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교회 설교 요약

지난주 설교자료
   41

2008-12-02 오후 1:21:00  

 ■ 설교일자 2008년 11월 23일
 ■  제   목 내가 새벽을 깨운다
 ■ 성경구절 마가복음서 1장 35절
 ■  글쓴이 관리자(기타)
 ■  조회수 295
232년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유색인 흑인인 버락 후세인 오바마가 44대 미국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습니다. 마틴 루스 킹 목사가 ‘나에게 꿈이 있다’고 외친지 45년 만에 케냐 출신의 아버지와 미국인 사회운동가인 백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오바마를 미국국민이 대통령으로 선택했습니다.

오바마의 대통령 당선에 대한 다양한 평가들이 있습니다만 대체적으로 이번 선거를 통해서 미국민은 정치나 경제에 대의 또 다른 ‘변화’를 요구하고 있음을 보여준 것이라고 언론은 보도하고 있습니다. 그 변화에 대한 미국국민의 갈망은 여론조사에서도 확연히 드러났습니다. 8년간의 부시정권하에서 미국이 잘못 되어 가고 있다고 응답한 사람이 85%나 되었다고 합니다.

부시 대통령이 8년이나 집권하면서 신자유주의라는 경제 시스템은 미국민의 삶을 극단적으로 몰고 갔습니다.
그동안 신자유주의를 추종한 미국정부는 금융자본에 대한 규제를 완화해 왔습니다. 부자들의 세금을 낮추는, 감세정책으로 빈부격차를 더 벌여왔으며, 그 결과 부시 집권 8년 동안 500만 명이 빈곤계층으로 전락했고, 의료보험이 없는 미국인이 700만 명이나 늘었다고 합니다. 중산층은 철저히 몰락했고 사회 양극화는 심화될 대로 심화된 것입니다.

미국 중산층의 몰락은 결국 세계 속에서 미국의 추락을 가져왔고, 세계 경제 위기를 몰고 왔습니다. 그에 따라 미국 국민은 새로운 변화를 갈망해 왔다고 언론은 보도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오바마는 선거운동을 통해서 끊임없이 규제가 철폐된 신자유주의의 시장 만능주의를 반대해왔습니다.
그는 미국금융위기 이전부터 시장에 대한 적절한 정부의 규제를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오바마는 금융시스템 전반을 감시하고 규제하고 통제하는 정부기관을 설립하겠다고 공약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금융규제는 국경을 넘나드는 투기적 금융거래를 옥죄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지금 이명박 정부의 우리나라를 가만히 보면 아무리 청와대가 오바마와 이명박 대통령이 닮았다고 터무니없는 주장을 해도, 이명박 정부는 오바마의 공약과 반대되는 정책으로 일관하고 있고, 지나온 미국 정권인 부시 정부에 너무나 잘 부응하는 정부입니다.

고소득층에는 감세하고, 기업에는 세금의 특혜를 주고, 거품과 부패구조의 건설업체들에게는 국민의 세금 13조를 들어붓겠다고 합니다. 계속해서 사회복지예산은 터무니없을 정도로 줄여서 사회보장제도를 약화시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분야에서 오직 경쟁만이 살길임을 외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시장 경쟁 속에 내어 놓겠다는 것입니다. 시장에 내 놓아서 안 되는 공공의 영역까지도 시장에 내어 맡기려고 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수돗물이요, 전기요, 건강보험, 병원, 가스, 교육입니다. 주택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명박 정부는 규제 완화와 철폐를 통해서 시장의 구조 속에 모든 것을 내어 맡겨 버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미 미국은 8년의 경험을 통해서 모든 것을 자유시장만으로는 결코 모두가 잘 살 수 없다고, 미국민이 새로운 오바마 정부를 선택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정부는 지금 미국이 잘못 걸어왔다는 그 길을 고집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장숭배가 극치를 달리고 있습니다.
배움으로 행복을 추구하는 교육조차도 시장 구조 속에 던져 버리고 있습니다.
그 시장의 경쟁에서 탈락하거나 도무지 교육경쟁력이 없다고 여겨지는 어린생명들을 죽음으로 내 몰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눈에 확연히 보이는 실용과 이익만이 가치척도가 되어 버렸습니다.

