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부흥 느8:1-12
먼저 이 예배를 드리는 모든 성도님들의 심령가운데 영적 부흥이 일어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그리고 우리 대동교회에 하나님께서 놀라운 영적 부흥을 일으켜 주시기를 소망합니다. 성경에는 이스라엘의 부흥에 대해 여러 번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너무나 잘아는 사무엘 선지자를 중심으로 일어났던 미스바 대 부흥, 그리고 하나님 앞에 바로 서기를 원했던 왕들과 제사장, 선지자에 의해 이루어진 이스라엘의 부흥을 우리는 역사서를 통해 살펴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역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 성전 바깥에 있는 수문 앞에 모여 율법학사이자 선지자인 하나님의 사람 에스라를 통하여 위대한 영적 부흥을 이루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본문의 이스라엘의 부흥은 한마디로 말씀드려 말씀을 통한 부흥입니다. 따라서 저는 오늘날 영적 이스라엘 백성인 우리의 심령에 영적 부흥이 일어나기 위해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본문에 나타난 이스라엘의 부흥 장면을 살펴보면서 성도님들과 함께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우리의 심령에 영적 부흥이 일어나기 위해서 먼저 우리는
1.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목말라해야 합니다. 1,2절에 보면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이 에스라에게 율법책을 가지고 올 것을 요청했습니다. 그들은 에스라에게 철학에 대한 강의나 도덕이나 윤리의 강론을 부탁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에스라에게 말씀을 강론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말씀에 굶주려 있었던 것입니다. 일찌기 아모스선지자는 인류의 역사 가운데 이 말씀에 대한 심각한 기갈이 휩쓰는 한 시대가 도래할 것을 예언했습니다. 암 8:11-13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에서 동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달려 왕래하되 얻지 못하리니 그 날에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다 갈하여 피곤하리라\\\\\\\" 그러나 오늘날 이 세상은 그 옛날 아모스 시대보다 훨씬 더 큰 비극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오늘날 현대인들이 말씀의 풍요로움 가운데 살면서도 진정한 하나님의 말씀에 굶주려 있고 말씀에 굶주리고 목말라하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지도, 구하지도 않는 그러한 비극속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 나타난 이스라엘 백성은 영적인 기갈의 상태에 있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구했습니다. 그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야 한다\\\\\\\"는 이 진리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지금 모두 수문 앞 광장에 모여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이 말씀을 들을 때의 태도를 우리는 눈여겨보아야 합니다. 3절에 보게 되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수문 앞 광장에서 새벽부터 오정까지 남자, 여자 무릇 알아들을 만한 자의 앞에서 읽으매 뭇 백성이 그 율법 책에 귀를 기울였는데\\\\\\\" 새벽부터 오정까지 약 6시간동안 그것도 설교한 것이 아니라 말씀만을 낭독하는데 그들이 그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모습을 주목해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7절 하반절에 보게 되면 그들은 서서 이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또 13절을 보십시오. \\\\\\\"그 이튿날 뭇 백성의 족장들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율법의 말씀을 밝히 알고자 하여 학사 에스라의 곳에 모여서\\\\\\\" 6시간은 오히려 그들에게 부족했습니다. 그들은 그것만으로 말씀에 대한 갈증을 다 채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밝히 알고자 하여 이튿날 에스라의 곳에 모여 율법을 공부합니다. 그들은 6시간이나 말씀을 듣고도 이 말씀을 더 연구하고 말씀을 더 깊이 알고 싶어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이것이 부흥입니다. 진정한 영적 부흥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목말라하는 마음에서부터 일어나는 것입니다. 교회사를 살펴보면 이런 부흥이 일어났던 때가 종종 있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향해서 눈을 뜨기 시작했을 때, 이 말씀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가를 깨닫기 시작했을 때 그러한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말씀에 대해 목말라하는 마음! 