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흥을 위해 기도하라 대하7:12-18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등 모든 면에서 혼란스럽습니다. 정치 지도자들은 당리당략에 의해 이합집산을 거듭하며, 급기야 대통령을 탄핵하는 헌정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졌습니다. 진보와 보수간의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하여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평행선을 달리고 있습니다. 경제는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대량실업으로 인한 고통이 가중되고 있습니다. 이태백이니 삼팔선이니 사오정이라는 말이 귀에 익숙한 단어가 되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해도 취업을 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상황입니다. 400만명이 넘는 신용불량자가 있습니다. 사회적으로는 폭력과 사기, 살인, 유괴사건이 날마다 벌어지고 있습니다. 전국에는 음란과 퇴폐영업을 하는 술집과 유흥업소들이 날마다 늘어가고 있습니다. 교육정책은 방향을 잡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고 있습니다. 표면적으로 드러난 이 나라의 모습을 보면 치유가 불가능한 중병에 걸린 것 같습니다. 백성들은 신음하고 있는데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백성을 볼모로 정치놀음을 하는 지도자들을 보면 짜증이 납니다. 뉴스를 보기조차 싫습니다. 젊은 세대들이 다른 나라로 이민을 가고 싶어하는 것이 이해가 갑니다. 이 시대의 마지막 보루가 되어야 할 교회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주일이 되면 밀물처럼 교회 안으로 밀려왔다가 썰물처럼 빠져나갑니다. 그런데 세상에서는 별로 영향력을 끼치지 못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 때문에, 이 땅의 교회들 때문에 사회가 점점 나아지고 있다는 소식은 거의 들려오지 않습니다. 오히려 부정과 불의의 배후에는 믿는 사람들의 이름이 오르내립니다. 교회 안에도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려는 희생적인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작은 교회는 점점 힘을 잃고 문을 닫고 있습니다. 반면에 아름다운 건물과 넓은 주차장, 편안한 휴식공간을 갖춘 대형교회들은 급속한 성장을 이루고 있습니다. 한국교회 안에서 주님을 위해 십자가를 지고 희생하라는 말은 실천 불가능한 구호처럼 보입니다. 점점 많은 성도들 속에서 적당히 묻혀 십자가를 감상하는 자들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의 모습이요 교회의 모습입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우리들이 누구를 탓하며 비난할 수 있겠습니까? 이 모든 결과의 책임들은 누구의 몫입니까? 이 사회와 민족, 교회의 희망은 무엇입니까? 이 민족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출발점은 무엇입니까?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그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 믿음의 사람들이, 이 사회, 민족이 새로운 비전을 가지고 출발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평화와 부귀영화를 자랑하던 솔로몬 시대에 있었던 일입니다. 솔로몬이 7년의 대 역사 끝에 성전을 완공했습니다. 낙성식을 거행하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감사와 찬양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솔로몬은 백성들과 더불어 형통케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즐거워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나타나셔서 ‘내가 이미 너의 기도를 들었고, 이 성전을 통하여 드리는 제사를 받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나서 갑자기 이상한 말씀을 하십니다. 13절 말씀을 보십시다. \\\"내가 하늘을 닫고 비를 내리지 아니하거나 혹 메뚜기로 토산을 먹게 하거나 혹 염병으로 내 백성 가운데 유행하게 할 때에\\\"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총체적인 국가적 재앙의 때를 의미합니다. \\\"하늘을 닫고 비를 내리지 아니 할 때\\\" 즉, 가뭄과 기근, 태풍과 홍수, 지진과 대기오염, 생태계 파괴와 지구의 온난화 현상, 이상 기후와 이상기온! 지구촌이 몸살을 앓을 때라는 말씀입니다. \\\"메뚜기가 농작물을 먹어 치울 때\\\" 즉, 사업의 실패와 부도, 경제적 위기, 전쟁과 테러, 실직과 무직, 조류독감, 광우병 등으로 농가의 파산! 이런 위기가 올 때 이런 말 아니겠습니까? \\\"염병으로 내 백성 가운데 유행하게 할 때\\\" 즉, 사스, 유행성 독감, 각종 변종 유행병, 이름 모를 질병과 크고 작은 사고, 가정의 파탄과 사회적 사고가 발생할 때입니다. 이런 국가적인 위기 상황이 올 때 어떻게 하라는 말씀입니까? 이 모습은 이 나라와 민족이 처한 상황과 매우 흡사합니다. 따라서 오늘 말씀을 우리의 삶 가운데 적용하면 이 시대와 민족의 아픔을 해결할 수 있는 지혜가 담겨있는 줄로 믿습니다. 그 해답이 바로 14절 말씀입니다. 함께 봉독합니다.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겸비하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구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사하고 그 땅을 고칠지라.”
