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실한 목회자와 충성된 협력자 들

신실한 목회자와 충성된 협력자들/ 빌2:19-30

신실한 목회자와 충성된 협력자들/빌2:19-30
2005-02-14 12:26:09 read : 358

한 달 가량 해외 집회를 인도하고 선교지를 방문하면서 실상에서 부흥하고 평안
하여 샘물처럼 맑고 아름다운 교회와 그렇지 못한 교회의 특징이 두드러지게 나
타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행복한 교회는 말할 것도 없이 신실한 목사 아래 충성스러운 목회 협력자들이
있음을 보았고, 마치 해질 무렵 전깃불이 나간 집안의 불편함과 불안함 같은 교
회의 특징은 목사도 교인도 개인주의와 세속주의에 길들여진 듯 모든 것이 자기
중심적임을 볼 수 있었습니다.
물론 어느 목회 현장인들 아픔이 없고 힘든 시간이 없겠습니까만 그런 상황에
서도 훌륭한 목사는 참고 인내 하며 모든 사람을 행복하게 하기 위하여 십자가
를 지는 사명을 수행하면서 교인들을 그렇게 인도해 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어느 때라도 마찬가지이지만 해외집회나 국내집회 강사로 다니면서
더 많은 것을 보고 깨달아 우리 교회에 적용하면서 더 좋은 신실한 목사가 되어
야 겠다는 다짐을 하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빌립보 교회에 보낸 사도 바울의 편지의 한 부분을 함
께 생각하면서 우리 교회가 더 좋은 주님의 교회가 되기를 바라면서 말씀을 준비
했습니다.
저는 목사로서 언제나 바울 사도를 닮고 싶은 마음입니다. 물론 오늘의 현실
이 그렇게 살아갈 수 없는 다양한 이유들이 많을지라도 그 정신을 이어받아 일생
을 목회하고 주님 앞에 섰을 때 진실로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는 칭찬 한 마디 듣
고 싶은 일념으로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바울은 항상 주의 일을 수행하는 데 기쁨으로 충만했습니다.
감옥에 있으면서도 전혀 걱정하지 않는 낙천적인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항상 인간관계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겸손의 사람이었습니다.
학문으로는 당시에 따를 자 없는 실력자였습니다.
권력으로도 어느 지위에 있는 사람과도 상관되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혈통으로도 전혀 부끄럽지 않는 한국식으로 말하면 양반이었습니다.
거기다가 목회 행정에 탁월한 능력을 소유한 사람이었습니다.
오늘날도 이 정도의 목회자가 된다면 정말 어느 교회 무론 하고 훌륭한 목회자
로 사역할 것입니다.
그런데 목회자도 훌륭해야 하지만 목회가 훌륭하기 위해서는 목회 협력의 동역
자들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아무리 모든 것을 갖춘 목회자라 할지라도 신실한 목회 동역자들이 없이는 훌
륭한 목회 현장을 만들어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바울에게는 신실한 목회 동역자들이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 가운데 두 사람의 이야기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가 바로 디
모데와 에바브로디도였습니다.

바울은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항상 빌립보 교회 성도들을 잊지 못하고 있었
습니다. 자신은 옥에 갇힌 형편이기 때문에 빌립보에 갈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
다.
자신이 목회 했던 많은 교회들 가운데 빌립보 교회를 잊지 못하고, 빌립보 교
회 교인들이 보고 싶고, 교회 소식이 그리웠던 바울이었습니다.
동시에 빌립보 교회 교인들도 바울 사도의 형편이 늘 걱정이 되었고 궁금했던
것입니다. 이것을 바울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의 소식을 빌립보에 보
낼 수 있는, 그리고 빌립보 교회 소식을 바울에게 전해 줄 수 있는 방법을 강구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번에도 해외에서 매일 매일 보내온 교회상황 보고서를 보면서 포항에서 이루
어지는 모든 일을 미국에서도 아르헨티나에서도 바로 바로 알 수 있는 참 좋은
세상을 살아간다고 느꼈습니다.
하루는 저녁에 보고서를 읽다가 그냥 책상 앞에 엎드려 우니까 아내가 한참 만
에 이야기 한 말이 있습니다.
“차라리 해외에서 교회 상황을 모르면 부흥회 인도에 지장이 없겠는데 교회 상
황을 미주알 고주알 다 알게 되니 집회에 영향을 미칠까 걱정입니다. 세월 좋은
것도 때로는 주님께 영광이 되지 않네요.”
그렇습니다. 모든 인간사는 장단점이 공존하는 것입니다. 그래도 문화의 발전
으로 편한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 결코 나쁜 것은 아닐 것입니다.

