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미 레포트

2010학년도/ 유나이트신학대학 / 학번 0911 / 성명: 이정미

 

요한복음10장

 

1. 그 때에도 가짜 목자 행세를 하는 사람이 있기는 있었던 모양이다. 양의 우리에 문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란다(1). 지금도 이런 영혼을 망하게 하는 강도가 많이 있는 모양이다. 진정한 양의 목자인 것을 구별하는 두 가지 방법은 무엇인가?

문으로 들어가는 자; 담을 넘지 않고 문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는 것을 말한다. 초대 교회의 온갖 문서들 중에서 정경을 분리해내는 기준도 이것이었고, 수많은 영들 가운데서 올바른 영을 분간해내는 방법도 이것이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느냐 않느냐를 따지는 것이다. 예수를 메시야라고 고백하면서 그보다 더 높은 권위를 가진 자가 따로 있는 교활한 경우도 있으니 특히 주의하여야한다.양이 따르는 자; 양이 따르지 않으면 자신을 돌아보아야한다. 바른 목자에게만 양이 따르는 것이 아니라 사이비들에게도 광적으로 따르는 무리가 있기 때문에 이 기준은 세심하게 살펴보아야한다.

 

2. 양의 우리에 들어가는 방법은 문으로 들어가는 방법 하나 뿐이다. 담을 넘는 수가 있겠지만 이것은 정상적인 방법이 아니다. 문으로 들어간다는 것이 무슨 의미이며 따라서 다른 데로 들어가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문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올바르게 따르는 경우, 즉 예수를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을 말한다. 설교나 성경공부도 마찬가지다. 설교 시간에 예수의 주되심을 선포하지 아니하고 엉뚱한 세속 지혜만 가르치는 경우나 성경공부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배우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주인공이 되는 경우도 주의해야한다. 가령 다윗은 얼마나 훌륭한 신앙인이었는가? 그가 얼마나 말씀에 순종하였는가? 하는 것이 주가 되어서는 안된다.담을 넘는 경우; 1차적인 의미로는 당시의 바리새인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되게 가르치고 적용하는 경우를 가리킨다. 교회를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한, 혹은 자신의 출세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도구로 이용하는 경우를 가리킨다. 선포되는 말씀의 중심이 하나님과 예수인지 아닌지를 유심히 살펴보아야한다.

 

3. 큰 우리 안에 여러 목자의 양떼가 섞여 있으면 눈으로는 이게 몇 무리의 양떼인지 조차 분간이 어렵다. 뒤섞인 양떼를 어떻게 손쉽게 분리해 낼까?

목자가 부르면서 앞서가기만 하면 된다; 제대로 된 신자와 엉터리 신자가 함께 뒤섞여 있어도, 신자와 불신자가 뒤섞여 있어도 주님께서 오시는 날에는 깨끗이 분리될 것이다. 모래 속에 쇠붙이가 섞여 있는 것이 전혀 분간이 안돼도, 아니 섞여 있는 것조차 몰라도 자석을 갖다대면 쇳가루만 딸려 나오듯이 분리될 것이다.

 

4. 우리에 특별히 문이 없는 경우가 있는 데 이 때는 목자가 문에 누워서 문의 역할을 하곤 했단다.이런 문의 두 가지 역할은?

들어오게 하는 역할과 들어오지 못하게 막는 역할; 다시 한 마디로 줄이면 양을 보호하는 역할이다. 예수믿는 우리에게 주어진 많은 하나님의 명령은 우리를 지키는 역할을 한다. 예를 들면 십일조를 충실하게 하는 사람은 결코 규모없는 삶을 살지 못한다. 월급받는 사람은 비교적 쉬울 지 모르나 장사를 하거나 건축 일을 하는 경우라면 계산이 대단히 어려울 것이다. 제대로 십일조를 하려면 자신의 수입에 대해서 면밀하게 살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결국은 자신을 지키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보살펴 주시는 것은 논외로 하고.

5. \'학교의 문\'이라는 것은 말이 되는 데 \'학생의 문\'은 좀 곤란하다. \'양 우리의 문\'은 말이 되는 데 \'양의 문(7)\'? 아무래도 이것은 어색한 표현이니까 적절하게 의역을 해보자.

