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성스러운 동역자/딤후1:15-18
바울은 자신의 죽음(순교)이 임박한 사실을 깨닫고 디모데의 소심한 성격과 연약한 육체를 염려하면서 디모데에게 맡겨진 복음전도자의 사명을 다하도록 본문은 권면하고 있습니다. 디모데에게 한 사람을 소개하고 디모데가 본 받아야 할 것을 가르쳐 보여주고 있습니다. 바울은 전도자로서, 선교사로서 지칠 줄 모르고 복음만을 위하여 달음질쳤습니다. 바울의 목회 중에는 눈이라도 빼어줄 만한 신실한 동역 자들이 있었고, 바울을 돕기 위해 물질과 어떤 희생도 아끼지 않았던 성도들과 교회들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눅눅하고 음침한 소망 없는 감옥에서 이제 순교의 제물이 되어 일생을 마감할 것을 내다보면서 마음에서 지울 수 없는 한 사람을 디모데에 드러내 보이고 있습니다. 여러 사람들이 배반하고, 복음을 등지고 떠나는 아픔도 경험한 바울입니다. 끝까지 복음과 바울을 배반하지 않고 복음을 위해 고난을 받으며 노(老) 사도를 상쾌하게 했던 신앙의 동지가 있었습니다. 그가 바로 \'오네시보로\'입니다. 성경은 그에 대해서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기록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신앙과 아름다운 인격을 우리는 짧은 본문 말씀 속에서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오네시보로는 그의 이름처럼 자기 몫을 다한 신실한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오네시보라는 이름의 뜻은 \'유익을 가져오는 자\'입니다. 이름처럼 전도자 사도 바울에게 유익을 자져다 주는 충성스러운 동역 자였습니다. 그의 아름다운 성격과 고상한 행위는 우리가 추구해야 할 신앙의 모습입니다. 오늘 우리는 \"충성스러운 동역자\"에 대하여 말씀으로 증거 받으시고 2003년을 준비하는 우리의 목양의 관계가 숭고한 신앙으로 결속되고 오네시보로가 바울을 향해 참 신앙을 보였던 것처럼 우리가 주님께 오네시보로 같은 신앙을 보여드림으로 주님을 영화롭게 하고 기쁘시게 해드리며, 마지막 날에 상급을 받는 복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주의 종을 유쾌하게 한 자입니다. 본문 16절에 \"…저가 나를 자주 유쾌케 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유쾌하게\'라는 말은 \'새로운 바람을 받는다.\' 새 정신이 든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곧 오네시보로가 바울을 찾아와 위로하고 즐겁게 하였다는 뜻입니다. 바울의 기분을 좋게 바꾸어 놓았다는 말입니다. 그는 바울을 상쾌하게 해 주었습니다. 그는 잠언 25장 13절의 말씀처럼 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충성된 사자는 그를 보낸 이에게 마치 추수하는 날에 얼음냉수 같아서 능히 그 주인의 마음을 시원케 하느니라.\" 물론 그가 바울을 어떻게 상쾌하게 해 주었는지는 성경에 언급되어 있지 않아 알 수 없지만 아마 성도들의 좋은 소식과 여러 교회들의 소식 그리고 먹을 것과 입을 것 등을 제공함으로써 바울의 마음이 상쾌하게 되었으리라고 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이 신앙생활을 하시면서 목회자에게 근심거리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오히려 여러분의 헌신과 충성스러운 모습 때문에 제 자신이 상쾌해지는 기쁨이 있기를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여러분의 아름다운 신앙의 모습 때문에 우리 주님의 마음이 너무 좋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는 일이 많아지기를 축원합니다.
2. 고난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한 자입니다. 본문 16절에 \"...나의 사슬에 매인 것을 부끄러워 아니하여\"라고 기록하였습니다. 여기 \'사슬\'이란 극악한 죄수들을 억압하기 위해 결박하는 도구입니다. 바울은 죄수 아닌 죄수로서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 때문에 사슬로 결박을 당하였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복음 전파로 말미암아 당하는 모든 수치를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롬1:16). 디모데후서 1장 12절에서도 \"이를 인하여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나의 의뢰한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나의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저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하나님을 신뢰하는 바울의 당당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도 이렇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네가 우리 주의 증거와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된 나를 부끄러워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좇아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딤후1:8). 복음으로 말미암는 수치를 바울이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처럼 오네시보로도 바울이 지금 당하고 있는 불명예스러울 것 같은 고난의 모습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오히려 감사와 영광으로 받았습니다. 세인들은 바울을 정치범으로, 사상범으로, 신흥종교의 사이비한 사람으로 오인하고 처단하려고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오네시보로는 바울이 복음 때문에 사슬에 매인 것이 부끄럽지 않았습니다. 바울의 당당한 그러한 모습이 오히려 그에게는 영광스럽게 보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 때문에, 복음 때문에 고난을 당해보셨습니까? 신앙을 지키기 위해 조롱과 핍박과 억울함을 당해보셨습니까? 예수 때문에 받는 수치는 결코 부끄러움이 아닙니다. 복음 때문에 받는 고난은 우리에게 부끄러움이 아니라 그것이 바로 신자의 영광임을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자기와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으로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눅9:26).