다시 바울의 상황을 좀더 살펴보고자 합니다.
바울이 생활하던 시대는 요즈음처럼 전화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요즘 처럼 세계가 일일 생활권인 것고 아닙니다.
사람을 보내고 사람을 통해서 소식을 듣고 보내는 상황이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누구를 보낼 것인가?
그것은 바울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놀랍게도 이런 상황에 바울은 두 사람을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가 바로 디모데
와 에바브로디도였습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는 잊을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한
사람은 목회자로서의 동역자였고, 한 사람은 평신도로서의 동역자였습니다. 그래
서 성경에 가장 아름다운 관계로서의 목회 협력자의 삼각관계가 바울과 디모데
와 에바브로디도인 것입니다.
이 두 사람은 그야말로 바울의 목회에 더 없는 협력자들이었습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이와같은 목회를 일찍부터 꿈꿔왔습니다. 목사가 되어서 이
런 아름다운 일생을 살아가는 것보다 아름다운 것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었습니
다.

진실된 목회자로서의 목회 협력자

디모데는 루스드라 출신으로서 헬라인 아버지와 유대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났
습니다.
디모데후서 1:5절과 3:15절 말씀을 보면 신앙 가정에서 성장한 것을 알 수 있
습니다.

디모데가 어떻게 개종을 했는지는 잘 알려지지 않지만 사도행전 16:1-3절을 보
면 바울이 2차 전도 여행 중에 루스드라에서 디모데를 만나고 그에게 할례를 행
하고 그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사역에 필요한 인물임을 알아 그 때부터 바울
과 디모데의 관계는 남달리 친밀하게 되었습니다.

고린도전서 4:17절 말씀을 보면 바울이 디모데를 향하여 “주안에서 사랑하는
나의 아들”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는데 그만큼 디모데는 바울에게 있어서 더 없
는 목회 협력자였던 것입니다.
디모데는 빌립보에서도(행16장), 데살로니가와 베뢰아에서도(행17:1-14), 고린
도와 에베소에서도(행19:21-22), 로마 옥중에서도(골1:1, 빌1:1) 바울과 함께 있
었습니다.
그리고 바울이 여러 곳에 편지를 쓸때 항상 디모데를 언급하면서 인사를 한 것
을 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내용에서 디모데의 신앙과 인품을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바울은 자신이 갈 수 없고, 또한 여러 교회의 상황이 어려울
때 자기 마음을 정확하게 전하고, 또 그 교회의 소식을 가장 정확하게 자신에게
전해 줄 수 있는 인물로 자연스럽게 디모데를 생각했던 것입니다.
왜 바울이 그렇게 디모데를 생각했을까요?
한 마디로 요약하면 디모데는 믿을 만한 사람이었습니다.
20절 말씀입니다.
“이는 뜻을 같이 하여 너희 사정을 진실히 생각할 자가 이밖에 내게 없음이
라.”

여기의 “뜻을 같이 하여”라는 원문의 용어는 ‘이소프쉬콘’(ἰσόψυχον)인
데 이 말은 ‘이소스’(ἴσος-동등한)와 ‘프쉬케’(ψυχή-혼)의 합성어로서 다
음 두 가지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는 시편 55:13절의 “나의 가까운 친우로다”를 칠십 인역으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이 단어가 사용되었는데 “친밀하고 깊은 관심을 가지고 돌보아주다”
라는 뜻입니다.
둘째는 문자적 해석으로서 “같은 심령을 가지다”라는 뜻입니다. 물론 이
두 의미가 다 해당되는 것입니다.
첫 번째로 해석을 하면 바울 주위에는 디모데를 제외하면 친밀하게 돌보는 사
람이 없음을 뜻하는 것이고 두 번째로 해석을 하면 디모데는 바울의 마음과 생각
과 뜻을 같이 할 사람이 디모데뿐이라는 뜻입니다.

