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만남이 부흥이다/창35:1-8

하나님을 만남이 부흥이다/창35:1-8

하나님을 만남이 부흥이다
창35:1-8





방귀가 자꾸 잦아지면, 대변을 봐야할 시기가 다가옴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삶에 위기가 점점 다가오면, 하나님 앞에 결산하는 날이 다가옴을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오래 참으신 후에, 여러 가지 문제와 비극적인 사건들을 통하여 개인과 국가에게 말씀한다.

하나님 앞에서 결산하는 날은 반드시 있다. 타락에도 그 한계가 있다. 위기가 해소되지 않는다면, 심판은 불가피해진다. 그러나 큰 재난을 깨닫고 주님께 돌아오면, 하나님은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용서해 주신다. 하나님께서는 위기를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우리 인생이 위기를 만나거나, 위기가 다가오면, 잘못이 있는지 돌아보고, 잘못이 있으면 회개해야 한다. 잘못을 뉘우치고 하나님께 돌아가야 한다. 이 시대는 너무 타락한 시대다. 무슨 일이든 너무나 쉽게 포기하고, 자살하고, 죽인다. 음란하다. 거짓이 난무하다…, 그렇기에 돌아가야 한다.

본문의 배경은 이렇다. 야곱이 밧담아람으로부터 가나안 땅으로 막 돌아왔을 때(창33:18), 그 땅의 추장 하몰의 아들 세겜이 디나를 보고 끌어들여 강간하였다(창34:2). 하몰은 디나와 결혼을 협상하기 위해, 결혼지참금을 정하고, 유감스러운 일을 인정하고, 우호관계를 맺으려고 야곱을 찾아왔다.

디나의 오라비들이 몹시 격노해서, 하몰의 가문에 복수하기로 했다. 만일 하몰의 사람들이 할례를 행하면, 그들의 모든 요구가 성사되고, 디나는 세겜의 아내가 되리라고 거짓으로 제의를 했다. 할례를 행한 후, 그 성읍의 모든 남자가 고통 중에 있을 때, 그들은 야곱의 아들들에게 살해되었다.

대참사가 일어난 후, 야곱은 아들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창34:30절입니다.
“너희가 내게 화를 끼쳐, 나로 이 땅 사람 곧 가나안 족속, 브리스 족속에게 냄새를 내게 하였도다, 나는 수가 적은즉, 그들이 모여 나를 치고 나를 죽이리니, 그리하면 나와 내 집이 멸망하리라”

그들은 절대 절명의 위기에 빠졌다. 그때 하나님께서 그들을 찾아와 만나주셨다.
지금 가정과 교회, 나라가 위기를 맞았기에 하나님께 돌아가야 한다.
바로 그 시점이 이르렀기에, 지금 우리 조국에서 신앙부흥이 일어나야만 할 때이다.

1. 부흥이란 무엇인가?
부흥은 히브리어로 (הꖷꖎ, 하야)라고 하는데, ‘강한 힘으로 영혼이 다시 살아남’(revive)을 말한다.
타락하고 낙심하여 쓰러진 영혼이, 다시 살아나기 위해서는, 부흥이 필요하다.

죽은 영혼은 하나님을 만나게 되면 살아난다. 부흥은 하나님을 만날 때 일어난다.
우리는 보통 부흥이라고 하면, 숫자적으로 늘어남을 말하지만, 그것은 부흥의 결과이다.
부흥하면 숫자적으로 늘어난다. 초대 교회를 보니까 부흥이 일어나자, 3,000명 5,000명씩 돌아왔다.

진정한 부흥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찾아와 만나주실 때 나타난다.
하나님께서 침체된 영혼을 만나주시니까, 침체된 백성이 소생케 되고, 죄악 가운데 있는 백성들이 만나주시니까, 죄악을 회개하고 돌아서게 된다. 그 결과 놀라운 축복이 임하게 된다.

