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흥을 갈망하라

부흥을 갈망하라!/ 행19:8-20

부흥을 갈망하라!
행19:8-20





T.V에 나오는 광고중에 한 생명선이 ’오실로스코프’에 화면으로 나타나는 장면이 있습니다. 우리에겐 대수롭지 않게 보이는 이런 상황이 정작 수술을 집도하는 외과의사의 눈에 비춰진 것이라면 이 [생명]을 표시해주는 이 선은 한 인간의 생명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건강할 때는 잘 느낄 수 없으나 우리의 신체중 어느 한 부분이라도 병들어 보면 그 한 부분이 얼마나 중요한 기능을 하는지 알 수 있고 그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온 몸은 심혈을 기울여 회복시키려 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내 몸에 병원균이 침입해 들어오면 온 몸은 사력을 다해 병균과 싸움을 벌이는 것입니다.
이 회복되는 과정을 부흥[Revival]이라고 한다면 신앙의 부흥도 이와 같습니다. 부흥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살고자하는 열망이 간절해야 합니다.
금번 여름캠프가 열렸던 양평 유스호스텔은 북한강 줄기가 흐르고 있는 계곡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연일 퍼붓는 빗줄기로 계곡의 물은 흙탕물로 무섭게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그 물줄기를 보다가 이 물 속에 살고 있는 물고기들은 어떻게 생존을 유지할까 궁금해 졌습니다. 급류에 떠내려가지 않으려고 몸부림을 칠 것입니다.
오늘 저는 사도바울이 3차 전도여행을 통해 에베소 도시에 전한 복음을 통해 어떻게 우리의 심령에 부흥을 가져올 것인가를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바울의 3차 전도여행 코스#
안디옥-다소-이고니온-에베소-드로아-빌립보-데살로니가-고린도-아덴...
에베소는 [아데미]라는 여신을 섬기는 본거지였습니다. 그림에 보면 아데미여신은 고대근동의 풍요와 다산(多産)의 신으로 앞가슴에 유방이 십 여개나 달려있는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에는 [아볼로Apollos]라는 사람이 먼저와 성경을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아볼로는 당시 유대주의와 헬레니즘을 융합한 철학이 성행했는데 이를 주장한 대표적인 인물이 [필로Philo]이고 그의 제자 중 학문이 많고 성경에 능한자이며 열심히 있는자 라고 했습니다.[행18:24] 그는 학문만 아니라 웅변에도 능했으므로 28절에 보면 ”이는 성경으로써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거하여 공중 앞에서 유력하게 유대인의 말을 이김일러라.” 했습니다. 그의 영향력은 대단하여 고린도 교회안에는 ”아볼로파”가 생겨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그의 지성과 열심이 한쪽으로 치우쳐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요한의 세례만 알뿐 예수의 세례는 모르고 있었습니다. 구약의 율법적인 가르침은 정확했으나 은혜의 복음이 무엇인지를 몰랐습니다.

요한의 세례는 메시야를 받아들일 수 있는 준비를 시키는 세례로서 율법을 통해 예수님을 알게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3:11에 요한이 직접증언 한 바에 의하면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것이요.”라고 했습니다.
예수의 세례는 종교적 의식으로서의 세례가 아닙니다. 성령과 불은 그 자체가 생명입니다.
구원은 어떤 의식을 치뤘느냐에 달려있지 않음을 알수 있습니다. 내가 유아세례교인입니다. 내가 군에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우리 집안은 대대로 기독교 가문입니다. 우리 어머님이 날마다 나를 위해 기도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 아내가 열심히 새벽기도에 나갑니다. 이런 것들은 내 구원과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하는 것들입니다.

바울이 에베소 교인들에게 질문했습니다.
[너희가 믿을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 바울은 그들에게 예수님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예수님이 구원자 이십니다. 예수님만이 우리를 무거운 죄책감으로부터 참된 자유와 해방을 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오늘날 많은 지성인들이 창조주 하나님은 믿는데 2000년전 이땅에 오신 구원자 예수는 믿지 않습니다. 예수님만이 구원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십니다.

♬884
괴로운 인생 길과 무거운 걱정과
어려운 생애라도 쉬운 한 길이 있네
이 길은 예수님 나의 참 구주
당신이 따르면 그는 참 당신의 길이요.

