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에로니무스의 증언(340-420년경) 그는 라틴어 불가타역의 뛰어난 번역자이며 명성있는 학자로서, 우리가 소유한 신약 정경 모두를 증언했다. 그는 바울에 의해 히브리서가 기록되었음을 인정하였고, 야고보서와 베드로후서가 어떻게 인정될 수 있는가를 설명했다. 그의 견해는 최상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e)의 증언(354-430년) 히에로니무스와는 달리 그의 견해는 모호했다. 그는 문제시되었던 일곱 권의 책을 모두 수락하기는 했으나 성경의 권위에 정도의 차이를 두고 대체로 외경을 포함하여 폭넓은 로마 가톨릭교회의 구약 경전 확립에 기여하였다.
교회협의회의 활동 신약 정경의 한계를 정하는 문제는 어떠한 협의회에서도 결정할 일이 아니었다. 개개의 문서가 지닌 영감적인 가치나 내적인 권위가 그 결정요소였다. 이러한 사실은 정경 가운데 우리에게 전해 내려오는 문서의 순수함이나 확실성에서 뚜렷하게 증명되고 있다. 4세기 말 이전 어떠한 협의회도 이런 주제에 관해서 아무런 공언도 하지 못하였다.
카르타고 제3차 교회회의(397년) 여기에서 정경에 대한 최초의 결정을 내렸다. 이 회의에서 규정된 사항 중의 하나는 교회내에서는 오로지 \"정경으로 인정된\" 책만 읽혀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후에 이것은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27권의 목록이 되었다. 히브리서는 바울의 것이라는 이유로 인정되었다. 히포 교회회의(419년)는 제3차 카르타고 교회회의의 목록을 거듭 확인하였다. 이처럼 정경의 선정은 개개의 책들이 자체의 가치를 입증한 후 교회회의에서 확인하는 자연스러운 과정을 겪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