부흥은 개인의 부흥, 가정의 부흥, 교회의 부흥, 국가의 부흥으로 구분할 수 있다.
야곱은 그의 생애에서, 몇 번의 부흥을 경험한다. 처음 두 번은, 개인의 부흥을 경험한다.
한번은 광야에서 하나님을 만난다(창28장). 또 한번은 얍복 강에서 하나님을 만난다(창32장).
그런데 본문에서는, 야곱 가족을 부흥시키기 위해 찾아오신다(창35:1).
하나님께서는 야곱이 위기를 만났을 때마다, 그를 찾아와 만나주시고, 문제를 해결해 주셨다.

첫 번째는 형의 칼날을 피해 도망할 때, 루스(황무지)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벧엘(하나님의 집)로 바꿨다.
두 번째는 야곱에게 네 조상의 땅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 하신지라(창31:3).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돌아오는데, 형 에서가 군사를 끌고 야곱을 죽이려고 온다고 했다.

그때 얍복 강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그 곳을 브니엘(하나님의 얼굴)이라고 이름 짓는다.
어려움이 닥쳤을 때는, 하나님을 진심으로 간절히 찾아,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지만,
문제가 해결되자, 야곱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지 않고, 세겜 땅에 머문다.

놀라운 은혜를 체험했을 때, 하나님과의 약속을 잊고, 벧엘로 나가지 않고, 세겜에 머물렀다.
환도뼈가 부러지는 경험을 할 때만 해도, 야곱은 ‘이제부터 하나님께 절대 순종하리라’ 결심했다.
그런데 그의 마음이 바뀌었다. 그러다가 디나가 강간당하게 되었고, 사람들을 죽여 위기를 맞는다.

위기의 순간에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찾아와 그들을 만나주시고, 그가 삼촌 라반의 집으로 떠날 때 하나님을 만났던 벧엘로 올라가 거하며, 거기서 단을 쌓으라고 하셨다(1).
야곱은 하나님을 만나서, 그 말씀에 순종함으로, 가족적인 부흥을 체험하고, 큰 축복을 받는다.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탈봇(Talbot) 신학교 정문에는 “부흥을 위하여 기도하라!”(Pray for revival!) 글귀가 있다. 얼마나 멋있는 말인지 모른다. 우리는 부흥을 위하여 기도해야 하고, 부흥을 경험해야 한다.

2. 부흥을 경험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나님을 만나면 복이 넘치게 되므로, 하나님을 만나는 일에 힘써야 한다.
야곱이 하나님을 만나는 부흥이 있을 때, 야곱은 놀라운 축복을 받았다. 어떤 축복을 받았나요?

(1) 환난 날에 구원받게 된다(5).
우리에게는 수많은 문제가 있다. 이런 문제는 우리를 힘들게 하며, 때로는 고통스럽게 한다. 그러나 부흥을 경험하게 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 하나님은 모든 문제의 해결사가 되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흥을 간절히 사모하고, 하나님을 만나는 은혜를 받아야 한다. 은혜를 받으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서 영광을 받으신다. 그러나 은혜를 받지 못하면, 히12:15의 말씀처럼 죄를 짓고 남을 정죄하는 쓴 뿌리가 된다.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이 치려고 이들을 치려할 때,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구원해 주셨다.
5절을 보면 “하나님이 그 사면 고을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하신 고로, 야곱의 아들을 추격하는 자가 없었더라”고 하였다. 그들의 문제를 완전히 해결해 주셨다.

그러므로 부흥을 사모하여 부흥의 은혜가 임해야 한다. 은혜를 받는다는 말은, 은혜를 붙잡아야 한다는 말이다. 은혜 받는 비결은 은혜를 시간에, 은혜 받아야 한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만나자, 믿음의 조상이 되었고, 다니엘은 사자굴 속에서 살아나는 역사가 있었다.

우리도 삶에 문제가 있다면, 주님을 만나시기 바란다. 부흥의 역사가 나타나기 바란다.

(2)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가 된다.
빌 게이츠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싫어하는 사람도 있지만, 빌 게이츠를 무시하는 사람은 없다.
이처럼 하나님의 사람들은, 세상에서 무시당하지 않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성도가 이 땅에서 말씀대로 살다보면, 사람들이 좋아할 수도 있고, 싫어할 수도 있다.