과거 미국정부가 현재의 우리나라 정부와 비슷한 정책으로 일관하다가 금융대란을 맞게 되었고, 금융대란이 세계를 휩쓸게 된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예측하지 못할 만큼 소위 주가지수는 롤러코스터를 탄듯하고, 돈이 뭔지, 돈 때문에 삶이 황폐화 되는 사람들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도저히 그렇게는 살고 싶지 않은데,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의 삶의 곳곳에는 너무나 깊숙이 ‘시장’이 들어와 버렸습니다.

‘시장’은 거래하는 곳입니다. 거래를 위해서 판매하는 사람이나 구매하는 사람이 정직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 더 많은 이익’을 위해서 정직은 이익에 팔아넘기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거래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조차 이익을 위해서라면 시장에 내어 놓고 있습니다.

시장이 없으면 우리는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모든 실존이 시장의 법칙으로만 이루어 질 때에는 많은 문제를 야기할 수 있습니다.
생태와 생명의 논리, 평화와 사랑의 논리, 공동체와 함께 하는 논리는 이익 앞에 무너져 버릴 것입니다.

시장에서 상품은 경쟁력이 있어야 거래가 됩니다. 경쟁력 없는 상품은 거래되지 않습니다.
상품을 판매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경쟁력이 있는 판매기술이 있던지, 상품의 품질이 다른 상품보다 더 우수하던지, 가격이 다른 상품보다 경쟁력이 있던지 해야 시장에서 거래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그 상품은 살아남을 수 있고 많은 이익을 창출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을 시장의 법칙으로 해결하려고 하다 보니 미래의 희망, 꿈, 행복, 평화, 인간의 존엄성, 도덕, 윤리, 사랑 등등은 시장의 경제적 이익 앞에 맥을 못 춥니다.

어느 새 자라나는 아이들에게도 희망과 꿈을 말하기 보다는 ‘경쟁력 있는 인간’, ‘시장에서 이익을 많이 남기는 인간’이 되기를 우리는 원합니다.

특별히 우리의 믿음은 경쟁으로 얻어 지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의 믿음과 나의 믿음을 비교해서 약간의 비교 우위에 있다는 것만으로 교만하여져서 나를 내세웁니다. 우리의 신앙은 상대적이지 않습니다. 나의 신앙이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더 깊거나, 더 얕거나 하는 수준을 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나만의 절대적인 관계 속에서만 말할 수 있습니다. 믿음은 경쟁력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주 예수께서 보여주신 하나님과의 관계는 지금의 관점으로 보면 전혀 실용적이지도 않고, 경쟁력 있는 모습도 아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이나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 가운데 세상의 시장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전혀 경쟁력 없어 보이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기도입니다.

마가복음 첫 장에 나타난 예수의 일상생활을 보면 예수께서는 얼마나 바쁘고 힘들게 사셨는지 모릅니다. 예수께서s는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셔서 하나님의 말씀 가르치는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소위 그 당시 하나님 말씀인 토라의 전문가들인 서기관들과는 달랐습니다. 사람들은 그런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 들으면서 엄청나게 놀랐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회당에서 귀신들린 사람을 예수께서 고쳐주셨습니다. 그 귀신 들린 사람은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알아보고 두려워 떨었습니다. 그 일 후에 예수님은 시몬의 집에 가셨습니다. 그곳에는 시몬의 장모가 열병에 걸려 누워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병든 여인도 고치셨습니다.

이윽고 해가 저물어 갈 때에 예수님의 소문을 들은 사람들이 병든 자와 귀신 들린 자를 데리고 예수님께로 나아왔습니다. 종일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말씀을 가르치신 예수님께 그 시간은 겨우 찾은 휴식시간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쉬시지 않고, 주저하지 않고 그들에게로 다가가 병자들을 고치시고, 귀신을 내어 쫓으셨습니다.

