로 바닷물이 소 성함을 얻겠고 이 강이 이르는 각 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라고 했고, 10절을 보 면 \\\"고기가 각기 종류를 따라 큰 바다의 고기같이 심히 많으려니와\\\"라고 했습니다. 썩은 바다에 성소에서 흐르기 시작한 강물이 흘러 들어가자 바다가 고쳐졌습니다. 바닷물이 고쳐지고 살아나자 물고기떼가 살아 헤엄치기 시작했고 어부들이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강원도 탄광촌은 석탄생산이 중단되면서 광부들이 떠나고 폐광촌이 돼 버렸습니다. 어촌 역시 물고기가 잡히지 않으면 어부들이 떠나고 맙니다. 그러나 바닷물이 살아나 고 고기떼가 몰려들면 어부들이 모여들게 됩니다.
우린 여기서 겸손하게 손을 들어야 합니다. 되살리는 역사, 새롭게 하는 역사는 사 람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정치개혁으로도, 과학의 힘으로도 안 됩니 다. 생명의 강물이 흘러 들어가야 합니다. 예수생명이 들어가야 합니다.
불란서 빠리시는 2000년 200일전부터 에펠탑에 대형 전광판을 만들고 카운트다운을 시작했습니다. 하루 지나면 199 그리고 또 하루가 지나면 198이 되는 전광판을 바라 볼 수 있게 했습니다. 그리고 1999년 12월 31일은 1시간마다 숫자가 바뀌도록 장치를 했습니다. 그리고 1시간전이 되면 1분씩, 그리고 1분전이 되면 1초씩, 그리고 전광판 의 숫자 2000년 자정이 되면 0이 되도록 설치를 했습니다.
이 역사적 순간을 지켜보기 위해 전세계의 매스컴과 관광객 그리고 빠리 시민들이 1999년 12월 31일 대낮부터 에펠탑 광장에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정확하게 12월 31일 오후 5시간 전부터 에펠탑에 설치한 전광판 시설이 고장난 것을 발견했습니 다. 초긴장상태에 들어간 관계자들과 빠리시는 비상사태에 돌입해 원인을 찾기 시작했 지만 원인을 찾지 못했습니다. 새천년 자정은 다가오고 있었지만 전기고장을 고칠 수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에펠탑의 전광판의 불이 꺼진 채 새천년을 맞게 되었습니다. 다 고치고 났을 때는 새벽 3시였습니다.
최첨단 과학을 자랑하는 불란서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네 뜻대로 에펠탑에 불 을 켜지 못한 채 새천년을 맞아야 했습니다. 휘황찬란한 불이 켜지고 푹죽이 터지고 빵파레가 울리는 장관을 지켜보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의 실망은 이만저만이 아니었습 니다. 이것이 과학의 힘이며 인간의 능력입니다.
11절을 보면 \\\"진펄과 개펄은 소성되지 못하고 소금땅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생 명의 물이 미치지 못하는 진펄이나 개펄은 그냥 그대로 소금땅으로 남아 있기 때문에 나무도 살지 못하고 사람도 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바다를 막아 간척지를 만듭니다. 그러나 다음해 바로 씨를 뿌려 농사를 짓는 것이 아닙니다. 흙에 배어있는 소금기가 다 빠지기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적어도 5년내지 7 년 이상을 기다려야 씨를 뿌릴 수 있는 옥토가 되는 것입니다.
소금물로 구성된 사해에는 물고기가 살지 못합니다. 열왕기하 5장을 보면 나병 걸렸 던 나만 장관이 요단강 물에 일곱 번 목욕하고 병을 고쳤습니다. 요한복음 9장을 보 면 앞을 보지 못하는 소경이 실로암 연못에 찾아가 그 물로 눈을 씻고 밝은 눈으로 왔 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생명의 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살리는 물이요 되게 하는 물이 요 일어서게 하는 물입니다. 성소에서 흐르기 시작하여 큰 강을 이룬 그 물줄기를 내 심령에 댑시다. 그 물줄기를 내 가정으로 끌어들입시다. 그 물줄기가 한국교회를 살리 고 우리 사회를 사리고 이 민족을 살리도록 그 큰 물줄기를 끌어들입시다. 그래야 내 가 살고, 가정이 살고, 교회가 살고, 민족이 삽니다.
주여 내 심령을 물댄 동산같게 하옵소서 내 가정과 우리 교회와 이 나라가 생명의 물줄기로 가득차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다시 살아나고 다시 열매 맺고 다시 풍요롭게 하여 주옵소서 아멘.
이러한 부흥을 체험하기 위해서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마치 물을 담을 그릇을 준비해야 하는 것처럼 우리의 가정들이 꼭 명심해야할 원칙이 있습니다.
1. 교회중심의 삶(1절) 생수의 근원은 성전입니다. 성전은 오늘의 교회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 의 몸입니다. 우리는 그 지체입니다. 성도들은 교회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칼빈은 교회의 중요성을 가리켜 교회를 어머니라고 역설하기도 했습니다. 어머니 없는 자식이 없듯이 교회 없는 그리스도인은 없다는 것입니다.
2. 성령충만의 삶(3-5절) 강물은 발목에 이르고 무릎과 허리에 이르고 다음에는 물이 넘치게 된 것 입니다. 영적으로 신앙의 단계를 의미합니다. 발목은 신앙출발이고 무릎은 기도생활이며 허리는 겸손이고 강물이 넘치게 된 것은 성령충만인 것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