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나이티드신학대학원 박사원
노원두 목사(UBS 교학과장)
로마서 강해 과제 기말 리포트
02/06/10
로마서 요약 강해
로마서는 신약성서에 포함된 하나의 책으로, 사도 바울의 여러 편지 중 가장 중요한 편지를 엮은 것이다. 로마서는 총 16장으로 되어 있다.
바울이 동부 지중해의 전도를 마치고 로마로 갈 결심을 하고 그 준비로 이 편지를 썼다. 56년경 고린토에서 쓴 것으로 보이는 이 편지는 후세의 신학사상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로마 교회는 바울이가 직접 세운 교회는 아니었으나, 그는 로마를 유럽 전도의 발판으로 삼기 위하여 로마 교회에 복음에 관한 자기의 견해를 알린 것이다.
“복음은, 먼저 유다인들에게, 그리고 이방인들에게까지 믿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구원을 가져다주는 하느님의 능력입니다. 하느님의 의는 복음에 나타나 있으며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라는 주제를 가지고 있다.
로이드 죤스 목사 로마서 강해(참조)
그리스도인의 구원의 확신은 개인의 감정에 달려 있지 않고, 하나님의 사랑과 영원한 약속 위에 근거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로이드 죤스는 아담과 그리스도를 차이점을 잘 말해주고 있으며, 보편구원론을 비판하고 있다. 또한 은혜의 왕노릇의 계획과 권능을 설파하고 있다.
그는 구원은 특별히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의 결과라고 논증한다(139면). 어떤 사람이 경건한 사람인지를 아는 시금석은 그가 하나님의 계시와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방식을 믿는가 하는 것을 알아보는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153면).
로이드 죤스의 로마서 강해에 대하여 여러 의견들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비결할 수 없는 최고의 로마서 강해라고 평가하는가 하면, 사변적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제임스 패커 같은 경우에는 내용이 산만하다고 혹평하기도 한다.
그러나 로이드 죤스의 로마서 강해를 맛본 사람이라면 그의 강해야말로 건전한 성경 해석에 근거한 개혁주의 설교의 진수를 보여주는 것이라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로이드 죤스는 이 책에서 자신의 주장에 성경을 이용하지 않고, 사도의 논증을 따라 본문을 밝히 드러내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 로이드 죤스는 현대 복음전도의 문제점인 사랑의 하나님만을 강조하지 않고, 항상 거룩하신 하나님의 진노와 죄 문제를 바르게 다루고 있다.
그의 강해는 균형잡혀 있으며 흠잡을 데 없는 탁월한 설교자이다. 로이드 죤스는 이 책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우리의 구원의 방편 중의 하나가 아니라, 하나님과 우리가 화해할 수 있는 오직 유일한 길이었다는 것을 말해준다(190면).
그의 설교는 항상 그리스도의 중심적이며, 하나님을 높이는 설교이다. 그의 설교에서는 인본주의적인 흔적을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 없으며,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지극한 경외심으로 하나님의 분명한 말씀의 뜻을 밝히는데 그의 전목표가 존재한다.
때문에 그의 삶 또한 후세에 귀감이 되고 있으며, 그는 지금도 저작을 통하여 수많은 사람들에게 설교하고 선한 영향력을 주고 있다. 실로 그는 죽어서도 말하고 있는 것이다.
특이한 서신(버클리 신약신약 로마서 참조)
바울의 로마서와 기타 서신간에는 명백한 차이가 있다. 고리도서를 읽고 난 후 로마서를 읽는 사람은 누구나 그 차이를 즉시 느낀다. 분위기와 방법에서 차이가 있다. 그 차이의 주요 이유는 다음의 근본적인 사실에 기인한다.
바울이 로마 교회에 편지를 썼을 때 그는 자신이 교회 설립에 전혀 관여치 않은 곳이며 직접적인 관련이 전혀 없는 교회에 편지를 썼다고 하는 사실이다. 그것은 또 다른 서신에는 꽉 차 있는 세부적인 실제 문제들이 로마서에는 왜 그렇게 적은가를 설명해 주기도 한다. 그래서 로마서가 첫 눈에는 그렇게 비 인격적인 것 같이 보인다. 디벨리우스가 말했듯이 “로마서는 바울의 모든 서신 중 가장 당시의 사정에 의한 제약을 적게 받은 것이다.다른 말로 표현하면 로마서는 바울의 서신 중 신학 논문에 가장 근사하다고 할 수 있다. 여타의 바울 서신에 있어서는 대부분 어떤 직접적인 문제, 긴급한 환경, 현재의 잘못, 위협적인 위험 등 그가 편지하는 교회를 위협하는 문제들을 다루었다. 그러나 로마서는 직접적인 주위 환경과 동떨어져서 바울 자신의 신학적 입장의 조직적 설명에 가장 가까운 것이다
서론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을 창조하시고 그 중에서 구원하여 주시고자 선택하여 주신 자들을 불러서 구원하시고 그들을 통해서 영광을 받으시며(엡 2:6-14) 불택자들은 버려두셨기 때문에 그들의 생활은 택함을 받은 자들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그래서 버려진 자들의 생활에 대하여 알아보고자 합니다.
(강해설교참조)
1. 더러운 생활을 합니다.
본문 24-25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이는 저희가 하나님의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하였습니다. 인간의 정욕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택한 백성들은 정욕대로 살지 않고 피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바울사도는 말하기를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으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입었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거를 증거하였도다\"(딤전 6:11-12)하였습니다. 그런데 불택자 즉 버려진 사람들은 세상에서 온갖 더러운 생활만 하다가 죽는 것입니다.
2. 부끄러운 생활을 합니다.
