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위일체의 제3위격을 말한다. 구약에서는 하나님이 영으로 사용되었다.
구약에서 전쟁의 용기와 힘, 예언과 재판, 뛰어난 기술과 지혜 등은 하나님의 영의 은사였다.
신약에서는 예수께서 세례받으실 때에 하나님의 성령이 임하셨고, 예수를 광야로 인도하셨고, 귀신을 쫓아내셨고, 하나님이 뜻을 이루셨다. 성령께서 일하시는 곳에서는 예수의 생애의 의미가 분명해지고, 예수께서 구주이심을 확신하게 되고 현재도 살아 계신 주로서 앙망하게 된다.
성령에 의해서 믿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의 신분이 주어지고 하나님과 교제를 가지며 신자 서로의 교제와 일치된다. 따라서 사랑이 성령의 은사 중에 최고이다. 그리고 종말의 소망을 주시는 분도 성령이시다.
성령은 그리스도의 역사하심에 의해 시작된 구원이 마침내 신자들에게 완성되는 일의 보증이 되신다. 바울은 방언과 같은 황홀한 상태가 성령역사의 최고의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고, 교회 전체의 건덕과 하나님께 영광돌릴 수 있는 하나님이 자녀로서의 완성을 목적으로 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희랍어 프뉴마는 관계되는 의미를 굉장히 많이 가지고 있다. 성서에서 이 의미는 특수한 인간생활에 대한 용어와 하나님의 역동적인 활동에 대한 용어로 구분된다. 구약성서에서는 하나님의 영(루아흐)으로 창조시에 역사하 시고, 지도자들에게 힘을 주시고, 예언자들에게 영감을 주셨다. 간단히 말해서 하나님의 영은 세상에서 특히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하나님의 능력과 임재였다. 하나님의 영이 인간에게 활력을 주면 그 사람은 영을 가졌다라고 말할 수 있다. 그 후 영은 인간의 특수한 능력(지식.감정.의지)에 대한 용어가 되었고, 인간의 행동과 생활의 중심이 되는 용어인 \"영혼\"과 \"마음\"과 동의어가 되었다.
신약성서에서 프뉴마는 거의 같은 의미인 인간 생명의 특수한 성질과 하나님의 창조적인 활동으로 사용되었으나 후자가 우위를 차지했다. 왜냐하면 신약성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 안에서 그리고 신앙을 통해서 기록 되었고, 기록 자체가 성령의 역사이며 성령은 특수한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바울은 어떤 사람이나 어떤 목적을 위하여 의지를 가지고 살아가는 인간의 독특한 존재를 지적하기 위하여 다른 용어들(: 몸, : 혼, : 정신, : 마음)과 함께 프뉴마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신 하나님의 구속적인 능력에 대해서, 그리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 이는 사람들의 생활에 대해서 프뉴마를 사용했다.
성령에 관하여 신약성서의 많은 기록자들의 강조점은 여기서 논하기에는 너무나 복잡하다. 일반적으로 성령은 그리스도의 탄생과 공생애와 부활에서 역사하신 능력이었으며, 기적과 기타 초자연적인 현상에서 역사하신 기 적적인 능력이었으며,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에게 역사하시며, 자연적으로 얻게 되는 것이 아니라 죄의 속박에서 해방된 삶을 사는 신실한 사람들에 게 주어지는 선물이며, \"그리스도의 영\"으로 역사하시며, 기쁨.평안.인내. 양선.신실.관용.자제가 특징인 새로운 생활을 하게 하며, 예언.가르침.방언과 같은 특수한 은사를 주시며, 특히 이웃을 사랑하게 하시어 교회의 연합의 기초가 되신다.
