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충성

 아들의 충성/ 히3:1-6

아들의 충성/히3:1-6



종려주일)



종려주일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부활절 전 주일을 말합니다. 이 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에 입성을 하십니다. 많은 유대의 군중들은 “호산나 다윗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하고 대대적으로 환영을 하지만 예수님은 사실상 십자가 고난의 현장으로 더 가까이 나아가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행진, 예루살렘 성으로의 입성은 사실상 죽음의 행진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십자가의 죽음 이후, 부활과 승천과 승리의 새 약속까지를 모두 보아야 합니다. 이것이 기독교와 그 복음의 진수입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이 예루살렘 입성과 행진을 죽으시기까지 끝까지 충성하셨던 그 충성의 관점에서 주목해 보려고 합니다. 본문에 보면 (히 3:) 『[1]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우리가 예수님에 대하여 깊이 생각할 것이 많지만 무엇을 어떤 것을 생각해 보라는 말씀입니까? 다음 구절을 보면 그것이 무엇인지 잘 알 수 있습니다. [2] 저가 자기를 세우신 이에게 충성하시기를 모세가 하나님의 온 집에서 한 것과 같으니..., 우리가 예수님에 대하여 깊이 생각할 것은 아들의 충성입니다. 저가 자기를 세우신 이에게 충성하시기를...,

여기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차별화해서 증거하고 있습니다. 모세의 충성은 사환의 충성이고 예수님의 충성은 아들의 충성이라고 말입니다. [4] 집마다 지은 이가 있으니 만물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라. [5] 또한 모세는 장래의 말할 것을 증거 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온 집에서 사환으로 충성하였고, [6] 그리스도는 그의 집 맡은 아들로 충성하였으니 우리가 소망의 담대함과 자랑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의 집이라. 오늘 우리는 예수님, 즉 아들의 충성에 대하여서만 주목해 보겠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계 2:10)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자신은 충성하지 않으면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실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사람은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그렇게 하실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죽으시기까지 하나님께 복종하고 충성하셨습니다.

1.원래 충성의 개념은 계속하는 것입니다.

충성은 도중에 마치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어떤 계기를 통해 중단하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Keep going! Continue in them!입니다. 그 일을 계속하는 것입니다. 먼저 교회에서 충성하셨던 그 일을 여기에서도 계속하는 것입니다. (계 2:10)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죽도록 이라는 말씀과 생명의 면류관은 우리가 저 세상, 즉 하나님 나라에 가기까지 중단 없이 계속되는 것을 뜻합니다. 예수님은 죽으시기까지 충성하셨습니다. 종려주일은 승리의 행진인 동시에 죽음의 행진입니다. 이 충성이 없으면 우리는 구원받을 수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어떤 이해관계 때문에 십자가를 피하려고 합니다. 고난을 싫어합니다. 힘든 것을 싫어합니다. 그것은 충성이 아닙니다. 아무리 많은 일을, 큰일을 했어도 도중에 그만두면 그것은 충성이 아닙니다. 충성은 끝까지 하는 것입니다. 끝까지 가는 것입니다. 계속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끝까지 하지 않은 어떤 일을 하고 그것을 충성이라고 함부로 표현하거나 말하지 마십시오.

충성은 주인이 바뀌어도 계속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다니엘을 통해 배울 수 있습니다. 그는 바벨론 제국에도 충성을 하였고 페르샤 제국에도 충성을 하였습니다. 그 결과는 고레스 왕과 같이 다니엘의 하나님에 대한 친밀감이었습니다. 그 후 고레스는 이스라엘을 해방하는 주역이 됩니다.

충성은 고난이 있어도, 환란과 핍박이 있어도 계속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고난과 환란과 핍박과 고통의 상징입니다. 예수님은 이 십자가를 피하지 않으셨습니다. 이것이 충성입니다. 충성은 힘들어도 끝까지, 고통스러워도 끝까지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생명의 면류관입니다. 이 면류관은, 이 축복은 이 땅에서도 있음을 잊지 마십시오. 할렐루야!

2.그러면 이 충성의 원래 뜻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충성을 하되 이 충성의 뜻이 무엇인가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충성의 뜻도 모르고 했다가는 낭패를 당할 수 있습니다. 우스운 꼴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충성이 무엇인지를 바로 알고 해야 합니다.

☛원래 충성이라는 단어는 피스티스인데 이 피스티스의 어원은 페이소입니다. 그리고 이 페이소라는 단어의 뜻은 믿다, 혹은 설득하다입니다. 그러므로 충성은 믿는 것이 그 뿌리에 있습니다. 그러면 믿음은 어디에서 옵니까? 들음에서 옵니다. (롬 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믿음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음에서 옵니다. 그래서 믿음과 충성은 그 의미자체가 같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내게 말씀하셨기 때문에 하는 것이 곧 충성입니다.

