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 애족의 마음으로 충만하소서.”
(에4:16)
우리 민족의 오늘이 있기까지는 수많은 순국 선열들의 희생과 살신성인의 헌신이 있었습니다. 일제와 싸우다 숨진 많은 애국 지사들이 있었고 공산군의 침략과 싸우다 쓰러진 이름모를 용사들도 있습니다. 그들을 기리는 현충일을 맞아 우리는 먼저 그분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가져야 하겠고 그분들이 물려 준 조국을 어떻게 지켜 나갈 것인가에 대한 새로운 결심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도 그들을 본받아 애국심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Ⅰ. 신앙과 애국(출3:7)
1. 애국에 몸바친 신앙인(출3:7)
한때는 애굽의 왕자로서 영광을 누렸고 혈기를 부려 미디안 광야의 촌부로 전락한 모세였지만 그는 자기 민족을 진정 사랑한 자였습니다. 이스라엘의 시조를 아브라함이라고 할 수 있다면 이스라엘을 세운 이는 모세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이스라엘 민족을 노예의 상태로부터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이끌어 냈습니다(출3:7). 그러나 민족 사랑의 길은 결코 쉬운 길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번번히 하나님께 반역하며 불순종하였고 그로 인해 여러 가지 광야의 환난과 고통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는 모세를 대적하여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이 일어서기도 하였습니다(민16:30). 그러나 모세의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이 있었기에 이스라엘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이 있었기에 이스라엘 민족은 해방되어 자유를 누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2. 신앙인의 애국(삼상15:22)
우리 신앙인들은 당연히 나라를 사랑하고 민족을 위해서 합니다. 그러나 나라 사랑의 방법은 불신자들과는 다릅니다. 불신자들은 자신의 명예와 나중의 출세를 위하여 애국하지만 성도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애국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울 왕이 다스리고 있었을 때 사무엘은 때로 사울을 나무랬습니다. 그것은 사물엘이 자기의 손으로 세운 사울 왕을 미워해서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 바로 서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그래서 사무엘은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보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기를 더 좋아한다고 했던 것입니다(삼상15:22). 세상은 갈수록 더 악해져 가고 사람들은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옛날의 순수한 마음을 잃어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믿는 자들은 주님의 뜻대로 살아감으로 이 민족의 희망이요 도덕적 보루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우리 후손들을 위한 피뿌린 선열들의 뜻을 받드는 길이요 진정한 애국의 길입니다.
Ⅱ. 의로운 희생(에4:16)
민족을 사랑하고 나라를 위한 길을 결코 쉽지 않습니다. 때로는 극도의 자기 희생이 요구됩니다. 그러나 우리의 선열들은 그런 희생을 마다 않고 자신의 몸을 던져 이 나라 이 민족을 구했습니다. 이런 의로운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 나라가 세계 속에서 자리잡아 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의로운 희생의 전형으로 에스더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높은 왕비의 신분에서 얼마든지 자기의 안일을 구할 수 있었으나 에스더는 자기 민족을 위해 죽기를 아까와하지 않았습니다(에4:16). 에스더의 그런 의로운 희생이 있었기에 이스라엘은 하만의 흉게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죽음의 위기에서 살아나게 되었습니다(에8:17). 우리 나라도 갈수록 개인주의가 팽배해져 가고 자기 이익만 찾는 무리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은 이런 의로운 희생을 본받아 나라와 민족을 위해 살려는 자세를 가져야 하겠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예수님의 의로운 희생으로 말미암아 영생과 구원함을 얻었습니다(롬10:4). 그러므로 나라와 민족을 위해 의로운 희생을 하는 거은 성도의 당연한 본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Ⅲ. 성도의 애국심(롬9:1)
