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문 앞에서의 부흥회/느8:1-6

 수문 앞에서의 부흥회/느8:1-6

수문 앞에서의 부흥회
느8:1-6





요즘 저의 생각은 온통 성전 건축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기도를 해도, 길을 걸어도, 잠을 자도, 좋은 집을 보아도, 심지어 목욕탕 속에 들어가 앉아도 성전 건축에 대한 생각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지난주간 새벽에 이 단에 엎드려 성전 건축 때문에 고민을 하고, 기도를 드리고 있는데 제 마음속에 들려진 성?음성이 있었습니다.
\\\"종아! 죽어 있는 성전 세우느라고 고민하지 말고, 먼저 살아 있는 성전을 먼저 세워라\\\"
\\\"종아, 눈에 보이는 성전은 내가 세워주마, 너는 먼저 마음의 성전을 세워라\\\"
\\\"네 마음속에, 온 성도의 마음속에 성령 하나님이 거하실 수 있는 심령 부흥을 일으켜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홍익공동체는 새 천년과 함께 새 성전의 꿈을 꾸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와 여러분이 먼저 꿈꾸며 사모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살아있는 성전, 심령의 성전을 먼저 아름답게 세워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심령 속에 부흥의 불길이 일어나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가정이 삽니다.
그래야 우리 교회가 살고, 이 나라 이 민족이 삽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위대한 부흥의 현장을 보여줍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 온갖 어려움과 박해속에서도 무너진 예루살렘 성을 52일 만에 재건축하고, 성전 수문 앞에 모여서 부흥회를 가지고 있는 장면입니다.

느헤미야서는 두 사람의 훌륭한 지도자가 등장합니다.
한 사람은 느헤미야입니다.
그는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유대인의 후손으로 페르시아 제국 아닥사스다 왕을 옆에서 보좌하는 고위직 관원이었습니다.
그가 페르시아 제국의 왕궁에서 호의호식하며 권세를 누리고 있던 어느 날 조국 예루살렘에 대한 소식을 듣게 됩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무너지고, 성문들은 불타버리고, 사람들은 업신여김을 당하며, 큰 환란 가운데 고통을 겪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느헤미야는 조국의 재건을 위해 왕의 허락을 받아 유대의 총독이 되어 고국 예루살렘으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수많은 난관과 어려움을 뚫고서 백성들과 함께 예루살렘 성을 재건합니다.
그는 위대한 행정가요, 신앙의 사람이었습니다.

그 다음 또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바로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학사 에스라입니다.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성의 재건이라는 막중한 과업을 감당했다면 에스라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심령의 집을 재건하는 지도자였습니다.

무너졌던 예루살렘 성이 재건되었습니다.
건물이 지어졌습니다.
도시는 새롭게 세워졌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사람들의 마음은 텅텅 비어있습니다.
도시의 재건, 예루살렘 성의 재건을 위해서 느헤미야를 불러 쓰셨던 하나님께서는 이제 다시 이 도시 사람들의 심령의 재건을 위해서 성경학자요,
설교가인 에스라를 부르십니다.

그는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성으로 돌아오기 약 14 년 전에 일단의 무리들과 함께 고국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에스라는 페허가 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면서 중대 결심을 하나 한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그 결심은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보다도, 먼저 사람들 속에 무너진 심령의 전을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성전도 중요하고, 무너진 성벽을 다시 쌓는 일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백성들의 심령의 전이 바로 세워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사람들의 심령의 집을 바로 세우기 위해 자신을 헌신하여 드립니다.

