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마는 제가 어렸을 때에는 약간의 혼동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히브리서와 야고보서에 관한 것이었는데요.
히브리서를 읽어보면 분명히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되어 있거든요.
히브리서의 핵심장이면서 믿음장이라는 별명이 붙어 있는 히브리서 11장을 보면 수많은 믿음의 조상들에 관한 기록이 있는데, 그 사람들이 다 믿음으로 살아서 믿음으로 구원받은 사람들입니다.
특별히 종교개혁 이후에 우리 기독교에서는 로마 카톨릭의 형식적이고 인본주의적인 신앙생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오직 믿음\'(Sola Fide)을 강조해 왔습니다.
그리고 사실 그 어떤 행위로도 인간은 구원받을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목사님의 설교를 통해서 수도 없이 들어왔습니다.
인간이 어떻게 자기의 행위를 통해서 구원을 받을 수가 있겠습니까?
아무리 잘난 인간이라고 할지라도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구원받을 길이 없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종교개혁의 선봉에 나섰던 마틴 루터는 야고보서를 일컬어서 ‘지푸라기 서신’이라고 불렀다고 해요.
왜 ‘지푸라기 서신’이라고 했을까요?
우리가 구원받는 것은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지 인간의 행위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히브리서와 같은 서신서라면 모를까 야고보서와 같은 서신서는 별로 값어치가 없는 서신서라고 생각을 해서 지푸라기 서신서라고 불렀던 거예요.
그런데 한편으로 생각을 해 보면, 우리에게 주신 이 성경 말씀은 모두가 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신 말씀이잖아요?
디모데후서 3장 16절 말씀에,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주신 이 성경말씀은 어느 것 하나도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고 어느 말씀은 ‘금’이고 어느 말씀은 ‘지푸라기’이고 그런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믿습니까?)
그런가 하면 또 어떤 사람은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아서 천국에 가려면 첫 번째는 히브리서에 말씀하고 있는대로 믿음으로 살아야 하고, 두 번째는 야고보서에 있는 말씀대로 실천하고 행동하는 것이 있어야 완전한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맞는 것 같죠? 얼핏 들으면 정말 맞는 것 같아요.
여러분, 조심해야 됩니다.
이런 사람들의 주장을 일컬어서 ‘2단계 구원론’이라고 말을 하는 거예요.
요즘 많은 이단 사상들이 판을 치고 있는데, 그 중에 가장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는 이단들이 바로 ‘구원론’을 가지고 우리를 공격하고 있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2단계 구원론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역시 구원론에 대한 잘못된 해석을 하고 있는 거예요.
우리가 구원 받는 것은 ‘믿음으로’ 구원받는 겁니다.(롬10:9-10)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그러면서 뭐라고 말씀하셨어요?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누구든지 예수를 구주로 믿고 영접하면 그 순간에 하나님의 구원이 우리에게 이르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2단계 구원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믿음으로 구원을 받긴 받는데,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거예요.
예수 믿는 사람들이 말로만 예수 믿는다고 하고서 실천도 없고 행함도 없는데 어떻게 구원을 받겠느냐는 거죠.
정말 그래요. 그래서 안 믿는 사람들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보고서 얼마나 욕을 하고 있는지 몰라요.
예수 믿는 사람들이 뭐 이렇다 저렇다 그러면서 얼마나 우리를 공격하는지 모릅니다.
지난주에 제가 어떤 자매님을 만났는데, 진주에 어떤 침례교에 다닌다고 그러더라고요.
이 자매가 나한테 대뜸 그러더라고요?
“목사님, 혹시 구원에 대한 확신이 있으세요?”
그래서 한 번에 알아 봤죠. ‘이거 구원파로구나.’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게 감히 어디 목사님한테 와서 수작을 거는 거야?’
여러분, 누구든지 와서 ‘당신 구원 받았습니까?’라고 묻던지, 혹은 ‘당신 구원에 대한 확신이 있습니까?’라고 물어보면 이건 100% ‘구원파 이단’이라는 것을 꼭 아시기 바랍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라고 하더라도 보통 사람들은 구원에 대해서 별로 그렇게 깊이 생각을 안 하고 살거든요.
‘예수 믿으면 당연히 구원을 받는 것이지.’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느닷없이 누군가가 와서 ‘당신 구원 받았소?’ ‘당신 구원에 대한 확신이 있소?’ ‘당신 몇 년 몇 월 몇 일에 구원 받았소?’라고 물어보면 갑자기 꿀먹은 벙어리가 되어서 아무 말도 못하고 말게 되거든요.
그러면 바로 공격이 들어오는 거예요.
‘내가 그럴 줄 알았다. 당신 그 교회에 다녀서는 구원을 못 받는다. 우리 교회에 나와야 구원을 받는다.’
그러면서 처음부터 자기네 방식으로 다시 성경을 가르치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 구원파에 빠져버리면 끝장나는 겁니다.
