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기야와 부흥 대하30:10-16,26-27
히스기야의 부흥이라는 제목입니다. 본문을 보면 히스기야 왕 때문에 성전의 새로운 희락이 일어나고 시온이 일어나고 영적 역사가 일어나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히스기야 왕은 유다 12대 왕으로서 아하스 왕의 아들 이였습니다. 히스기야라는 뜻은 하나님의 힘이라는 뜻입니다. 히스기야는 신앙인격이 매우 탁월했던 왕이었습니다. 왕하 18장에 보면, 하나님 보시기에 모든 행위가 정직했다고 했습니다. 또 히스기야와 같은 왕은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었다. 전무후무한 왕이었다. 또 히스기야는 절대 신앙위주의 왕이었다고 했습니다. 히스기야왕에 대한 기록이 대하 29∼32장까지 4장에 걸쳐서 쓰여 있습니다. 그 중에 종교적인 기사가 3장이 있고, 정치적인 기사는 1장밖에 없습니다. 이것을 보아도 히스기야는 정치가이기보다도 신앙인으로서 더 훌륭했다는 것이 성경적 증언입니다. 그러면 히스기야가 그 민족 부흥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를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째, 폐쇄된 성전 문을 열었다. 대하 29:1에 보면, 히스기야가 나이 25세에 왕이 됩니다. 즉위 원년 정월 초하루에 10여년 동안 폐쇄되었던 성전의 문을 열었던 것입니다. 그는 왕위에 등극하자마자 첫 번째 한일은 폐쇄된 성전문을 열었다. 성전문을 여는 것이 그리 중요하느냐 할 수 있겠지만, 여기에는 비상한 결단이 없이는 할 수 없었던 일 이였습니다. 히스기야 왕의 아버지 아하스왕은 매우 악한 왕으로 정평이 나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하스 왕은 호세아, 미가, 이사야의 예언과 충고를 받으면서도 우상을 철저히 섬기는 그러한 인간이였습니다. 특히 아하스 왕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지 않고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에게 조공을 바치고 아부하고 궁실의 보물을 바치기까지 하면서 그를 의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사야는 하늘과 땅을 향해서 “하늘이여 들어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고 가슴을 치면서 통탄한 사실이 있습니다. 이 앗수르 왕이 아하스의 위협의 인물을 물리쳐 주자 아하스는 흡족하여 앗수르의 신상들을 예루살렘에 세우고, 그 위에 제사를 드리는가 하면, 성전기구들을 떼어내고 성전에다가 앗수르 왕을 위한 낭실을 두는 일까지 했습니다. 그리고는 성전의 놋단을 옮겨 자신의 도구로 삼았던 것이고, 이로써 성전을 완전히 폐쇄하고 유월절도 지키지 못하도록 천명을 내리고 말았습니다. 한편 유다왕 아하스 때의 북쪽에 이스라엘 왕은 호세아가 왕이 되어 있었는데, 그는 앗수르 왕에게 조공을 바치지 않음으로써 금고 되는 일까지 당하고 사마리아가 완전히 정복당하는 비참한 꼴을 당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북쪽 이스라엘 왕보다 못한 아하스 왕이었습니다. 그래서 앗수르의 우상을 그대로 받아들이고는 고유의 성전 문을 폐쇄시킨 것이니, 얼마나 악했던 것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전에서 제사가 없어졌습니다. 그런데 히스기야가 등극하자마자 앗수르의 산당과 주상을 깨뜨리고 성전 문을 열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그로써 앗수르로부터 히스기야는 대단한 원한을 사게 된 것입니다. 그래도 히스기야 왕은 성전 문을 여는데는, 그 왕의 어떠한 위협아래에서도 굴하지 아니하고 활짝 열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에 새로운 영적 희열이 왔던 것입니다. 우리가 영적 부흥과 성장을 위해서 우리도 심령의 성전 문을 활짝 열어야 됩니다. 폐쇄된 성전 문이요, 세속화되고 우상으로 채워진 오늘 우리 심령의 성전 문을 열지 않으면 그곳에 영적 희열이 없습니다. 신29:19에 “강퍅한 심령”이다. 잠 6:14에 “패역한 심령”이다. 잠24:2에 “강포한 심령”이다. 사46:12에 “완악한 마음상태”라 잠16:5에 “교만한 마음”이요. 고전8:10에 “우상의 마음”이다. 이런 것들이 우리 심령의 성전을 완전히 폐쇄시켜 버립니다. 그러니 무슨 영적 희열이 있겠습니까? 이런 것에서 폐쇄된 우리 심령의 성전 문을 활짝 열 때에 영적 희열이 나타나는 것이요, 영적 확신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교회 생활을 하시면서 영적 희열감이 없고, 할 일에 소망감이 넘치지 아니하고, 영생에 대한 희열감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자기 심령에 꽉 막혀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빨리 열어야 합니다.