야곱의 모습을 보고, 진취적이어서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사기꾼과 같아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지만 야곱을 무시할 수 없다. 그는 이스라엘 12지파의 아버지가 되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만남으로, 더 이상 사람들이 그를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3)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한다.
하나님을 만나는 부흥을 경험하면, 변화의 역사가 나타난다. 회개의 역사가 나타나,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그리고 하나님을 만났을 때, 야곱은 창28:20-22에서 3가지를 서원한다.

① 여호와를 나의 하나님으로 섬기겠다.
② 하나님의 전을 세우겠다.
③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다.

이런 헌신의 역사가 하나님을 만나면 이루어진다.
야곱은 하나님을 만날 때, 자신이 깨어지는 역사를 경험했다. 얍복강에서 한 경험이다.
그리고 거기서 새 이름을 받는다. 다시는 야곱이라 부르지 않고, 이스라엘이라고 부르겠다(창32:28).

(4) 환경적인 축복도 누린다.
하나님을 만나는 부흥을 체험하면, 영적인 축복만 받지 않는다. 환경의 축복도 받게 된다.
성령님의 역사는 우리의 환경까지 치료하시고, 복되게 하신다.

야곱이 하나님을 만나서 벧엘을 떠났을 때, 그가 누렸던 축복은 대단했다.
“나는 주께서 주의 종에게 베푸신, 모든 은총과 모든 진리를 조금이라도 감당할 수 없사오나, 내가 내 지팡이만 가지고, 이 요단을 건넜더니 지금은 두 떼나 이루었나이다”(창32:10)라고 말했다.

죄가 찾아오면 환경도 병든다. 그런데 하나님의 성령께서 오시면, 환경까지도 축복을 받는다.
들어가도 복 받고, 나가도 복을 받고, 떡 반죽 그릇과 우양의 새끼까지 복을 받는 역사가 나타난다. 병든 땅을 치료하시는 축복을 경험하게 된다. 죄악이 떠나고, 술집이 문을 닫기도 한다.

(5) 자녀의 축복을 받는다.
야곱 가정에 나타난 부흥이 있은 다음, 야곱의 아들 요셉이 꿈을 가진 소년으로 나타난다.

창37:9에, “요셉이 꿈을 꾸고, 그 형들에게 고하여 가로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한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고 했다. 부흥은 성령님이 임하시기에, 성령이 임하시게 되면 꿈과 환상을 보게 된다. 꿈과 환상을 보기에, 미래에 대한 비전을 갖는다.

행2:17에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고 말씀한다.
야곱의 가정에 이런 은혜가 임한다. 특별히 하나님의 꿈이 요셉에게 임한다.

(6) 정의의 사람에서 은혜의 사람으로 변하게 된다.
세상은 은혜와 정의, 이 2가지 주장으로 대별된다. 이 두 원리를 잘 보여주는 두 작가가 있다.
‘알렉산드르 뒤마’와 ‘빅톨 위고’다. 알렉산드르 뒤마의 ‘몬테크리스토 백작’을 보면,

긴 항해를 마치고 마르세유에 귀항한 젊은 선원 ‘에드몽 당테스’에게는, 선장으로의 승진과 사랑하는 ‘메르세데스’와의 결혼을 앞둔, 희망찬 인생이 펼쳐져 있었다.
그러나 결혼식 날 억울한 죄명을 쓰고 체포되어, 중대정치범으로 외딴 섬 ‘이프’ 성채감옥에 유배된다. 14년 후 같은 처지였던 ‘파리아’신부의 죽음을 이용하여 탈옥에 성공, 신부가 지중해 외딴 섬 몬테크리스토섬에 숨겨둔 보물을 찾아, 몬테크리스토백작으로 이름을 바꾸고 파리사교계에 등장한다.

그래서 옛날 자기를 모략한 사람들에게, 차례로 냉혹한 복수를 한다. 권선징악이 주제다. 그래서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통쾌감을 준다. 그러나 그뿐이다. 사람을 변화시키지 못한다.

