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회복과 교회의 부흥/느8:1-12

말씀의 회복과 교회의 부흥/느8:1-12

말씀의 회복과 교회의 부흥
느8:1-12





느헤미야서를 보면 백성들이 예루살렘 성전은 재건하는 일에 하나같이 열심을 낸 것 같이 보이지만 학개서를 보면 그렇지가 않습니다. 백성들은 자기 집을 짓는 일에는 열심이 있었지만 성전을 재건하는 일에는 열심을 내지 않았습니다.
학개 선지자의 도전과 느헤미야 총독의 격려를 힘입어 성전을 짓는 일에 열심을 내게 되 었습니다. 성전 재건과 성벽 건축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대적들의 방해가 심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도자와 백성들은 모든 위기와 어려움을 극복하고 드디어 성전을 재건했고, 성벽까지 완공을 했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한 가지 더 필요한 것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신들이 힘써 완공한 성전 건축 공사가 보람있는 일이 되기 위해서는 한 가지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와 상황이 비 슷한 것 같습니다.

우리 교회는 우리가 꿈꾸던 이상형의 교회당을 완공하지는 못 했다 하더라도 나름대로 우리 교회가 기본적으로 교회사역을 수행할 수 있는 교회당은 완성한 셈입니다. 그렇다면 이 교회당은 교회당이라고 하는 건물로서 충분한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을까요?
이 건물이 충분한 의미를 지니는 건물이 되려면 우리가 이 건물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겠 습니까? 우리는 이 건물을 지을 때 우리가 왜 이 건물을 지으려고 했는지를 돌아봐야 합니다.

우리는 건물 안에 있는 사람들 때문에 이 건물을 지었습니다. 다시 말해 이 건물 안에 있는 교회인 우리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교회가 되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수행하기 위해서 이 건물을 지었습니다.

이 건물을 지을 때 잘 지어보려고 나름대로 최선의 노력을 다 했습니다. 그래서 나름대 로 예쁘게 지어졌습니다. 그렇다면 예쁘게 지었다는 것으로 우리가 만족해야 할까요? 건 물이 예쁘게 지어졌기 때문에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합니다.

그 다음 단계란 것은 결국 이 건물을 사용하게 될 사람들의 문제입니다. 이 건물을 사용하는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느냐 하는 문제가 남아있고,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느냐 하는 문제가 남아있습니다.
이 건물의 주인이 되는 우리 교회 식구들이 이 건물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 것인가에 대 한 의식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교회당 건물을 잘 짓기 위해서 존재하는 교회 가 아닙니다.

오히려 잘 지은 교회당을 잘 사용하기 위하여 존재하는 교회입니다. 좋은 교회당을 지어 놓고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이 무엇이어야 하겠습니까? 어떻게 하면 좋은 교회가 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 어떤 교회를 세워갈 것인가를 생각해야 하고, 우리가 이 건물을 통해서 교회 사역을 어떻게 해 나갈 것이냐를 생각해야 하고, 우리가 어떤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할 것을 생각해야 하고,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야합니다.
이 모든 것을 이루어 나가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것이 하나님의 율법,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을 완공한 이 시점에 서 자신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하나님의 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 교회 가운데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라고 물었을 때 일차적으로는 우리가 모일 교회당 공간이 필요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교회당이 마련
된 지금에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라고 묻는다면 뭐라고 답해야 할까요?

예, 두말 할 필요도 없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만약에 교회당만 있고 그 교회당 안에 말씀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요? 아무리 아름답고 큰 교회당이라 할지라 도 그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아름다운 교회당은 하나의 관광명소에 지나지 않을 뿐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서 제가 아주 충격을 받은 것은 영적인 지도자들이 주동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 편에서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요청하고 있는 장면입니다.
지금까지는 성전을 재건하는 일 때문에 느헤미야가 주도적인 역할을 했지만 이제부터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일 때문에 자연스럽게 에스라가 주도적인 역할을 하게 됩니 다.

백성들 전체가 일제히 일어나 수문 앞 광장에 모여서 학사 에스라에게 모세의 율법책을 가져오기를 요청합니다. 정말 감동적인 장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 전 역사 가운데 이런 장면은 전무한 일에 속합니다.

