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부흥 운동/느8:1-12

말씀의 부흥 운동/느8:1-12

말씀의 부흥 운동
느8:1-12





하나님의 계획

BC 722년 북왕국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의해 멸망 당했습니다. 그리고 BC 586년 남왕국 유다는 바벨론의 느브갓네살 왕에 의해 망하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1,2,3차에 걸쳐서 유다의 백성들은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이미 이사야와 예레미아 선지자들을 통해서 하나님을 떠난 패역한 자들에게 70년이라는 바벨론 포로생활이 있음을 경고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재앙이 아니라 평안과 장래의 소망을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임을 또한 선포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약속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스룹바벨과 에스라의 인도로 귀환을 하게 되었습니다. 느헤미아에 의해 3차 귀환이 시도 되었습니다. 그는 이미 에스라에 의해 스룹바벨 성전이 완성되었지만 아직도 이스라엘의 성벽이 폐허 상태로 남아있다는 고국의 소식을 페르시아의 수산궁에서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느헤미아는 민족을 향한 뜨거운 사랑을 가지고 금식하며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고국에 돌아가 성벽을 재건하기로 다짐을 하였습니다. 그는 페르시아에서 술 맡은 관원장으로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라를 사랑하는 불타는 애국심이 있었습니다. 그는 성벽재건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고국으로 돌아왔습니다. 느헤미아의 탁월한 지도력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의 방해와 시련이 있었지만 52일만에 성벽을 완성하는 놀라운 일을 이루었습니다.

성벽이 재건되었다는 것은 외적인 형식이 준비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이스라엘을 지킬 수 있고 보호할 수 있는 외적인 시스템이 완성된 것입니다.



성지교회가 사도행전의 비전을 이루는 교회로 든든히 서가기 위해서는 먼저 어떠한 공격에도 무너지지 않는 외적 시스템, 즉 조직이 정비되어야 합니다. 일의 질서를 갖추어야 합니다. 아무리 내용이 좋아도 형식이 갖추어 있지 않으면 외부의 공격에 쉽게 넘어질 수 있습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광야를 지나갈 때에 장인 이드로가 찾아와서 충고를 합니다. 지금처럼 혼자 모든 일을 감당하게 되면 자네도 지치게 될 뿐 아니라 모든 백성들도 진이 빠질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을 세워서 조직을 관리하고, 이끌어 가도록 합니다. 이것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을 향해 전진하는데 중요한 행정과 조직의 정비였습니다.

초대교회 공동체가 부흥할 때에 사도들은 조직을 재정비했습니다. 히브리파 유대인 공동체와 헬라파 유대인 공동체 사이에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그래서 그 문제를 해결하고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 일곱집사를 세운것입니다. 즉 조직과 행정을 정비한 것입니다. 성지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부흥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효율적인 조직과 시스템이 뒷받침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먼저 진행하고자 하는 것이 미비된 전산화 작업을 완성하는 것입니다. 이 일이 끝나면 여러분의 생일날 생일카드를 발송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행정적인 면에 있어서 질서를 세우려고 합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사전에 미리 보고양식에 기안을 해서 구체적인 계획이 세워지고, 그 행사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함께 기도하고 협력하기를 원합니다.

교회 일은 은혜로 하면 되지 무슨 형식이 중요하냐고 말씀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은혜로 한다는 것은 주먹구구식으로 한다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교회일은 세상 일보다 더 기획되어지고 준비된 가운데 진행되어야 합니다. 준비없이 일하다 보면 일의 효율이 떨어지고 원망 불평이 생기게 됩니다. 앞으로 이런 부분들을 정비하고 정리하여 효율적으로 행사가 진행되어 지도록 협력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직은 여러모로 부족하지만 앞으로 계속해서 행정적인 질서와 체계적인 시스템을 만들어 가려고 합니다.



느헤미아는 먼저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민족을 지킬 수 있는 든든한 조직과 형식을 갖춘었습니다. 이것은 바로 부흥의 출발이요 시작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조직이 잘 갖추어 있어도, 내용이 없는 조직은 유지될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느헤미아는 백성들의 문제점이 무엇인가를 먼저 파악했습니다. 포로생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스룹바벨 성전을 재건했습니다. 성벽을 완성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정작 하나님의 말씀이 희미해져 있었습니다. 백성들의 마음 속에 율법의 등불이 꺼져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비록 포로생활 동안 율법을 연구하고 가르쳤지만 점점 백성들의 마음 속에는 말씀이 사라져 가고 있었습니다. 그 결과 백성들은 영적으로 타락했습니다. 계속해서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일을 행했습니다. 이것을 안타깝게 여긴 느헤미아는 학사겸 제사장이었던 에스라를 강사로 모시고 민족의 영적 각성을 위한 부흥 사경회를 열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아무리 조직을 정비하고 인간적인 유대를 강화한다 할지라도 여러분의 마음 속에 진리를 사모하는 마음이 없으면 그것은 인간적인 모임에 불과합니다. 내 속에 진리에 대한 열망이 있어야 합니다. 예레미아 선지자와 같이 진리의 말씀을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뜨거운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진리의 등불이 꺼진 성도! 진리의 말씀에 대한 열정이 사라진 교회는 부흥을 이룰 수 없습니다. 진리의 말씀이 사라져 버린 냉냉한 가슴 속에는 성령의 불길이 타오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이 시대가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말씀의 기갈이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의 문제는 빵의 문제가 아닙니다. 바로 우리의 심령 속에 진리의 등불이 꺼진 것입니다. 그러기에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방황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시간 내 심령 속에 목마른 사슴이 물을 찾기에 갈급한 것처럼, 내 심령이 말씀에 대한 갈증이 있는가를 질문해야 합니다. 내 안에 말씀의 등불이 꺼져가고 있다면 다시 말씀의 기름을 채워야 합니다. 그리고 내 안에 거룩한 말씀의 부흥이 일어나야 합니다. 그때에 성지교회는 불같이 타오를 수 있습니다. 거룩한 진리에의 뜨거운 열망,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힌 성도들이 일어날 때 성지교회는 희망이 있는 것입니다.