본문 26-27 \"이를 인하여 하나님께서 저희를 부끄러운 욕심에 내어 버려 두셨으니 곧 저희 여인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이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하매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저희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 자신에 받았느니라\"하였습니다. 택한 백성들도 정욕이 없는 것이 아니지만 정욕을 억제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려고 노력을 하는 것 뿐입니다. 그러나 버려진 자들은 그렇게 억제하며 살 필요가 전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끄러운 일을 하면서 죄를 짓는 것입니다. 즉 부끄러운 일을 영광으로 알고 행하는 것입니다. 음란한 행동을 조금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고 도리어 그와 같은 더러운 행동을 하지 아니하는 자들을 바로 취급하여 멸시하는 웃지 못할 일들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 요셉은 부끄러운 생활을 하지 아니하려고 피하여 도망을 갔습니다. 오늘의 사람들은 성적으로 타락한 정도가 소돔과 고모라 정도라고 보아야 할지 아니면 더욱 타락했다고 보아야 할지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3. 불신앙적인 생활을 합니다.
본문 28-31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근수근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하였습니다. 더러운 생활을 하고 음란한 행동만 하는 사람들이 그들의 마음에 어떻게 하나님을 모시겠습니까.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상실한 마음대로 즉 하나님이 필요없다고 하는 그 마음대로 버려두셨기 때문에 하나님을 섬기지도 아니할 뿐만 아니라 온갖 더러운 행동은 다하는 것입니다. 그리하다가 결국에는 가룟유다가 간 곳으로 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버려진 사람들은 인간의 본분과 책임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하다가 죽고 마는 것입니다.
결론
세상에서의 버려진 생활은 바람직한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 부모에게 버림받은 자녀들을 보면 거의가 불량아이들이 되고 사회에서 버려진 사람들은 거의가 폐인이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로부터 버림을 받은 자들은 더욱 비참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선택받은 사람들답게 하나님의 영광을 중심하여 착하게 살아야 하겠습니다(마 5:16, 고전 10:31).
본문 : 롬 2:17-24
제목 : 말뿐인 유대인
서론
유대인들은 남달리 율법을 받았다는 자부심이 있어서 율법이 없는 이방인들을 개와 같이 취급하는 교만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오면서 말로는 자기들이 최고라고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아니하여 예수 그리스도에게 회칠한 무덤이라고 책망을 받고 평토장한 무덤이라고 혹독한 책망을 받았습니다. 바울사도는 십자가 외에는 결코 자랑하지 않겠다고 하였습니다(갈 6:14). 그리하여 바울은 실속있는 생활을 했지만 유대인들은 허풍만 떨었지 생활에서는 실속이 없는 빈 껍데기 뿐이었습니다.
1. 율법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본문 17-18 \"유대인이라 칭하는 네가 율법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자랑하며 율법의 교훈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알고 지극히 선한 것을 좋게 여기며\"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께로부터 남달리 율법을 받은 민족인 것만은 틀림이 없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하나님과 특수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증거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감사한 뜻에서 더욱 겸손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야 하는데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아니하고 우월감에 빠져서 하나님을 자랑한다고 하지만 실제는 자신들을 자랑하고 말았습니다. 율법을 받은 것으로 자만할 것이 아니고 율법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려야 합니다. 성도가 자랑할 것이 있다면 십자가를 자랑해야 합니다(갈 6:4). 십자가를 자랑하는 것은 주님을 자랑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율법을 받았을 뿐이지 율법대로 지키지는 아니하였습니다.
2. 스스로 스승이라고 말합니다.
본문 19-20 \"네가 율법에 있는 지식과 진리의 규모를 가진 자로서 소경의 길을 인도하는 자요 어두움에 있는 자의 빛이요 어리석은 자의 훈도요 어린 아이의 선생이라고 스스로 믿으니\"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무식한 자들을 인도하는 자들이라고 스스로 믿고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자기들은 누구에게 배울 필요가 전혀 없고 남들만 가르치는 그러한 위치에 놓였다고 믿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진정으로 남의 스승이 될 수 있는 사람은 나는 아는 것이 없다고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는 자입니다. 그래야 그와 같은 모습이라도 우선 배우고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교만한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배울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자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1:28-29)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보는 자들은 보지 못하게 하시고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신다고 하였습니다(요 9:39-41). 이는 교만한 자들을 심판하신다는 뜻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지식은 교만하게 만들고 사랑은 덕을 세우는 것인데(고전 8:1) 유대인들은 지식이 있다고 스스로 믿으면서 실속은 지식없는 자들보다 못한 생활을 하였습니다.
3. 행동이 말과 다릅니다.
본문 21-24 \"그러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을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도적질 말라 반포하는 네가 도적질하느냐 간음하지 말라 말하는 네가 간음하느냐 우상을 가중히 여기는 네가 신사 물건을 도적질하느냐 율법을 자랑하는 네가 율법을 범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느냐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이 이름이 너희로 인하여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도다\"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지식이 있다고 스스로가 생각하고 교만하여 다른 사람을 가르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교만한 유대인들은 남을 긍휼히 여기는 것이 아니고 멸시하기 때문에 감화를 주지 못하고 있고 오히려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말하는 것하고 행동이 너무나도 많은 차이가 나기 때문입니다. 율법은 가지고 있으면서 율법대로는 행치 아니하는 헛점을 보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욕을 돌리는 것입니다.
결론
야고보 선생은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믿음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말만 하고 실천하지 않는 성도는 하나님의 이름을 이방인들에게 모독을 당하게 하는 위선자들입니다. 그러므로 교만하지 말고 남을 멸시하지도 말며 겸손히 주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본문 : 롬 3:9-20
제목 : 너도 나도 죄인
서론
시편 저자나 바울사도의 말은 인간이라면 누구를 막론하고 의인이 없는데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모두가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자력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피의 공로를 통해서만이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1. 민족적으로도 의로운 사람이 없습니다.