오늘 우리 시대의 비극은 산업 문명은 발달하고, 정보문명은 엄청나게 변하고 있지만 정신문명은 따라가지 못하는데 있습니다.
땀을 흘리며 애써 돈을 벌고, 좋은 아파트와 자동차를 샀으나 우리 마음의 정원을 황폐하도록 내버려두었습니다.
살만해졌습니다.
그런데 부부가 이혼합니다. 왜요?
심령의 집이 제대로 세워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동해안 잠수정이 침투하여 좌초되었을 때, 그 잠수정을 제일 먼저 발견하고 신고했던 택시 운전사. 그는 그 공로로 보상금을 탔지만 그후에 그 가정은 이혼하고 말았습니다.
그 보상금을 관리할 수 있는 마음의 집이 제대로 지어져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북미대륙과 남미대륙을 보십시오.
영국에서 청교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대로 읽고 가르치며 그리고 그들의 신앙의 표현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 북미대륙에 왔습니다.
그와 때를 같이하여 구라파의 일단의 사람들, 스페인, 북구라파, 영국 사람들이 황금을 찾아 남미에 왔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전혀 달라졌습니다.
남미를 찾았던 사람들은 황금도 잃어버리고, 삶의 가치도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나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말씀을 따라
주님을 내 삶의 가장 중요한 자라에 두기로 결심하고
그 주님을 섬기고, 그 주님을 사랑하고, 그 주님을 높이는 일에 삶의 우선 순위를 두고 북미대륙을 찾아왔던 사람들은 하나님도 찾았고,
자유와 번영과 행복을 동시에 찾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 교회는 이제 눈에 보이는 새 성전을 지으려고 합니다.
이것은 귀하고 근사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하고 귀한 일이 있습니다.
살아있는 성전, 내 심령의 전이 먼저 아름답게 지어져야 합니다.
우리가 눈에 보이는 성전을 건축하고자 함은 바로 이 심령의 전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 이 건물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을 주시하여 보십시오.
다행스럽게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을 쌓고 성전을 건축했지만 그것만으로 그들이 행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심령의 문제임을 알았고,
심령의 집을 바로 세우기 위해 지금, 수문 (Watergate) 앞에 모여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지금 먼저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오늘 본문 1절을 보십시오.
\\\"이스라엘 자손이 그 본성에 거하였더니 칠월에 이르러는 모든 백성이 일제히 수문 앞 광장에 모여 학사 에스라에게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명하신 모세의 율법 책을 가지고 오기를 청하매\\\"

저들은 심령의 전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 에스라에게 먼저 요구했던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십시오.\\\"

심령의 집은 다른 어떤 것으로 세워지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세워집니다.
눈에 보이는 집은 죽은 벽돌로 쌓아 세울 수 있지만 살아있는 성전,
우리 마음의 성전은 죽은 돌로 세울 수 있습니다.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만으로 세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들은 지금, 위대한 성경학자요, 설교자인 에스라에게 하나님의 말씀 강론하기를 청했습니다.
1절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저들의 열망을 보십시오.

\\\"모든 백성이 일제히 수문 앞 광장에 모여 모세의 율법책을 가지고 오기를 청하매\\\"
성이 건축된 후 저들은 이렇게 외치지 않았습니다.
\\\"자 여러분, 성이 건축되었습니다.
성전도 건축되었으니 이제, 우리 모여 축제를 벌입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런 요청을 한 것이 아니라
\\\"에스라 목사님, 성경을 가지고 오셔서 우리에게 성경 말씀을 강론해 주십시오\\\"
우리가 말씀을 듣는 태도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고 봅니다.
하나는 억지로 마지못해 듣는 태도이고, 다른 하나는 자원해서 듣는 태도입니다.
다시 말하면 경청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건성으로 듣는 경우가 있습니다.은혜 받고 변화 받고 축복 받는 태도는 사모하고 경청하는 태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수문 앞 광장에 \\\"일제히\\\"모였다고 했습니다.
일제히 모였다는 것은 빠짐없이 모였다는 것이고 모두가 한결같이 말씀을 그리워하고 듣기를 사모하는 심정으로 모였다는 것입니다.

내내 말똥말똥하다가도 기도 시간만 되면 하품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내내 정신이 또렷또렷하다가도 설교 시간만 되면 졸기 시작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은혜 받는 비결이나 태도는 수문 앞 광장에 모였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자원해서 모이고 사모하고 요청해야 합니다.
억지로 먹는 밥은 별로 맛이 없습니다.
억지로 따라가는 길은 재미가 없습니다.
여러분, 올해는 자발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합시다.
자원해서 말씀에 귀를 기울입시다.

여기 이스라엘 백성들은 눈에 보이는 성전이 건축되었다는 사실만으로는 절대 행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마음의 전을 건축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이 열정이 일어나야 하겠습니다.

그 다음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했는지 보겠습니다.
2절 이하의 말씀을 보십시오.
\\\"칠월 일일에 제사장 에스라가 율법책을 가지고 남자, 여자 무릇 알아들을 만한 회중 앞에 이르러 수문 앞 광장에서 새벽부터 오정까지 남자, 여자 무릇 알아들을 만한 자의 앞에서 읽으매 뭇백성이 그 율법책에 귀를 기울였는데\\\" (2,3절).