정확히 말하자면 신약성서에는 성령의 교리가 없다. 그러나 성령에 관한 특수한 언어가 후에 신학적 저작을 위한 자료가 되었다. 초대교회의 신학자들은 대부분 기독론에 관하여 논쟁했다. 그러나 정통신앙을 가진 학자들은 성령이 하나님과 동등한 위격(person)임을 믿었다. 성령의 교리는 4세기 말까지 논쟁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 로고스에 관하여 논쟁할 때 마케도니우스 주의자들과 성령이단론자라고 불리우는 신학자들은 성령의 완전한 신성을 부인했다. 그들의 견해는 381년에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서 정죄되었고, 한하나님 안에서 세 동등한 위격이라는 신조는 서방에서 정통신앙으로 인정되었다. 성령과 다른 두 위격의 관계는 후에 동방과 서방의 기독교 세계에서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오늘날의 성도들은 성령에 관해서 초대교회 이후 제일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학자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세계에 들어서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갖게 되는 의문점들이 있습니다.
성령의 세계란 무엇인가? 나도 성령 체험을 할 수 있을까? 과연 어떻게 하면 성령 세례를 받을 수 있을까? 성령의 은사는 무엇이며 나도 이성령의 은사를 받을 수 있을까? 이런 질문과 의문들이 계속 우리의 믿음의 형제들 가운데서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선 성령은 누구신가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서는 성령을 인격 즉 개성을 가진 분이라고가르치고 있습니다. 성령은 한갖 힘이나 능력이나 어떤 이것 저것 하는 사물이 아 니라 지성과 감성과 의지를 가지신 인격적인 분이라고 성경은가르쳐줍니다.
1) 인격이신 성령은 언제나 말씀하십니다. 계2:29엔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했으니 오늘날 우리 우리 교회와 믿음의 성도는 성령이 인격적으로 하시는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2) 인격을 가지신 성령은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십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밀 바를 알지 못하나니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느니라](롬8:26).
믿음의 성도들이 연학하여 환난과 고통과 죄와 악의 수렁에서 기도마저 할 수 없을때, 우리에게 다시 힘을 주시고 용기를 주시고, 영적인 삶을 세워주시기 위해 성도들과 함께 간구하시는 분이 성령이라고 성경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3) 인격이신 성령은 교회와 성도들에게 명령하십니다. 사도행전16:67에는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막았고, 사도 바울은 비두니 아로 가기를 애썼지만 예수의 영이 허락지 않았다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런고로 성령은 성도들에게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시간마다. 장소마다 분별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뜻을 성도들에게 명령하십니다.(롬12:2).
4) 인격이신 성령은 믿는 이의 삶과 생활을 안내하십니다. 성경에는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성령이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라 했고, 장래일까지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16:13)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우리 속에 인격으로 내재하시는 성령의 안내와 인도를 따라 우리의 생활의 모든 영역을 성령의 통제하에 두는 끝없는 믿음의 훈련이 필요합니다.
5) 인격이신 성령은 우리 믿는 이의 증거자이십니다.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롬8:16).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경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고전6:11). 우리 믿음의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고백하고 구원의 참기쁨과 감격 속에 산다고 하는 것은 믿음의 제일 큰 요소입니다. 그러나왜 많은 성도들이 믿음 안에서 살면서도 구원의 확신과 믿음의 기쁨과감격이 없을까요?
왜 5년 10년을 믿음 안에서 살면서도 많은 성도들이 구원의 확신이 없을까요? 심지어 어떤 때는 구원을 받을 것 같고 어떤 때는 전혀 자신이 없다고들 이야기 합니다.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세주로 받아들이는 것도, 또 거듭나 하나님의 가족의 일원이 되는 것도 모두 철저한 성령의 역사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성령으로 아니하고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고전12:3). 이렇게 성서는 못박고 있습니다.
이것은 성서에 기록된 성령의 성품들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것으로 예외없이 이러한 성품들은 하나님 자신의 것들입니다.
