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야의 부흥 운동 왕하22:1-13
사람이 어려운 일을 당하면 그 돌파구를 찾아내기 위하여 갖은 노력과 수단을 동원하여 그 고통을 벗어나려고 합니다. 심지어 부정한 방법이라도 써서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려고 합니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들이 스스로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아닙니다.
본문에 나타난 요시왕은 유대왕 21명 중에서 가장 최고로 선정을 베푼 왕이었습니다. 그는 어린 나이에 즉위하여 31년간(BC 640-609) 국가의 중흥과 큰 부흥을 일으킨 명군이었습니다. 그는 위기를 기회를 삼는 지혜의 왕으로 오늘 우리들에게 큰 교훈을 줍니다.
1. 유다왕 요시야
(왕하 22:1) \\\"요시야가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팔 세라 예루살렘에서 삼십일 년을 치리하니라 그 모친의 이름은 여디다라 보스갓 아다야의 딸이더라\\\"
우리는 유대의 왕 중에는 병들어 죽게 되자 기도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생명을 15년이나 연장받은 히스기야 왕을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히스기야 왕의 뒤를 이은 유다의 14대왕은 우상을 섬기며 악정을 행한 악명이 높은 므낫세였습니다. 그의 대를 이는 아들은 아몬 왕으로 악정을 베풀다가 신복에 의해서 죽습니다. 이처럼 유다의 역사는 왕이 바로 서지 못하며, 악한 사역으로 인하여 좌절과 피의 역사를 남기게 됩니다.
왕의 대를 이를 왕이 없자 히스기야의 증손자 8세인 요시야가 유다의 제 16대왕으로 즉위합니다. 그는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 나이에 피폐해진 나라와 어려운 국가의 문제를 안고 무거운 짐을 지게 되었습니다. 그는 나라를 개혁시키고 부흥의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어 국가를 살리기를 원했습니다.
물론 부흥을 시킬 수 있는 원동력은 요시야의 정직한 품성과 의로운 마음에 기인된 결과이긴 하지만 당시의 국제 정세에 의해 어려운 상황 때문인 바도 크다 아니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열강들의 국제 정세에 의해 약소국가들의 국내 정세는 쉽게 급변하였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그는 조상들이 섬겼던 다윗의 하나님을 갈망하게 되었고, 여호와를 찾기 시작한 것은 16세였습니다(대하34:3). 그리고 그는 예루살렘에 있는 여러 우상들을 훼파한 것은 20세였고(대하34:3-4), 26세 때 본격적으로 그는 개혁운동으로 부흥의 불길을 당기게 된 것입니다.
부흥과 관계된 히브리어 \\\'차다쉬\\\'(Chadash)와 \\\'차야\\\'(Chaya)는 \\\'갱신하다\\\', \\\'복구하다\\\', \\\'교정하다\\\' 등의 뜻입니다. 이곳 외에 구약에 나타난 부흥운동은 야곱의 얍복강가의 부흥(창32:22-32), 사무엘의 미스바(삼상7:5-11), 에스겔의 해골 떼(겔37:1-7), 요나의 부흥(욘3:1-10) 등에서 개인 및 민족 운동의 면모로 그 모습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신약에 이르러서는 대부분의 부흥이 다수 또는 대중을 상대로 한 부흥으로 바뀌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회개와 천국을 외쳐 광야의 부흥(마3:1-9)을 일으켰습니다. 사도행전에 나타난 초대 교회는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교회 초석을 놓았습니다. 이러한 부흥운동(Revival Movement)은 초대 교회와 중세 교회로 이어져 루터(Martin Luther, 1483-1546년), 칼빈(John Calvin, 1509-1564년), 낙스(John Knox (1514?-1572년)로 부흥운동은 이어졌습니다. 이후 특히 영국의 폭스(George Fox, 1624-1697년)와 웨슬리 형제(John Wesley, Charles Wesley, 1707-1788년)의 부흥운동은 미국의 대각성운동과 함께 나타났습니다.