이 모든 일들이 하루 동안에 일어난 일입니다.
얼마나 예수께서는 바쁘고 고단한 하루하루를 사셨겠습니까?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 고단한 생애 가운데서도 기도를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오늘 말씀은 그 바쁜 일과들 속에서 예수께서 어떻게 기도생활을 유지하셨는지를 보여 줍니다.
“새벽 오히려 미명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서 거기서 기도 하시더니”(막1:35)

예수께서 경쟁력을 가지시려고 하면 자신이 이루어 놓은 기적의 일들을 널리 홍보하고, 그 일들을 배경으로 권력에 줄을 대고, 그에 대한 대가로 돈을 벌어야 합니다. 그리고 밤늦도록 제자들과 전략회의를 해서 다음 날 어떻게 해야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잘 조명되고, 많은 사람들을 모을 것인지 의논하고, 일정을 짜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전혀 경쟁력 없어 보이는 행동을 하십니다. 피곤하면 쉬어야 하지요.
그런데 하루 중에 가장 이른 시간, 아직 어둠조차 채 물러가지 않은 이른 새벽에 예수께서는 한적한 곳으로 나아가서 기도하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힘과 권세와 경쟁력으로 세상을 이기신 것이 아니라 매일 매일 자신의 모두를 하나님께 바치는 헌신으로 사셨습니다. 그 경쟁력 없어 보이는 예수의 기도와 헌신으로 우리는 구원을 얻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된 것입니다.

아니 어쩌면 예수께서는 세상에서 어느 누구도, 그 어떤 힘도 따라올 수 없는 경쟁력을 지니셨는지 모릅니다.
그 경쟁력은 바로 기도입니다.

예수님은 놀라울 정도의 능력을 발휘하십니다. 돌아가시는 그 순간까지 예수께서는 놀라운 일들을 행하셨습니다. 중풍병자와 지체장애인을 일으키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던 그 분의 능력은 날이 거듭되고 해가 바뀌어도 지치지 않고 계속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놀라운 능력의 비밀은 바로 자기희생적인 기도생활에 있었던 것입니다.

아마 예수님도 이른 새벽에 기도하기 위해 일어나기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피곤한 육신은 천근만근의 무게로 예수님의 발걸음을 붙들었을 것입니다. 서늘한 밤공기는 지치고 상한 그 분의 몸을 사정없이 에이었을 것입니다. 부족한 수면이 주님의 눈꺼풀을 무겁게 하였을 것입니다. 피로에 젖은 여리신 몸은 쉴 새 없이 그분에게 휴식을 요구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단호하게 떨치고 기도하러 가셨습니다. 새벽 미명에, 한적한 곳으로…….
힘들고 곤했지만, 귀신에 눌려 고통하고 병마에 시달리며 신음하는 가엾은 백성들의 모습이 눈에 아른 거려 가만히 쉬고 있을 수 없으셨던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기도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분은 죄가 없으셔서, 회개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굳이 그 힘든 새벽 시간에 일어나 기도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의 능력을 예수께 한량없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권세와 능력이 그분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기 안에 있는 능력에 자만하거나 의지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한없이 겸손하셔서 하나님 아버지를 의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심에도 매일 매일 하늘의 아버지가 새롭게 은혜를 주셔야만, 그날도 고통 받고 있는 자들을 건질 수 있다고 생각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이른 새벽마다 한적한 곳으로 나가 기도하셨습니다.

한적한 곳은 ‘고독한 처소’입니다. 우리가 기도는 어느 곳에서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깊이 기도하기 위해서는 방해를 받지 않을 수 있는 구별된 장소가 필요합니다. 예배당이 구별된 장소가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새벽은 여러 가지 일과로부터 자유로운 시간입니다.

기도는 숙달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친밀도와 그때그때의 나의 영혼 상태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기도를 많이 하면 할수록 기도시간이 길어지는 것은 기도가 구체적이 되고 기도 제목이 많아지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우리도 새벽 미명에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십시다. 세상의 경쟁력을 뛰어넘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경쟁력인 기도를 통해서 우리 자신을 성찰하고, 믿음의 진보를 이룹시다. 기도를 통해서 이 세상을 이기는 경쟁력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으실 수 있기를 원합니다.

‘새벽이 나를 깨우는 것이 아니라 내가 새벽을 깨우리라.’
기도를 통해서 우리 교회를 향해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적을 체험합시다.

기도함으로 우리의 소원을 하나님께 아룁시다. 기도함으로 우리 자신을 성찰합시다.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뜻에 우리의 뜻을 맞춥시다.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은총을 경험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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