대부분은 영적인 지도자들이 앞장 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고 백성들은 늘 수동적이었 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전혀 그렇지가 않습니다. 백성들 편에서 더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싶어 했고, 알고싶어 했고, 깨닫고 싶어했습니다.

정말 놀라운 부흥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단순히 사람들의 숫자가 불어나는 부흥과는 질적으로 다른 부흥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굶주리고 있는 장면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아름다운 교회당을 볼 때 충분하다고 생각합니까? 몇 천명 모인 다는 것으로 충분할까요? 느헤미야 당시의 백성들은 충분치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으면 어떤 일도 쓸모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굶주리고 있었다는 증거가 무엇입니까? 백성들이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구했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교회당을 출입하는 교인이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에 관심이 없는 신자들이 있습니다. 영국 같은 데서는 교회당에 갈 때 아예 성경책을 가지고 가지 않는다고 합니 다. 성경책을 가지고 가도 설교 시간에 펼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성도들은 아직은 하나님의 말씀에 굶주리고 있습니다. 성경책을 들고 교회당에 올뿐만 아니라 설교 시간에 열심히 성경을 펼쳐서 살펴 봅니다.
그리고 성경공부 같은 모임에 열심히 참석하는 편입니다. 영적인 지도자인 저로서는 이 렇게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굶주려 있을 때 열심히 성경 을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도 언젠가는 영국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관심하지 않을 때가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목마름이 있고, 굶주림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들 처음 예수님을 믿을 때나 젊은 날에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굶주림을 가지고 사모 하는 마음을 가집니다. 또한 성경공부 모임에도 참석해서 열심히 배우려고 합니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으면서부터는 벌써 바쁘고 분주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할 여유가 없습니다. 마음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여유를 내지 못합니다. 결혼을 하고 자녀를 키울 때일수록 하나님의 말씀은 더욱 더 절실해집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할 여유가 없으니 정말 영적인 삶을 살기 가 더 어려워집니다. 그래서 대부분 주일날 드리는 예배의 설교에 의존하게 되는데 그것 만으로는 영적인 굶주림을 채우기가 어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씀을 가까이 하고 묵상하는 일은 젊은 때나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전공 필수과목이라고 여기고 일생 동안 힘쓰기로 작정을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삶은 황폐해지고 말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에스라가 낭독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새벽 부터 오정까지 서서 들었습니다. 물론 에스라도 서서 낭독을 했습니다. 새벽부터 오정까 지면 아침 6시부터 친다고 해도 6시간입니다.

아예 아침도 걸른 채 6시간 이상을 서서 성경 말씀을 낭독했고, 또 들었습니다. 6시간을 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했습니다. 그 가운데는 성경 강해도 포함이 되어있었습니다.
7절에 보니까 다수의 사람들과 레위인들이 다 그 처소에 섰는 백성들에게 율법을 깨닫 게 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에스라 등이 강단 위에서 율법책의 한 부분을 낭독 하고 나면,

회중들의 중간 중간에 끼어있던 레위 사람들이 그 주변의 백성들에게 그것을 다시 낭독한 후 그 의미를 가르쳐 주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성경 강해 내지는 설교를 했다는 것입니다.
요즈음도 부흥회 같은 데서는 2-3시간 설교를 해도 듣고 앉아있는 경우도 있지만 요즈 음은 대부분 한 시간 이상을 넘어가는 경우가 별로 없습니다.

특히 영국 같은 데서는 편하게 앉아서 20분 이상 설교하면 불평을 한다고 합니다. 저 역시 설교 시간 25분이 넘어서는 안 된다고 노골적으로 말하는 장로님도 만나 보았습니다.
그러나 에스라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6시간 이상을 꼬박 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 속에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굶주려 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사모함이 얼마나 있다고 생각합니까? 지금은 말씀 에 대하여 사모함과 굶주림이 있다고 할지라도 언젠가는 굶주리지 않게 될 날이 올 것입 니다.

