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의 원칙 
진정한 기도는
하나님과의 영적 교제입니다.
사람이 하나님 앞에 기도하러 나아갈 때에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은 자기의 생각을 버리는 것입니다.
자기 생각을 버리지 않은 채,
기도하면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자기 생각을 버리지 않은 기도 응답은
전혀 다른 존재의 응답일 수 있습니다.
자기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께서 말씀 하실 때까지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전혀 엉뚱한 것을 응답으로 아는 경우가 있습니다.
영적세계에는 하나님 외에 다른 존재도 많습니다.
하나님께 상달되지 않은 기도를 그들이 응답할 수도 있습니다.
세상에 기복종교가 많은 것은
그들에게도 기도 응답의 능력이 임할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로 오는 응답에는 원칙이 있습니다.
원칙에 합당한 기도만이 하나님의 응답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만 응답하십니다.
그같은 기도는 기도 말 끝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는 말을 붙이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생각과 뜻은 버려둔채
예수님을 대신하여 아버지 앞에 나아가 드려지는 기도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드리는 기도는
하나님의 뜻만이 이루어 지기를 위해 간구합니다.
자신의 생각이나 뜻, 자신의 형통이나,
자기 생각에 하나님의 뜻일 것 같아서 드려지는 기도는 불법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이 관철될 때까지 드려지는 간구는
큰 기적과 능력이 따를 지라도 하나님의 응답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자신의 존재가 철저히 무시되고 버려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같은 기도를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십자가 복음에서.. /자료ⓒ창골산 봉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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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릴있고 성취감 넘치는 중보기도 
하나님을 경험하는 데 있어 중보기도가 왜 그토록 놀라운 방법이 되는가?
중보기도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성령께 인도받고 그 능력을 힘입어 기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는 가운데 우리는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과 생각의 일부를 공유하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향하여 가장 인자하고 오래 참으시며 긍휼과 영적인 야망이 가득한 계획을
가지고 계시는 데, 이는 곧 그분께서 자신의 형상의 일부분을 우리와 공유하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것도 그분을 닮아 가는 것보다 더 빨리 우리를 변화 시킬 수 없다.
우리 모두가 더 많이 그를 닮아 갈 수만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나의 생애에 가장 힘있는 영적 활동과 계시를 경험한 것은,
또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을 가장 놀랍게 체험한 것은, 내가 예배하고 기도할 때였다.
그때가 바로
* 성령께서 가장 깊이 있게 내 속사람을 만져 주셨고,
* 내 마음이 가장 밝히 드러났고,
* 하나님의 마음에 대한 가장 깊은 계시를 받았고,
* 영적으로 다른 사람들과 가장 큰 일체감을 이루었고,
* 성령께서 나를 통하여 다른 이들에게 가장 깊이 있게 역사하셨고,
* 가장 큰 영적 권위를 부여받았고,
* 어둠의 권세들에 대해 가장 큰 승리를 거두었고,
* 믿음이 가장 커졌으며,
* 하나님과의 사귐에서 가장 큰 친밀감을 맛보았던 때이다.
예배와 기도가 따분하다고?
천만의 말씀이다!
그것이야말로 하나님과 함께하는 모험과 사귐으로 인도해 주는 첩경인 것이다.
- 조이 도우슨, 스릴있고 성취감 넘치는 중보기도/
자료ⓒ창골산 봉서방
내가 주를 알기 원함은
주여! 나는 사람들이 나를 알고 있는 것보다도
훨씬 더 모자란 사람입니다.
내가 끝없이 주 앞에 간구함은
주님의 지혜로 나의 모자람을 채우기 위함입니다.
주여! 나는 사람들이 나를 알고 있는 것보다도
훨씬 더 허물이 많은 사람입니다.
내가 끝없이 주를 원함은
주님의 의로 나의 수치를 덮기 위함입니다.
수 없이 주님을 뵈옵고 채움을 얻었어도
여전히 주를 향한 목마름으로 가득한 것은
진리에 대한 내 욕심이 많아서가 아니라
흠과 허물이 너무 많은 사람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주의 깊이는 심오하여 알면 알수록 비밀스럽고
주의 넓이는 광활하여 알면 알수록 헤아리기 힘들고
주의 길이는 영원하여 알면 알수록 멀기만 하고
주의 크기는 광대하여 알면 알수록 내가 작아 보이지만
그래도 나의 주되신 하나님을
더더욱 깊이 알기 원함은
하나님이 신비해서가 아니라
나의 아버지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주여 비천한 종으로 하여금
아버지를 더 깊이 깨달아 알게 하소서 /자료ⓒ창골산 봉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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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는 자의 증거는 바로 이것들입니다.
하나님이 한 번 약속하신 것은 도무지 믿을 수 없는 환경이 우리 앞을
가로 막아도 반드시 이룰 줄 믿는 믿음을 간직해야 합니다.
이것은 믿음의 증거입니다.
그리고 땅에 속한 어떤 불행이 우리 앞에 닥쳐도 천국에 대한
강한 소망 때문에 기쁨과 감사를 빼앗기지 않아야 합니다.
이것은 소망의 증거입니다.
그리고 항상 하나님을 바라보며 한 순간도 잊지 않으려는 것과
주님을 내 목숨보다 사랑하여 자기 몸을 주께 드려야 합니다.
이것은 사랑의 증거입니다.
100%의 믿음이 아니면 그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이 땅에 속한 것들로 인해서 기쁨과 감사를 잃는다면 그것은 소망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잊어 버리거나 죽을 만큼 사랑하지 않으면 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점검하십시오. 이것들은 우리의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증거입니다.
사단은 끝없이 우리가 간직한 이것들을 빼앗으려 합니다.
사단과 세상과 육신을 이기는 증거가 바로 이것들입니다. /자료ⓒ창골산 봉서방
기도 
기도에 관한 책을 여덟 권이나 쓴 E. M. 바운즈는 “하나님과 싸우는 씨름꾼의 마음을 가질 때만 가장 고상한 기도를 드릴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인간이 힘껏 화를 낸다고 해도 창조주께 위협이 될 리가 없다. 그런데 가끔 그게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는 듯하다. 야곱이 강가에서 하나님과 싸우던 날 밤, 하나님은 야곱에게 붙잡히고 싶어 안달이라도 나신 듯 날이 밝도록 그 자리에 계셨다. 로이 로렌스는 씨름하는 기도의 대척점(對蹠點)은 무관심이라고 설명했다.
그가 한번은 호스피스 사역을 하는 목회자의 간증을 들었다. 어느 날 한 환자가 상담을 요청했다. 그 환자는 암세포가 이미 온몸에 퍼진 상태였는데, 전날 밤에 고래고래 소리치며 하나님께 욕설을 퍼부었다며 심한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영생을 얻는 기회가 사라져 버렸다는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하나님이 그분을 저주하고 욕한 인간을 용서하실 리가 있겠는가?
목사가 그 환자에게 물었다. “사랑의 반대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환자가 대답했다. “미움이겠죠.” 매우 지혜로운 목사가 대답했다. “아니오. 사랑의 반대는 무관심입니다. 형제님은 하나님께 무관심하지 않았어요. 도리어 어떤 마음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밤새도록 정직하게 말씀드린 겁니다. 어젯밤에 한 일을 기독교에서 무엇이라고 하는지 아세요? 바로 ‘기도’입니다. 형제님은 밤을 꼬박 새워 가며 기도를 드린 겁니다.”
「하나님께 가는 가장 쉽고도 가장 어려운 길, 기도」/ 필립 얀시 /자료ⓒ창골산 봉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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