첫째로, 문제 해결의 열쇠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있습니다.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오늘 이 시대의 문제는 누구 때문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하나님의 백성 때문임을 보여줍니다. 즉 하나님의 백성들이 말씀에 순종하고 의로운 자로 산다면 분명히 하나님의 나라는 구체적으로 우리의 삶 속에 이루어진다는 전제가 깔려 있습니다. 따라서 문제 해결의 열쇠는 정치 지도자나 경제인이나 지식인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힌 믿음의 사람들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세주로, 나의 하나님임을 확실히 고백하는 신실한 신앙인들에 의해서 이 사회는 새롭게 갱신될 수 있음을 보여주십니다. 이것은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벧전2:9)인 거룩한 주의 백성들이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할 때 가능합니다.
사육사에 의해 길들여진 사자는 더 이상 사자가 아닙니다. 사람의 눈요기와 어린아이의 놀이개에 불과합니다. 아무리 동물의 왕국에서 가장 힘이 센 사자라 할지라도 야성을 잃어버리면 장난감에 불과합니다. 우리 신앙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피 값을 지불하시고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셨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능력을 주시고,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주셨습니다. 주님이 하신 일보다 더 큰 일도 이룰 것이라는 기대와 비전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어둠을 밝히는 빛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켜 나가는 친 백성으로 우리를 불러 주셨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들이 무기력한 모습으로 살아갈 때가 많습니까? 믿음의 야성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야성은 거친 산 속에서 스스로의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혹독한 훈련의 과정을 통해서 길러집니다.
미국의 Yellow Stone 국립공원에 가서 제가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어느 곳에 가든지 이런 푯말이 붙어 있습니다. “야생동물에게 먹이를 주시 마시오” 만약 먹이를 주다 적발되면 벌금을 물립니다. 그리고 더 재미있는 것은 모든 쓰레기통이 두꺼운 철판으로 씌워져 있고, 큰 자물쇠가 채워져 있습니다. 야생동물들이 쓰레기통을 열거나 뒤집지 못하도록 만든 것입니다. 국립공원에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면서 음식물 쓰레기가 많이 버려집니다. 사람들이 귀엽다고 고기를 줍니다. 그러다 보니 추운 겨울이 오면 야생동물들이 굶어죽는 답니다. 왜 그럴까요? 평상시에 사냥을 해서 잡아먹어야 하는데 손쉽게 사람들이 버린 음식물에 길들여져서 더 이상 사냥을 하지 않는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찾아오지 않는 겨울철에는 굶어 죽는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죄와 싸워서 이겨야 하는데 너무나 쉽게 세상과 타협합니다. 강한 영적 군사로 태어나기 위해서는 부단한 영적 훈련을 받아야 하는데 훈련받기를 싫어합니다. 십자가를 지기 보다는 즐기려는 태도를 가지고는 결코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능력있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이 시대를 흔들어 깨울 수 있는 훈련된 믿음의 사람들을 찾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불의하고 패역한 시대 속에서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선 의로운 사람을 찾으셨습니다. 악으로 가득찬 시대에 하나님은 의로운 사람 노아를 통하여 하나님의 구원을 보여 주셨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앞에서도 하나님은 의인 열 사람을 찾으셨습니다. 기울어 가는 유다의 운명 앞에서도 하나님은 예레미아 선지자를 통해 의로운 한 사람을 찾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의인 열 사람이 없었고, 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도 주님은 이 시대와 민족의 아픔 속에서 하나님 앞에 바르게 서 있고자 몸부림치는 한 사람을 찾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진실로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아니하고, 끝까지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는 바로 그 한사람을 통하여 하나님은 이 역사를 새롭게 변화시키기를 원하고 계신 줄로 믿습니다. 이 자리에 계신 사랑하는 성지가족 여러분이 그 한사람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하나님의 의로운 백성으로 새롭게 회복하기 위한 비결은 무엇일까요?
둘째로,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겸비하여 기도하는 것입니다. 악한 길은 하나님을 거역한 죄의 상태를 말합니다. 하나님을 마음에 모시지 않고 자신의 이기심의 노예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구역공과를 통하여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 자들의 죄악된 모습이 무엇인가를 배웠습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지 않습니다. 감사를 잃어버리고 삽니다. 정욕의 노예로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순리를 거스르고 허망한 생각에 빠집니다. 결국은 하나님의 진노가 임한다는 것을 로마서를 통해서 배우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은 사랑하시지만 죄는 철저하게 미워하십니다. 죄의 결과는 악이요 죽음입니다. 죄는 사람을 죽이는 독입니다. 사탄은 인간의 마음을 혼돈시켜 죄악으로 몰고 갑니다. 악한 길에서 돌이키지 못하면 결국은 죽습니다.