침례교의 특징중 하나는 [신자의 침례]를 강조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를 나의 구주로 믿는 분명한 신앙고백을 한자만이 진정한 침례를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 출석한지 1년이 지나면 자동적으로 받는 것이 아닙니다.
한 여자가 남자를 만나 진정한 사랑의 고백이 없다면 결혼식을 거행할 수 없는것과 같습니다. 사귄지 몇 년이 지났으니 결혼식을 올려야 되지 않겠느냐 했다가 나중에 알고보니 나 말고도 사귀는 사람이 여러명 있는 것을 알고 후회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침례교인들은 이 신자의 침례를 강조하기 때문에 교회사를 보면 칼빈 같은이는 [재침례파]라고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에베소 교인들은 바울의 분명한 예수의 복음을 듣고 예수의 이름으로 다시 침례를 받았습니다. 어떤 성도님이 저에게 물었습니다. 저는 다른 교파에서 세례를 받았는데 침례교에 와서 다시 침례를 받아야 합니까?
저는 형식속에 생명이 있다고 보지 않습니다. 꼭 결혼식을 올려야 부부가 된다고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형식보다 중요한 것은 내용입니다. 구원의 조건은 내가 예수를 내 개인의 구주로 모셔들이고 죄된 생활로부터 돌아섰느냐가 중요합니다.
침례의 의미는 로마서6:3-11에 자세히 나와있습니다.
1.성령으로 죄를 깨닫고
2.예수와 함께 죄인의 몸으로 죽고
3.장사지내고
4.예수와 함께 부활의 몸으로 일어나는 것.

바울이 안수할 때 성령이 임했습니다. 에베소 교인들은 성령의 은사로 주어진 방언도 하고 예언도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통해 희한한일들도 일어나게 하셨습니다. 19:12에 보면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했습니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마술하는 유대인들과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아들들이 흉내를 내다가 귀신들에게 혼이 납니다.
”악귀가 대답하여 가로되 예수도 내가 알고 바울도 내가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하며 악귀 들린 사람이 그 두 사람에게 뛰어 올라 억제하여 이기니 저희가 상하여 벗은 몸으로 그 집에서 도망하는지라....”(15-16절)
귀신은 영물이기 때문에 초 자연적인 능력이 있습니다. 무당들이 그 힘으로 작두날 위에도 올라가 춤을 추고 대나무를 잡고 흔들어 대는 것입니다.

신앙은 흉내내는 것이 아닙니다.
24절이하에 보면 은장색 [데메드리오]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이 사람은 아데미 여신의 은감실을 만들어 적지않은 수입을 올리고 있던 사람입니다.
에베소 사람들은 바울이 전하는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은 신이 아니라”는 복음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러자 아데미 장사가 안되었습니다. [데메드리오]는 아데미여신의 추종자들을 선동하여 그를 죽이자고 했습니다. 군중들은 연극장으로 모여 2시간 동안이나 아데미를 연호하며 소리쳤는데 32절에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찌하여 모였는지도 알지 못하였더라 했습니다.
1869년 대영박물관의 도움으로 T.J.Wood가 발굴한 에베소 연극장은 직경이 50m 되는 부채살모양으로 25.000명이 들어갈수 있는 거대한 장소입니다.

언제나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몇가지 반응이 나타납니다.
본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5종류의 사람이 등장하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중 어디에 해당되는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1. 아볼로
이는 신앙을 지식으로만 이해한 사람입니다.
성경의 많은 지식을 알고 있지만 삶속에 신앙화 되지 못했기에 더 깊고 새로운 지식이 있으면 언제라도 떠날 사람입니다.
2. 스게와의 일곱아들들
이들은 생명없는 전문종교인으로 예수님 시대의 바리새인 서기관 같은 사람들입니다.
신앙을 흉내내는 사람입니다.
3. 데메드리오
이는 철저하게 예수를 반대하는 사람입니다. 신앙을 개인의 이익의 재료로 사용하는 사람입니다. 자기에게 손해가 된다고 판단되면 어떻게든 그리스도인을 음해하고 공격합니다.
4. 회심한 에베소 교인들
이들은 자신의 삶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철저하게 돌아선 사람입니다. 이들 중엔 아데미 부적을 팔거나 이용하여 치부의 수단으로 살다가 은 5만이나 되는 마술책을 불살라 버린 회심한 사람들입니다. 은 5만을 환산하면 1일 노동자 품값을 5만원으로 계산하면 25억이나 되는 엄청난 금액입니다.
삭개오가 회심하고 자신의 재산 절반을 내 놓고 회개하듯 예수를 진정한 내 생명의 구주로 모신자는 기꺼이 물질을 포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L.A에서 큰 중국집을 경영하던 한국에서 살던 중국인이 예수를 믿었습니다. 그가 예수를 믿고나니 자기 집에서 담배를 파는 것이 잘못된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큰 도마위에 수십갑의 양담배를 올려놓고 작두같은 부엌칼로 양파썰 듯 잘라 쓰레기 통에 버렸습니다.
예수를 믿는 믿음은 물질보다 귀한 것입니다. 어떤이는 예수의 생명을 전하려고 직장도 버리고 정든 고향땅과 고국을 떠나 일생을 헌신하는데 왜 어떤이는 돈 몇푼에 신앙을 삶에 우선순위에서 언제나 둘째로 여겨 믿음을 값싸게 여기는지 안타깝습니다.