☛그리고 한문으로 충성을 보면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忠誠은 마음의 중심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것을 행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사품 충성이 있습니다. 이것은 말씀이 없기 때문에 이 忠成은 유사품입니다. 짝퉁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뜻대로 하는 것은 충성이 아닙니다. 충성은 진품이라야 합니다.

(마 7:22-23)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여기서 불법이 무엇입니까? 스스로 행하는 것입니다. 스스로 행하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충성은 시킨 것에 대하여 최선을 다 하는 것을 뜻합니다.

☛어느 교회의 교육 전도사가 주방에서 국수를 삶기 시작했습니다. 왜냐하면 목사님의 교육이 있고난 다음에 국수물을 늦게 올려놓아서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항상 기다리거나 그냥 가는 일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목사님은 화를 내시고..., 그래서 자기가 먼저 내려와서 몇 번 해 본 것이 그만 국수 당번이 되어버렸습니다. 처음에는 권사님이나 집사님들이 이거 미안해서 어떻게 하나? 하더니 다음에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당연히 전도사가 하는 것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전도사님은 실망했습니다. 나중에는 더러워서 오기로 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한 것이 2년이었다고 합니다. 이것은 忠成입니다. 짝퉁 충성입니다. 수고는 했지만 인정될 수 없었습니다.

어느 날 담임목사님이 그 전도사를 불렀습니다. 수고한 것은 인정하지만 그 일을 내가 시킨 것도 아니고 또 그 일을 하라고 신학교 나오고 전도사가 된 것은 아니지 않느냐? 본인의 마음은 이해를 하지만 다음 오는 전도사들을 위해서는 본이 되지 않으니 당장 그 일을 그만두라! 주방 출입금지!

한 번 따라서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진품충성, 명품충성, 짝퉁충성, 사이비충성! 그런데

3.하나님은 우리의 충성을 시험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 이후 첫 시험을 출 애급 당시에 하셨습니다. 사십일 길 중에 삼일 길 때였습니다. 마실 물이 다 떨어 졌습니다. 목은 마른데 보이는 물은 써서 모두 먹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광야 길이 끝이 난 후에 테스트하지 않으셨습니다. 이제 막 광야의 생활이 시작되는 3일째였습니다. [출15:22-24] 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매 그들이 나와서 수르 광야로 들어가서 거기서 사흘 길을 행하였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 마라에 이르렀더니 그 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라. 백성이 모세를 대하여 원망하여 가로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그리고 하나님께서 다음에 어떻게 하셨습니까? [25]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지시하시니 그가 물에 던지매 물이 달아졌더라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새..., 여행할 때는 물보다 가이드 말을 잘 들어야 합니다. 그들에게는 나머지 40 여일 길을 잘 갈 수 있는 가이드가 필요했습니다. 나무가 변화를 일으킨 것보다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테스트는 살리기 위한 것입니다. 이 백성은 하나님이 가르쳐 주시지 않으면 살 길이 없었습니다. 그들이 살 길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그들은 광야에서 목이 마르는 시험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훈련이 필요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은 모세를 통해 전달되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이 세우신 가이드였습니다. 시험은 훈련입니다. 훈련은 불평하지 말고 잘 받아야 합니다.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27] 그들이 엘림에 이르니 거기 물 샘 열둘과 종려 칠십 주가 있는지라 거기서 그들이 그 물 곁에 장막을 치니라』엘림은 물 샘이 열 둘, 종려나무 70주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마라를 통해 그들을 시험하셨지만 또한 그 다음으로 엘림을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고생만 시키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가 시험을 당할 때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 지금의 마라에서도 충성을 다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끝으로 충성한 사람에게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진품의 충성을 하면 주인이 그 마음을 시원해 하십니다. (잠 25:13) 『충성된 사자는 그를 보낸 이에게 마치 추수하는 날에 얼음냉수 같아서 능히 그 주인의 마음을 시원케 하느니라』친밀함으로 얻는 나의 반응보다 주님의 반응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마음이 시원해지실 때 얻게 되는 우리의 유익이 어떠한 것일까요? 더 이상의 해석과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충성은 예수님처럼 죽기까지 끝까지 생명의 면류관을 받기까지 계속하는 것입니다. 충성은 믿음과 같습니다. 믿음은 듣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충성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겔 3:17)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세웠으니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눅 8:21)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 모친과 내 동생들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이 사람들이라 하시니라』

우리 모두 사이비나 짝퉁 충성이 아닌 예수님처럼 아들의 충성, 진품, 명품 충성을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충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