새벽부터 오정까지, 약 6시간 정도가 될 것입니다.
약 6시간 동안 에스라 목사님은 지금 하나님의 백성들을 앞에 두고 성경 봉독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어느 주일 아침을 선택해서 그 날 아침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성경 봉독만 6시간 동안 계속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아마도 그 6시간 동안 계속 자리에 남아 있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떤 반응을 보입니까?
뭇 백성이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코를 고는 것이 아니라 6시간 동안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이 선포될 때 이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본문 5절을 보십시오.
\\\"학사 에스라가 모든 백성 위에 서서 저희 목전에 책을 펴니 책을 펼 때에 모든 백성이 일어서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금 6시간 동안이나 일어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6시간이라니요? 예배 시간에 5분간 서 있는 것도 다리가 아파 죽을 지경입니다.}

그리고 13절을 보십시오.
\\\"그 이튿날 뭇백성의 족장들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율법의 말씀을 밝히 알고자 하여 학사 에스라의 곳에 모여서.\\\"
6시간 동안이나 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던 사람들의 반응입니다.
그들은 그 말씀을 밝히 알고자 하여 이튿날 또 모인 것입니다.
도대체 성경 말씀이 얼마나 좋은 것이기에, 성경에 대한 사람들의 끝없는 갈증을 보십시오.
그들은 6시간이나 말씀을 듣고도 이 말씀을 더 연구하고 말씀을 더 깊이 알고 싶어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부흥입니다.

시편 기자는 \\\"내가 주의 계명을 사모하므로 입을 열고 헐떡였나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기도원에서 묵상하며 준비하면서 설교자인 내 자신 속에 이런 갈증이 없었음을 회개했습니다.
그러면서 성령 하나님께서 제 마음속에 이 갈증을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올 한 해,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소원하는 많은 기도가 있지만 가장 갈급하게 부르짖어야 할 기도는
\\\"주님, 내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갈 함을 주옵소서!
내 심령의 전을 세울 수 있도록 말씀을 사모하는 열정을 주옵소서!\\\"여야 합니다.

그 다음, 우리는 수문 앞에 모여서 말씀을 받고 있는 무리들의 태도를 통해 큰 은혜를 받게 됩니다.

누군가가 말하기를 한 교회의 영성을 보려면 그 교회 교인들의 말씀을 받는 태도를 보라고 했습니다.
말씀을 받는 태도로 개인의 영성을 측정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얼마만큼 건강함을 유지하고 있는가?
영적으로 하나님과 얼마나 가까운 자리에서 삶을 살고 있는가를 척도하기 위해서는 말씀을 다루는 태도, 성경을 접근하는 태도, 말씀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인식을 보라고 그는 말했습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말씀을 받는 태도는 어떠합니까?

첫째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일어섰습니다.
일어섰다는 것은 공감과 동의와 찬양을 의미합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이 에스라를 통해 낭독되고 있는데 멍청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우린 여기서 참으로 멋지고 아름다운 장면을 보게 됩니다.
수문 앞 광장에 새까맣게 사람들이 모여 앉아 있습니다.
제사장의 예복을 입은 에스라가 두 손으로 모세의 율법책을 받쳐들고 나타나자 갑자기 조용해졌습니다.
높다랗게 만든 나무 강단에 에스라가 올라가 우렁찬 목소리로 말씀을 낭독하기 시작하자 모든 백성은 약속이나 한 듯 조용하게 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서 있습니다.
이것이 그날 수문 앞 광장의 스케치입니다.
말씀의 낭독 소리가 울려 퍼지자 일제히 일어서는 백성들…….그것은 말씀을 사랑한다는 표시이며 존경한다는 표시이며 순종하겠다는 표시이며 행동을 함께 하겠다는 표시인 것입니다.
저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앉아서 들을 수 없어서 일어났습니다.