그러므로 사모함이 있을 때에 집중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고 공부하고 묵상해야 합니다. 그리고 일생 동안 말씀을 사모하고 굶주리게 되도록 순전한 마음을 잃지 않기를 위해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에스라 등이 낭독하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물론 말 씀에 대한 굶주림이 있었기 때문에 귀를 기울일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흔히 성경말씀을 들으면서도 듣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들을 자세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정말 중요한 자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에 굶주리고 있었던 마지막 증거는 그들이 말씀을 들을 때 모두 하나님을 찬양했다는 사실입니다.
6절입니다. \\\"에스라가 광대하신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매 모든 백성이 손을 들고 아멘 아멘 응답하고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하였느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전부터 벌써 하나님을 찬양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전에 찬양으로 먼저 마음을 여는 장면입니다. 마음이 열려 있을 때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는 일은 대단히 효과적입니다. 오늘날 찬양 사역자의 역할과 비중이 커지고 있습니다.
물론 경배와 찬양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일이지만 성경적인 찬양 사역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마음을 여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아무래도 마음이 열려 있을 때 말씀을 선포하면 훨씬 더 잘 받아들이게 됩니다.

이 모든 상황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부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도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성전을 재건하고 성벽을 건축하는 것도 부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건물만 짓고 말씀을 사모함이 없다면 그래서 성도들의 심령 속에와 삶 속에 하나 님의 말씀이 없다면 껍데기만 부흥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건물을 완성한 후에 하나님의 말씀을 즐겨 들었으니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부흥이 아니겠습니까? 우리 교회 역시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여 하나님의 말씀듣기를 즐겨함으로 진정한 부흥을 이룰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서 중요한 것은 느헤미야가 단순히 하나님의 말씀을 낭독만 한 것이 아닙니다. 또 이스라엘 백성들이 낭독하는 성경을 단순히 듣기만 한 것이 아닙니다. 7절에 보니까 레위 사람들이 백성에게 율법을 깨닫게 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8절에서는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하여 백성으로 그 낭독하는 것을 깨닫게 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7절에 등장하는 13명의 사람들은 다 레위 사람들입니다.
레위 사람들 가운데서 제사장이 나왔고, 또 레위 사람들은 성전에서 봉사하는 일을 했기 때문에 성경에 대해서도 더 많은 지식을 가질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많은 성경학자들은 에스라를 최초의 강해 설교자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을 낭독하 고 그 성경을 해석했을 뿐만 아니라 어떻게 해야할지를 적용까지 했기 때문입니다.
해석했다는 말은 낭독한 성경을 이해할 수 있도록 그 의미를 밝히 드러냈다는 뜻입니다. 요즈음으로 말하면 설교가 바로 여기에 해당합니다. 느헤미야서가 기록된 당시와 오늘 날은 여러 면에서 너무나 많이 다릅니다.

역사적 간격이 있고, 공간적 간격이 있고, 문화적 간격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의 미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성경을 연구하고 성경을 많이 다루어 본 지도자들이 그 말씀의 의미를 풀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물론 어떤 설교자의 설교는 성경 본문보다 더 어려운 설교도 더러 있습니다. 성경을 이 해하는 것보다 그런 설교자의 설교를 들으면 설교가 더 어렵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성경보다 설교가 더 어렵게 들려지게 되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그 설교자가 성경에 대한 이해가 충분치 못했거나 청중에 대한 이해가 충분치 못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하는 설교도 쉬운 설교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쉬운 설교가 아니라는 의미는 나름대로 논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설교를 듣는 여러분이 그 논리를 따라와야 하고, 용어나 문장 역시 간단하고 단순한 단어로만 되어있지 않다는 뜻입니다.

개인적으로 보다 더 쉬운 용어와 쉬운 문장으로 은혜를 끼치는 설교를 해야한다고 생각 합니다. 좌우간 설교는 가장 많은 성도들이 듣는 말씀의 통로이기 때문에 그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합니다.
본문을 읽고 그 의미를 풀어주고 또 생활에 적용하기까지 도와주는 일은 교회 안에서 영 적인 지도자들이 가장 힘써 해야 할 일 중의 하나입니다. 설교뿐만 아니라 다양한 채널 을 통해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리고 성도들은 마땅히 성경을 읽을뿐만 아니라 듣고 공부하고 암송하고 묵상해야 합니 다. 그래서 성경 안에 기록된 말씀을 온전히 이해하고 삶 속에 적용하기까지 해야 합니 다.
이것이 바로 우리 신앙의 선배들이 옛적부터 했던 신앙생활의 핵심 요소 중의 하나입니 다. 진정한 교회의 부흥은 말씀의 회복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래서 종 교 개혁과 18세기 19세기 교회 부흥은 말씀의 회복과 함께 이루어졌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은혜와 언약이 회복되는 것을 성전 재건을 통해서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성전 재건에서 멈추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은혜와 언약의 회복이 성전 재건과 성벽 건축에서 멈추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와 언약의 회복은 말씀의 회복까지를 포함하고 있고, 나아가서 교 회의 부흥까지를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정말 귀한 분들입니다. 어떻게 그런 통찰력을 얻게 되었는지 생각만 해도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떻게 모든 백성이 하나같이 수문 앞 광장에 모여서 하나님 말씀을 듣고자 했을까요?
정말 우리 교회에도 이런 일이 일어나기를 학수고대 합니다.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무릇 알아들을 만한 자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광장에 모여서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습니 다.