1. 참된 신앙 안에서의 애국심(롬9:3)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만이 참된 생명의 길임을 확신하였습니다. 그래서 그토록 복음을 대적하고 그리스도를 거역하는 자기 민족이 예수님께 돌아올 수만 있다면 자기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좋다고 하였습니다(롬9:3). 우리는 흔히 바울을 이방인의 사도라고 하지만 그가 얼마나 자기 민족을 사랑하였는가를 이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성도의 진정한 애국심은 이런 것이 되어야 합니다. 즉 우리 민족을 주님께 돌리기 위해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는 것, 심지어는 저주를 받을지라도 우리 민족의 복음화를 위해 노력하려는 자세가 신앙 안에서의 참된 애국심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2. 권세들에의 복종(롬13:1)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애국의 길을 걸을 수 있습니까? 우리가 애국하는 길은 먼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는 것입니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고 하였습니다.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왔고 권세를 거스리는 것은 곧 하나님을 거스리는 일이나 다름 없기 때문입니다(롬13:1). 물론 이것은 잘못된 권세에 복종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은 나라의 법을 무겁게 생각하고 지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공세를 받을 자에게는 공세를 내라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인 것입니다(롬13:6). 한때는 정부에 대해 무조건 비판적이어야 애국자인양 생각되던 시대가 있었습니다만 이제는 그때와 다르고 그에 못지 않게 법과 권세들에게 복종하는 것이 중요함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3. 나라를 위해 기도함(딤전2:1)
또 우리가 나라를 사랑할 수 있는 길은 나라와 정치, 경제 등의 여러 지도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나 자신을 위한 것이 됩니다(딤전2:1). 때로는 사랑의 비판도 필요하지만 그에 앞서 우리 성도들은 나라의 지도자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백성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 나라를 이끌어 갈 수 있도록 기도함이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면 반드시 응답해 주시기 때문에 성도의 기도는 백만 대군보다 더 강력하게 우리 나라를 지켜 줍니다(시50:15)
참된 애국이 무엇인지 알기 어려운 때입니다. 이런 때 우리는 현충일을 맞아 순국 선열들의 의로운 희생을 알아보았습니다. 지금 우리 민족이 현재의 위치에 서 있게 된 것은 모두 그 분들의 헌신과 희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 역시 나라를 사랑하고 민족을 위해 에스더처럼 의로운 희생을 아가와 하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또 우리 성도들이 나라를 사랑하는 길은 지도자들을 위해 기도해 주고 있는 권세들에 복종하는 것입니다. 성도의 애국은 불신자들과 달리 하나님께 대한 신앙 위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애국하는 신앙의 길”
(딤전2:1)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기독교 신앙을 호국 신앙이라고 비약해서 표현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지만 신앙과 애국은 마치 톱니의 두 바퀴가 맞물려 있는 것과도 같다 하겠습니다. 누구라도 성경을 주의 깊게 읽어보면 이와 같은 사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는데 구약 성서 가운데서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신약 성서에서도 우리는 애국과 관련된 언급들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나라를 사랑하는 것은 성도의 기본적인 의무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어떠한 경우에도 애국하는 사람이 되어야지 매국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성도의 애국은 다음 세 가지로 요약이 됩니다.
Ⅰ. 나를 위해 기도하는 신앙
애국하는 신앙의 첫 번째 요소는 나라를 위해서 기도하는 일입니다. 기도란 역사의 주권자이신 하나님의 팔을 움직이는 것이며, 나라를 위기에서 구해 낼 수 있는 강력한 힘이기 때문에 이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됩니다. 사무엘은 한 민족의 영적 지도자로서 나라를 위해 기도하기를 쉬는 것은 죄에 해당한다고 인식하고 있었으므로 이 죄를 범치 않으려고 부지런히 기도하기를 힘썼습니다. 우리에게도 이와 같은 인식이 필요합니다. 무슨 물건이든지 용도에 맞게 써야만 진가를 발휘하는 법이듯이 기도도 마찬가지인데, 우리가 나라를 위해서 끈질기게 기도할 때 참으로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목도하게 될 것입니다.
1. 지도자들을 위한 기도(딤전2:2)
우리는 나라를 위한 기도의 대상에 반드시 지도자들을 포함시켜야 합니다. 비록 그들이 불의한 방법으로 권좌에 올랐고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는 불경건한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우리는 국민의 한 사람뿐 아니라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도록 특명을 받은 하나님의 일꾼들이기 때문에 분노라든지 미움 대신에 기도의 분량을 증가시키는 것이 필요합니다. 역사를 기록하는 것은 사람이지만 역사를 만들고 이끌어 가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따라서 우리가 지도자들을 위해 힘써 기도하면 역사의 주권자이신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이 그들을 통해 성취됨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들을 원수로 여기는 것은 성도가 취할 바른 태도가 아닙니다.