양의 문 = 양을 위한 문; 과연 예수는 양을 위한 문이다. 자신을 희생시켜서까지 양들이 안전하게 우리에 들어가게 하시는 분이시다.

 

6. 예수님도 참! 말을 그렇게 험하게 하시니 바리새인들이 죽일려고 그러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자기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라는 데 누가 가만히 있겠는가? 어? 그러고 보니 그 다음에는 조금 부드러워졌다. 뭐라고?

삯군; 예수님을 가리켜 위대한 스승, 혹은 성현 중의 한 분이라는 말은 옳지 않다. 자기만 제외하고 모두가 절도요 강도라는 그런 성현이 어디 있나? 과대망상증 환자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100% 자신의 말을 인정해서 하나님의 아들이거나 둘 중의 하나다. 예수님의 말씀 앞에서는 결코 어중간한 태도는 있을 수 없다.다른 성현이라는 위대한 스승들도 다 절도, 강도인가? 그들이 이 땅에서 어떻게 인간다운 삶을 살아야할 지를 가르쳐 이 땅위의 스승의 역할은 했겠지만, 영혼의 구원에 이르게까지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역작용을 하지 않았는지 생각해 보자.

 

7. 예수님이 선한 목자인 이유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기 때문; 선한 목자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기까지 이리와 싸운다. 그렇다고 반드시 죽는 것이 아니라 어쩌다 보면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예수는 죽을 수밖에 없음을 알면서 죽기까지 아니, 죽기위해서 싸우셨다. 양을 위해서 스스로 죽으신 것이다. 선한 목자 중의 선한 목자이시다.

 

8. 복음이 먼저 유대인에게 전하여졌지만 이방인인 우리에게까지 전해져서 하나의 교회가 되고 한 하나님의 자녀가 될 것임을 가리키는 말은 몇 절인가?

16절; 복음 안에는 모두가 한 형제자매이다. 지방색도 피부색도 상관없다. 빈부도 소용없고 학식의 유무도 결코 차이가 아니어야한다. 초대교회의 성도 중에는 주인과 종이 같이 교회를 다녔다.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일이다.

 

9. \"얘 너희들 HOT 잘 아니?\"\"예!\"(천둥치는 소리)\"그러면 가서 돈 좀 빌려 올래?\"이렇게 물어보면 그 다음 반응이 천태만상이다. 잘 안다고 하는 데도 돈을 못 빌려오는 것은 인격적 교제나 신뢰가 없기 때문이다. 아니 그렇게 어려운 말을 쓸 필요도 없다. 아이들 말마따나 나는 아는 데 자기들이 나를 모르기 때문이다. 솔직히 우리말로는 이런 것도 아는 것이라고 말하지만 성경에서 안다고 말하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를 알고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안다고 할 때는 어떤 정도로 아는 것일까? 성경에서 구체적인 실례를 찾아보자.

게세마네 동산의 기도; 극심한 고통 가운데서 행한 그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어주시지 않은 셈인데 그럼에도 예수님은 기꺼이 그 뜻을 따르셨다(17-18). 서로의 마음과 뜻을 잘 아시기 때문이다. 완벽한 신뢰가 있기 때문이다. 죽을 병에 걸려서 \'살려 달라\'고 열심히 기도하면서 살려주셔도 감사하고 살려주시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바로 가는 것이니 그래도 감사하다고 하는 정도면 하나님을 아는 분이라고 말할 수 있다. 성경이 말하는 \'안다\'는 의미는 이 정도를 의미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렇게 알고 계신다. 그냥 이름만 아는 정도가 아니다. 이제는 우리 차례이다. 우리도 하나님을 알아가야한다. 자식을 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인 것을 우리도 알아야한다.

 

10. 유대인들의 갈등이 몹시 심했던 모양이다. 예수를 보고 귀신들렸다고 하는 사람이나 예수의 말이 귀신들린 자의 말이 아니라고 하는 자에게 공통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예수님의 말, 혹은 행위에 특별한 능력이 있음; 능력이 있는 것은 틀림없는데 너무 파격적이어서 따르기가 겁이 나고, 권력자들이 인정하지 않고, 기득권을 놓기가 싫기도 하고.