진정한 교회의 부흥은 말씀의 회복과 말씀의 부흥에서 시작되는 것임을 본문은 너무나 분명하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말씀을 사모하고 말씀을 듣게 되자 드디어 그 말씀이 백성들을 바꾸기 시작합니다.

9절입니다. \\\"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우는지라\\\" 백성들은 말씀을 통해 자신의 죄 를 깨닫고 회개하는 의미에서 눈물을 흘린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죄를 깨닫기 시작했고 불순종을 깨닫기 시작하면서 거룩해지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자신들이 발견하고 깨달은 죄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처리할 줄을 몰랐기 때문에 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전할 때 첫째로 기대할 수 있는 반응은 회개의 눈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계속해서 회개하기만을 바라지는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 게 하나님의 말씀을 주신 것은 우리가 계속 슬퍼하고 회개하기만을 바래서가 아닙니다.

회개를 넘어서서 기쁨의 자리에까지 나아가기를 바라십니다. 총독 느헤미야와 학사 에스라와 백성을 가르치고 있는 레위 사람들이 울고 있는 백성들을 향해 뭐라고 말합니까?
\\\"오늘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일이니 슬퍼하지 말며, 울지 말라. 너희는 가서 살진 것을 먹고 단 것을 마시라.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전할 때 두 번째로 기대할 수 있는 반응은 기쁨입니다.

슬퍼하고 회개하는 것이 신앙생활의 반쪽이라면 또 다른 반쪽은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어느 한쪽으로만 치우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항상 회개와 기쁨은 동전의 양면과 같이 신앙생활의 핵심적 요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마땅히 자신의 죄를 발견하고 슬퍼할 수 있어야 하고, 또 죄사함 을 통해 기뻐할 수 있어야 합니다. 12절에 보면 모든 백성이 크게 즐거워했다고 되어있 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바꾸어놓고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눈물과 회개로써 반응하게 했고, 나아가서 기뻐하게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받은 은혜와 기쁨을 다른 사람과 나누었습니다.
12절입니다. \\\"모든 백성이 곧 가서 먹고 마시며 나누어주고 크게 즐거워하였으니 이는 그 읽어 들린 말을 밝히 앎이니라\\\" 참으로 놀라운 부흥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아주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모습입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회개하고 기뻐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자기 개인에게서 멈추어 버린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개인의 회개와 기쁨은 마땅히 공동체 전체에게로 흘러가야 할 것입니다.
슬픔이나 기쁨은 나누어 가지는 것이 더 아름답습니다. 진정한 부흥이 일어나면 이렇게 양식 없는 사람을 생각하게 되고,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양식을 나누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회개와 기쁨으로 바꾸신 후에 우리가 가진 것을 이웃에게 나누게 하심으로써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게 하십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얼마나 슬퍼해 본 경험이 있습니까?
또 얼마나 기뻐해 본 경험이 있습니까? 또 얼마나 여러분이 가진 것을 형제와 자매와 이웃에게 나누어 본 경험이 있습니까? 요즈음은 얼마나 좋습니까? 인터넷이라는 것이 있어서 만나지 않고서도 얼마든지 은혜와 사랑을 나눌 수 있습니다.

인터넷의 나쁜 면도 있지만 좋은 면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서 받은 은혜, 즉 슬픔과 기쁨을 보다 적극적으로 나누는 장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물질을 나누는 것과 함께 우리가 받은 은혜를 나누고, 우리가 느끼는 슬픔과 기쁨을 나 눌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나누지 않고 자기 속에 혼자만 간직하는 것보다 백번 천번 낫습니다.