21-22절 말씀입니다.
“저희가 다 자기 일을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지 아니하되 디모데
의 연단을 너희가 아나니 자식이 아비에게 함같이 나와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
하였느니라.”
참 감동적인 말씀입니다.
그 당시의 교인들도 교회 생활을 통해 자기의 유익을 위한 일을 찾고 행하면
서 예수의 일은 생각지 않고 행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디모데는 바울의 마음을 살펴서 바울을 마치 아비처럼 섬기면서 자기
의 일을 구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담임목사와 부목사의 관계가 바울과 디모데의 관계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
각해 봅니다.
부목사를 믿지 못해서 별별 제도를 다 만들어야 하는 담임목사, 부목사도 언젠
가는 떠날 교회라는 생각에 진실된 목회사역이 되지 못하는 기막힌 이야기가 한
국교회의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지만 왜 이렇게 오늘의 목회자들 스스로가 신
실하지 못할까 생각해 보면 가슴이 아프고 마음은 천근만근이 됩니다.
가까운 친구같이 허물없이 함께 할 수 있는, 그리고 마음과 생각을 같이 할
수 있는 목회자로서의 목회협력자가 그리운 시대라고 모두들 말하지만 그것은 누
가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목회자 스스로 만들어 가야 하는 필연적인 몫이라
는 것을 목회자 스스로 깨달아야 합니다.
이번 아르헨티나 중앙교회와 자매결연을 맺으면서 가슴에 남아있는 아름다운
시간이 있었습니다. 담임목사인 나호철 목사님은 마흔 초반의 젊은 나이로 남미
에서 가장 대표적인 교회를 담임하게 되었는데 짧은 5일 동안이지만 그에게서 느
낀 것은 21세기 해외 한인사회는 물론 한국교회가 희망이 있다는 감동이었습니
다.
몇 개 국어를 구사하는 언어적 능력과 내과의사로서 사역하다가 주님의 부르심
에 감격하여 신학을 공부하여 목사가 되었는데 그 생각과 삶이 너무 진솔하고 성
령에 사로잡힌 모습이어서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한국교회의 고질적인 병적인 권위주의와 제도에 주님의 가르침이 부서지는 아
픔을 함께 이야기하다가 오랜만에 사상적 신앙적 동질감을 느끼면서 우리는 순간
적으로 손을 잡고 아무 말 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말 한마디 없었지만 나는 그의 심장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그도 내 가슴의
수천 만 마디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정신적 영적 교감의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가 마지막 남긴 말입니다.
“목사님은 아버님 같아요. 잘 지도해 주십시오.”
그 순간 아직 신학 수업을 하고 있는 석훈이 생각이 떠올랐고 한국교회의 내일
은 우리 시대의 잘못된 모든 것들이 부서지고 주님이 원하시는 교회의 모습을 가
꿀 수 있는 인물들이 신학교에서 쏟아질 때 희망이 있음을 기도했습니다.

그것은 곧 신실한 목사를 말하는 것이고, 신실한 목사란 객관적, 세상적 조건
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기뻐하시는 주님의 노예로서의 사역자를 뜻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제 자신도 우리 교회 부목사님들과의 관계가 바울과 디모데 같기를 소망하면
서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물론 상호 실수도 있고 부족한 면도 많지만 관계에
있어서 바울이 디모데를 아들처럼 생각하고 디모데가 바울을 아비처럼 생각하면
서 목회를 했을 때 그 관계가 아름답고 신실한 목사의 모습이 연출될 수 있었던
것처럼 오늘도 저는 그렇게 살아가는 목사가 되고 싶은 것입니다.

충성된 평신도로서 목회 협력자

바울은 또 한 사람의 신실한 목회 협력자 에바브로디도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는 목회자로서의 동역이 아닌 평신도로서의 충성스러운 목회 협력자였습니다.

에바브로디도는 빌립보 출신이었습니다. 그는 빌립보 교회 교인들이 바울이 로
마 감옥에 갇히게 된 것을 걱정하여 준비한 연보를 친히 바울에게 전해 준 사람
이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냥 연보만 전한 것이 아닙니다.
로마 감옥에서 죄인으로 수감되어 있는 바울을 돕는다는 것은 바울의 종이 되
어야 바울 곁에 가까이 할 수 있었던 것을 생각해 보면 에바브로디도는 친히 바
울의 종이 되기를 기뻐함으로 바울의 목회 사역을 도왔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에바브로디도를 바울은 25절에서 다섯 가지 칭호를 사용하였습니다.
“그러나 에바브로디도를 너희에게 보내는 것이 필요한 줄로 생각하노니 그가
나의 형제요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된 자요 너희 사자로 나의 쓸 것을 돕는 자
라.”

첫째는 “나의 형제”라 했습니다.
이는 바울과 함께 생활하면서 바울의 모든 것, 즉 감옥생활과 신앙을 함께 공
유하고 생활한 것을 뜻합니다.