2. 제도적 개혁을 위한 기도(요15:7)
어느 나라든지 제도적으로 잘못된 부분들이 반드시 있게 마련인데, 후진국일수록 이러한 현상들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때문에 이를 개혁하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들이 시도되게 마련인데, 우리 성도들이 가장 먼저 힘써야 하는 것은 기도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스코틀랜드의 개혁자 \'낙스\'의 기도가 독재자에게 가장 큰 부담을 주었다는 역사적 사실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인간의 지혜나 방법은 기도의 위력을 따르지 못합니다.
Ⅱ. 나라를 복음화시키는 신앙
애국하는 신앙의 두 번째 요소는 나라를 복음화하는 일입니다. 나라가 제아무리 든든한 정치적 기반 위에 세워져 있고 이상적인 목표를 향해 달음질한다 해도 그리스도가 기초와 중심이 되시지 않는다면 미래가 없고 소망이 없기 때문에 정치 발전이나 경제 발전, 문화 창달보다도 더욱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나라의 복음화라 하겠습니다.
1. 주께서 주신 사명의 인식(마28:19)
나라의 복음화는 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에 대한 인식이 바탕이 되어야만 강력하게 추진될 수 있습니다. 어떤 일에 대한 요구는 그 필요성과 함께 근원자가 중시되는 법인데, 복음 전도가 주의 명령이 아니라 단지 국민적 정서의 함양을 위한 하나님의 정책으로 인식된다면 성도들이 헌신적으로 이 일에 앞장선다는 것은 기대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사명의 인식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이 세계의 누구로부터도 이 사역을 위임받은 일이 없습니다. 다만 천지의 주재이신 하나님께서 이 일을 명하셨으므로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든지 상관없이 우리는 강력하게 복음 전도 사역을 추진해야만 합니다.
2. 효과적인 전도 계획 수립(행16:7)
같은 일도 계획이나 방법에 따라서 진행속도라든지 결과가 다르게 나타날 수 있듯이, 전도의 경우도 예외가 아닙니다. 무조건 성경을 들고 돌아다니면서 외친다고 영혼들을 얻게 되고 나라의 복음화를 앞당기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효과적인 계획이 세워져야 합니다. 같은 시간, 같은 노력을 들여서 최대의 효과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주께 구해야 하며, 이와 같은 복음 전도의 계획이 수립될 때 비로소 나라의 복음화가 가능할 수 있습니다.
Ⅲ. 나라를 바르게 이끄는 신앙
애국하는 신앙의 마지막 한 가지 요소는 나라를 바르게 이끄는 것입니다. 아무리 나라가 융성하고 국민들이 윤택한 생활을 하더라도 바로 가고 있지 않다면 문제가 매우 심각하기 때문에 바르게 이끄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런 노력이 따라야 전쟁의 억제라든지 경제의 균형 분배 등이 가능하게 됩니다.
1. 구조적 모순의 지적(마3:7)
술이 취해 낭떠러지인 줄 모르고 계속 걸어가는 사람을 발견하고서도 입을 다물고 지켜만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나라가 안고 있는 구조적 모순의 경우도 이와 같아서 눈이 밝아 이를 볼 수 있는 성도들이 지적해 줘야만 합니다. 침묵하면 나라가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설사 이로 인해 불이익이 생긴다 할지라도 지적하는 것은 성도에게 주어진 의무요 책임입니다.
2. 올바른 대안의 제시(딤후3:16)
모순을 지적하는 것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될 수 없습니다. 대안이 제시되어야 적어도 우리는 이 일을 할 수가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입니다. 성경 속에는 모순을 해결하는 정답이 들어 있어서 이것을 활용하는 사람들은 결코 실패하는 일이 없게 됩니다. 대안의 제시가 없는 질타는 알력과 반목만 부추기게 될 뿐입니다.