어저께 저희 교회 홈페이지에 들렀다가 기막힌 방문객을 봤습니다. 그는 각 교회 인터넷을 찾아다니며 자신을 홍보하고 있었는데 교직생활 10년에 공학사. 이학석사. 행정학석사를 갖고 있으면서 부적을 팔고, 궁합. 사주팔자를 봐주겠다며 자신의 홈페이지를 홍보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자신의 신분을 감추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게 그렇게 떳떳하고 자랑스럽다면 왜 정작 자신의 사진과 이름은 밝히지 않을까요?

5. 사도바울
이사람은 한때 예수를 무섭게 핍박하던 사람이였습니다. 스데반집사를 돌로 때려죽이기가지 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뒤 그는 이름을 사울에서 바울로 바꾸고 전혀 새로운 삶을 살았습니다. 결혼도 하지 않고 온전히 속죄하는 마음으로 일생을 복음전하는 선교사로 자신을 드렸습니다. 그는 당대 최고의 학문을 자랑했던 가말리엘의 문하생이였습니다. 그는 로마의 시민권을 가진 권력자였습니다. 그는 정통 유대종교 지도자인 바리새인중에 바리새인 이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자랑하던 것들을 신앙에 걸림이 될 때는 초개와 같이 버렸습니다. 분토처럼 여겼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에베소 시민들에게 생명되신 예수를 전했습니다. 이 복음이 들어가면 온 도시가 요동을 칩니다. 어둠의 세력들이 물러가면서 발악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가는 곳마다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히고 굶었습니다.
생명의 위협을 느꼈지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를 반대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17절에 나오는 것처럼 유대인과 헬라인들이 다 이 복음을 듣고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 두려움을 느끼면서 예수님을 찬양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기꺼이 은 5만이나 되는 마술책을 불태우고 따르는 믿음의 백성들을 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앙은 생명입니다.
생명은 흙탕물속에서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한 마리의 물고기처럼 거센 몸짖을 해야 합니다. 신앙의 부흥을 열망하지 않으면 우리 신앙은 서서히 죽어가고 말것입니다.
# 부흥이 일어나면 삶에 변화가 일어납니다.
진정한 부흥은 수많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이 영적으로 더 깊어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두려운 마음으로 자각하면 기도와 찬송이 뜨거워집니다. 거룩해지기를 원할 때 죄에 대해 깊이 통회를 합니다. 수많은 불신자들을 불쌍히 여기고 구원으로 인도하기 위해 복음을 전파하게 됩니다.
# 부흥은 확실하고, 크고, 실제적입니다.
# 부흥은 내 신앙생활의 변화입니다. 기도, 회개, 예배, 전도하는 것이 강렬해집니다. 전혀 새로워지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부흥이란 ? 정신을 차리고 산다. [wake up and live]는 의미입니다.
겔37:5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로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리라.”했습니다.
# 부흥은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개인적인 변화를 의미합니다. 죄책감으로부터 자유함. 영혼의 자유함.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천국의 노래가 넘쳐납니다.
# 부흥은 교회에 새로운 생명력을 가져옵니다. 믿는자들이 살아있는 몸의 머리에 더 가까워집니다. 마른 뼈들이 살아 움직이게 되고. 각 마디가 연합하여 움직여 큰 군대를 이루게 됩니다.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고 그들에 대한 구령의 열정이 불타오르게 되는 것입니다.
부흥을 갈망하십시다.
부흥이 오면 인생이 달라집니다. 활력이 넘쳐납니다. 네 배에서 생수가 넘쳐나리라 하신 말씀이 이뤄지는 것입니다.
이 부흥이 여러분의 삶속에 충만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