진정한 말씀의 회복과 부흥에는 이렇게 은혜와 사랑과 물질을 나누는 것이 필수적으로 따라옵니다. 초대 예루살렘 교회가 그랬지 않습니까? 그들은 은혜만 나눈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물질까지도 나누었습니다.
느헤미야 시대 이스라엘 백성의 말씀 회복과 부흥을 한 마디로 정리해 보라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시작했습니다.

10절에 보니까 \\\"느헤미야가 또 이르기를 너희는 가서 살진 것을 먹고 단 것을 마시되 예비치 못한 자에게는 너희가 가누어 주라\\\" 고 합니다. 그 말을 따라 실제로 나누어주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13절 이후의 성경을 보면 성경을 계속 읽다가 하나님께서 초막절을 지키라 고 하신 말씀을 순종치 않고 있는 자신들의 모습을 발견하고 당장에 백성들이 나가서 초 막절을 지킵니다.

여호수아 때로부터 그 날까지 이스라엘 자손이 초막절을 지킨 적이 없음을 깨닫고 당장에 순종하여 실천에 옮깁니다. 이것이 진정한 부흥의 현장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하나님의 말씀에 은혜를 받게 되지 사람들이 바뀌기 시작합니다. 사람의 변화에 대해서라면 저마다 할 말이 많을 것입니다. 사람은 과연 변화되는 존재일까요?
경험상으로 보면 정말 변화되지 않는 것이 인간인가 싶은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그 러나 성경의 예들을 보면 사람은 변화된다는 확신을 가져도 좋을 것 같습니다.

물론 변화되었다가도 제 자리로 돌아갈 때가 때때로 있지만 변화된다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변화되었다가 제 자리로 돌아가버리는 것 때문에 변화에 대해서 부정적이 되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변화된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무엇이 우리를 바꾸어놓을 수 있습니까? 자녀들을 키워보면 분명하게 한 가지 알 수 있 는 것은 잔소리나 책망을 해서는 좀처럼 변화되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가장 빠른 것은 깊은 감동을 주고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허물많은 인간끼리 서로 감동을 주고 받는다는 것이 생각처럼 쉽지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감동을 주고 받기를 노력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방법 외에는 변화될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 변화될 수 있는 비밀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 고 읽고 공부하고 암송하고 묵상할 때 그 말씀이 나 자신의 생각과 마음과 사상과 행동 을 바꾸어 놓는 것을 경험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라는 유명한 책을 쓴 제임스 패커는 말하기를 \\\"묵상이란 하나님의 역사와 방식과 목적과 약속에 대하여 아는 여러 가지 일들을 회상하고 생각해 보는 행동이라\\\"고 했습니다.
\\\"묵상은 의식적으로 행하는 거룩한 사상 행동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생각과 사상과 행동이 내 것이 되는 순간까지 묵상하는 작업을 계속해 나가야 합니다. 묵상은 되새김질 하는 것입니다.

소는 아침에 일어나 열심히 풀을 뜯어먹습니다. 한 시간 이상 지나면 소는 가만히 앉아서 아침에 먹은 것을 위에서 입으로 끄집어내서 두 번째로 씹습니다. 한 시간이 더 지난 후에는 세 번째로 다시 끄집어내서 다시 씹습니다.
세 번을 씹은 후에야 비로소 먹은 음식을 소화시킬 수 있습니다. 한 번 먹은 풀은 단지 몸 안에 들어가서 저장되기만 한 것이지 영양분이 되지는 못 합니다. 그러나 세 번이 지 나면 몸이 영양을 얻기 시작합니다.

세 번씩 씹어야 비로소 그 음식이 몸의 일부분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이 바로 영적인 세계에서 일어나기를 하나님은 바라십니다. 우리가 말씀을 묵상할 때 그 말씀이 우리 몸 안에서 살이 되고, 영양분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저 저장만 되게 해서는 곤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에스라 시대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 으로 우리들의 삶을 바꾸기를 원하시지만 우리가 한 번만 먹고 그친다면 우리는 아주 적 게 혹은 전혀 영향을 받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성경을 그렇게 많이 알면서도 변화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반복해서 묵상할 때만이 그 말씀이 우리 마음 깊은 곳에 심기게 되고, 우리를 강하고 열매맺는 사람으로 변화시킵니다.
우리는 말씀을 깊이 생각하고, 심사숙고 하고, 되새김질해야 합니다. 묵상의 목적은 성경 을 단순히 아는 것이 아닙니다. 감상하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진리가 묵상하는 사 람의 마음과 생각에 충만하고 합당한 영향을 주도록 하는데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생각과 사상과 삶의 양식을 바꾸어놓기까지 말씀을 깊이 묵상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마음과 생각과 행동에 강력한 영향을 주기까지 말씀을 깊이 반복적으로 묵상해야 합니다.
물론 당연히 하나님의 말씀의 의미를 이해하는 작업을 포함합니다. 이것은 마치 우리가 자동차를 운전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자동차를 운전하려면 운전자가 계기판을 보고 운전을 해야 합니다.