본문 9 \"그러면 어떠하뇨 우리는 나으뇨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하였습니다. 바울사도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국가적으로나 민족적으로 의롭다 깨끗한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세계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죄 없는 나라가 없고 죄 없는 백성이 없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국가적으로 우월하다고 할 수도 없고 민족적으로 우월하다고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사실을 알기만 하면 세계의 모든 민족이 겸손하여 구원의 주를 구원을 호소하게 될 것입니다.
2. 개인적으로 의로운 사람이 없습니다.
본문 10-18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데 빠른지라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저희 눈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하였습니다. 전도저 저자는 기록하기를 \"선을 행하고 죄를 범치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아주 없느니라\"(전 7:20)하신 말씀을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하여 의인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교만하지 말아야 합니다.
3. 율법으로는 해결할 수 없습니다.
본문 19-24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아래 있게 하려 함이니라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하였습니다. 이는 율법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결론
세상 모든 사람들은 죄인들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에서 용서함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영생복락에 들어가게 되는 것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없다 교만하지 말고 죄 있다고 인정하고 주님 앞에 회개하는 겸손한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본문 : 롬 4:1-9
제목 : 행복한 자
서론
본문에서 말하는 행복은 물질적인 차원이 아닌 영적인 면에서 생각해 본 것입니다.
1. 의롭다 함을 받은 자들입니다.
본문 2-3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얻었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 바 되었느니라\"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이 행위로 의롭다함을 받은 것이 아니고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은 것입니다(창 15:6). 그렇습니다. 아브라함이라고 해서 처음부터 의로운 점이 있지는 아니하였고 다만 그가 하나님을 믿었으므로 의롭다 함을 받고 믿음의 조상이 된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은혜를 입은 자들이 행복한 자들입니다.
2. 노력없이 죄 사함 받은 자들입니다.
본문 6-8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이 행복에 대하여 다윗이 말한 바 그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 그 죄를 가리우심을 받는 자는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치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하였습니다. 이는 누구나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행복을 말하는 것입니다. 죄 삯은 사망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다는 것입니다. 바울사도가 하는 말은 구약의 다윗의 기록을 다시 상기시키는 것입니다(시 32:1-2). 그렇습니다. 아무런 노력도 없이 사형에 해당한 죄에서 사함을 받아 영원히 살게 되었으니 어찌 행복하지 아니할 수 있습니까?
3. 죄 없다 인정함을 받는 자들입니다.
본문 8 \"주께서 그 죄를 인정치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하였습니다. 사람이 죄가 없어서가 아니고 하나님께서 죄가 없는 것으로 인정시키는 것뿐입니다. 죄가 없어서 그와 같은 인정을 받는다면 이는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지만 죄가 있는데도 죄가 없는 것 같이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것은 보통 은혜가 아닙니다. 이는 특별 은혜입니다. 바울은 말하기를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롬 8:33-35)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인정하시는 그 자체가 무엇보다도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결론
사람의 행복은 물질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정신적이고 영적인 면에서 만족함을 받을 때에 행복을 맛볼 수 있는 것입니다. 특히 기독교인들의 행복은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은 것이고 노력없이 죄 사함을 받은 것이며 죄 없다고 인정을 받는 것입니다.
본문 : 롬 5:1-4
제목 : 칭의의 결과
서론
칭의라는 것은 의롭다고 선언하는 법적 개념입니다. 이는 죄인이지만 심판을 받지 않는 뜻이 포함되어 있고 용서를 받았다는 뜻이 있으며 무조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뜻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칭의의 결과는 무엇인가에 대하여 알아보기로 하겠습니다.
1.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본문 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을 받은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그의 진노는 성도를 향하여 있지 않고 이제는 주는 우리 안에 우리는 주 안에서 화평을 도모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자녀라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구원은 변동없이 이루어진다는 확신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빌 1:6). 이것이 중생의 결과요 칭의의 결과인 것입니다.
2. 하나님과 화평을 누려야 합니다.
본문 1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의롭다 함을 받기 전에는 하나님과 원수된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총으로 말미암아 이제는 하나님의 진노의 손을 거두시고 사랑의 손을 펴서 우리들의 모든 것을 보살펴 주십니다. 즉 과거에는 원수된 상태에서 이제는 하나님의 보호를 받고 사랑을 받는 자녀의 관계를 맺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화평을 누려야 합니다. 바울사도는 이 문제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기를 과거에는 이방인이요 할례도 없는 백성들이었으며 하나님도 없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와져서 그는 우리의 화평의 신이라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막힌 담을 허시고 화평케 하시고 화목케 하셨다고 하였습니다(엡 2:11-16). 그러므로 우리들은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을 누려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칭의의 결과입니다.
3. 환난 중에 즐거워해야 합니다.
본문 2-4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하였습니다. 성도들은 이미 은혜를 받은 자들입니다. 우리들이 칭의로 인하여 하나님과 화목을 누리고 은혜 중에 거하기 때문에 환난을 받아도 내세의 소망 속에서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바울사도는 말하기를 현재 고난은 장차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롬 8:18). 이것이 칭의 받은 결과인 것입니다.
결론
칭의는 무조건 의롭다 함을 받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의롭다함을 받은 성도들의 생활은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고 환난 중에서도 즐거워하면서 내세의 소망 속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본문 : 롬 6:12-19
제목 : 죄에서 해방된 사람은
서론
사람은 무엇에 붙잡혀서 사는 일들이 많은 것입니다. 그런데 무엇에 붙잡혔다고 한다면 노예가 되어서 그 곳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때가 많이 있습니다. 특히 죄에 붙잡혀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수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에서 해방을 받은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떻게 해야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1. 몸의 사욕을 따르지 말아야 합니다.
본문 12 \"그러므로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 노릇 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하였습니다. 이는 육체가 요구하는 욕망대로 살지 말라는 말입니다. 인간의 육체는 무너질 장막과 같은 것인데 사는 동안에는 요구한 것도 무척 많은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사람들은 자기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는다고 하였습니다(딤후 4:3-4). 그러나 구속의 은총을 체험한 사람들은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의 욕망대로 함부로 살아서는 안되겠다는 것입니다.
