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 부흥회 느8:1-12
오늘 우리가 봉독한 느헤미야서는 순서로는 구약의 중간 정도에 위치해 있습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살펴볼 때 느헤미야는 구약중에서도 가장 마지막 부분에 있었던 이야기 입니다. 그 마지막 시대에 그들이 어떻게 살았는 지를 고백하고 있습니다.
1999년 우리는 20세기의 가장 마지막에 서있습니다. 20세기를 보내면서 또 21세기를 맞이하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면서, 교회는 새천년을 맞는 특별집회를 준비하였습니다. 이 세상에 있는 어떤 교회보다도 우리가 멋있고 의미있는 마지막을 보낸다고 생각합니다. 특별집회에 많이 참석하셔서 은혜받으시고 새마음으로 새천년을 시작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말씀은 느헤미야 시대의 부흥회입니다. 느헤미야는 페르시아와 아닥사스다 밑에서 포로중에 특채되어 술심부름을 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왕의 술심부름을 한다는 것은 대단히 신용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느헤미야는 왕의 신임을 받는 것으로 만족하지 아니하고. 마음속에 꿈이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꿈은 예루살렘에 다시 돌아가서 성전을 회복하는 일이었습니다. 조국을 다시 세우는 일이었습니다. 왕에게 부탁하여 드디어 허락을 받고, 무너진 그들의 조국을 세우기 위해서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무너진 조국을 세우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여러 가지 음모와 방해와 난관에 부딪쳤습니다. 그러나 모든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던 하나의 동기는 열정이었습니다. 마음속에 뜨거움이 있었기 때문에 모든 어려움을 이길 수 있었습니다.
부흥집회를 통해서 우리는 믿음과 마음의 뜨거움의 회복이 있어야 할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15절에서 16절 말씀에 보면 주님은 라오디게이아 교회에 보내는 말씀에서 \\\\\\\"너는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다. 차라리 네가 차든지 아니면 뜨겁든지 하면 얼마나 좋겠느냐? 그러나 너는 이렇게 뜨겁지도, 차지도 않고 미지근 하기만 하니 나는 너를 뱉어버리겠다\\\\\\\"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신앙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스펄젼 목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에게 한사람만 다오 그는 말재주가 없어도 좋고 다른 재주가 없어도 좋다. 그러나 뜨거운 열정을 가진 사람을 다오.\\\\\\\"
느헤미야야 말로 이런 뜨거운 열정을 가진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두 번째로 느헤미야 시대의 부흥운동은 삶속에서 진행되었던 부흥운동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부흥회는 삶의 건강성을 회복하는 부흥회가 되어야 할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은혜를 받으려면 산속기도원이나 세상적인 삶과는 멀리 떨어져 있는 곳으로 들어가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를 보면 일을하면서 신앙도 뜨거워 졌습니다.
한손에는 삽을 들어서 성전을 재건해야 했습니다. 한손에는 칼을 들어 적들과 싸워야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한손에는 성경을 들고 읽고 묵상하고 뜨겁게 기도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말씀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느헤미야의 믿음은 믿음과 생활이 분리되지 않았습니다.
제가 자주갖는 아쉬움 중의 하나는 믿는 사람들의 믿음과 생활의 이중성입니다. 교회에서는 참 좋은 사람같은데 교회 밖에만 나가면 그리스도인의 모습은 다 사라지고, 오히려 더 못되게 생활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혹 생활하다가 정말 세상적으로도 못된 사람을 만났을 때, 그래도 저 사람은 교인은 아니겠지하고 위안을 삼으려 하다가도. 그 사람이 어느 교회를 나가는 교인임을 알게될 때, 느끼는 절망감은 아마 저만 경험하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과 삶의 이중성입니다.
느헤미야 부흥운동은 결코 삶과 믿음이 분리되어 있지 않습니다. 일하면서 기도하고, 전쟁하면서 말씀 묵상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믿음과 삶은 둘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믿음따로, 세상의 삶 따로가 아니라. 우리의 삶속에서 부단히 믿음을 실천해야 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소리만 지른다고 실천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찬양만 크게 한다고 실천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교회만 다닌다고 실천되는 것은 아닙니다.
믿음은 삶속에서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겠다는 결단입니다.
느헤미야 시대의 성도들이 삶속에 믿음을 실천하였던 것처럼. 우리도 삶속에서 믿음을 실천하며 참된 승리의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어지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셋째로. 느헤미야의 부흥운동은 구체적인 경건훈련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이번 부흥회를 통해서, 경건훈련의 회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딤전4:7)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딤전4:8)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운동선수가 훈련을 해야지 운동시합을 잘하는 것처럼. 학자가 공부를 하고 연구를 해야지 훌륭한 학자가 되는 것처럼. 좋은 교인이 되기 위해서는 신앙훈련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신앙훈련이 없는 교인은 성숙한 교인으로 성장하기가 힘든 것입니다.
느헤미야시대의 경건훈련은 세가지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1절 말씀에 보면. 먼저 모이기에 힘을 썻습니다. 3절 말씀에 보면 하루의 1/4을 나누어 성경 말씀을 읽었습니다. 하루의 1/4을 나누어 회개하고 통해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우리는 혼자서는 신앙생활하기기 쉽지 않습니다. 혼자서는 힘이 나지 않습니다. 자꾸 모일 때, 거기에 힘이 생깁니다. 잘모이는 교회는 힘이 있는 교회지만 모이기를 싫어하는 교회는 힘이 없는 교회입니다.
요즘은 많이 때지 않지만. 옛날에 조개탄을 태울때를 생각해 보세요. 잘타는 조개탄 하나도 따로 때어 놓으면 금방 뜨거움을 잃고 말잖아요. 하지만 다시 붙여놔보세요. 다시 뜨겁게 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믿음이 뜨거워지기를 바라십니까? -자꾸 모이기를 힘쓰씨기 바랍니다. -자꾸 말씀을 보시기를 바랍니다. -뜨겁게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이상으로 우리는 오늘 느헤미야 9장 1절로 5절의 말씀을 통해서 이스라엘을 살게한 느헤미야의 신앙부흥운동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 부흥운동은 뜨거운 열정의 회복운동이었습니다. 믿음과 생활이 분리되지 않은 진정한 부흥운동이었습니다. 구체적인 경건훈련이 있는 부흥운동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제 오늘 말씀을 결론을 내립니다. 우리의 삶을 한 번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나의 뜨거움은 간직되고 있으십니까? 나는 믿음과 생활이 분리되어 있는 삶을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나는 삶속에서 말씀을 읽고 기도하는 구체적인 경건의 실천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만일 우리의 삶속에 그런 것이 만족하게 이루어지고 있지 못하다면. 교회가 준비하고 있는 부흥회를 통해서 우리가 새로움을 회복할 수 있도록 기도로서 많이 준비하시고, 많은 은혜를 기다리셔서, 하나님의 큰 축복을 받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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