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인 충성/딤후1:13-18절
요즘 신문이나 뉴스시간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중에 하나가 \'협상\'이라는 단어입니다. 얼마전 미국 뉴욕에서 한반도의 평화정착을 위한 4자회담 예비회담이 있었습니다. 미국,중국,북한, 그리고 우리 한국의 외교실무진들이 4자회담의 본회담에 앞서서 서로의 입장을 조율하는 협상이 있었습니다. 비록 서로의 입장차이가 너무 커서 협상에 진척은 없었지만 아뭏튼 본회담의 성사를 위해서 계속 협상중에 있습니다.
또 정치권에서는 정치개혁입법을 둘러싸고 여.야의 원내총무들이 모여서 협상을 벌이고 있습니다. 여.야 국회의원들이 동수로 이 입법에 참여한다는데 일단 합의는 이루어졌지만 아직도 서로 협상을 해야할 문제들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며칠전 칼(KAL)기 추락사건으로 인해 우리정부는 미국과 또 협상을 진행중에 있습니다. 항공사고는 사고가 발생한 그 나라에서 모든 문제를 주도적으로 처리한다는 국제 항공협약에 따라 사고의 원인을 규명하고, 환자를 수송하고, 또 시신을 운구하는 일에 대해 미국이 주도적으로 그 일을 하고 있고 우리는 유가족들의 입장을 최대한 보살피기 위해 미국과 협상을 벌이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제각기 생각하는 것이 다르고, 추구하는 목적이 다르기 때문에 때로는 타협이 필요하기도 하고, 때로는 머리를 맞대고 협상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한발짝 물러설 줄도 알고, 또 내가 가지고 있는 것 중에 하나를 상대방에게 주고, 상대방의 것을 하나 얻는 그런 협상이 필요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신앙에 있어서, 특별히 복음을 지키고 진리를 수호하는 일에 있어서는 협상이나 타협은 있을 수 없습니다. 교회역사를 살펴보면 교회가 진리를 수호하는 일을 게을리 했거나 세상의 것과 타협을 했을 때, 잠시동안은 그 타협 때문에 편안했을는지는 몰라도 궁극적으로는 더 큰 어려움과 시련가운데 놓이게 되었던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바울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진리를 수호하거나 복음을 전파하는 사역에 있어서 그 어느누구와도, 그 어떤 것과도 타협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복음위에 견고히 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그렇게 견고하게 섰던 것처럼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도 그렇게 진리위에 견고하게 서 주기를 원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오늘 본문을 통해서 디모데가 두가지 일에 충성을 다해주기를 당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디모데에게 충성을 다해줄 것을 당부하고 있는 그 두가지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에 충성을 하라는 것입니다. 13-14절을 다시 읽겠습니다.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써 내게 들은 바 바른 말을 본받아 지키고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
인류역사가 시작된 이래 하나님의 말씀은 끊임없이 사단으로부터 도전을 받아왔습니다. 창세기 2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만드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하셨습니다.
그런데 뱀이 하와에게 찾아와서 물었습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말라 하시더냐?\"하고 물었습니다. 이것은 사단이 인류에게 던진 최초의 말이었습니다. 사단은 하나님의 말씀을 비슷하게 변조해서 다시 하와에게 되물은 것입니다.
분명 하나님은 \"동산 각종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말라\"하셨는데 사단은 \"임의로 먹되\"라는 말은 살짝 빼버리고 \'모든 나무\'라는 말을 넣어서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말라 하시더냐?\"라고 물었던 것입니다.
주의깊게 생각해보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나 사단이 한 말은 별로 차이가 없는 듯 싶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이 하신 말씀과 같은 말이 아니었습니다. 비슷하게 살짝 바꾸어서 말했습니다. 그리고 사단은 계속해서 말을 걸어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셨는데 사단은 말하기를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고 했습니다.