1900년대에 일어난 부흥운동는 일제하에서 민족을 재건시키는 원동력이 되었고, 부흥운동의 정점을 이룹니다. 이러한 때에 모여든 성도들의 마음은 불타 올랐고 똑 같은 은혜 받기를 간절히 기도 드렸습니다. 그들의 마음속에 부흥으로의 열정은 성령의 강력한 역사를 불러왔고 이것은 대부흥 운동의 불씨가 되어 활활 타오르게 된 것입니다. 이 운동은 오늘까지 한국 교회의 정신적인 힘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러한 부흥을 사모하는 열정이 회복되어야 할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에 민감한 자들이 일어나서 성령의 충만을 받고, 뜨거운 부흥을 경험하고 이 갈 급한 시대에 다시 한번 놀라운 역사가 나타나길 원합니다.
(합 3:2)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케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2. 성전을 수리함
(왕하 22:2) \\\"요시야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그 조상 다윗의 모든 길로 행하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더라\\\"
여기서 우리는 부흥 운동을 주도한 요시아의 인격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무엇보다도 \\\'정직히\\\' 행하였다고 했습니다. 정직하다는 것은 사람 앞에서의 정직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의 정직이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인정받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요시야처럼 하나님 앞에서 인정받는 신앙생활을 그 목표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다윗의 모든 길로 행하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더라\\\'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요시야가 모든 인간 삶의 정도(正道)인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생각하며 판단했다는 뜻입니다. 히스기야와 요시야는 이 점에 있어서도 일치합니다(18:6). 한국교회의 1907년의 부흥은 말씀을 집중적으로 공부하는 사경회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로마나 유럽의 왕들은 많은 경우에 있어서 그들은 평생을 바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정의와 공의를 베풀기를 위해서 일생을 바친 경우가 많습니다. 그 예로는 수 백년씩이나 걸려서 많은 교회나 사회의 제도적 기반을 신앙에 두었다는 점에서 더욱 괄목할 만 합니다. 지금도 구미나 구라파의 사고나 관습 및 가치관이 신앙적 기반 위에 서서 성장하며 발전하고 있음을 통하여 알 수 있습니다.
예) 워싱턴에 있는 미국의 헌법을 만든 제퍼슨 기념관에는 미국이 철저히 성경적 기반 위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미국의 대통령은 취임식을 할 때에 성경에 손을 얹고 선서합니다.
(시 127:1)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요시야는 악한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영향 아래서 좋은 신앙교육도 받지 못했으며 조언도 듣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의 은총을 받아 하나님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들의 열조들이 믿었던 하나님을 찾게 되었고, 성전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고 성령의 감화로 우리를 하나님의 일군으로 사용하실 이 때에 더욱 힘써서 하나님의 교회를 위하여 열심을 내어야 하게 하겠습니다. 건겅과 시간 그리고 재능과 힘이 있을 이 때어 더욱 그리해야 하겠습니다.
그런 중에 그는 성전을 수리할 마음을 가지고 작업을 수행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18년에 서기관 사반을 불러 여호와의 전에 보내며, 대대적인 성전 수리 작업에 들어가게 하였습니다. 백성들은 왕의 신앙적 영향으로 말미암아 자발적이며, 자원하는 마음으로 진실하게 성전 수리에 전념하게 되었습니다.
(왕하 22:6) \\\"곧 목수와 건축자와 미장이에게 주게 하고 또 재목과 다듬은 돌을 사서 그 전을 수리하게 하라 하니라\\\"
성전을 수리한다고 하는 것은 이제까지의 삶이 나 중심에 하나님 중심으로 전환한다는 것을 뜻하며, 사람의 방식도 하나님의 성전을 중심으로 바꾼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사고와 사상 그리고 삶의 방식까지도 모두 하나님 중심, 교회 중심으로 나아가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음을 뜻합니다.