그러나 은혜의 원리를 보여주는 레미제라블을 보면, 주인공 장발장이 나온다.
그는 빵을 훔친 죄로, 19년 동안 중노동을 하게 된다. 작은 잘못 하나에 이렇게 가혹한 징벌을 가하면 인간성이 파괴된다. 결국 그는 사나운 죄수가 되어간다. 그리고 19년 만에 출소하게 된다.

그러나 죄수 신분증을 들고 다닐 수밖에 없었기에, 아무도 받아주는 사람이 없었다.
나흘 동안을 헤매다가, 어느 친절한 신부가 자비를 베풀어서 잠자리를 얻게 되었다.
한밤중에 갈증을 해소하려고 물을 찾다가 찬장을 뒤지게 된다. 거기에 멋진 은잔이 있었다.

갑자기 욕심이 생긴 장발장은, 그 은잔을 훔쳐 어둠 속으로 도망친다.
그런데 그를 아는 형사 자베르가 있었다. 그는 전과자는 변화될 수 없다는 소신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는 정의만을 추구하는 대표적인 사람이다. 어둠 속에서 훔친 은장과 함께 장발장을 붙잡는다.

그리고 장발장을 끌고, 신부에게로 돌아온다. 낌새를 알아차린 신부가 장발장에게 이렇게 말한다. “다시 오셨군요. 다행입니다. 기다리고 있었어요. 제가 은잔과 함께 촛대까지 주었는데, 촛대는 두고 가셨더군요” 결국 신부의 이러한 행동에, 장발장의 삶은 변화되었다.

야곱의 아들들은 강간했다고 세겜 사람들을 다 죽이지만, 그러나 은혜를 경험한 다음에는, 자신과 자신의 자녀들을 목숨을 걸면서, 은혜의 사람들로 변화된 모습을 보여준다(창43:9).

3. 그러면 부흥은 어떻게 임하는가?

(1) 갈급한 영혼에 부어주신다.
이 세상에는 배부른 사람과 배고픈 사람이 있다. 배부른 사람은 좋은 음식을 주어도, 귀찮아하면서 거절한다. 반면 배고픈 사람은, 무엇을 주던지 잘 받아먹는다. 영적으로도 보면 똑같다.

영적으로 배부른 사람은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주셔도 귀찮아 하지만, 영적으로 배고픈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무엇보다 열망한다. 영적으로 허기져서 배를 움켜쥐고,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나오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게 된다.

하나님의 은혜는 영적인 목마름과, 배고픔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임한다.
하나님께서는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시지만(시107:9), ‘어떻게 되겠지’하는 태도나, 적당히 적응하려는 태도는, 아무런 변화를 일으키지 못한다.

목마름은 위대한 능력이다. 지도자는 무엇보다, 목마름을 가진 사람이어야 한다.
그 일에 대하여 목마름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목표를 이루어내고, 무슨 일을 성취할 수 있다.
부흥은 사모하는 사람들에게 부어주신다. 사모하는 개인에게 부흥의 불씨를 주신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 공동체적으로 역사하신다.
함께 모여서 부흥을 사모할 때, 하나님께서 공동체에 부흥을 부어 주신다.
부흥에 대한 갈망은, 때로는 인간의 한계선상에서, 절망을 느낄 때 갖게 된다.
야곱은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도망갈 때, 얍복강에서 고민하고 절망할 때였다.
본문도 세겜 땅에서, 세겜 남자들을 죽이고, 재물을 노력함으로, 두려워 떨고 있을 때 찾아오셨다. 그때 마음 깊은 곳에서, 하나님을 갈망했다. 하나님을 사모했다. 그때 하나님은 그를 찾아오셨다.

