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정경 형성사의 요약

Subject   신약 정경 형성사의 요약

신약 정경은 교회협의회의 활동을 통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개개의 책들이 지닌 영감성과 내적인 권위가 그것들을 궁극적으로 인정하고 정경화하는 결정적인 요소를 이루었다. AD 200년에 이르러서야 신약은 본질적으로 오늘날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것과 똑같은 문서들을 포함하였다. 그 후 이것들은 기독교인들에 의해서 오늘날과 같은 권위와 확실성을 지니게 되었다. 3세기에는 「안티레고메나」로 논쟁이 벌어졌다. 동방에서는 요한계시록을 인정치 아니하였으며, 서방에서는 히브리서를 부정하였다. 실제적으로 3세기 말에 가서야 모든 외경서들이 히에로니무스와 아우구스티누스의 영향, 그리고 이집트 아타나시우스의 정경이 설정한 명확한 구분으로 실제로 어떠한 문서가 정경의 지위를 갖는가에 대한 논쟁은 그치게 되었다. 제3차 카르타고 교회회의(397년)는 이 결정을 확증하였으며, 이때부터는 어느 신약 문서에 대한 논쟁도 그치게 되었다. 동방에서는 오랫동안 논쟁이 계속되었다. 그러나 서방과 알렉산드리아 아타나시우스의 경우, 갑바도기아 교부들의 영향은 모든 반론을 일축시켜 버렸다. 페쉬타(시리아 성경)에 요한 2.3서, 베드로후서, 유다서, 요한계시록을 첨가함으로써 정경에 대한 문제는 동방 역시 해결되었다. 그리하여 신약 정경은 모든 실제적인 목적에 맞추어 서방에서는 400년에, 동방에서는 500년에 이르러 그 결정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