사단은 왜 하나님께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지 말라하셨는지 그럴듯한 이유를 가지고서 아담과 하와에게 다가왔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말을 거기에 슬쩍 집어넣었습니다. 그랬더니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였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살짝 변질시켜서 사단이 자신의 말을 하자, 하와는 그 말에 현혹이 되어 결국 사단의 의도대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도전이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하나님의 말씀은 끊임없이 도전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때로는 그 말씀을 비슷하게 변질시켜 많은 사람들에게 왜곡되어 가르쳐지고 있었습니다. 바울당시 하나님의 말씀과 비슷한 것같지만 실제로 가장 복음을 변질시켰던 것 중에 하나는 \'영지주의\'라는 이단이었습니다. 바울이 골로새서를 쓰게 된 이유도 이 영지주의에 대해서 주의할 것을 당부하는 의미로 골로새서를 썼습니다.
\'영지주의\'는 이원론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는 자들을 뜻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영혼은 소중하고 육신은 악하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 생각 때문에 그들은 자신의 육신을 학대하고 돌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금욕주의\'를 표방했습니다. 육신이 악하다고 생각을 했으니, 육신을 위해 행하는 그 모든 일들도 다 악하거나 불결하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얼핏들으면 이들의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우리의 영혼이 얼마나 소중합니까? 우리가 예수를 믿는 것도 우리의 영혼과 관련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들의 생각은 성경적인 생각이 아닙니다. 정말 이들의 주장대로 영혼이 귀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잘못 알고 있는 것은 우리의 육체에 관한 부분입니다. 우리의 육체가 과연 악합니까? 그래서 돌볼필요도 없고 금욕생활을 해야 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의 육체도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이기에 우리가 최선을 다해 돌보아야 합니다. 우리 육체 자체가 악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생각과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악한 것이지 육체 자체는 결코 악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영지주의자들은 육체 그 자체를 악하게 여겨서 오직 영적인 일에만 관심을 갖고 육체의 일은 돌보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렇게 복음이 점점 왜곡되어져 가고 있는 현실앞에서 바울은 지금까지 자신이 신실하게 지켜왔던 복음이 조금도 왜곡되거나 변하지 않게 지켜지도록 이를 위해 디모데에게 충성할 것을 당부하고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날 우리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수호해야 할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그런데 저와 여러분은 그 책임을 충실히 감당하고 있습니까? 세례요한이 광야에서 외친말씀을 기억하고 계십니까? 그것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였습니다. 우리주님께서 복음을 전파하시면서 하셨던 말씀을 기억하십니까? \"때가 찼고 하나님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였습니다.
복음과 관련되어져 세례요한이나 우리 주님이 하신 말씀의 공통적인 요소는 \'회개\'였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 복음이 우리들에 의해서 변질되고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고 계십니까? 오늘날 교회마다 선포되어지는 말씀은 우리의 삶에 주어질 축복과 영광만 얘기합니다. 성도들이 듣기 부담스러워하는 말은 아예 꺼내지 않습니다. 삶에 희망을, 삶에 기적을 주는 어떤말씀만이 강단에서 선포되어지고 있고 우리들도 그 말을 듣고 싶어합니다. 일찌감치 \'회개\'와 \'죄\'에 대한 말씀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제가 설교시간에 여러분들에게 책을 자주 소개를 하는데 오늘 이시간에도 여러분에게 오늘말씀과 관련되어진 한권의 책을 소개하겠습니다. 도서출판 엠마오에서 출판되었고, 저자는 \'월터 챈트리\'라는 사람으로 \'정득실\'이라는 분에 의해 번역이 된 \'사라진 복음\'이라는 책입니다. 우리 교회 도서관에 이 책이 있는데 대출자명단을 보니까 두분이 이 책을 읽으셨습니다.
이 책에서는 마가복음 10장 17절이하에 예수님을 찾아가서 어떻게 해야 영생을 얻을 것인지 질문하였던 한 청년과 예수님께서 대화를 나누었던 내용을 다루면서 오늘날 전파되어지는 복음에 \'하나님\'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참 그렇습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선포되어지는 말씀에 \'회개\'가 사라지고 \'죄\'가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심지어 \'하나님\'마저 사라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들어가실 그 자리에 축복이 들어가 있고, 세속적인 형통함이 선포되어지고 있습니다. 오직 우리의 관심사에 초점이 맞추어진 말씀만 표현되어질 뿐입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원래 주님이 선포하셨던 그 복음의 본질이 변질되고 있습니다.