바로 그 마음을 오늘날 우리가 가질 때 우리의 심령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해 놀라운 영적 부흥의 계기를 맞이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말씀의 권위에 대한 경외심을 가져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한 교회의 영성을 보려면 그 교회 교인들의 말씀을 받는 태도를 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여기 이스라엘 백성들이 말씀을 받아들이는 태도는 어떠했습니까? 5절에 보게 되면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이 열리자 사람들이 일제히 일어났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일어선다\\\\\\\'는 것은 지극히 존경하는 사람 앞에 자신의 경의를 나타내기 위해 취하는 행동입니다. 그리고 6절에 보게 되면 에스라가 놀라우신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매 이스라엘 백성들은 손을 들고 아멘으로 응답했습니다. 이것이 그들의 말씀에 대한 태도였습니다. 한 말씀 한 말씀이 주어질 때마다 \\\\\\\"아멘\\\\\\\"으로 응답하며 그 다음에 그들은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하였습니다. 말씀의 권위가 짓밟히는 곳에 성령의 역사는 없습니다. 말씀이 무시되는 곳에 살아계신 하나님의 역사는 없습니다. 오직 말씀의 권위가 존중되는 곳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십니다. (예화) 세계적으로 유명한 부흥사인 빌리그래함 목사의 자서전에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빌리 그래함 목사가 젊은 전도자 시절. 이성적인 친구의 성경에 대한 질문을 받고 성경의 권위에 대해 깊은 회의에 빠짐. 그는 골방으로 들어가 기도함. 골방에서 성경을 읽어가는데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니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이 가라사대\\\\\\\"하는 말씀들이 자기의 마음을 사로잡기 시작하는 것을 경험. 그리고 이렇게 외침. \\\\\\\"그렇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인데 누가 감히 반박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이렇게 기도. \\\\\\\"하나님 기차를 타고 비행기를 탈 때 그것들이 어떻게 가는지 그 방법을 과학적으로 다 이해하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기차를 타고 비행기를 타면 내가 원하는 목적지에 도착합니다. 또 나는 소가 푸른 풀을 먹은 후 어떻게 하얀 우유를 생산하는지 그 비밀을 다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내가 우유를 먹을 때 그것이 나의 몸에 놀라운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을 압니다. 이처럼 우리가 성경 말씀을 다 이해할 수는 없으나 이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이 말씀대로 믿고 행할 때에 이 말씀은 살아서 역사하는 말씀임을 분명히 믿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 말씀을 힘써 선포하겠습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우리가 잘아는 종교개혁자 M. Luther는 말씀의 권위를 저버리고 부패한 로마 카톨릭의 종교계를 향해 \\\\\\\"나의 양심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만 매여 있나이다\\\\\\\"라고 외쳤습니다. 종교개혁의 위대한 역사는 로마 카톨릭에 대한 저항에서부터 시작한 것이 아닙니다. 종교개혁의 시작은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에 대한 순복에서부터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면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인정해 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면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영화롭게 하십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습니까? 바로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인정하고 높이는 것입니다. 입술로는 \\\\\\\'하나님을 사랑한다\\\\\\\' \\\\\\\'하나님을 경외한다\\\\\\\'하면서 말씀을 전혀 무시하고 자기 마음대로 산다면 그 삶이 어떻게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삶이 되겠습니까?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인정하고 그 말씀의 권위에 순복할 때 우리들의 심령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해 영적 부흥을 맞이하게 됩니다.