2. 지체는 의의 병기로 사용해야 합니다.
본문 13-14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라\"하였습니다. 인간은 율법 아래 있으면 정죄를 받을 뿐이고 은혜 아래 있으면 죄가 왕노릇 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지체를 죄 짓는 불의의 병기로 사용하지 말고 의의 병기로 사용하심이 좋은 것입니다. 즉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3. 거룩하게 살아야 합니다.
본문 19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드려 불법에 이른 것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드려 거룩함에 이르라\"하였습니다. 죄에서 해방된 사람은 거룩하게 살아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살전 4:3). 죄에서 해방된 사람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과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자고 하였습니다(고후 7:1). 즉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는 구별되게 살아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보내야 합니다(마 5:16, 고전 10:31).
결론
죄에서 해방을 받았으면 두 번 다시 죄를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죄의 종노릇 하지 말고 의의 종노릇하여 육체를 의의 병기로 사용하는 거룩한 생활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본문 : 롬 7:19-25
제목 : 선한 싸움
서론
성도들이 싸울 대상자는 혈과 육이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입니다. 그리고 믿음안에서 불의와 싸워야 하고 악과 싸워야 하며 가난과도 정욕과도 싸워야 합니다. 그럼 어떻게 싸워야 선한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요.
1. 마음과 같이 안됨을 알아야 합니다.
본문 23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하였습니다. 사람은 자유의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자유의지가 참된 선을 행하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범죄 전의 아담의 자유의지와 타락 후의 자유의자는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타락 후의 자유의지는 날개 부러진 새와 같은 것입니다. 날개는 부러져도 날고 싶은 마음은 있습니다. 그렇다고 날으는 것도 아닙니다. 같은 원리인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은 선을 행하고 싶은 마음은 있어도 실제로는 마음과 같이 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고 하나님께 구하는 겸손함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선한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2. 자신이 무능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본문 19-21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하였습니다. 오직 주께서 이기게 하셔야만 즉 성령께서 함께 하셔야만 이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스가랴 선지자가 기록하기를 \"그가 내게 일러 가로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슥 4:6)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은 매우 약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이길 수 있습니다.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는 것을 알고 그 분에게 구하여 승리해야 합니다(시 118:6-10).
3. 주께서 이기게 하심을 알아야 합니다.
본문 24-25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하였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마음의 법은 하나님의 법이 우리 마음을 통하여 역사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바울사도는 자기 힘으로 죄악을 이길 수 없음을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돌아가서 그를 믿고 그의 힘을 의지하여 죄와 싸워서 이길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하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마음에 평안을 얻었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돌려보내는 것입니다. 바울사도의 신앙은 주께서 함께하셔서 이기게 하시면 반드시 이길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주께 기도하여 주님의 능력으로 승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론
성도들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하고 어떻게 해서라도 승리해야 합니다. 바울사도는 죽음을 앞에 놓고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음으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딤후 4:7-8)하였습니다. 이는 믿음의 선한 싸움에서 승리한 자의 개선가입니다. 우리들도 선한 싸움에서 승리해야 합니다.
본문 : 롬 8:28-30
제목 : 나는 이렇게 구원 받았다
서론
나 한 사람이 구원을 받는 것이 간단한 것 처럼 생각이 될지는 모르지만 그렇지 아니하다는 것입니다. 나를 구원하여 주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창세 전부터 선택하여 주시고 태어난 후에 부르시고 그리고 의롭다고 인정, 구원을 완성케 하셔서 누리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사실을 알아야 이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 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시 116:12).
1. 하나님께서 선택하여 주셨습니다.
본문 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하였습니다. 여기서 생각할 것은 그 뜻입니다. 이는 부르심 이전의 일입니다. 부르시기 전에 이미 선택하였다는 것입니다. 바울사도는 말하기를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져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엡 1:4-6)하였습니다. 그리고 선을 행하기 전에 택하심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롬 9:10-13). 그러므로 구원받게된 동기를 알고 더욱 감사해야 합니다.
2. 의롭다 함을 받았습니다.
본문 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하였습니다. 이는 복음을 믿도록 불러내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부르심 중에도 두 가지 부르심이 있는데 일시적인 부르심이 있고 효과적인 부르심이 있습니다. 일시적인 부름은 구원에 이르지 못하고 가룟 유다처럼 잠시 쓰임 받다가 제 갈 곳으로 가는 것이 있고 효과적인 부르심은 십자가의 한편 강도처럼 구원에 이르도록 부르심을 받아 영생복락에 이르게 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구원에 이르도록 부르심을 받는 것은 선택된 자들이고 그렇지 못한 자들은 잠시 쓰임 받다가 버려지는 그릇과 같은 처지에 놓인 자들입니다(잠 16:4). 그래서 효과적인 부르심을 받는 사람들은 지명하여서 부르시는 것입니다(사 43:1-3). 그리하여 주의 피로 의롭게 하셔서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함께 사시는 것입니다. 죄가 없어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고 믿음으로 의롭다고 인정하셔서 구원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구원받게 된 것을 알아야 감사와 찬양을 돌리는 것입니다(33-35).
3. 영화롭게 되었습니다.
본문 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하였습니다. 이는 구원의 순서라고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하신 것은 하루 아침에 갑자기 생각이 나서 구원하여 주심이 아니고 창세 전에서부터 계획하시고 단계적으로 역사하시사 하나님의 완성품을 이룩하신 것입니다. 이는 그의 능력이 모자라서가 아닙니다. 모든 것이 이룰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선택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는 선택한 자를 구속하시고 성령님은 구속한 자를 불러서 예수를 알고 믿게 하셔서 하나님을 찬양하게 만드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생복락을 누리며 상상도 할 수 없는 영화를 누리고 살게 되었습니다. 나는 이렇게 구원을 받게 된 것입니다.
