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령한 귀를 위한 은사(예언은사/ 방언은사)

신령한 귀를 위한 은사: 예언의 은사, 방언의 은사| 성령/성령사역/은사
 

 

신령한 귀를 위한 은사: 예언의 은사, 방언의 은사


예언의 은사는 입의 은사처럼 보입니다.
말로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가 예언의 은사를 받고 하나님과의 대화가 이루어지니까
이것은 분명히 귀의 은사입니다.

예언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에 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지속적으로 말씀하시지만
이 귀가 영적으로 열려 있지 않을 때에는 들을 수가 없습니다.

이 예언(foretell)의 은사와 대언(forthtell)의 은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귀가 있을 때에 가능합니다.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마음의 귀일 수도 있습니다.
마음으로 영적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능력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힘으로는 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서 들을 귀를 주실 때에 가능하게 됩니다.
이것이 곧 예언의 은사,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시는 은사인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이러한 은사가 없이도 다른 사람의 말을
제 3의 귀로 듣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즉 마음으로 말을 듣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말하는 것 이상의
깊은 내면의 뜻을 알아들을 수 있는 귀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귀는 상담자들에게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귀가 곧 신령한 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듣게 하시는 귀를
우리는 신령한 귀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듣게 하시는 귀의 능력,
곧 예언의 은사가 바로 귀에게 주시는 은사인 것입니다.


오순절에 일어났던 방언의 역사도 어떤 의미에서는
귀를 위한 은사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그들이 각각 성령님이 시키시는 대로 다른 방언으로 말하였지만
모두가 자기 지방의 언어로 알아들을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16개의 방언이 사용되었지만 각자는 편안하게
자기 나라말로 알아듣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순절, 성령강림에 일어난 방언의 역사입니다.


처음 있었던 방언의 역사는 지금의 방언의 은사처럼
알 수 없는 소리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 다른 방언으로 기도하였지만
상대방이 자기의 나라말로 알아들었다는 방언의 역사였습니다.

“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의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찜이뇨”(행2:8)

이것을 하나님만이 알아듣는 방언에 대하여
사람들이 알아듣는 대인(對人)방언의 역사라고 말합니다.

성령강림의 가장 중요한 표적은
이와 같은 방언의 역사 곧 귀가 열리는 역사입니다.
바벨탑 사건 이후 하나님께서는 언어를 흩으시고
서로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오순절에는 하나님께서 언어가 하나되게 하시고
알아듣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되게 하시는 성령님의 크신 사역이었습니다.

성령님이 임재하시는 곳에는 막힌 담이 헐어지고 하
나가 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래서 바울은 “세례도 하나요, 성령도 하나요”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진정한 믿음의 사건은 이렇게 귀가 열리고
들음의 사건에서 일어납니다.

잘 듣는 것이 믿음이고 신앙입니다.
잘 듣는다는 것은 곧 순종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인류의 역사의 최초의 죄악도 잘못 들어서 시작되었습니다.
이브가 뱀의 말을 잘못 듣고 미혹되어 죄악을 범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잘 듣는 것....가장 중요한 믿음의 요소입니다.
성령님이 함께 하시면 잘 들을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믿음이 들음에서 나게 됩니다.

그러나 악령이 함께 하게 되면 잘못 듣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순절 성령강림의 역사는 듣는 역사, 곧 귀의 역사였습니다.

오순절 이후에 지금의 방언과 같이 방언의 은사가 임하여서
사람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는 천국의 언어로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성령의 선물로 방언의 은사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방언으로 기도할 경우
통역이 필요하다고 말하였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알아듣지 못하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대신(對神)방언이라고 말합니다.
곧 하나님만이 알아들으시는 천사의 언어(angelic tongue)라는 뜻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