성도에게는 나라 사랑의 의무가 주어져 있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께서 위대한 일에 쓰신 사람들 가운데 자기 민족을 버리거나 나라를 배반한 사람을 우리는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애국 애족하는 사람들이었는데, 그것은 모순된 제도에 대한 타협이나 협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바탕을 둔 차원 높은 사랑이었으며, 우리도 이러한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의로운 희생”
(롬5:6)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영광이라고 모든 같은 것일 수가 없듯이 죽음이나 희생도 모두가 동일한 무게와 비중을 갖는 것은 아닙니다. 값진 죽음, 의로운 희생이 있는가 하면 전혀 그렇지가 못한 것들도 많이 있습니다. 술에 취해서 차를 몰고 달리다가 교통사고를 만나 죽게 된 사람을 가리켜서 의로운 일을 위해 죽었다고 말하지 않음은 물론, 이런 죽음을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나 애국 지사들의 순교와 비교하지도 않습니다. 가치있는 삶이 있는가 하면 전혀 가치를 부여할 수가 없는 삶도 있듯이 죽음이나 희생의 경우도 가치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있게 마련입니다. 의로운 희생이란 적어도 가치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있게 마련입니다. 의로운 희생이란 적어도 다음 세 가지 경우에 해당되는 희생을 말합니다.
Ⅰ. 나라를 위한 희생
어느 나라든지 그 나라의 역사책에는 나라를 위해 희생한 사람들에 관한 기록이 남아 있게 마련입니다. 우리 나라의 경우만 보더라도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하기 위해 자기를 희생한다는 것은 그 동기가 무엇이었든지간에 의로운 희생으로 간주될 수 있으며, 우리의 교회들이 매년 지키고 있는 현충 주일의 의미 속에는 이러한 희생의 가치를 되새기고 새롭게 조명하려는 의도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1. 불의에 대한 항거(딤후2:19)
일제의 억압으로부터 국권을 되찾기 위한 독립 운동이나 북괴의 침략에 항거하여 목숨을 걸고 싸운 일들은 모두가 불의에 대한 항거였다고 규정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가 자신들의 이기적인 탐욕을 충족시키기 위해 불법적인 침략을 감행한 것이기 때문에 이들을 대항하여 분연히 일어선 것으로 칭찬할 만한 옳은 일이었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어떠한 경우에도 불의에 대한 관용적인 태도를 보이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불의를 기뻐하지 않으시므로 우리들이 모든 불의로부터 떠나도록 명하십니다. 즉 불법과 손잡거나 어떤 명분으로든지 그것을 용납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는 결국 불의에 대한 항거를 명하시는 말씀이며, 우리는 이 명령을 좇아야만 합니다.
2. 국권 수호(삼상4:9)
국권이란 인권과 함께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소중한 권리이기 때문에 각 나라와 그 국민이 스스로 이것을 지키도록 힘써야 하며, 아무도 이것을 대신해 줄 수 없습니다. 나라를 위해 싸우다가 희생된 사람들은 바로 이와 같은 사실을 터득했던 사람들이며, 그들의 희생이 바탕이 되어 우리의 국권이 지켜질 수 있었습니다. 다른 나라의 국권을 빼앗고자 해서도 안 되지만, 자신의 국권을 잃어버리는 국민이 되어서도 안 됩니다.
Ⅱ. 인류를 위한 희생
의로운 희생의 절정은 인류를 위해 자기를 버리신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나타납니다. 그분은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셔야만 할 아무런 이유가 없었음에도 우리 모두를 위해 거기 달리셨으며, 우리에게 의로운 희생이 무엇인지 그 진수를 보여 주셨습니다. 성도는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사는 자들이 아니라 남을 생각하고, 인류와 세계를 생각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많이 있었으므로 우리 나라에도 복음이 전해졌고, 소외 계층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희망의 빛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1.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사53:5)
그리스도의 죽음은 한 마디로 인류를 위한 \'대속의 죽음\'이었습니다.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죽으심으로써 우리를 죄의 속박으로부터 풀어주신 것입니다. 누구에게 있어서나 남을 위해서 죽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닌데, 그분은 죄인된 우리를 위해 죽음의 길을 스스로 선택하셨습니다. 이와 같은 고귀한 희생이 있었기에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었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모든 축복과 특권을 누리는 것이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오늘이 있도록 하기 위해 그분이 치루신 희생을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2. 그리스도인들의 사랑의 실천(롬13:10)
인류를 위해 자기를 버리신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 성도들은 그분을 본받아 사랑을 실천하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양초가 제몸을 녹여 빛을 비추고, 소금이 제 몸을 녹여 맛을 내듯이, 성도가 사랑을 실천하려면 제 몸을 녹이는 희생이 따라야 합니다. \'허드슨 테일러\', \'다미아\', 그 밖의 인류를 위해 위대한 사랑을 실천했던 모든 사람들은 제 몸을 녹인 의로운 희생자들입니다.