둘째는 “함께 수고하는 자”라 했습니다.
이 말은 동역자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셋째는 “함께 군사된 자”라 했습니다.
복음을 위해 바울과 같이 대적자들과 싸운 일꾼을 뜻합니다.

넷째는 “너희 사자”라 했습니다.
바울과 함께 사도로서의 사역을 감당하는 보냄을 받은 자로서의 권위를 뜻하
는 말입니다.

다섯째는 “나의 쓸 것을 돕는 자”라 했습니다.
이 말은 빌립보 교회 교인들이 바울을 돕도록 보낸 자로서 봉사자라는 뜻입니
다.

이만큼의 목회 협력자가 어디 있을까?
거기다가 자기가 바울을 시중들다가 로마에서 병이 들었는데 빌립보 교회 교인
들이 자기가 병든 것을 알고 걱정하는 것을 알게 된 에바브로디도는 오히려 빌립
보 교회 교인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걱정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착한 마음을 하나님이 아시고 그의 병을 고쳐 주셨는데 그것을 바울이 어떻
게 표현했습니까?
27절 말씀입니다.
“저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나 하나님이 저를 긍휼히 여기시고 저뿐 아니라 또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내 근심 위에 근심을 면하게 하셨느니라.”
즉 에바브로디도가 병들었을 때 하나님이 치료해 주셔서 건강하게 된 것은 하
나님이 바울을 긍휼히 여기셔서 그렇게 에바브로디도를 회복케 하셨다는 것입니
다.

그러면서 빌립보 교회로 에바브로디도를 보내면서 빌립보 교회 교인들에게 당
부하는 바울의 간절한 마음, 곧 에바브로디도를 얼마나 생각하는가 하는 바울의
마음이 30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저가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아보지 아니한
것은 나를 섬기는 너희의 일에 부족함을 채우려 함이니라.”
여기 중요한 내용을 우리는 주목하게 됩니다.
“저가 주의 일을 위하여”입니다. 에바브로디도가 바울의 목회를 협력한 것은
곧 주님을 위한 주님의 일이라는 것입니다. 죽기까지 오직 주님이었습니다.
어느 교회도 마찬가지이지만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변함없는 신
실한 목회 협력자로 살아가지만 자기를 위해 일하는 사람은 언제나 목회자를 배
반하고 목회사역을 방해하게 됩니다.
그런데 에바브로디도는 한결같은 마음이었습니다. 곧 주님을 위한 온전한 헌신
이었습니다. 그것은 자연스럽게 목회자에게로 연결되는 것입니다.
이런 목회 협력자가 있을까?
자기를 온전히 헌신하면서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은 돌아보지 않고 오직
바울을 위해 섬김의 생활을 중단하지 않았던 에바브로디도를 바울이 어찌 잊을
수 있었겠습니까? 그것은 그때도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목회자의 입장에서 교인들에게 에바브로디도 같은 충성스
러운 목회 협력자를 요구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에바브로디도가 목숨까지 아끼지 않고 바울을 위하여 헌신할 수 있을 정도로
교인들의 입장에서 볼 때 목사가 신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상호동감하는 관계입니다. 어느 한쪽에서만 요구하는 것은 아름다움이
아닙니다. 진정한 삶의 아름다움이란 교감입니다. 그것은 육신적으로도 정신적으
로도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말씀을 정리하면서 눈을 감고 깊은 묵상에 잠겼었습니다. 나는 우리 교회
성도들에게 신뢰할 만한 목사인가? 정말 우리 교회 성도들이 진실된 목사이기에
충성스러운 목회 협력자로 교회생활을 하는가?
돌아보니 저는 부족한 것 투성이었지만 여러분은 저의 그 부족한 것까지도 수
용하면서 오늘 우리 교회가 이렇게 행복하고 아름다운 교회가 되도록 충성스러
운 목회 협력자들이 되어 주셨습니다.
파노라마 같이 포항중앙교회 부임 10년의 세월이 지나갔습니다. 여러분의 사랑
을 생각했습니다. 이 짧은 시간에 그 많은 여러분의 사랑을 어찌 다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부족한 종에게 디모데나 에바브로디도 같은 신실한 목회 협력자들을 함께 있
게 하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뿐입니다.
목회자가 생각하는 협력자란 돈이나 명에나 권력이나 세상 그 무엇으로 협력하
는 것보다 그 어떤 경우에서도 믿을 만한 사람을 최고의 목회 협력자로 생각하
는 것입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여러분 사랑합니다.
신실하고 감동있는 좋은 목회자가 되어가겠습니다.
여러분도 신실한 목회 협력자로 함께 동역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