본문 13절과 14절에 나오는 \'지키다\'라는 말의 뜻은 \'가지고 있는 것을 잃어버리거나 훼손되지 않도록 간수하고 간직하다\'는 뜻입니다. 며칠전 신라 진덕여왕의 유물이 도굴당한 내용이 보도되었습니다. 1500여년동안 고이 간직되어 왔던 유물이 도난당하고, 묘는 심하게 훼손되고 말았습니다. 의식없는 몇몇 도굴꾼에 의해서 우리의 찬란한 문화유산을 잃어버리게 되고, 훼손당하게 되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의식없는 복음의 도굴꾼들에 의해 복음은 훼손되고 그 본질이 상실되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복음은 주님이 주신 그대로 전해지고 지켜져야 합니다. 우리주님께서 바울에게 증거하고, 바울이 디모데에게 지킬 것을 당부한 그때 그 복음이,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조금도 변질됨이 없이 지켜지고 수호되어져야 합니다.
두 번째는 복음을 전파하는 사역자에게 충성을 다할 것을 당부하고 있습니다.(15-18절)
본문에는 두부류의 사람이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즉 바울 곁을 떠났던 \'부겔로와 허모게네\'라는 사람과 바울을 찾아가서 자주 유쾌하게 했던 \'오네시보로\'입니다.
여기에 나오는 부겔로와 허모게네가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바울을 반대하였고, 바울이 로마의 옥중에 갇혔을 때 바울을 변호하기 위해 로마에 오지 않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바울에게 있어서 이 시기가 가장 힘들고 어려웠던 시기였을 것입니다. 자신의 주위에 있었던 사람들이 하나 둘 떠나가고 자신은 어둡고 침침한 감옥에 홀로 갇혀 있으니 얼마나 외롭고 고독했겠습니까? 사실 바울이 감옥에 갇힌 것은 디모데후서를 쓰고 있는 지금이 처음은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거니와 바울은 여러번 감옥에 갇혔습니다. 빌립보서를 쓸 당시에도 바울은 감옥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빌립보서의 분위기와 디모데후서의 분위기는 너무도 다릅니다. 빌립보서의 주제는 \'기쁨\'입니다. 그래서 \'기뻐하라\'는 말을 수없이 반복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디모데후서를 읽노라면 분위기가 매우 무겁고 장엄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얼마있지 않으면 죽게될 자신의 마지막을 직감하면서 바울은 이 편지를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죽음앞에 놓여있는 바울, 그리고 자신의 주위에 있었던 사람들이 떠나가버리고 혼자 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인생을 살아오시면서 어느 순간이 제일 힘들었다고 생각이 되십니까? 저는 여러분에 비해 얼마되지 않은 인생을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저도 저 나름대로 인생의 여러 가지 힘든일을 많이 겪었습니다.
제가 중학교 다니던 시절에 어머님이 일찍 돌아가신것도 제게는 견딜 수 없는 큰 고통이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성년이 되어서도 참 힘들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총신에 입학하기 위해 한해동안 공부했을 때입니다.
저는 저의 집에서 가까운 경북대학교 도서관을 이용해서 시험준비를 했습니다. 그때 저는 큰형님과 함께 생활을 했습니다. 그 당시 저는 총신 입학시험에 무슨 과목을 치는지 그 정도만 알고 혼자서 공부를 했습니다. 달리 총신을 준비하는 사람을 만난적도 없고, 또 어떻게 준비해야 되는지도 몰랐습니다. 그래서 원서를 제출하는 날까지 혼자서 공부를 했습니다. 대화할 상대가 없는 도서관에서 혼자 하루 온종일 공부한다는 것이 쉬운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시험을 몇 달앞두고 본격적으로 공부를 할무렵 저는 아침일찍 나와서 저녁 늦게 집에 들어갔습니다. 제가 기억하기로는 11시 넘어서 집에 들어갔는데 집에 도착하면 모두 잠자리에 든 시간이었기 때문에 몰래 문을 열고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제 방에 들어와서 형광등 불을 켜면 걷잡을 수 없는 고독감이 밀려오곤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인간을 창조하실 때 인간들이 홀로 사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독처하는 것을 좋게 여기지 아니하셔서\"아담에게 하와를 보내주셨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홀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누군가를 만나야 하고, 그 사람과 대화를 해야 하고, 또 그 사람들 속에서 살아가게 되어있습니다.