Ⅲ.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희생
우리의 희생이 가장 가치 있고 의미 있는 것이 되게 하려면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영광과 관련이 있어야 합니다. 즉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희생이 되도록 해야만 하겠다는 말입니다. 아무리 명분이 좋아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없다면 그것의 가치는 그만큼 떨어지게 되고 맙니다.
1. 하나님의 뜻에 대한 이해(엡5:17)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기 위해서 선행되어야만 할 최대의 관심사는 하나님의 뜻에 대한 이해 여부라 하겠습니다. 사람들에 의해서 기록되어지는 역사의 어떤 평가보다도 중요한 것이 하나님의 뜻을 아는 일입니다. 따라서 성도는 무슨 일을 하든지 시대의 흐름이나 사람들의 동향에 주목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에 관심을 기울이도록 힘써야만 하겠습니다.
2. 하나님의 뜻에 대한 순종(삼상15:22)
바울이 가장 많은 일을 하고 하나님의 위대하신 역사에 주인공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하나님의 뜻을 이해할 뿐 아니라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순종할 때 역사가 일어나고 열매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순종하지 않고서는 아무리 주의 뜻에 대한 이해와 열정이 있다 해도 인정을 받을 수가 없는 법입니다. 희생은 순종을 동반합니다.
의로운 희생은 아주 특별한 사람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의를 아는 사람들이 공유해야 할 공정한 몫인데 이 몫을 나누고자 하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가 못한게 우리의 현실입니다. 단 것은 내가 삼키고 쓴 것은 이웃에게 지우려는 이기적인 태도를 버리고, 성도들은 주께서 봉 주신 모본을 좇아서 의로운 희생을 감수하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성도의 진정한 애국의 길”
(롬9:1)
현충일을 맞아 오늘날 윌 나라를 있게 해준 여러 순국 선열들에게 깊은 감사를 느끼면서 아울러 참된 애국의 길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특히 우리 성도들의 애국심은 세상 사람들이 떠들어 대는 애국과는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신앙의 선배들은 서양 문물을 받아들여 나를 부강케 하고 학교를 세워 민중들을 깨우치는 일에서부터 시작하여 일제의 침략에 대항하는 등 많은 애국의 모범들을 보여 주었습니다. 이제 우리 성도들은 오늘에 맞는 애국의 길이 무엇인지를 살펴 나라와 민족에 대한 사랑을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
Ⅰ. 성도의 애국심(왕상18:17)
1. 불신자의 애국심(왕상18:17)
우리는 이스라엘의 왕인 아함을 나브다고만 말하지만 사실 그는 이스라엘을 사랑하고 자기 민족을 위하는 자였습니다. 아함 왕이 3년 가뭄을 예언했던 엘리야를 만나자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라고 말한 것은 그가 자기 민족과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왕이라는 증거가됩니다(왕상18:17). 그러나 문제는 그가 잘못된 방법으로 나라를 사랑했다는 데 있습니다. 아합 왕은 시돈 왕의 딸인 이세벨과 결혼하였는데 이것은 시돈과 연합하여 이스라엘을 견고케 하려는 마음에서였습니다(왕상16:31). 그러나 문제는 이세벨이 더러운 우상들을 들여와 오히려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엘리야는 이스라엘을 진정 괴롭게 한 자가 아합과 그 아비 집이 여호와의 명령을 버리고 바알을 좇았기 때문이라 지적하였습니다(왕상18:18). 이처럼 애국심이라고 해서 다 좋은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에 어긋난 애국심은 오히려 하나님의 벌을 자초하는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2. 성도의 애국심(삼상17:47)
참된 애국심은 하나님을 믿는 신앙 안에서만 가능합니다. 다윗은 그런 애국심이 있었기에 자기 목숨을 걸고 거인 골리앗과 일전을 벌일 수 있었습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물리침으로 자기 민족을 구할 수 있었던 것은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하고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이라는 것을 철저하게 믿었기 때문입니다(삼상17:47). 성도의 신앙은 때로 별 것이 아닌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은 신앙이야말로 참된 애국의 길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Ⅱ. 성도의 애국하는 길(시18:6)
1. 나라를 위한 기도(삼상14:6)
요나단은 여호와께 대한 바른 신앙이 있었기에 여호와의 구원이 사람의 많고 적음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습니다(삼상14:6). 그는 그런 신앙을 바탕으로 자기 부하 한 사람만을 이끌고 적진으로 쳐들어가 블레셋을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삼상14:14). 우리 성도들이 진정 나라와 민족을 위해 애국할 수 있는 길은 요나단과 같은 신앙을 가지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환난에서 아뢰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신다고 하였습니다(시18:6).. 우리 나라도 무역적자가 심화되고 인플레가 뛰고 부동산 투기가 만연하는 등 경제적으로 어려운 점들이 적지 않습니다. 이럴 때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시고 놀라운 역사를 나타내 주시기 때문입니다.