3. 말씀의 재발견
성전을 수리하던 감독자 사반은 공사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모세의 율법책이었던 것 같습니다. 모세는 율법책을 그의 명령(신31:24)에 의해서 지성소에 보관하도록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이 성경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에 관심이 소홀해 지면서 부주의로 말미암아 구석진 곳에 두었거나 적군의 침입에서 보호하기 위하여 숨겨졌을 가능성이 높았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오랜 세월 동안에 구석진 곳에 묻혀 있다가 백성들의 생각과 삶 속에서도 아주 멀어지게 된 것이었습니다.
(왕하 22:10,11) \\\"또 왕에게 고하여 가로되 제사장 힐기야가 내게 책을 주더이다 하고 왕의 앞에서 읽으매 왕이 율법책의 말을 듣자 곧 그 옷을 찢으니라\\\"
발견된 두루 마리에서 얻은 하나님의 말씀은 왕이나 제사장 그리고 선지자들에게는 전혀 새로운 말씀이었습니다. 여기에서 \\\'책을 주었더니\\\'라고 한 말씀에서 \\\'책\\\'(??????,세페르)이란 단어가 문두에 나와 강조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성전을 수리하는 일보다 더 힐기야가 준 책의 중요성을 강조한 표현이라 하겠습니다.
이 책을 사반이 읽었는데, 우리는 그 책의 내용이 어떤 내용인지에 대하여는 알 수 없지만 추측컨대 아마도 그는 왕에게 충격을 주는 중요한 부분 및 군데를 읽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왕이 율법책의 말을 듣자 곧 자신의 옷을 찢으며 통회 하였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옷과 마음을 찢는 심정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은혜의 시간을 경험하지 않고서는 진정한 영적 회복을 일으킬 수 없는 것입니다. 날마다 말씀으로 도전을 받으며, 그 속에서 감동을 받는 진지함과 하나님 말씀의 발견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구약 당시에는 종교의식을 행함에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다 기록하여 사용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율법의 발췌문, 요약문, 선집 등이 종교의식의 \\\'의식법서\\\'였습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약속이나 경고 혹은 징계 등이 빠져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말씀이 백성들에게는 희미하게 닦아 왔고, 그 결과 백성들이 타락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에는 왕에게 율법의 사본을 써서 7년마다 백성에게 그 율법을 읽어 주도록 하였습니다(신31:10,11).
(신 17:18-20) \\\"그가 왕위에 오르거든 레위 사람 제사장 앞에 보관한 이 율법서를 등사하여, 평생에 자기 옆에 두고 읽어서 그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며 이 율법의 모든 말과 이 규례를 지켜 행할 것이라. 그리하면 그의 마음이 그 형제 위에 교만하지 아니하고 이 명령에서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리니 이스라엘 중에서 그와 그의 자손의 왕위에 있는 날이 장구하리라\\\"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시대는 장구하거나 번영할 수 없을뿐더러 오히려 하나님의 저주가 따르게 마련인 것입니다. 엘리 시대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희귀하여 비전도 없이 백성은 고통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삼상 3:1) \\\"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
(암 8:11)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말씀이 없는 신앙생활과 헌신은 영적 부흥을 가져올 수 없다. 말씀에서 빗나간 설교, 말씀이 없는 교호 교육은 성도를 오히려 메마르게 합니다. 말씀이 없는 신학과 교회는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에 대한 재발견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결 론
성경에는 자주 이스라엘 백성은 어려움을 당하면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과 불평을 일 삼았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나타난 요시야 왕은 자신의 어려움을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으로 여기며 하나님께로 돌아가서 백성들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였으며, 그 결과 부흥의 운동을 주도하게 되었습니다.
요시야는 어려운 나라를 살리기 위하여 전국민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살도록 성전 수축과 말씀의 운동으로 연결시켰습니다. 이처럼 오늘 우리들에게는 무엇인가 변화되고 크게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지 아니하면 안되는 상황에 놓여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신앙을 회복하며, 말씀으로 돌아가는 운동을 통하여 놀라운 개혁을 나 자신에게서부터 일으켜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부흥운동입니다.
부흥 운동은 백성을 하나님의 징계와 채찍에서 구원해 내며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하는 가장 빠른 지름길입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의 진실함과 정직함으로 나아가며, 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아니하며 승리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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