제게 접근했던 그 자매도 그러더라고요.
자기가 하대동에 있는 무슨 침례교회에 다니고 있는데, 원래는 안 믿는 사람이었대요.
그러다가 누굴 만나서 성경 공부를 하게 되었는데, 그렇게 좋더랍니다.
그러면서 자기가 다니는 그 교회가 제대로 된 교회인지 아닌지 와서 좀 봐달라는 거예요.
그래서 그 교회에 다닌지 얼마나 되었느냐고 물었더니 5, 6년 정도 되었다는 겁니다.
5, 6년이나 되었으면 자기가 다니는 교회가 잘못 된 교회인지 제대로 된 교회인지 모르겠어요?
‘언제 시간이 있느냐?’고 하면서 자꾸 시간 약속을 해서 나를 그 교회로 오라는 거예요.
한 번만 오셔서 들어보시고 내가 다니는 그 교회가 맞는지 안 맞는지 봐달라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그랬죠.
“저는 시간이 없고요, 자매님이 다니시는 교회가 맞는지 안 맞는지 알고 싶으시면 저희 교회에 오셔서 말씀을 들어 보시고 자매님이 다니시는 교회랑 같으면 다행이고, 그렇지 않으면 자매님이 다니시는 교회가 이상한 교회이니까 저희 교회에 오셔서 예배에 참석하시고 제 설교를 들어 보세요!”
그랬더니 ‘목사님이 시간이 없으시군요?’ 그러면서 그냥 가버리더라고요.
여러분, 구원에 대한 분명한 확신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는 그 사실 하나 만으로, 그것을 믿는 우리 모두가 다 구원을 받게 된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없습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 말씀이 바로 그거예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할렐루야!)
요즘 대형 집회들이 많이 열리고 있거든요.
사람들이 몇 천 명씩 몇 만 명씩 막 몰려듭니다.
‘꿩 잡는 게 매’라고 그저 사람들만 많이 모아 놓고 집회를 하면 그 사람이 금방 떠버려요.
큰 교회 목사님들이 고문으로 줄줄이 늘어서서 보증을 서줍니다.
그리고 정말 떳떳하게(?) 집회를 해요.
그런데 정말 그 속을 알고 보면 잘못된 사람들이 정말 많습니다.
잘 분별해야 됩니다.
기독교 방송 텔레비전에 나온다고 다 건전한 목사님들이 아니라는 걸 알아야 되요.
정말 훌륭하신 분들도 계시지만, 게 중에는 약간 잘못된, 2%가 부족하신 분들도 계세요.
그러면 히브리서와 야고보서가 어떤 관계에 있는 것이냐?
히브리서와 야고보서는 수레의 양 바퀴와 같다고 보시면 됩니다.
믿음과 행함은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믿음만 있고 행함이 없다?’ 그런 건 없어요.
‘행함은 있는데 믿음이 없다?’ 그런 것도 없습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당연히 행함이 따라오게 마련이거든요.
행함이 없는 사람은 알고 보면 믿음도 없는 사람이예요.
믿음이 제대로 박힌 사람이라면 행함은 저절로 나타나게 되는 거예요.
우리가 믿을 때에 하나님의 영이 우리 속에 들어가시기 때문에 성령으로 사는 사람들은 다 성령을 따라서 살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부터는 이거다 저거다 그렇게 생각하지 마세요.
믿음이 있으면 행함도 있는 것이고, 믿음이 없는 행함은 그 행함 자체가 거짓된 것이라는 걸 알아야 되겠어요.
오늘 말씀의 핵심을 ‘믿음’이냐? ‘행함’이냐?로 보시지 말고 하나님께서 믿음으로 사는 우리들에게 주시는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들이 무엇인지 찾아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항상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신 줄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기도에 대해서 가르쳐 주시면서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7:9-11)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항상 좋은 것을 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17절)
지금 이 시간에도 위에 계신 하늘 아버지께서 빛들의 아버지가 되셔서 온갖 좋은 은사와 각양각색의 온전한 선물들을 내려주고 계시는 줄 믿습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시는 세 가지 선물들이 있는데, 그것은 ‘경청’과 ‘온유’와 ‘경건’입니다.
19절 말씀을 다 같이 봉독하시겠습니다.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니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이거 정말 어려운 말씀인 것 같아요.
더구나 저 같이 젊은 사람들에게는 정말 어려운 말씀이고요, 성질 급한 사람들에게는 더더욱 어려운 말씀 같네요.
제가 자원봉사로 학생들을 상담하는 일을 하고 있는데요.
상담학에서 제일 중요하게 말하는 것은 ‘경청’입니다.
그저 들어주라는 거예요.
마음이 답답해서 상담을 하겠다고 왔는데, 그 사람 말은 들어 줄 생각도 안 하고 ‘당신은 이게 잘못 되었소 저게 잘못 되었소.’ 그러면 오히려 그 사람이 상처만 받고 돌아가게 된다는 거예요.