계기판이 우리에게 이렇게 하고 저렇게 하라고 소리지르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도 우리에게 소리지르지 않습니다. 우리가 계기판을 볼 때에 그 계기판의 빨간 불이 우리에게 조용히 말해 줍니다.
\\\"사이드 브레이크를 내리지 않았다. 엔진오일이 떨어졌다. 라디에이트가 샌다. 문이 열렸 다\\\" 라고 말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성경 말씀을 읽거나 보거나 묵상할 때에 비로소 성경은 우리에게 조용히 진리를 말해 줍니다.

말씀 안에서 진리를 보고, 진리에 의해서 생각하고, 진리대로 행동하는 것은 전적으로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말씀의 회복입니다. 말씀을 회복할 때 진정한 교회의 부흥이 일어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건성으로 대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바꾸어주시겠습니까? 부흥을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우리는 마땅히 부흥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기도만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굶주리지도 않는다면 부흥은 결코 오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이야말로 부흥의 비밀입니다.
우리는 바른 말씀이 선포되고 그 말씀에 대한 순종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나님의 말씀 을 깊이 묵상하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해 나가도록 하십시다.

그리고 성령님께서 그 말씀을 우리의 삶과 우리의 교회 안에 회복시켜 주셔서 부흥을 일으켜 주시기를 기도 드립시다.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 각 사람을 바꾸고, 우리 온 교회를 바꾸시도록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십시다.
그 말씀을 듣고 읽기를 부지런히 하고, 그 말씀의 의미를 풀어주는 설교듣기를 부지런히 하고, 그 말씀 속에 담긴 진리를 찾아내는 성경공부하기를 부지런히 하고, 그 말씀을 되 새김질하는 묵상을 부지런히 하기로 결단하십시다.

그리하면 주께서 우리 교회 가운데 놀라운 부흥을 주실 줄 믿습니다.
결단과 촉구/
에스라 시대에 수문 앞 광장에서는 놀라운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그 놀라운 부흥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일어났습니다.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데서부터 일어났습니다.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굶주려 있었습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무릇 알아들을 만한 사람은 예외없이 모여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장장 여섯 시간 이상을 서서 하나 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말씀을 사모했기 때문에 다리 아픈 줄도 몰랐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종들은 그 말씀의 의미를 설명해 주었습니다. 드디어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바꾸어 놓기 시작했습니다.
순종의 사람으로 바꾸었습니다. 회개의 사람으로 바꾸었습니다. 기쁨의 사람으로 바꾸었 습니다. 사랑의 사람으로 바꾸었습니다. 자기 가진 것을 이웃과 나누는 사람으로 바꾸었 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것이 모든 것의 관건입니다. 부흥의 열쇠입니다. 여러분 안에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사모함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듣기를 사모하십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풀어주는 설교듣기를 즐겨하십니까?
그 말씀 안에서 진리를 찾는 성경공부를 즐겨하십니까? 그 말씀이 나의 생각과 삶을 바 꾸어 놓기까지 말씀을 묵상하기를 즐겨하십니까? 복있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복있는 사 람은 어떻게 합니까?

복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 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 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 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입니다.
이 시간 우리는 심각한 결단을 하고 심각한 결정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가장 힘쓰고 애써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이 시간 결정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 하기를 최우선 순위에 두기로 말입니다.

우리 교회가 수문 앞 광장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했던 그대로 하면 틀림없이 놀라운 부흥을 맞이할 수 있을 줄 믿습니다. 이 시간 우리 각자가 이스라엘 백성과 같이 하기로 결정하고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도록 하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