3. 고난 중에 있는 주의 종을 부지런히 찾아와 위로한 사람입니다. \"로마에 있을 때에 나를 부지런히 찾아 만났느니라.\"(17)고 합니다. 바울이 로마의 감옥에 재차 투옥되자 오네시보로는 모든 위험을 무릅쓰고 로마에까지 찾아와서 바울을 섬겼습니다. 부겔로와 허모게네가 포함된 아시아(소아시아의 서쪽 끝에 위치한 로마 제국의 한 도(道)로 디모데가 거주한 에베소가 수도임)에 있는 모든 사람(문자적인 의미보다 바울의 서운함을 강조하는 표현)이 바울을 버린(15절) 슬픔도 있지만 오네시보로로 인하여 바울은 감사가 넘쳤습니다. 오네시보로는 부지런히 바울을 찾았고 섬겼습니다. 오네시보로는 어떠한 수고도 아끼지 않고 전도자 바울을 찾아왔습니다. 당시 세계의 수도인 로마의 감옥에 그것도 정치범으로, 사상범으로 신흥종교의 사이비한으로 오인을 받고 수감된 바울을 찾아온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도 용이한 일도 아니었습니다. 오네시보로의 옥중 방문은 노구를 이끌고 고난 중에 있는 사도를 유쾌하게 할 수 있었습니다. 오네시보로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마25:35-36)라는 말씀을 실천한 신앙인 이었습니다. 기쁜 일이나, 슬픈 일이나 여러 가지 일로 목회자를 찾아 상담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성도와 목회자만이 가지는 특권입니다. 오네시보로는 이 특권을 누리며 살았습니다.
4. 주의 종을 섬기던 자입니다. \"…또 저가 에베소에서 얼마큼 나를 섬긴 것을 네가 잘 아느니라.\"(18)고 하였습니다. 오네시보로는 바울이 에베소에서 전도할 때부터 바울과 복음을 위해 봉사하며 섬겼던 인물입니다. 에베소에서의 그의 섬김은 디모데도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인정할만한 섬김이고 봉사였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세상 유혹에 넘어가 사도를 떠나도 그는 전도자를 위하여 값진 희생과 봉사를 아끼지 아니했습니다. 복음을 위해서라면,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주의 종을 섬기겠다는 그의 충성은 아름다운 보석처럼 빛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의 봉사는 일시적이고 감정적인 유치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에베소에 있을 때나 지금 로마의 감옥에 있을 때나 시간과 장소를 초월하여 변함없이 전도자를 섬겼습니다. 오네시보로의 이러한 모습이 사도로 하여금 위로가 되었고 복음 사역에 큰 힘이 된 것입니다. 이렇게 변함없이 섬기는 오네시보로를 향해 바울은 주님의 재림의 날에 축복으로 보상해 주실 것을 기도하였습니다(16,18) 우리 모두도 주의 날에 공력에 따라 상을 받을 것입니다. 예수님도 이 사실을 마태복음을 통해 말씀하고 계십니다.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마10:41-42).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늘 우리는 충성스러운 동역자 오네시보로에 대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습니다. 우리 의왕중앙의 성도 여러분은 모두가 다 오늘의 오네시보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 교회에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일군은 바로 오네시보로 같은 신실한 일군입니다. 자기에게 조금이라도 손해가 되면 쉽게 등지던 소아시아에 살았던 부겔로와 허모게네 같은 사람이 아닙니다. 어떠한 형편과 처지에서도 변절되지 않는 복음의 동역 자들이 필요합니다. 교인의 많고 적음보다 오늘의 오네시보로가 우리 교회에 얼마나 있느냐가 문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을 위하여 고난을 함께 할 오네시보로가 우리 교회에 있을 때 저의 마음은 유쾌하게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십자가의 수치를 모르는 오늘의 오네시보로가 우리 교회에 있다면 목회자의 마음은 유쾌하게 될 것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주님을 유쾌하게 하며, 주님과 복음을 부끄러워 아니하고, 주님을 부지런히 찾아와 섬기는 오네시보로가 바로 우리라면 우리 교회와 가정과 심령은 복받은 현장일 것입니다. 우리 모두 주님이 요구하시고, 이 시대가 요구하고, 우리 교회가 요구하는 오늘의 오네시보로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비록 죽음을 기다리는 바울이었지만 오네시보로 같은 충성스러운 동역자가 있기에 외로움을 떨쳐버릴 수가 잇었고, 눅눅하고 음산한 지하 감옥에서도 마음이 상쾌할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 모두 오늘의 오네시보로 같은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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