(2) 하나님 앞에 지은 죄를 회개하라.
부흥을 경험하는 길은 죄를 회개해야 한다. 하나님 앞에 막힌 담을 헐어야 한다. 2절을 보면 야곱은 지금 가족적인 결단을 하고 있다. “…이방 신상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케 하고, 의복을 바꾸라”

야곱의 가족들은 아직도 우상을 섬기고 있다. 또한 하나님 앞에 서원한 내용도 지키지 않았다.
그렇지만 야곱은 드디어, 우상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케 하고, 의복을 바꿔 입으라고 명령한다.
단호하게 회개의 길을 선택했다. 그리고 하나님께 나아가서 단을 쌓기로 결정했다(35:3-4).

야곱은 과감한 결단과 헌신을 한다. 벧엘로 떠나서 단을 쌓는다(6-7).
야곱과 야곱의 가족의 모습을 통해, 우리가 회개할 부분은 어떤 것인가?
하나님과 서약한 것을, 아직도 지키지 못한 부분과, 아직도 우상을 섬기고 있지 않은지요?

(3) 부흥을 위해 대가를 지불하라.
야곱의 가족이 부패한 원인은, 그들 중에 있는 이방 신상을 버리지 못했다.
그래서 야곱은 값비싼 고리와 드라빔을 다 버렸다. 이것이 헌신이다.

하나님의 전을 짓겠다고 헌신하거나,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 헌신하겠다고 약속하신 분이 있나요?
물질의 축복을 주시면, 자식만 주시면, 결혼만 시켜 주시면…하면서 약속한 것들이 있지 않나요?
수입의 십일조를 약속하고 부도 낸 십일조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4) 간절히 기도하라.
얍복 강에서 경험했던 부흥의 축복은, 간절한 기도의 결과였다. 야곱은 울며 기도했다.
그리고 합심하여 기도하라. 합심하여 기도할 때, 성령의 역사가 강하게 나타난다.

(5) 주신 축복으로 사명을 감당하라.
부흥을 경험하면, 하나님의 큰 축복을 받는다. 하나님을 만난 후, 아브라함이 복을 받았다.
이삭은 거부가 되었다. 야곱도 35장에서 부흥을 체험한 다음에 놀라운 축복을 받았다.

그 축복은 요셉이라는 아들을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축복이다. 단순한 출세만 하지 않고, 요셉을 통해서 만민이 복을 받게 하셨다. 하나님은 우리를 축복하시고, 우리 자녀들을 축복하신다. 만민이 복을 받는다. 그 이유는 축복으로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다.

결론입니다. 세상에서 제일 답답한 사람은,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허송세월’하는 사람이다.
목적도 없이 살아간다. 작은 집을 하나 지을 때에도 ‘설계도’가 필요한데, 귀중한 인생을 살면서도, 설계도도 없이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불쌍한 인생이다.

세상은 비전을 가진 사람에 의해서 변화된다. 비전과 꿈은 재산이다. 결코 헛되지 않다.
1640년 ‘존 하버드’라는 사람이, 영국에서 미국으로 이민을 왔다.
그리고 훌륭한 목사를 양성하기 위해서 ‘보스톤’ 한 구석에 대학을 세웠다.

이 대학이 바로 하버드 대학이다. 하버드 대학은 존 하버드가 내놓은, 700파운드의 돈과, 책 200권으로 시작된 학교다. 안타깝게도 존 하버드는 대학을 세운지 1년 만에 타계하게 된다.
그는 하버드 대학의 영광을 보지 못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그의 꿈을 사용하셔서, 이 대학을 통해서 미국의 많은 목사와 대통령, 노벨 수상자를 만들어냈다. 이 하버드 대학은 존 하버드의 꿈의 결실이다. 성도는 꿈꾸는 사람들이다.

성도들은 이 세상을 아름답게 변화시키겠다는, 꿈을 꾸고, 변화시키려면 목마름이 있어야 한다.
먼저 우리는 가족의 부흥을 사모하자.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우상을 버리자. 죄악을 버리고, 약속한 헌신을 새롭게 하시기 바란다. 그래서 자녀가 요셉으로 나타나는 축복이 있기를 바란다.

요셉으로 인하여 온 가족이 축복을 받고, 요셉이 세계적인 인물이 됨으로, 물질의 복을 받고, 가족 전체가 복을 받고, 세계를 구원하는 사명까지도 담당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