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가 부흥되려면/시15:1-5

교회가 부흥되려면/시15:1-5

교회가 부흥되려면
시15:1-5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유할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거할 자 누구오니이까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일삼으며 그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 그 혀로 참소치 아니하고 그 벗에게 행악지 아니하며 그 이웃을 훼방치 아니하며 그 눈은 망령된 자를 멸시하며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를 존대하며 그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치 아니하며 변리로 대금치 아니하며 뇌물을 받고 무죄한 자를 해치 아니하는 자니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영영히 요동치 아니하리이다

교회가 부흥되려면 교회의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성도들은 본문에 말하듯이 주의 장막(帳幕)에 거할 자가 되어야 되고, 주의 성산(聖山)에 거할 자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 부흥과 성장은 하나님의 백성이면 누구나 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뜻에 맞아 사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에 맞게 살아가면 틀림없이 교회는 성장하고 부흥될 것입니다.
몇 년 전에 학교 직원들과 여름 수련회를 가다가 휴게소에서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수련회를 갈 때 색안경(Sun glass)을 끼고 갔습니다. 누구나 색안경을 처음 쓰면 처음에는 세상이 이상하게 보입니다. 세상이 좀 어두워 보이기도 하고 푸른색 안경을 끼면 세상의 바탕이 푸른색으로 보이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색안경을 계속해서 쓰고 있으면 눈이 익숙해져서 그것이 정상인 것같이 느끼게 됩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서 휴게소에서 쉬는 동안 같이 가는 직원과 가게에 들어갔습니다. 들어가자마자 밖의 시야보다 어두워서 불평을 했습니다. \\\"야! 이 가게는 대낮인데 이렇게 어두컴컴하냐? 불 좀 켜놓지....\\\" 하니 옆에 있던 직원이 웃으면서 \\\"처장님이 색안경(Sun glass)을 쓰고 있으니까 그렇지요\\\"라고 했습니다. 나처럼 항상 안경을 쓰고 있는 사람은 더 쉽게 색안경을 끼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곤 합니다. 색안경을 끼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내가 보고 있는 상태가 정상이라고 확신할 때가 많은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가르쳐주지 않으면 자신은 모르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신앙생활에서 이런 문제에 빠져 있는 듯 합니다.
성경의 폭 넓은 면을 모르고 교회의 제한된 범위와 편협된 면에 너무나도 익숙해져서 자기가 보고 듣는 것이 지극히 정상이고, 전부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성도들이 많이 있는 것입니다. 성경을 폭 넓게 깊게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우리성도들의 신앙에 대한 아무런 문제도 찾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문제를 찾지 못하니까 교회의 부흥과 성장에 대하여 분석도 못하고 대처 방안을 수립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교회를 성장시키고, 부흥시키기 위해서는 때로는 벗기 싫은 자신의 색안경을 과감하게 벗고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다시 말해서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의 관점에서 교회와 성도들의 삶을 바라볼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1. 그리스도인의 삶의 자세