결론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하시려고 무엇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희생을 감수하셨습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는 공짜로 구원을 받은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고 하나님의 크신 희생이 있었음을 기억하고 그의 은혜를 보답하려고 노력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영생을 주시되 영원히 주시는 하나님이심을 믿고 더욱 감사해야 하겠습니다(요 10:28-29).
본문 : 롬 9:14-21
제목 : 인간의 질문
서론
모르는 것이 너무나도 많은 것이 인간이라 끊임없이 질문할 수밖에 없습니다. 본문을 통해 대표적인 몇가지 질문과 답변을 보겠습니다.
1.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냐?
본문 14-16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하였습니다.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냐는 질문에 대답은 하나님께서는 긍휼히 여길 자는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는 불쌍히 여긴다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사랑으로 하시는 것이지 인간들의 요구나 행동여하에 따라서 결정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는 불의가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야곱을 사랑하고 에서를 미워한 것은 하나님의 불의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2. 바로를 허물할 수 있느냐?
본문 17-19 \"성경이 바로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일을 위하여 너를 세웠으니 곧 너로 말미암아 내 능력을 보이고 내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려 함이로다 하셨으니 그런즉 하나님께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퍅케 하시느니라 혹 네가 내게 말하기를 그러면 하나님이 어찌하여 허물하시느뇨 누가 그 뜻을 대적하느뇨 하리니\"하였습니다. 이는 제2의 가상적 질문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셨기 때문에 바로를 허물하실 필요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즉 바로가 강퍅한 것은 하나님의 책임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알 것은 하나님께서 바로를 강퍅하게 하신 것이 아니고 강퍅한 바로를 권고하시지 않고 그냥 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책임 지실 필요성이 전혀 없는 것입니다. 인간들의 생각이 모자라서 그와 같은 질문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3. 사람이 하나님께 질문할 수 있느냐?
본문 20-21 \"이 사람아 네가 뉘기에 감히 하나님을 힐문하느뇨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뇨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느냐\"하였습니다. 이는 인간들이 하나님께 질문을 한다는 자체가 가당치 않다는 것입니다. 인간들은 의심나는 모든 것은 물을 수 있으나 인간의 머리로 이해가 안된다고 해서 하나님께 모든 책임을 돌리려고 하는 것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생각과 사람의 생각은 천지 차이기 때문입니다(사 55:8-9). 그러므로 불신앙적인 질문을 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질문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편이 더욱 좋은 것입니다.
결론
인간들의 질문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믿지 못하는 가운데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리석게 질문하닥 믿음없는 자가 되지 않도록 말씀을 믿는 신앙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본문 : 롬 10:13-17
제목 : 복음 전파의 중요성
서론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상에 초림하실 때에 천사가 복음을 전하는데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눅 2:10-14)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복음 전파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1. 믿음은 들음에서 나기 때문입니다.
본문 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한 백성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예수를 믿기로 되어있다는 것입니다. 듣지 못하고 어찌 믿으리요(14) 전파하는 자가 어찌 들으리요(14)하였습니다. 중생이 씨앗이 말씀의 비를 맞을 때에 믿음의 싹이 나고 영생의 열매가 맺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 전파의 필요성은 절대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사도는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으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2. 복음에는 능력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본문 17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하였습니다. 복음의 내용이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매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요 1:14) 예수 그리스도시요 그의 말씀인 것입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에 말씀으로 하셨습니다(히 11:3). 그래서 바울사도는 복음을 전하면서 부끄러워 하지 아니하는 이유를 밝힐 때에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 1:16-17)하였습니다. 이는 복음의 능력을 말하는 것이고 복음 전파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3. 사람을 통해서 전파하시기 때문입니다.
본문 15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하였습니다. 율법은 정죄하는 것이고 복음은 율법의 정죄에서 해방시켜 주는 것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에게 이와 같은 소식을 전하는 발은 얼마나 신바람이 나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복음을 전하시는데 천사를 사용하시지 아니하시고 사람을 사용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례요한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에 그를 가리키어 하시는 말씀이 \"하나님께로서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났으니 이름은 요한이라 저가 증거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거하고 모든 사람으로 자기를 인하여 믿게하려 함이라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거하러 온 자라\"(요 1:6-8)하였습니다. 이를 통해서 복음 전파의 중요성을 알 수가 있습니다.
결론
교회는 전도를 함으로 양적인 부흥을 가져오고 봉사함으로 질적인 부흥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복음 전파의 중요성부터 알고 복음을 전하여 양적인 부흥을 가져오고 봉사를 통하여 질적인 부흥을 가져와야 할 것입니다.
본문 : 롬 11:36
제목 : 하나님께 영광을
서론
인간의 지음 받은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사 43:7) 찬양을 드리는데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하였습니다(고전 10:31).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착한 행실을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서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영광이 되게 하라고 하였습니다(마 5:16). 그렇습니다. 성도들은 구원을 받았으므로 하나님께 영광과 찬양을 돌려야 합니다(엡 1:6-14).
1. 하나님은 창조주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본문 36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만물을 창조하셨는데 그 목적이 영광을 받으시는데 있는 것입니다(사 43:7). 그러므로 창조된 인간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보내는 것이 마땅한 것입니다. 아멘하여 긍정적인 믿음으로 영광을 돌려보내고 다른 사람을 돕는 일로 영광을 돌려보내야 하며 착한 행실로 하나님께 영광되도록 살아야 합니다.
2. 하나님은 보존하시기 때문입니다.
본문 36 \"주로 말미암고\"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조하신 것을 결코 무관심 하시거나 버려두시는 일이 없습니다. 그의 섭리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그의 창조하심과 보존하심에 의하여 살아간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기록하기를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라\"(사 43:1-2)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택한 백성들은 세상 끝날까지 보호하시며 지켜주셔서 구원에 변동이 없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보내야 합니다.