둘째로, 비상한 기도가 있었습니다. 본문 27절에 “그 기도가 여호와의 거룩한 처소 하늘에 상달하였더라” 유다의 왕들 가운데 다윗을 빼놓고는 히스기야처럼 기도에 열중한 사람이 드뭅니다. 대하30:18-20은 유월절을 지킬 때에 유월절 음식을 성결케 하지 않고 먹음으로써 큰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때 히스기야는 하나님께 사해 줄 것을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즉시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으셨다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하나님의 절기에서 성결하는 일, 그것이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 했습니다. 그래도 히스기야 왕의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그 진노를 푸셨다는 것입니다. 대하32:20-21에 보면 앗수르의 산헤립이 많은 군사를 거느리고 예루살렘을 완전히 포위했습니다. 자기 아버지 아하스 왕은 그래도 앗수르에 조공을 바치면서 그의 시중을 들었는데, 아들이 왕위에 오르고는 대제국 앗수르에 대해서 도전을 해온 것입니다. 폐쇄된 성전의 문을 열어버리고, 그들이 세워놓은 앗수르의 우상을 깨어버리니 분노가 극에 달해 예루살렘을 포위했던 것입니다. 그때에 히스기야는 이사야와 같이 성전에 들어가서 하나님께 생명을 건 기도를 했습니다. 그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은 천사들로 하여금 18만군을 쳐서 승리케 했던 것입니다. 대하32:24-25에 히스기야 자신이 죽을 병에 걸렸습니다. 그러나 결사적인 그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은 15년의 그의 생명을 연장시켜 주셨습니다. 이렇게 히스기야는 굵직굵직한 사건마다 비상적인 기도로 해결할 수 있었고, 그것이 이스라엘의 부흥의 역사가 되었던 것입니다. 딤전4:5에 보면, 거룩해지는 것도 말씀과 기도로 된다고 했습니다. 약5:15에 병에서의 해방도 기도에 있다고 했습니다. 눅22:32에 신앙의 계속적인 유지를 위해서도 기도를 해야 된다고 했습니다. 행8:15에 성령의 충만함을 받기 위해서도 기도를 해야 된다고 했습니다. 약5:17-18에 천재지변의 해결도 기도에 있다고 했습니다. 다급한 멸망에 대해서 면할 수 있는 것도 비상한 기도에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기도 외에는 비상한 시국에서 이길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히스기야에 대해서 앗수르의 대군이 쳐들어올지라도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들으시어 천사로 그 군대를 죽였던 것입니다. 비상한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영적 역사를 일으킬 수 있을까? 비상한 기도 외 다른 방법이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1872년 무디가 영국 런던에서 전도 집회를 했습니다. 첫날 아침 집회에서 설교를 하는데, 얼마나 냉랭하든지, 그때를 회고하여 말한 것이 있는데, 그토록 힘들게 설교를 한적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냥 이 집회를 하지 말고 그냥 미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답니다. 그 날 저녁 집회에서 설교를 하려 하니 겁이 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맡은 것이라서 무거운 발걸음으로 단에 나아가 설교를 했는데, 설교 첫마디부터 분위기가 달라졌습니다. 보이지 않는 강한 힘이 회중에게 역사하고 있는 것을 느꼈습니다. 설교가 끝나고 예수 믿기를 원하는 사람은 일어나세요라고 했더니 500명이나 일어났던 것입니다. 이때 집회가 영국 런던 대 각성의 집회라고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게 된 것은 믿음의 독실한 마리안 아들레이드라는 성도가 아침 집회에 참석하고 너무나 냉랭한 것을 보고, 또 무디선생이 힘들어하는 것을 보고 견딜 수가 없어서 집회를 위한 금식기도 할 것을 결심하고, 몇 명의 성도들과 함께 기도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 기도의 결과 저녁집회로부터 놀라운 역사가 일어 났더라는 것을 후에야 무디선생이 알아냈던 것입니다. 이렇듯 영적 역사는 기도 외 무슨 방법이 있겠습니까! 마17:21에 보면 「없음」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난외주에 보면 어떤 사본에는 21절이 있다고 되어 있습니다. “기도와 금식 외에는 이런 유가 나가지 아니하느니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 사람의 아들이 귀신에 들려 간질로서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이 계시지 않을 때에 제자들에게 아들을 데리고 왔으나 아들을 고치지 못했는데, 예수님께서 직접 귀신을 좇아 내시고 고쳐주었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조용히 주님께 물었습니다. “우리는 어찌하여 좇아내지 못하였나이까?” 그때 예수님께서 첫째, “믿음이 적은 연고다”, 둘째, “비상적인 기도가 없는 연고다”라고 두 가지를 지적했습니다. 영적 각성을 위해서 영적 역사를 위해서 영적 부흥을 위해서 잃은 양을 대대적으로 찾기 위해서 흘러가는 대로 갈 것이 아니라 히스기야처럼 성전의 문을 활짝 여는 역사가 일어나야 하며, 히스기야처럼 비상한 기도의 무릎을 꿇을 수 있을 때,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고 영적 희열과 확신을 체험하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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