본문의 2-3절에 시편 기자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자세를 잘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이 교회와 신앙인들을 어떻게 보고 있느냐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교회 안 나오는 직장 동료나 이웃사람에게 전도하기 전에 한번 \\\"왜 교회 나오기를 싫어하십니까?\\\"라고 물어 보십시오. 근래에 나온 책으로 \\\"교회가기 싫은 이유 21가지\\\"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첫 번째 대답은 교인들은 \\\"이기주의자들이다\\\" 다시 말해서 고상하고 철학적인 단어를 사용하지 말고 직설적인 단어로 얌체들이라는 것이다.
교회라는 자기 집단의 이익만 추구하고 그 외에는 사회에 아무 것도 이익을 주지 못하고 했다면 성탄절에 쥐꼬리만한 일을 하고 생색만 내는 집단이라는 것입니다. 그저 자기교회만 키우고 부자되고 유명해지자는 것 외에는 관심이 없으면서 겉만 번지르하게 외치는 얌체들이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 대답은 \\\"맹신 자들처럼 보인다\\\"는 것입니다.
비판 능력을 상실하고 그저 교회라는 조직에 맹종하고 있는 어리석은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모 이단교단의 대학생 성폭력사건, 영생교 사건, 이모씨사건(목자님, 목자님 우리목자님 PD수첩에서 39%의 기억), 목사가 낀 집단 자살 사건, 가정을 등한시하고 이상한 교회에 빠진 자들, 극단적인 신앙생활을 한다든지, 다미선교회와 같이 휴거 소동을 일으킨 자들은 정상적인 우리와는 거리가 멀지만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은 이렇게 보고 있다는 것을 것입니다.
세 번째 대답은 \\\"위선자들\\\"이라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배우고 말하는 것처럼 산다면 세상은 벌써 뒤집어 졌을 것인데, 사랑을 외치면서 세상의 정말 어려운 사람들에게 죽어서 천당 가라는 돈 안 드는 말은 할지언정 희생적으로 구제에 나서는 교회는 많이 없더라는 것입니다. 그저 교회는 술, 담배 못하는 곳으로만 알려 져있을 뿐 장로, 집사들은 사회생활 한답시고 뒤에서는 상당수는 하더라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에서 대부분 은혜와 기쁨의 시간들로 보냈지만 때로는 교회에 대한 회의와 교회생활이 싫증이 날 때도 있습니다. 일평생 교회를 위하여 헌신하고 깊이 있는 교회의 내막을 아는 목사도 싫증을 느낄 때가 있다면 일반 성도들의 느낌은 어떠하겠습니까?
나의 신앙생활이 이와 같이 보였다면 어떻게 전도를 할 수 있으며 교회 부흥과 성장의 일부분을 책임 질 수 있겠습니까?
이 문제들의 핵심을 찾아보면 영적인 면은 내면적인 면이기 때문에 외적으로는 볼 수 없어서 판단을 할 수 도 없고 검증도 할 수가 없지만, 그 대부분의 영역은 의외로 영적인 차원의 삶에 대한 실망이 아니라 불신자들이나 교회내의 사람들이 신앙인들에게 실망을 느끼는 것은 실제 기도생활이 부족하거나 성경지식이 부족하거나 교회 훈련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실제로 영적이라는 말이 필요 없는 부분에서 나오는 변화되지 않는 미성숙한 추한 모습에서 상처와 실망을 주고받는 것입니다.
다른 집단의 사람들이 보는 것들이 우리성도들의 모습에서 살아질 때, 그리고 우리 성도들의 변화 된 삶을 통하여 교회를 부흥시킬 수 있고, 성장시킬 수 있습니다. 변화되지 않은 모습을 가지고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보여주면서 전도를 할 수 있습니까? 성도들의 변화되지 않은 모습은 어쩌면 교회지도자들의 책임인지도 모릅니다.

대부분의 교회에서는 계속해서 훌륭한 신앙이란, 기도 많이 하고, 성경 많이 읽고, 성경 많이 알고,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하는 것이라고 가르쳤습니다. 한쪽 면을 강조하여서 가르친 경향이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신앙생활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입니다. 믿음의 신앙과 행위의 삶이 하나일 때 균형잡힌 성숙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한쪽 면만 강조하여 가르친 결과 삶과 신앙이 불균형을 이룬 영적으로 미성숙한 성도들이 양산되었습니다.
여기에서 말한 영적이란 무엇을 말합니까?
대부분 \\\"워치만니\\\"가 주장한 극단적인 이분법 논리에 따른 영적 개념입니다. 영적 생활이란 단지 기도, 성경, 전도, 찬송, 예배, 영적교제, 들만을 의미하고 있지 않습니까? 영적이라고 생각하는 부분만 가르치고 그 외의 육적인 것은 가능한 피하고 무시하고 교회의 관심 영역이 아니라고 가르쳤고, 이것이 잘 못된 것이라고 인정한 이후에도 무의식적으로 이와 같이 계속 가르치고 있는 현실입니다.
그 결과 오늘날 교회는 불신자들에게 손가락질을 받는 상황에 도달하게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또한 교회 내에서도 영적이란 사람간에도 서로 상처를 주고받으며 실망을 느끼게 만들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영적인 삶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세상 사람들은 우리의 삶의 현실로 나타나는 모습을 보고 판단한다는 말입니다. 기도생활, 교회봉사, 성경묵상 등을 하지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이런 생활과 우리의 일상생활의 삶이 균형을 이루어야 된다는 말입니다.
우리 자신들의 삶의 자세를 먼저 변화 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교회가 성장되고 능력 있는 교회가 되고,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변화된 삶을 볼 때 믿지 않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공동체에 들어오게 되고 교회가 질적으로 부흥되고 양적으로 성장되는 것입니다.
2절에 정직하게 행하라, 올바른 일을 행하라, 진실 되고 참된 것만을 말하라, 한마디로 정직 하라는 것입니다. 사실 그대로만 말하고, 공의로운 일, 올바른 일을 행하라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개인 차원의 일입니다. 개인적 차원의 일의 문제는 나 자신과의 문제이고 아무도 볼 수 없는 영역의 일이라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의 Personal intigrity(성결, 고결, 정직)에 너무나도 약한 것입니다. 내 속의 이런 것들이 보이지 않는다고, 그러나 하나님은 보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한국 사람은 규칙과 도덕을 지키는 것은 걸릴까봐, 드러날 까봐, 경찰에게 적발될 까봐 규칙을 지키는 것이지 아무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스스로 정직함을 지키기 위해서 애쓰는 것이 너무나도 약하다는 것입니다.
10계명은 안 지켜도 되는데 11계명은 꼭 지켜야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11계명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들키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합한 자는 본문에 있듯이 정직한 자입니다. 문제는 신앙인들의 상당수가 정직하지 못한 상황에 대한 가책과 찔림이 마비되어가고 있고 정직하지 못한 상황을 합리화를 시키는 데는 도사들이 되어가고 있다는 말입니다.
주위에서 이런 말을 자주 듣곤 합니다. 굳이 말하자면 상황이 이래서, 어쩔 수 없어서, 상대의 얼굴을 봐서, 나는 마음이 없었지만 공동체의 혼란을 위해서, 가만히 있는 것이 시끄럽지 않게 하기 위해서 그런 후에는 잘못을 뉘우치기는커녕 자신의 처세를 자랑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습니까?