때는 초막절이었습니다. 초막절은 오늘날의 추수 감사주일과 같은 절기입니다. 지금까지 지켜주시고 보호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모든 백성이 함께 모여 영광과 찬송을 드리는 날입니다.

수문 앞 광장에 새벽부터 정오까지 말씀을 알아들을 수 있는 모든 백성들이 함께 모였습니다. 그리고 에스라를 통해서 주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이 말은 진리의 말씀을 사모하며 준비하는 마음의 자세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일을 위해서는 많은 노력과 준비와 시간을 투자합니다. 그런데 내 영혼을 살리기 위해서는 얼마나 투자를 하고 있습니까? 값싸고 질이 좋은 물건을 하나 사기위해서도 얼마나 여기저기를 기웃거립니까? 영화 한편을 보기 위해서도 우리는 미리 준비를 합니다. 그리고 설레이는 마음을 가지고 극장에 갑니다.



그런데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나러 오는 주일에 여러분의 마음 속에 어떤 흥분이나 설레이는 마음이 있습니까? 오늘 하나님께서 나에게 어떤 말씀을 주실까에 대한 기대가 있습니까? 준비가 없는 예배, 기대가 사라진 예배는 김빠진 사이다와 같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말씀을 듣기위해 이른 새벽부터 정오까지 귀를 기울였던 것처럼 설레이는 가슴으로 기대를 가지고 주의전에 모이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기대하고 바라는 만큼 하나님은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아무생각 없이 앉아있는 사람에게 찾아오는 것은 졸음뿐입니다. 언제나 불평 불만이 앞서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님 여러분! 교회에 나올 때마다 진리를 사모하는 마음, 오늘 하나님께서 나에게 어떤 말씀을 주실까에 대한 기대하는 마음으로 참석하시기 바랍니다. 그럴때 말씀이 내 심령의 골수를 찌르기도 하고, 수술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습니다. 운동력이 있습니다. 그 진리의 말씀이 오늘 여러분의 가슴을 찔러 쪼개는 역사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수문 앞 광장에 모인 이스라엘 백성들은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에스라 목사님이 등장했습니다. 그리고 백성들 앞에서 모세의 율법책을 폈습니다. 진리의 말씀이 그들 앞에 펼쳐지는 순간 모든 백성이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그것은 바로 말씀에 대한 경외의 자세를 의미합니다. 우리 한번 해볼까요? 자 여러분 어떤 마음이 듭니까?



우리들이 음악을 들을 때 그 음악이 나오면 일어나야 하는 곡이 있습니다. 그냥 멍청하게 앉아있으면 무식하다는 소리를 듣습니다. 무엇이죠? 바로 헨델의 메시야입니다. 무한하신 하나님의 능력과 위엄을 찬양하는 그 순간 모든 사람들은 일어서지 않을 수 없는 감격을 가지게 되는 것이죠.



마찬가지입니다. 말씀을 사모하는 자들은 진리의 말씀이 나에게 들려올 때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들 속에는 말씀에 대한 경이감이 없는 것 같습니다. 성경말씀을 대하는 태도나 자세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교회오는 많은 분들 가운데 성경을 가지고 오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수면제로 사용하는 사람, 아무데나 집어던지고 함부로 대하는 사람, 한 손으로 덜렁거리고 들고 다니는 사람.

물론 성경책을 우상화 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말씀을 귀히 여기는 태도는 중요합니다. 말씀을 경외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자세를 우리는 배워야 합니다.



드디어 율법의 말씀이 백성들 앞에서 생생하게 들려졌습니다. 그 말씀을 듣는 백성들의 자세를 보시기 바랍니다. 6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다 같이 일어서서!