그런데 상담에 대한 기술도 별로 없고 별다른 지식도 없을지라도 그저 내담자가 말하는 걸 가만히 들어주기만 해도 그 상담은 90% 이상 성공한 상담이 되는 거래요.
부부싸움이 왜 일어납니까?
상대방의 얘기는 안 들어주고 그저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가면서 내 얘기만 하려고 하니까 싸움이 일어나는 거 아니겠어요?
답답한 내 속 사정도 있겠지만 상대방도 하고 싶은 말이 있겠죠.
그 말을 들어줘야 되는 거예요.
사람마다 귀가 몇 개 있어요? 두 개 있잖아요?
또 입은 몇 개 있어요? 한 개밖에 없잖아요?
듣는 것은 많이 듣고 말하는 것은 적게 하라는 뜻입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들어 볼 생각은 안하고 냅다 쏟아내기만 하면 자연히 성질도 더 나게 될 거예요.
성질 부려서 이로울 게 뭐가 있겠어요?
우리가 한번 성질을 부릴 때 마다 우리 속에 있는 오장육보가 어떻게 되는지 아세요?
20절 말씀에, “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라.”
모든 것을 다 잘하고도 한번 성을 내고 나면 하나님의 의를 이룰 수 없게 된다는 말씀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 다음에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시는 좋은 은사과 온전한 선물 두 번째는 ‘온유’입니다.
‘온유’라는 말을 들으면 따뜻한 느낌이 드세요? 차가운 느낌이 드세요?
부드러운 느낌이 드세요? 딱딱한 느낌이 드세요?
그렇죠! 온유라는 단어가 따뜻할 온(溫)자에다가 부드러울 유(柔)자를 써서 온유(溫柔)라고 하는 거니까 당연히 부드럽고 따뜻한 느낌이 들겠죠?
옛날에는 머리 좋은 사람, 공부 잘 하는 사람, 돈 많은 사람, 권력이 있는 사람, 이런 사람들을 좋아했었잖아요?
그런데 요즘은 어떤 사람이 인기 있는지 아세요?
가슴이 따뜻한 사람, 메너가 좋은 사람, 친절한 사람, 부드러운 사람…
한마디로 온유한 사람이 최곱니다.
신랑감을 구하려면 온유한 사람을 찾으세요!
좋은 며느리, 좋은 시어머니를 맞이하고 싶으시면 온유한 사람을 고르세요!
좋은 리더를 원하시면 온유한 사람을 뽑으시기 바랍니다.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민12:3)
남들에게 잘 모이고 싶으시면 스스로 온유한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어떤 사람이 온유한 사람일까요?
21절 말씀을 다 같이 봉독해 보시겠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버리고 너희 영혼을 능히 구원할 바 마음에 심어진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
온유한 사람은 마음 속에 있는 모든 더러운 것과 악을 내 버린 사람입니다.
‘온유’의 반대되는 말이 뭘까요?
성경에 ‘강퍅(强愎)’이는 말이 있는데, 온유라는 말의 반대되는 말이예요.
성경에 나왔던 인물 중에 강퍅했던 사람이 누가 있었죠?
애굽 왕 바로, 하나님께서는 바로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셨습니다.(출7:3)
또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었던 사울에게 악신이 들어가니까 사울의 마음도 강퍅해져서 자기 사위인 다윗을 죽이지 못해서 얼마나 난리를 쳤어요?
왜 온유한 사람이 되어야 할까요?
21절 말씀처럼 온유한 사람이 마음에 심겨진 말씀을 ‘아멘!’으로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마5:5)
마지막 세 번째,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시는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은 ‘경건’이예요.
26절과 27절 말씀을 함께 읽어 보시겠습니다.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물리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하나님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
성경은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딤후3:5) 사람들의 모습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참된 경건은 자기 혀를 재갈 먹여서 말을 줄이고 행함으로 자기 이웃을 돌보는 사람이 참된 경건한 사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 아침에 주일학교 예배를 드리면서 주일학교 학생들에게도 같은 본문 말씀을 전했는데, 어린 학생들이 경건이라는 말의 뜻을 잘 모르더라고요.
그래서 경건을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고심하다가 그냥 경건을 ‘얌전한 것’이라고 설명을 하고 말았는데, 사실 얌전하기만 해도 ‘경건의 모양’은 갖춘 것 아니겠어요?
거기에다가 경건의 능력까지 나타나게 하려면 자기 혀를 재갈 물리고 환난 가운데 있는 이들을 돌아보는 선행이 있어야 참된 경건의 사람이 된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믿음이냐? 행함이냐?’라는 문제로 갑론을박하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시는 이 아름다운 은사와 선물들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중요한 세 가지 덕목이 됩니다.
‘경청과 온유와 경건’ - 하나님께서는 우리들로 하여금 당신께서 창조하신 피조물들 중에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들을 낳으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18절)
이제는 그리스도인의 참된 삶의 모습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된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