3. 그에게로 돌아가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본문 36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하였습니다. 인간들이 세상에 태어나게 된 것은 자기의 자유의지에 의해서가 아니고 불가항력적인 하나님의 주권적인 사랑에 의하여 태어나게 되었고 돌아가는 것도 인간들의 자유 의지대로 되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뜻에 의하여 그에게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욥은 말하기를 복도 하나님께로부터 받고 재앙도 마찬가지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은 세상에서 어느 정도 살다가 하나님의 나라로 다시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스데반은 자기의 영혼을 받아 달라고 기도를 드리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주께서 다시 오실 때는 주와 같이 영원히 함께 있게 되는 것입니다(요 14:1-3). 그래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마땅한 것입니다.
결론
구속받은 성도들이 하나님께 영광과 찬양을 드리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죽든지 살든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중심해서 살아야 합니다.
본문 : 롬 12:9-21
제목 : 성도의 생활
서론
바울사도는 성도의 생활 지침을 말할 때에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였습니다(살전 5:16-18).
1. 열심히 신앙생활 하는 것입니다.
본문 11-13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구원받은 성도들은 열심히 신앙생활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려야 합니다. 그래야 자신도 유익하고 하나님께서도 기뻐하시고 사람들에게도 칭찬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롬 14:17-18). 그리고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면 먹는 양식과 마시는 물에 복을 받고 몸에 병을 제하며 잉태치 못하는 이가 없고 낙태하는 자가 없으며 날 수를 채우시겠다고 하였습니다(출 23:25-26). 그러므로 양심을 따라서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2. 서로 사랑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본문 9-10 \"사랑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하였습니다. 성도들이 사랑하는 것은 매우 아름다운 것입니다.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는 자체도 사랑의 열매인 것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존경하고 존경하기 때문에 사랑이 더욱 오래 지속되는 것입니다. 사랑은 미움도 있을 수 없고 시기와 질투도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래 참고 견디기 때문에 대인관계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것입니다. 사랑 속에 모든 계명도 포함되고 있으니 하나님께서도 영광이 되고 사람들에게는 덕이 되며 자신과 후손에게는 복이 되는 것입니다(롬 13:8-10).
3. 화평을 도모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본문 18-21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하라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말씀하시기를 화평케 하는 자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였습니다(마 5:9).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은 화평을 도모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어떠한 어려운 환경이라고 할지라도 화평을 도모하고 살아야 합니다. 그와 같은 생활이 성도들의 생활인 것입니다. 원수관계가 되었다고 할지라도 화평을 도모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결론
성도들의 생활은 불신자들의 생활보다는 조금은 달라야 합니다. 성도라는 이름 자체가 구별되었다는 뜻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거룩하게 살아야 합니다. 주를 열심히 섬기고 서로 사랑하며 화평을 도모하면서 사는 생활이 되어야 합니다.
본문 : 롬 13:11-14
제목 : 재림을 대비하라
서론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성도들의 최대의 소망입니다. 그래서 사도요한은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 22:20)하였습니다. 그런데 재림만 대망할 것이 아니고 재림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할 것입니다.
1. 재림이 가까이 옴을 알아야 합니다.
본문 11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니라\"하였습니다. 이는 성도들의 영적으로 경성(驚醒)하고 재림을 준비하라는 것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개인적인 종말로는 죽음이 가까이 오고 있음을 알려주고 역사적으로는 하나님의 심판이 가까이 오고 있음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역사도 시작보다는 종말이 가까이 오고 있고 개인도 태어날 때보다는 죽음의 날이 가까이 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주님께서 승천하시면서 다시 재림하시겠다고 약속을 하셨는데 그 약속이 이루어질 날이 멀지 않았다는 것을 의식하고 준비해야 합니다.
2. 더러운 생활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본문 12-13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하였습니다. 밤이 깊으면 상대적으로 낮이 가까와지는 것입니다. 이는 죄악의 밤이 깊어지고 재림의 광명의 낮이 가까이 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도들의 생활이 분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재림을 준비하는 사람들답게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종말론적인 성도상을 정립하는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부가 신랑을 맞이하려는 것과 같이 단정히 행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도들의 단정한 생활은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해서 사는 것입니다(시 119:9, 고전 4:6, 딤전 4:5).
3. 주 안에서 살아야 합니다.
본문 14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하였습니다. 성도들은 중생한 자들입니다. 중생한 사람들은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특히 주 안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옷을 입으라고 하였으니 옷은 몸 밖에 있는 법입니다. 즉 옷 안에 있는 것과 같이 성도는 주 안에서 생활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바울사도는 거듭난 사람들의 생활에 대하여 말하기를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엡 4:22-24)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거짓을 버리고 참된 것을 말하고 도적질하는 사람은 다시는 도적질하지 말고 제 손으로 일하며 더러운 말은 입밖에도 내지 말고 은혜로운 말을 하며 성령을 근심케 말며 서로 용서하고 사랑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하였습니다(엡 4:25-32). 이와 같은 생활이 재림을 준비하는 생활인 것입니다.
결론
재림은 점점 가까이 오고 있는데 종말론적인 성도상을 정립하여 부끄러움없이 주를 맞이하도록 해야 합니다.
본문 : 롬 14:12-18
제목 : 먹는 것보다
서론
인간은 먹어야 살기 때문에 먹고 마시는 것을 나쁘다고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먹고 마시는 일에 너무나 집착하다보면 이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잊어 버리고 죄를 지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먹는 것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사는 것이 성도들의 바른 생활인 줄 압니다(마 4:4). 그래서 바울사도는 하나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고 성령 안에서 무시로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1. 기쁨으로 주를 섬겨야 합니다.