작년 온 나라를 들끓게 한 네 여자의 기막힌 연기를 보셨을 것입니다.
그들이 누구입니까? 장로들의 부인인, 교회 지도자인 권사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같은 성경공부반에서 성경공부 열심히 한 가까운 사이였습니다. 그리고 기도원, 선교회에서 같이 열심히 헌신, 봉사했다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한국 교회의 가장 취약한 치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모습입니다.
모두 새벽기도에 열심히 있는 분들입니다. 사건 이후 매일인지 매주인지는 몰라도 소문에 철야기도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사건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곳도 기도원, 선교회입니다. 특별 검사에 의하여 거짓증언이 하나씩 드러났습니다. 문제의 네 여인들이 자신의 거짓증언에 대하여 정직하지 못한 것이 대하여 회개하고 부끄러워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날짜가 조금 틀렸다고 그게 그리 큰 문제인가? 1000만원 짜리 물건값을 틀리게 말했다고 해서 그리 큰 문제인가? 왜 내만 뒤지는가? 저 사람을 뒤져야지, 정치적으로 나만 몰아 세우는 것이 억울하다. 정의가 굽어져 있다...등등 정직함의 감각이 마비되어 있는 추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인 것입니다.
이런 모습이 일부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이다.
이래서 어떻게 하나님나라의 확장하는 일에 쓰임을 받겠습니까?

2. 그리스도인의 삶의 가치관 정립


4절에 그리스도인이 가치관을 확립하는 것 중에 일부분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가치관이 정립되어 있어야 그의 행동이 정립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가장 하나님의 마음에 합(合)하였다고 불리운 다윗, 그의 어린 시절이나 청년 시절에 하나님과 가까이 동행하면서 하나님을 배워간 다윗이 본문에 \\\"주의 장막에 유할 자\\\" 주의 성산에 거할 자\\\"의 자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세,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 지라도 변치 않는 마음의 자세 이런 것들, 다시 말해서 존경과 겸손과 한번 맺은 약속을 지키는 의리의 가치관을 가졌다면... 이와 같이 기록된 자격이 우리의 성도의 가치관에 정립되어 있을 때 우리의 신앙 행동을 통하여 믿지 않는 사람들이 우리와 같은 공동체에 들어오기를 원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쉽게 설명하면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자는 누구냐는 말입니다. 우리 성도들의 가치관과 삶이 이렇게만 된다면 교회는 터져 나갈 것입니다. 이는 그리스도인의 마땅한 가치관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가치관이란?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가. 무엇이 아름답고 무엇이 추한가의 기준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가치관은 세상사람들의 가치관과는 다른 것입니다.
어떻게 달라야 합니까? 4절에 망령된 자라고 했는데 그 의미는 하나님이 버린 자, 타락한 자, 사악한 자라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는 자를 멸시하고 하나님의 법을 두려워하며 존대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의 가치관은 나에게 유익을 주는 자를 존대하고 나에게 도움이 안 되는 자는 멸시하니 이런 자기 중심의 가치관에서 하나님 중심의 가치관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이 가치관이 확립되어지면 약속한 것은 자신에게 손해가 될지라도 지켜지는 것입니다.
신의(信義)란? 약속한 것을 지키는 것, 신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도 신의를 지키거늘 하물며 그리스도인들이 신의가 없다는 말을 들어서 되겠습니까?
오랜 세월동안 신앙생활을 하는 도중에 너무나 많이 이 면에서 상처를 받고 주는 일이 우리의 현실이 아닙니까? 부끄러움을 고백할 줄 아는 저와 여러분이 되어야 합니다.