히브리서 9:14에 보면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없는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겠느냐] 고 했습니다. 세상 끝날까지 믿음의 성도와 항상 함께 계신 분이 바로 하나님의 영이요, 그리스도의 영이요 약속의 영인 성령입니다.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리니](눅1:35) 성도는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죄도 이기고 악도 이기고 이 땅 위에서 하나님의 진리를 목숨을 걸고 수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경험과 이성과 지식과 자기 한계의 세계를 넘어서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생활의 증거를 나타낼 수있는 것입니다.
[내가 주의 신을 더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시139:7). 믿음의 성도는 절망의 심연에서도, 고통과 실패의 밑바닥에서도, 죄와악의 구렁텅이에서도 형제를 위하여 탄식하는 성령께서 함께 계심을 알고 강하고 담대하게 믿음의 삶을 살아 가시길 바랍니다.
[오직 하나님의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게 보이 셨으니 성령은 모든것을,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영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느니라](고전2:1011).
사랑하는 여러분! 함께 이삼십년을 살아온 부부 간에도 서로의 속을 안다고 하는 것이 어려운 일입니다. 또 자기가 낳고 기른 자식이건만 그 자녀의 속을 안다고 하는 것도 어렵기만 합니다. 하물며 믿는 우리가 하나님의 속깊은 뜻을 어찌 알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전적인 성령의 도움에 의지해야 되고 이러한 성령의 도움을 받을 때만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깊은 뜻을 시간마다 깨닫게 되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성령은 우주 창조에 동참하신 분이며, 성경에 영감을 불어 넣어 주셨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 형성에 역사하셨으며, 선택받은 자를 중생시키고 믿음의 성도가 변화되도록 역사하시는 분으로 곧 하나님이십니다.
지금까지 성령은 인격을 가지신 개성이 있는 분이요, 성령은 하나님이시고 주님이시며 삼위일체 중의 한 위라는 사실을 말씀드렸습니다. 기독교는 삼위일체설(Trinitarian)을 믿느니 것입니다. 우리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데, 이 삼위일체 중 한분 이라도인정하지 않는 성도는 분명히 신앙의 기쁨과 감격과 힘을 가질 수 없습니다. 또 삼위일체 중 한 분이라도 경시하는 하나님을 모르는 자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성경에 나타난 성령의 명칭을 볼때 더욱 분명해짐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은
(1) 하나님의 영(요4:24). (2) 하나님의 선한 영(느9:20). (3) 자유의 영(시 51:21) (4) 그리스도의 영(롬8:9). (5) 주의 영(행8:29)) (6) 영원하신 영(히9:14) (7) 중재자 또는 위로의 영(요14:16). (8) 약속의 영 등으로 표현되고 있는 것입니다.사랑하는 여러분! 제가 강조하고 싶은 요점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로 알려면 성령도 바로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바로 믿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진리를 따르기를 원하는 사람이면 누구를 막론하고 이 성려을 알아야 합니다.
삼위일체 중 성령의 사명은 이 시대에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고로 니케아 신조에는 [성령은 하나님이시다]라고 정의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의 예배 드립니다. 이 영적으로 드리는 예배를 통해서만 성경에 기록된 대로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과의 관계가 정립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약속의 시대가 성취된 성령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초대교회의 모든 성도들은 오순절에 성령을 실제로 체험했고, 예수 그리스도의 약속은 성취되었습니다. 이 성령의 사건으로 제자들은 자신들이알고 있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과 저들의 신앙적 버릇과 습관에생명과 능력이 왔으니, 그날의 영광과 역사는 오늘날 참성도들 속에도존재하고 있고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의 인격성에 관한 분명한 이 교리를 단순한 말장난이 아닙니다. 만약 믿음의 사람이 복된 성령의 인격성을 부인하거나 불신하면 그 사실과 함께 성도의 예배의식은 허위에 지나지 않게 될 것입니다.
만약 믿음의 사람이 복된 성령의 인격성을 부인하거나 불신하면 그 사실과 성도의 예배의식은 허위에 지나지 않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