로빈슨크루소를 읽어보셨는지요? 읽지 않았다면 로빈슨크루소에 대해 들어 보신분들도 있으실 것입니다. 배가 파산되어 무인도에 도착을 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그를 괴롭혔던 것은 배가 파산되어 무인도에 오게 되었다는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더 괴로왔던 것은 무인도에서 고독과 싸우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맨 처음했던 일 중에 하나가 앵무새를 기르는 일이었습니다. 누군가와 얘기하고 싶고 누군가가 곁에 있지 않으면 견딜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지금 바울은 죽음이라는 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자신의 주위에 있었던 사람들이 모두 떠나갔습니다. 그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겠습니까? 바울도 우리와 다를바없는 사람입니다. 주위의 사람들이 떠나가면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외로움을 느끼는 순간에도 바울에게 위로가 되는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오네시보로\'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주 감옥에 갇혀있는 바울을 찾아가서 바울의 마음을 유쾌하게 했고, 바울이 사슬에 매인 것도 전혀 부끄러워하지도 않았습니다.
최후의 순간까지 자신을 떠나지 않고 부지런히 자신을 찾아와 주었던 오네시보로를 보면서 바울은 마음의 안정을 되찾았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위대한 대 사도 바울이 인간적으로 외로움을 느꼈다면 오늘 이 시대의 목회자들은 어떠하겠습니까? 똑같이 외로움을 느끼고, 고독을 느낍니다. 그럴 때 여러분의 따뜻한 위로의 한마디가 큰 힘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곁에서 격려해주는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또 다시 힘을 낼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목회자를 자주 유쾌케 하고 계십니까? 오네시보로가 바울을 자주 찾아간다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바울이 처음 감옥에 갇혔을 때와는 상황이 매우 다르기 때문입니다. 처음 감금되었을 때는 자기 자신의 셋집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느정도 사람의 왕래가 허용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바울이 갇혀있는 감옥은 그런 곳이 아닙니다.
사면이 벽으로 둘러쌓여있고, 바울의 몸은 착고에 채여 있고, 한줄기 빛이 들어올 수 있도록 작은 창이 하나 나있는 곳이었습니다. 더구나 바울은 사형수의 몸이기에 로마의 병사들이 삼엄하게 그 감옥을 지키고 있었을 것입니다. 여러모로 바울을 자주 찾아가서 만난다는 것이 쉽지 않은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네시보로는 바울을 자주 찾아가서 그를 유쾌케 했다고 말합니다.
\'군중 속의 고독\'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가리켜서 하는 말입니다. 현대인들은 많은사람들 속에서 살아갑니다. 우리가 하루일과 중에 만나는 사람을 따져보면 꽤 많습니다. 그런데 현대인들은 고독을 느낍니다. 그러므로 외로움 혹은 고독은 많은 사람들과 함께 있다고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진정으로 자신을 이해해주고, 어려움이 닥쳤을 때 위로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을 때 고독은 사라집니다.
\'군중 속의 고독\'이라는 이 말이 어쩌면 목회자를 두고 하는 말일는지도 모릅니다. 목회자들은 많은 교인들 속에 둘러쌓여 있습니다. 그런데 뒤돌아서서 보면 언제나 \'홀로서기\'를 하고 있는 듯한 생각이 문뜩 문뜩 스쳐지나가곤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시 묻겠습니다. 여러분은 목회자를 자주 유쾌하게 하십니까? 오늘 바울은 이 두가지 일에 충성을 다할 것을 디모데에게 당부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둘째는 복음의 사역자에 대해서입니다. 이 말씀을 기억하시고 충성된 삶이 있으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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