\\\"에스라가 광대하신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매 모든 백성이 손을 들고 아멘 아멘 응답하고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하였느니라.\\\"

진리의 말씀이 그들 가슴 속에 들려오는 순간 그들은 너무나 큰 하나님의 위엄과 신비 속에 그렇습니다. 진실로 그렇습니다. 믿음을 고백하며 일어섰던 자들이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해 하나님께 경배를 드렸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게 들려올 때 우리는 아멘으로 응답해야 합니다. 그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놀라운 사랑이 느껴질 때 우리는 엎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진리의 말씀에 내 심령 속에 울려 퍼질 때 아멘 아멘으로 응답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한국교회 상황을 보면 대부분 아멘을 잘하는 교회와 그렇지 않은 교회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아멘 잘하는 교회와 아멘을 안하는 교회 어느 교회가 성장할 것 같습니까?

당근이죠! 진리의 말씀 앞에 아멘으로 화답하는 교회가 성장합니다. 따라서 여러분 말씀을 들으실 때 그 말씀이 깨달아지면 아멘으로 화답하시기 바랍니다.



어떤 교회는 아멘 공포증에 걸린교회가 있어요. 기도를 해도, 말씀을 선포해도, 심지어 축도를 해도 아멘을 하지 않아요. 속으로는 하겠죠. 그러나 입을 열어 아멘으로 하나님의 은총에 화답하는 것 중요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어요. 억지로 아멘을 강요하는데 있습니다. 할 때 안할 때 때를 가리지 않고 아멘을 하는 것이지요. 저는 언제가 부흥회에 참석해서 그런 것을 보았어요. \\\"오늘 부흥 강사 목사님이 참으로 멋진 넥타이에 양복을 입고 오셨습니다. 할렐루야! 아멘! 멋진 넥타이 매고 온것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하고, 또 아멘이 어떻게 그렇게 절묘하게 매치가 되는지 알 수가 없어요. 나도 그 넥타이 매고, 멋진 양복 입어보고 싶다는 아멘인지 도대체 알 수 없는 국적불명 아멘이 있을때가 있습니다.

억지 아멘을 강요하는 것도 문제고요, 아무 생각없이 습관적으로 아멘을 남용하는 것도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나 진리의 말씀이 나에게 선포될 때 \\\"하나님 그렇습니다. 내가 그 사실을 확실히 믿습니다. 내가 이제야 그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멘 아멘! 이런 자세는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진리의 말씀 앞에 아멘으로 화답할 때 그속에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이루어 질 줄로 믿습니다.

말씀을 깨달은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울면서 회개를 했다. 9절 10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다함께 일어나야죠!

\\\"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우는지라 총독 느헤미아와 제사장 겸 학사 에스라와 백성을 가르치는 레위 사람들이 모든 백성에게 이르기를 오늘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일이니 슬퍼하지 말며 울지 말라 하고 느헤미아가 또 이르기를 너희는 가서 살진 것을 먹고 단 것을 마시되 예비치 못한 자에게는 너희가 나누어 주라. 이날은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아멘!



진리의 말씀이 그들의 가슴 속에 부딪힐 때에 울며 회개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죄와 허물을 지적합니다. 깨닫게 합니다. 말씀을 듣고 가슴 깊은 곳에서 터져나오는 회개가 있게 될 때 우리는 순전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아직도 우리 안에 남아 있는 죄악의 찌꺼기들이 있으면 하나님 앞에 모두 드러내시기 바랍니다. 말씀이 여러분의 마음을 찌를때에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말씀 앞에 회개하는 심령 속에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말씀 앞에 깨달은 심령 속에 기쁨과 감격을 주십니다. 울며 회개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느헤미아는 선포합니다. 오늘은 거룩한 성일입니다. 더 이상 근심하거나 슬퍼하지 마십시오.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우리의 힘입니다.

여호와를 기뻐한다는 것은 여호와를 사랑한다는 의미입니다. 누가 힘있는 자입니까? 공부 많이 하고, 세상의 권력을 많이 가진자입니까? 재물을 많이 모은 자입니까?

하나님을 깊이 사랑하는 자가 바로 힘있는 자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 가장 힘있는 자입니다.



야곱은 사랑하는 라헬을 얻기위해 칠년을 하루같이 일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랑의 힘입니다.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는 자는 아무리 어렵고 힘든 상황이 와도 불평하지 않습니다. 원망하거나 남의 탓으로 돌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뜻을 찾으며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을 구하게 됩니다. 그 속에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는 이루어 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바로 나를 변화시키고, 성지교회 공동체를 변화시키고, 민족을 변화시키는 근본적인 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다윗은 보잘 것 없는 물맷돌을 가지고 골리앗 앞에 나갔습니다. 엘리야 선지자는 850대 일로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과 대결했습니다. 그들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습니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을 사랑하는 열정 하나였습니다. 그결과 그들은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를 보여주었습니다.

사랑하는 성지가족 여러분! 여러분의 가슴 속에 진리의 말씀이 불타오를 때 가장 힘있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Back to the Bible! 말씀으로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심령 속에 말씀의 부흥 운동이 불길같이 타오르기를 소원합니다.

말씀이 살아 있는 사람, 그 속에는 넘치는 기쁨이 있습니다. 감사가 있습니다. 세상이 빼았을 수 없는 힘이 있습니다. 이 하나님이 주시는 놀라운 능력을 날마다 체험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