 

11. 14-15을 근거로 다음과 같은 요지의 설교를 한다면 무슨 오류가 있는지 지적해보자.\'양은 IQ도 낮고 시력도 형편없고 다리도 짧아서 도망갈 능력도 없다. 목자의 보호가 절대로 필요하다.따라서 1) 양도 목자를 잘 알아야한다. 2) 양은 목자를 잘 따라야 한다. 3) 양도 목자의 보호를 잘 받아야한다.\'

오류; 본문의 주어는 예수나 목자이다. 어떤 예수며 어떤 목자인지에 관심이 있다.결코 양이 어떠해야한다는 내용이 아니다.

 

12. 통일교를 위시한 사이비에서 주로 하는 말이지만 예수는 메시야로 이 땅에 왔지만 능력 부족으로, 혹은 그 시대 사람들이 완악함으로 잡혀 죽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실패하거나 완수하지 못한 예수의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자신이 메시야로 왔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이들의 주장이 어디가 틀렸는가?

예수님의 죽음은 능력 부족이 아니라 스스로 죽으신 것이며, 스스로 다시 살아나셨다. 결코 실패가 아니다(18). 예수는 죽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다. 자신을 가리켜 희생제물이라고 하셨다.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Ransom)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요일4:10). 예수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구원하기 위하여 지불한 몸값입니다(마 20:28, 막 10:45).

 

13. 말끼를 못 알아듣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눌려면 얼마나 답답한지 모른다. 그런 사람과 결혼하면 숨이 막혀서 살기 어려우니 결혼하기 전에 잘 살펴야한다. 여기 유대인들과 예수님의 관계가 꼭 그런 것 같다. \'그리스도라면 밝히 말하시오\'라는 유대인들의 주문에 대하여 예수님의 대답 두 가지는 무엇인가?

지금까지 나의 행한 일을 보면 자명한 것이 아니냐(25)?아버지와 나는 하나이다(30).

 

14. 그리스도라면 밝히 말하라고 해놓고 실제로 예수님이 \'그렇다(25, 30)\'고 대답을 하자 돌을 들어 치려하다니 도대체 유대인들의 의도는 무엇인가?

자신을 그리스도라고 주장하거나, 하나님이라고 한다면 돌로 치겠다. 여기서 가부간 끝장을 내겠다; 하나님의 아들이 메시야가 되어 이 땅에 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였다는 뜻이다. 단지 옛날의 사사나 마카비같은 정치적인 메시야를 바라고 있었을 뿐이다.

 

15. 다음은 사도 바울이 부른 승리의 찬가다.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이런 확신은 무엇 때문에 가능한가?\'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8:35-39)\'

이 일을 가능케 하시는 분은 \'만유보다 크신 분\'이시기 때문이다(29).

 

16. 수전절은 수리아의 폭군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 왕에 의해 더럽혀졌던 성전의 회복을 기념하여 유대 전역에서 8일 동안 지켜졌던 유대인들의 절기다. 잃었던 국권을 회복한 것 뿐만 아니라 영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였다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 절기는 기슬래월(12월) 25일에 행해졌다. 요세푸스는 이것을 \'빛의 절기\'라고 불렀다. 우리나라의 어떤 절기와 가장 가까울까?

광복절; 이 절기에는 집집마다 작은 기름 병에 불을 붙여 두었기 때문에 빛의 절기라고 불렸는데 \'빛을 되찾은 날\'이라는 광복절과 많이 닮았다.

 

17. 예수께서 \'내가 하나님이라\'고 한다해도 참람하지 않다고 제시하는 두 가지 근거는 무엇인가?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가리켜 신이라고 하신 성경말씀; 내가 말하기를 너희는 신들이며 다 지존자의 아들들이라 하였으나 (시 82:6)

스스로 행하신 이적들

 

18. 초대교회시대에 많이 나타난 이단들은 대체로 삼위일체와 관련된 것이다. 하나님은 삼위로 \'구별\'이 되면서 동시에 \'한 분\'으로 신비로운 조화를 이루고 계시는데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면 이단이 되는 것이다. 가령 물이 어름, 물, 수증기의 세 형태를 가지고 있듯이 하나님도 한 분이신데 상황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하면 중대한 이단(양태론)이 된다. 구별과 하나됨 중에 하나됨 쪽으로 치우쳤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 예수님은 본문에서 무엇이라고 하셨는가?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나중에 성령님을 보내실 것을 말씀하시지만 여기서는 명백하게 구별되면서(나와 아버지) 동시에 하나라고 말씀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