본문 17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하였습니다. 이는 먹고 마시는 음식물로 인하여 하나님의 교회를 어지럽게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하였습니다(고전 10:31). 성도들은 먹는 것보다는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합니다. 그리고 주 안에서 그를 섬기며 내세의 소망 속에서 살아가는 지혜가 필요한 것입니다.
2. 하나님께 기뻐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본문 18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께 기뻐하심을 받으며\"하였습니다. 성도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생활이 있다면 이는 중생한 사람 답게 착한 행실을 모든 사람들에게 보여서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보내는 것입니다(마 5:16). 성도가 언제나 하늘에서 온 의와 평강과 희락으로 예수를 따르며 그의 말씀대로 생활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지 아니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언제나 먹는 것보다 회개하는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하고 복음 전하며 헌신하고 죽도록 충성하는 것입니다. 그렇게만 살면 주께서 크게 기뻐하시고 좋은 것으로 성도들에게 주십니다.
3. 사람에게 칭찬을 받아야 합니다.
본문 18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하였습니다. 이는 성도들이 그를 인정한다는 말과도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께 인정을 받는 성도들은 사람들에게도 칭찬과 더불어 그의 신앙인격을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인정을 받고 사람들에게도 인정을 받는다는 것이 매우 귀중한 것입니다. 욥은 하나님께 인정을 받고 사람들에게도 인정을 받았고 마귀에게도 인정을 받고 자신에게도 인정을 받았습니다. 마귀에게 인정을 받는다고 한 것은 마귀가 이 사람은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사람이라고 인정하면서 그를 해칠 마음을 가지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인정도 필요합니다(고후 13:5). 여하간 하나님께 인정을 받고 사람들에게도 인정을 받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결론
성도들은 먹고 마시는 것에서 기쁨을 찾기보다 주를 섬기며 하나님께 기뻐하심을 받는 성도들이 되는데서 기쁨을 찾는 칭찬받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본문 : 롬 15:30-33
제목 : 바울이 부탁한 기도
서론
기도는 자신이 직접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에게 부탁을 해서 지원을 받기도 합니다. 그리하여 아브라함도 자신이 자신을 위하여 기도도 하지만 소돔 성을 위하여 많은 기도를 드렸습니다. 바울사도도 남을 위하여 기도를 하면서 또한 자신을 위하여 기도를 부탁하였습니다. 그럼 어떤 내용을 부탁하였는지 알아 보겠습니다.
1. 핍박을 위하여 부탁하였습니다.
본문 31 \"나로 유대에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에게서 구원을 받게 하고\"하였습니다. 사람은 혼자의 힘 만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인간들의 생활은 모여서 서로 돕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라고들 합니다. 바울사도는 주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것이지만 그래도 그 핍박을 이겨낼 힘이 필요하기에 자신도 많은 기도를 드리지만 성도들에게도 기도의 지원을 부탁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도들은 이와 같이 서로 기도를 해 드리고 부탁도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의 성도들도 많은 기도를 해야 하지만 서로가 서로를 위하여 기도를 부탁하고 부탁받은 기도를 열심히 해서 핍박을 이기고 믿음으로 승리하는 역사가 나타나기를 바랍니다.
2. 섬기는 일을 위하여 부탁하였습니다.
본문 31 \"또 예루살렘에 대한 나의 섬기는 일을 성도들이 받음직하게 하고\"하였습니다. 남을 섬기는 일이 쉬운 것 같지만 실제적으로는 쉽지 아니합니다. 그래서 봉사하는 일도 기도가 필요합니다. 속담에 \"독불장군은 없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이 성공하는데는 얼마나 타인의 도움을 많이 받느냐 여하에 따라서 좌우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교회에서 하나님을 섬기고 사람을 섬기는 일을 원만하게 하려면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기도의 지원을 받아야 합니다. 정말 하나님의 교회 안에서 은혜롭게 봉사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자신은 부탁하는 겸손함을 나타내야 합니다. 그리하여 성공하였을 때에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하여 준 사람들에게 고마움의 마음을 표시하는 겸손한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3. 주님의 뜻을 위하여 부탁하였습니다.
본문 32 \"나로 하나님의 뜻을 좇아 기쁨으로 너희에게나아가 너희와 함께 편히 쉬게 하라\"하였습니다. 성도가 하나님의 뜻을 좇아서 산다는 것은 무척이나 힘든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를 부탁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여야 합니다(롬 12:2). 그렇게 해야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마 7:21). 하나님의 뜻을 살펴보면 영생을 목적으로 하고 예수를 믿는 것이고(요 6:40) 믿는 성도답게 거룩하게 사는 것이며(살전 4:3) 범사에 감사하며(살전 5:18) 주를 위하여 고난을 받는 것입니다(벧전 4:19). 이와 같이 하나님의 뜻이 뚜렷하게 나타나 있는데 이것을 행하기에는 너무나도 약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기도하고 타인에게 부탁을 하는 것입니다.
결론
사람은 교만하면 망하고 겸손하면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기도를 부탁하는 일은 겸손에 속한 행동이기 떄문에 많은 은혜와 복을 받고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는 비결이 되는 것입니다
본문 : 롬 16:17-20
제목 : 지혜로운 성도
서론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전도하러 보내시면서 뱀과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지혜는 풍요로운 삶을 사는데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고 하였고(잠 9:10) 야고보서 저자는 구하라고 하였습니다(약 1:5). 그리하여 솔로몬은 지혜를 구하여 세계에서 가장 지혜로운 왕이 되었습니다. 특히 말세지 말을 맞이한 성도들은 더욱 지혜로운 생활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럼 지혜로운 성도들은 어떻게 사는가?
1. 거짓 선지자들에게서 떠납니다.