작년에 지하 술집에 대형화재가 발생한 적이 있습니다. 많은 젊은 남녀들이 술에 취해 정신없이 놀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불이 꺼지고, 장식물들이 타면서 독성 가스가 차기 시작했습니다. 출구를 찾지 못해 방황하던 젊은이들이 모두 죽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이 시대의 단면입니다. 사람들이 술에 취해 정신없이 향락을 좇고 있습니다. 언제 불이나 죽을 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말입니다. 사르트르의 지적처럼 No Exit! 현대인은 탈출구가 없습니다. 이런 현실에서 우리가 탈출할 수 있는 비결은 악한 길에서 돌이키는 것입니다. 돌이킨다는 것은 회개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회개는 입술의 고백이 아닙니다. 구체적인 삶의 태도의 변화를 말합니다. 그래서 세례요한은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회개는 열매로 드러납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난 후에 어떻게 회개했습니까? 재산의 절반을 팔아 나누어 주었습니다. 토색한 것, 불의한 방법으로 거둔 것은 되돌려 주었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회개입니다.
회개하라는 주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고 악한 길에서 떠나지 못하는 어리석은 백성들을 향하여 이사야 선지자는 1장 4-6절에 이렇게 한탄합니다.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더욱 더욱 패역하느냐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뿐이어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유하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사1:4-6)\\\"
이것은 하나님을 버리고 무시한 패역한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하신 회개의 경고입니다. 계속해서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하지 아니하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성한 곳이 없을 것이며, 매를 더 맞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일찍이 하나님의 백성들은 천재지변을 당하거나 전쟁이 일어나거나 혹은 환난을 당하거나 개인적인 공동체적인 고난이 몰려올 때 성전에 나아가 엎드려 울며 부르짖었습니다. 그때마다 하나님은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우리 가운데 고통이 찾아 올 때에 민족적인 위기가 깨달아 질 때에 교회에 위기의식이 넘치고 있을 때에 하나님의 징계의 소리가 내 귓전에 들릴 때에 우리는 성전에 나아가 기도해야 될 때임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은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갈 때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의 마음을 찢고 주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내 안에 잃어버린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내 안에 희미해져 가는 첫사랑을 회복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이 민족의 살길이요 이 교회를 새롭게 일으키는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영국 웨일즈의 위대한 부흥은 한 작은 교회의 부인의 회개를 통해서 일어났습니다. 어느 날 이 부인이 주기도문을 하다가 그는 것을 끝낼 수가 없었습니다.ꡒ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ꡓ이 대목에 이르러 더 계속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가 미워하고 있는 한 형제의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기도를 중단하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오랫동안 찾아보지 않았던 미워하던 형제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죄를 회개했습니다. 우리의 갈등은 당신의 책임이 아니라 나의 책임이라고 자백하기 시작했습니다.ꡒ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사랑으로 형제를 사랑하지 못했던 내 죄를 회개합니다.ꡓ그때 하나님은 이 두 사람을 하나로 묶었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그 교회 속에는 놀라운 회개의 운동이 일어났습니가. 그 결과 웨일즈라는 도시 전체를 변화시키는 위대한 부흥의 불길로 타올랐습니다.
누가 먼저 회개해야 합니까? 물론 모든 국민이 함께 회개해야 합니다. 지도자들이 회개해야 합니다. 물론 각자 자신이 먼저 회개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언제나 역사는 나로부터 시작됩니다. 내가 먼저 깨끗해져야 하고 내가 정직해져야 하고 죄악에서 떠나야 합니다. 바로 나 한 사람이 하나님께 회개하고 돌아올 때 놀라운 부흥의 불길이 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디서 어떻게 기도해야 합니까? 15-16절을 보면 “이곳에서 하는 기도에 내가 눈을 들고 귀를 기울이리니 이는 내가 이미 이 전을 택하고 거룩하게 하여 내 이름으로 여기 영영히 있게 하였음이라. 내 눈과 내 마음이 항상 여기 있으리라.” 무슨 말슴입니까? 하나님께서 피로 값주고 세워주신 거룩한 성전에서 하나님의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이 먼저 회개하고 먼저 기도해야 함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청와대와 국회에 눈을 두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대기업과 대학에 귀를 기울이시지 않습니다. 성전에, 교회에,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관심을 갖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성전에 모여 겸손하게 허리를 동이고 기도할 때 응답해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성을 보고 우셨습니다. 그리고 산헤드린 국회로 가시거나 헤롯 왕궁으로 가신 것이 아니라 성전으로 가셨습니다. 성전의 장사꾼들을 내어쫓으시며 성전을 깨끗케 하셨습니다.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니라\\\"
그 시대에 정신과 영성의 뿌리는 교회에 있습니다. 세상이 썩는 것은 뿌리되는 교회가 썩었기 때문입니다. 뿌리가 썩은 나무, 뿌리가 없는 나무는 비바람에 넘어집니다. 햇빛에 말라서 시들고 맙니다. 우리 믿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뿌리가 무엇입니까? 바로 성전입니다. 교회가 바로 이 나라와 민족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대안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먼저 자신의 잘못을 통회하고 이 모든 아픔은 바로 “나 때문입니다. 내 죄 때문입니다.” 겸손하게 무릎 꿇고 기도할 때 하나님의 회복과 부흥의 은혜가 임할 줄로 믿습니다.