3. 그리스도인의 사회생활


5절에 그리스도인의 사회생활의 일부분을 말하고 있습니다.
교회 생활을 하면서 그리스도인의 영성은 높아졌을지 몰라도 도덕율의 타락에 대하여는 누군가가 붉은 등불을 켜고 경고해야 할 시대인 것만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세상 모두가 비양심적인 삶을 살아가도 그리스도인들만은 정직하게 살아가야 되지 않느냐는 말입니다. 차용보증서는 안 썼지만 친구가 빚을 갚지 않으면 대신 빚을 물어주겠다고 말로 약속한 친구의 빚을 대신 물어주는 신실한 성도가 되는 것이 다른 사람이 아니라 우리가 되어야 되는 것이 아닙니까?


5절에 변리로 대금치 말라는 말은 칼빈 이전에는 이렇게 성경을 해석했습니다. 이자를 받고 돈을 빌려주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날의 해석은 부당한 이득을 취하지 말라, 혹은 수고하지 않은 이득을 얻어서는 안 되는 의미로 해석을 합니다. 사회생활에서 자기가 수고한 만큼 소득을 얻어 살면 아무 죄가 없는 것입니다. 문제는 수고는 적게 하고 이익은 엄청나게 많이 얻으려는 마음에서 죄가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미국을 건국한 청교도들은 수고한 만큼만 부를 얻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겼고 그 이상은 죄라고 가르쳤던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경제원리에 벗어난 것 같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의 원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경제원리도 아니요, 사회나 인간욕심에서 나온 원리가 아님을 오늘 본문을 통하여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의 원리대로 살아갈 때

우리는 하나님 나라 확장과 그리스도 공동체를 건강하게 질적으로 부흥시키고 양적으로 성장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날 그리스도인들이 사회에서 저지른 죄가 바로 이런 것들입니다.

또 5절에 뇌물 받고 무죄한 자를 해치 말라는 말은 사회생활에서 정의를 행하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의 모든 일은 영적인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까?
꼭 예배보고, 성경 읽고, 기도하고, 교회에서 하는 일만 영적인 일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런 우리가 속한 세상의 일이 교회의 일이 아니라는 것이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세상에 속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성경(마 5:13-14)에 \\\" 너희는 세상의 소금, 빛\\\"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것처럼 영적인 면과 육적인 면을 워치만니처럼 신앙생활을 둘로 나누어 놓으신 적이 없습니다. 영적인 면과 육적인 세상살이면을 균형있게 성장한 전인격적인 성숙한 그리스도인을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한 \\\"정직하라, 남을 중상하지 말라, 참소하지 말라, 진실을 말하라, 훼방치 말라, 여호와를 두려워하라, 의리가 있어라, 대금치 말라, 뇌물을 받지 말라\\\" 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나와 여러분의 삶에 적용할 때 이런 우리의 모습을 볼 때 세상사람들은 우리가 속하여 있는 공동체에 들어오기를 원할 것입니다.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것이 전도요, 교회가 부흥되고 성장되는 첩경임을 믿습니다.
정보화 시대에 사는 우리들은 세상사람들이 부러워하고 닮기를 원하는 우리의 삶을 전도의 속도를 높일 수 있는 뉴스거리로 만들어 전도와 교회 부흥에 이용하여야 할 것입니다.
몇 주전 개신교의 거목 한경직목사님의 소천은 그의 삶이 최신 매스컴을 통하여 알려 질 때 최대의 전도 효과를 얻었을 것입니다. 이런 삶이 우리게 필요하고 교회 부흥의 첩경임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