2. 자기 생업에 열심히 종사하는 것(살후3:10)
지금은 옛날과 달리 국력이 총체적인 의미를 가집니다. 군사력만 강력하다고 강대국이 아니고 경제력도 있어야 하고 학문도 발달되어야 하고 도덕적인 면에서도 훌륭해야 진정한 의미에서 강대국이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애국하면 흔히 일제 경찰의 고문을 받고 쓰러지는 장면을 상상하지만 자신의 직업에서 최선을 다하며 사는 것 역시 애국하는 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일하기 싫거든 먹지도 말라고 하였습니다(살후3:10). 이처럼 자기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참다운 나라 사랑의 길입니다. 오히려 입으로만 떠들고 자기 혼자만 나라를 사랑하는 듯 하는 것보다 자기 직업에 충실하는 것이 진정 애국의 길인 것입니다.
3. 도덕적인 무장(신28:1)
중국은 18세기-19세기만 하더라고 학문이 발달되고 나라는 부강하였고 백성들은 열심히 일하는, 서양이 감히 넘보지 못할 강대국이었습니다. 그런데 아편으로 인해 백성들의 도덕심이 약해지면서 서양 각국의 식민 각축장이 되고 말았습니다. 미국이 현재는 지구상에서 가장 강한 나라이지만 미국이 무너지는 것 역시 외국의 침략보다는 자체내의 도덕적 해이에 기인할 것이라고 예언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사실 도덕적 기강이 해이해지는 나라가 세계 다른 나라 위에 바로 서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민족이 바로 서는 길은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그대로 순종하는 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신다고 하였습니다(신28:1). 이제 우리 성도들은 도덕적인 면에서 다른 이들의 모범이 되고 그럼으로써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합니다(마5:16). 그것이 진정 나라 사랑의 길입니다.
4. 복음을 증거하는 일(딤후4:2)
진정한 애국의 길은 우리 민족의 죄악의 길을 버리고 하나님 앞에 돌아오도록 전도하고 선교하는 일입니다. 이 세상에 진리는 둘이 될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참된 진리요 삶의 길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생명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고 증거하는 일이 다른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의 교훈처럼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전하기에 항상 힘쓰는 것이 우리 성도들이 할 수 있는 최고의 나라 사랑의 길이라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 당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나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된다고 하였습니다(고전1:18). 우리 성도들은 우리 민족이 온전히 주님 앞에 돌아오는 그날까지 복음 전파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나라를 사랑한다는 것은 단순한 마음만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애국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아합 왕의 경우 누구 못지않게 나라와 자기 민족을 사랑하였으나 잘못된 방법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진정한 애국의 길이란 하나님을 믿는 신앙 위에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먼저 우리가 애국할 수 있는 길은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경제를 위해서도, 통일을 위해서도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기도할 때 응답을 받게 될 것입니다. 또 자기 생업에 열심히 종사하는 것이 애국하는 길입니다. 이것은 빛은 나지 않을지 모르나 가장 중요한 일이며 우리가 힘써 해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도덕적인 무장을 하는 일, 복음을 전파하는 일이 애국하는 길임을 깊이 깨달아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