셋째로, 하나님은 황무한 이 땅을 고쳐주십니다. 하나님은 택하신 백성을 멸하시거나, 택한 민족을 멸망시키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바로의 압제아래 신음하는 소리를 들으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아픔과 신음 소리를 듣고 계십니다. 이 민족의 처절한 상황을 다 보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비록 내 백성이 어떤 환란과 고통의 순간을 맞이해도 여기 성전에 나와 기도하면 내가 그 땅을 고칠 것이다. 내 백성이 성전에 나와 회개하고 기도하면 황폐된 그 땅을 고칠 줄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내 마음의 땅이 아무리 황폐되어도 하나님은 고치십니다. 우리 가정이 아무리 위기에 부딪혀도 하나님은 고치십니다. 우리 사업이 어려워도 회개하고 기도하면 하나님은 고치십니다. 정치도, 경제도, 교육도 하나님께 돌아오면 하나님이 새롭게 고쳐주십니다. 회개하고 기도하면 길이 열립니다. 내가 그 땅을 고칠지라! 하나님은 위기의 땅을 기회의 땅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하나님은 상처 입은 땅을 고치십니다. 하나님은 저주받은 땅을 축복의 땅으로 회복시켜 주십니다. 내가 그 땅을 고칠지라!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 땅을 고칠 수 있도록 내어드려야 합니다. 내 마음도 보여드리고, 내 가정도 열어드려야 합니다. 교회도 그분의 손에 맡겨드려야 합니다. 인간적인 냄새를 제거해야 됩니다. 나라도 백성도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부흥회를 하는 이유입니다. 우리 안에 찌들어 있는 묵은 때를 벗기는 기회입니다. 하나님 앞에 내 안의 모든 죄악된 모습을 드러내는 기회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먼저, 악한 길에서 떠나 겸비해야 합니다. 모든 것이 나 때문입니다. 내 죄 때문입니다. 내 잘못이었습니다. 시인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폭탄을 터뜨릴 때 폭탄 전체에 불을 붙일 필요가 없습니다. 뇌관에만 불을 붙이면 나머지 폭탄에 저절로 불이 붙어 터지게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기도라는 뇌관에만 불이 붙으면 가정이 변합니다. 교회가 변합니다. 시대가 변합니다. 지금 우리가 해야할 일은 너무나 분명합니다. 잃어버렸던 기도를 회복해야 합니다. 기도의 줄을 잡으면 능력 있는 성도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입술에 기도의 불이 붙으면 여러분이 이 교회 부흥의 뇌관이 될 수 있습니다. 이 교회에 불이 붙으면 이 교회가 한국교회의 뇌관이 될 수 있습니다. 한국교회에 성령의 불이 붙으면 한국교회가 이 민족의 뇌관이 될 수 있습니다. 한국 사회가 새로워지면, 이 역사가 새로워지면, 세계 인류를 구원하는 뇌관이 될 수 있습니다. 주여 나를, 내 가정을, 내 교회를, 하나님의 뇌관으로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지금은 우리 모두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할 때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먼저, 우리가 교회가 먼저 겸비하게 기도해야할 때입니다. 주님의 인자하심과 긍휼하심을 간절히 구해야 할 때입니다. 내일 저녁부터 봄 부흥성회가 열립니다. 지난 한주동안 기도로 준비했습니다. 새벽을 깨우지 못하셨어도 괜찮습니다. 7번의 집회에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으로 나오십시오. 하나님 이번이 제게 주신 마지막 기회입니다. 내 마음을 돌이키고 주께로 돌아가기를 원합니다. 나의 상한 마음을 치유하시고 내 가정을 회복시키시고, 이 교회에 새로운 부흥의 불길이 임하게 하옵소서. 이 민족의 패역함을 긍휼히 여기시고 놀라운 부흥의 역사를 이루게 하옵소서. 이런 간절한 마음으로 주님께 나와 부르짖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마음이 들려주시는 말씀 앞에서 녹아지게 될 때 이 땅을 고쳐주시고, 치유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이 임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주여! 나에게, 이 성지교회 위에, 이 민족 위에 부흥의 축복을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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