3. 받은 말씀에 대해 전인격적인 응답을 해야 합니다. 전인격적 응답이란 지,정,의가 고루 갖추어진 응답을 말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이스라엘 백성들은 말씀을 사모하였고 말씀의 권위에 대해 순복하였고 또 그 말씀에 대해 전인격적으로 응답하였습니다. 먼저 지적인 응답으로 그들은 말씀을 깨달았습니다. 7절 후반과 8절을 보십시오. \\\\\\\"다 그 처소에 섰는 백성에게 율법을 깨닫게 하는데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하여 백성으로 그 낭독하는 것을 다 깨닫게 하매\\\\\\\" 또 12절을 보십시오. \\\\\\\"모든 백성이 곧 가서 먹고 마시며 나누어주고 크게 즐거워하였으니 이는 그 읽어 들린 말을 밝히 앎이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선포된 말씀을 밝히 깨달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진리에 대한 깨달음이 있는 곳에 변화가 있습니다. 부흥이 있습니다. 두 번째로, 말씀에 대한 정적인 응답으로 말씀을 깨닫고 울었습니다. 9절입니다. \\\\\\\"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우는지라\\\\\\\" 그들이 들은 말씀은 율법이었습니다. 율법의 중요한 기능은 죄를 깨우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율법으로 인해 우리 자신이 죄인이고, 우리의 죄 때문에 심판을 피할 수 없는 우리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러한 우리 자신을 볼 때 어떻게 내가 가만히 있을 수 있습니까? 어떻게 내가 하나님 앞에서 울지 않을 수 있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울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말씀을 통하여 흘리는 이 눈물은 무가치한 눈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 눈물이 이제 나로 하여금 새로운 심령으로 변화시켜주고 이 눈물은 죄사함을 얻은 거룩한 기쁨으로 변하기 때문입니다. 다음에 올 기쁨을 알지 못하고 자기 연민에만 빠져있는 후회의 눈물은 성경이 가르치는 진정한 회개와 다른 것입니다. 죄에 대한 슬픔은 귀한 것이지만 그것이 하나님 안에서 말씀 안에서 새로운 기쁨을 방해하도록 거기에만 얽매여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에스라는 어떻게 말합니까? \\\\\\\"슬퍼하지 말며 울지 말라\\\\\\\"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자기 자신의 속에서 기쁨의 이유를 발견하지 못했던 그들이 이제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뻐합니다. 이 기쁨이 그들에게 능력과 생명이 됩니다. 이 눈물과 기쁨은 다 함께 이스라엘 백성들의 말씀에 대한 응답의 정적인 표현입니다. 세 번째로 말씀에 대한 의지적인 응답으로 말씀에 순종하였습니다. 우리가 읽지는 않았지만 13-16절을 보게 되면 그들은 말씀을 통해 \\\\\\\"초막절에는 초막을 짓고 초막에 거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들었습니다. 그들이 이 명령을 들었을 때 아무도 자기의 사정 때문에 지킬 수 없다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그 말씀대로 초막을 지었습니다. 말씀대로 순종하였던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고 그 말씀 앞에 아무리 춤을 추고 감격해도 이 말씀대로 순종하겠다는 의지적인 삶의 결단이 없다면 이것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만약 이스라엘 백성들이 말씀을 듣는 것으로만 그쳤다면 그들의 심령에 부흥이 일어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들려진 말씀을 깨닫고 그 말씀의 권위에 순복하여 말씀대로 순종할 때 그들에게는 큰 기쁨과 심령의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제가 성경과 초대로부터 시작된 모든 교회들의 역사를 통해서 성도님들에게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감동하는 것으로만 그친 것이 아니라 듣고 순종하여 그 말씀을 지킬 때에 놀라운 변화가, 놀라운 부흥의 역사가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아침 우리의 심령에 영적 부흥을 맞이하기를 원하십니까? 그러시다면 오늘 이스라엘 백성이 말씀을 애타게 사모하였던 것처럼 간절한 목마름을 가지고 말씀을 사모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이 말씀의 권위에 순복하였던 것처럼 오늘날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을 아멘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또 이 말씀을 전인격적으로 받아들이고 그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바로 그렇게 할 때 우리들의 심령에 놀라운 영적 부흥이 일어날 것을 분명히 확신합니다.
바라기는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해 우리 모두의 심령에 위대한 영적 부흥이 일어나고 주님의 몸된 대동교회에 놀라운 영적 부흥이 일어나기를 높으신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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