본문 17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교훈을 거스려 분쟁을 일으키고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저희에게서 떠나라\"하였습니다. 여기서는 거짓 스승을 떠나라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지혜로운 성도들은 거짓 교훈에서 떠나게 되는 것입니다. 양의 옷을 입고 나오나 속에는 노략질 하는 이리가 들어서 성도들을 해롭게 해려고 하는 자들에게서 일찍이 떠나는 것은 매우 지혜로운 생활인 것입니다. 그곳에서 같이 있다가는 함께 망하기 때문에 떠나야 합니다.
2. 탐하는 자들에게서 떠나야 합니다.
본문 18 \"이같은 자들은 우리 주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다만 자기의 배만 섬기나니 공교하고 아첨하는말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하느니라\"하였습니다. 세상의 것을 탐하기 때문에 사람을 미혹하여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입니다. 탐심은 욕심인데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면 사망을 낳는 것입니다(약 1:14-15). 바울사도는 탐심은 우상 숭배라고 하였습니다(골 3:5-6). 그러므로 탐하는 자들에게서 돌아서서 마음을 비우고 청렴결백하게 살아가면 무엇보다도 지혜로운 생활이 되기 때문입니다.
3. 선에 속하여 사는 것입니다.
본문 19-20 \"너희 순종함이 모든 사람에게 들리는지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를 인하여 기뻐하노니 너희가 선한 데 지혜롭고 악한데 미련하기를 원하노라 평강의 하나님께서 속히 사단을 너희 발 아래서 상하게 하시리라 우리 주 예수의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선하게 살라고 하십니다. 그 말씀 따라서 순종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생활이 지혜의 소산인 것입니다.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선에 속하여 지혜롭게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결론
할 수만 있으면 지혜롭게 사는 것이 인생을 보람되게 살 수 있는 길이고 편하게 살 수 있는 길입니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평생에 고달픈 생활을 해야 합니다.
(서울 갈보리 채플/이 요나목사 로마서 강해 참조)
특별히 카리스마적 그룹에 속한 미국을 가로지르는 교회가 최근에 여러가지 지독한 교리로 말마암아 갈라졌습니다.
이것들은 양치는 것의 교리(그를 위해 하나님께 책임을 지는 \"목자\"의 권한에 사람은 굴복해야만 한다)와 크리스챤들은 귀신들에 의해 사로잡힐 수 있으며 그래서 그들을 내어 쫓아야만 한다는 교리를 포함합니다.(주술적인 면으로 행하는 지나친 척사 행위:역주)
모든 거짓 교리들의 최근의 가장 지독한 것은 그의 믿음이 부족한 때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교리는 믿는 자가 고통당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결코 아니다 라고 선포합니다.
이러한 거짓 개념은 오늘날 넓은 청중에게 받아들여지도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크리스챤 사이언스(CHristian Science)나 심령과학(Scien-ce of Mind)에서 부터 온 것입니다.
그들은 같은 기본 개념을 가르칩니다:네가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 네가 얻을 수 있다. 이러한 교리들은 그리스도의 몸을 분리시키며 우리는 그것들을 퍼뜨리는 자들을 주목해 말해주어야 합니다.
바울은 계속해서 로마에 잇는 크리스챤들에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너희 순종함이 모든 사람에게 들리는지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를 인하여 기뻐하노니 너희가 선한데 지혜롭고 악한데 미련하기를 원하노라.(16:19). 바울은 우리가 선한 일에 지혜롭고 악한 일에 미련하기를 원합니다.
사탄의 일에 면밀히 조사하지 말고 마법을 이해하려고 하지 말며 주문이나 오늘날의 악한 것들을 하지 마십시오 주님께서 구약에 그의 백성들에게 경고 하셨는데 어떻게 이방인들이 그들의 신을 경배하는가 탐구하지 말라고(신12:30)하셨습니다. 악에 대해서 미련하고 선이나 의 성령의 참된 진리 안에서는 지혜로우십시오.
평강의 하나님께서 속히 사단을 너희 발 아래서 상하게 하시리라(16:20a).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이브에게 뱀(사탄)은 메시야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고 여자의 후손(메시야)은 그의 머리를 상하게 하리라고 예언하셨습니다.(창3:15).
그 예언을 다시 언급함이 없이 바울은 하나님께서 \"사탄을 속히 너희 발 아래서 상하게 하시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사건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사탄은 아직도 땅에서 능력을 휘두르며 우는 사자같이 두루 돌아다닙니다(벧전5:8): 하나님은 그를 곧 다루실 것이며 그는 묶일 것이며 깊은 구덩이에 던져질 것입니다. 마음을 강하게 하십시오 우리에게 그때가 가까이 왔습니다!
우리 주 예수의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찌어다. 나의 동역자디모데와 나의 친척 누기오와 야손과 소시바더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16:20b-21).
바울의 서기이자 이 편지를 대서해준 사람이 그 자신의 안부를 주고 있습니다. 이 편지를 대서하는 나 더디오도 주 안에서 너희에게 문안하노라. 나와 온 교회 식주인 가이오도 너희에게 문안하고 이 성의 재무 에라스도와 형제 구아도도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모두에게 있을지어다. 아멘(16:22-24).
바울은 로마에 있는 교회에게 그의 마지막 축도를 시작합니다.
나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함을 영세전 부터 감취었다가 이제는 나타내신바 되었으며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을 좇아 선지자들의 글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으로 믿어 순종케 하시려고 알게 하신바 그 비밀을 계시를 좇아 된 것이니 이 복음으로 너희를 능히 견고케 하실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이 세세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16:25-27).
바울은 \"비밀의 계시\"(16:25)에 대해 말합니다. 성경의 비밀은 이해하기 어려운 진리가 아닙니다. 게다가 이 마지막 날까지 성령에 의해 계시되지 않은 것도 진리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많은 비밀을 그의 서간문인 에베소서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나는 성령이 오늘날 어떤 새로운 비밀을 나타내시고 있다고는 믿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생명과 경건에 적합한 그의 모든 참된 계시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