둘째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손을 들고 아멘하고 응답했습니다.
6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에스라가 광대하신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매 모든 백성이 손을 듣고 아멘 아멘 응답하고 몸을 굽혀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하였느니라.\\\"
놀라우신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매 모든 백성들이 손을 들고 아멘으로 응답했다고 말씀합니다.
\\\"아멘\\\"이라는 말은 \\\'믿습니다.\\\' \\\'진실입니다\\\' \\\'내가 그렇게 살겠습니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맹세할 때 아멘으로 응답했고, 신앙을 고백할 때, 그리고 서로 믿고 신뢰할 때 아멘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여기 말씀의 권위에 대한 그 백성들의 태도를 보십시오.
얼마나 그들이 진리를 공감했는지, 얼마나 그들이 진리에 참으로 승복하기를 원했는지, 한 말씀이 주어질 때마다 \\\"아멘, 옳습니다\\\"라고 반응하며
말씀을 베푸시는 그 하나님 앞에 그들의 영혼을 굴복시켜 하나님을 경배하고 있는 백성들의 모습을 보십시오.
이것이 부흥입니다.
바로 이것이 살아있는 성전이 되어 가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마다 아멘의 응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 다음 우리가 살펴보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세 가지의 전인격적인 응답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첫째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말씀을 깨달았습니다.
7, 8절 끝 부분에 \\\'깨닫게 했다고 했습니다.\\\'
13절에 보면, 종교지도자들이 율법의 말씀을 밝히 알고자 하여! 라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신앙생활을 자꾸 가슴으로만 느낄려고 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우선 잘 깨닫는 지적인 반응이 중요합니다.
설교자의 책임은 말씀을 듣는 사람들에게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설교를 듣는 사람들은 말씀을 듣고 깨달아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말씀을 먼저 지성으로 깨달았습니다.
말씀의 진정한 의미와 참된 뜻을 그들은 깨달았습니다.
왜 성경이 재미없다고 말씀하십니까?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마13장에 보면 예수님 비유 가운데 말씀을 받는 마음 밭의 비유가 나오고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잘 알고 있는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맺는 좋은 밭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라고 그랬습니다.
잘 깨달아야 합니다.

둘째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말씀을 깨닫고 울었습니다.
그들은 직접적으로 말씀을 깨달았을 뿐만이 아니라 율법의 말씀을 듣고 울
었다고 기록합니다.
이것은 감성적인 반응입니다.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니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한 자신을 바라보면서 울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이 눈물은 회개의 눈물이었습니다.
또한 이 눈물은 은혜의 눈물이었습니다.
슬픔과 기쁨에 뒤섞여 말씀 앞에서 울고 있는 이 하나님의 백성들의 감성의 표현을 보십시오.

오늘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 죄악에 대한 눈물이 있어야 합니다. 또한 용서하심과 주의 사랑에 대한 기쁨과 감사가 있어야 합니다.

셋째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말씀대로 순종했습니다.
13절 이하의 말씀을 보십시오.
저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읽다가 보니 초막절에는 마땅히 초막에 거해야 한다는 말씀이 발견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했습니까?
그들은 산으로 가서 감람나무, 종려나무 가지들을 꺾어와서 어떤 사람들은 지붕 위에, 혹은 뜰 안에, 혹은 하나님의 전 뜰에, 혹은 광장에다 말씀대로 초막을 짓습니다.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다가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을 접합니다.
그러면 그대로 해야 합니다.
성경을 읽다가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빌4:6)는 말씀을 보았습니다.
이 말씀을 읽자마자 {아...하나님이 내게 말씀하시는구나}라고 깨달으면서
염려를 즉각적으로 중단하고 무릎 끊고 기도하며 주님께 맡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성경을 읽다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는 말씀을 보았습니다.
그랬을 때 우리는 그 말씀대로 복음 전파에 직접적, 간접적으로 힘써야 합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바울이 설교할 때, 바울의 말을 사람의 말로 받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저의 말을 들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제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은 들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의 영혼의 병을 치료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에게 복을 받도록 도와 드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의사에게 가서는 말도 참 잘 듣습니다.
가슴을 걷어올리라고 하면 주저 없이 올립니다.
\\\"엉덩이에 주사 한 대 맞읍시다\\\" 하면 부끄러움 없이 엉덩이를 드러냅니다.
\\\"오른쪽 배를 수술하겠습니다.\\\" 하면 전신을 맡깁니다.
그것은 의사가 자기를 고쳐 줄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내 심령의 성전이 바로 세워지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자신을 맡겨야 합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순종하여 드려야 합니다.

대학생들이 논문을 쓸 때, 어떤 자료에서 어떤 이론을 인용했는가에 따라서 논문의 질이 결정됩니다.
마찬가지로 내 철학이나 내 견해나 사상이나 의견이 하나님의 말씀에서 인용되었을 때 우리는 살아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았을 때, 믿음의 가문을 일으켰고, 축복받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했을 때, 위대한 왕이 될 수 있었습니다.

베드로와 제자들은 깊은 곳에 가서 그물을 던지라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했을 때, 빈 그물 가득히 고기를 끌어올릴 수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의 지배를 받게 될 때, 살아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되어서 크고 놀라운 하나님의 기적을 볼 수 있습니다.

올 한해 우리에게 소망이 있다면 \\\"두 손을 높이 들고, 내 심령의 성전을 건축하는 한 해\\\"가 되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