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감사 지수는

당신의 감사지수는/ 엡5:20/ 맥추감사주일설교/ 2004-07-04

당신의 감사지수는
엡5:20





오늘은 맥추감사주일입니다. 한해의 절반을 결산하고/ 지난 반년을 지켜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표현하는 절기입니다. 또한 평소에 우리가 얼마나 감사하고 사는 사람인가를/ 점검해 보는 절기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6개월을 얼마나 감사하며 사셨습니까?
불평보다 감사가 더 많았습니까?
불만지수보다 감사지수가 더 높았습니까?
오늘 여러분의 감사지수는 어떤가를/ 각자가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요즘 ‘…지수’라는 말을 많이 씁니다.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이 3Q입니다.
I.Q(지능지수), E.Q(감성지수), M.Q(도덕지수)입니다.

지능지수(Intelligence Quotient)
I.Q는 1905년 프랑스의 비네가 창안하여 100년 가까운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한번 본 것을 좀처럼 잊지 않는 기억력, 수와 셈에 뛰어난 수리력, 자기 의사 표시를 논리적으로 구사할 줄 아는 언어력, 사물에 대한 깊은 관찰과 탐구정신에서 오는 추리력을 일컫는 것입니다.

감성지수(Emotional Quotient)
E.Q는 IQ에 대응하는 것으로 심리학자 피터 샐로비가 91년 만들어낸 개념입니다. 이는 자기자신과 타인의 감정을 잘 읽고 이해하며, 충동적이지 않고, 실패했을 때 좌절하지 않는 인내력까지도 포함합니다. 주위 사람들과 잘 어울리면서 자신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한다는 점에서, 단순한 지능지수인 IQ와는 달리 자신의 노력에 따라 얼마든지 개발이 기능하다는 사실입니다.

도덕지수(Moral Intelligence Quotient)
M.Q는 퓰리처상을 수상한 아동 심리학의 대가 로버트 콜스교수가 정립한 개념입니다. 사회생활에 익숙하게 적응하는 데 필요한 도덕성, 타인에게 친절하게 대할 줄 아는 예절성, 가족과 친지, 이웃이나 동아리와 모나지 않게 어울릴 줄 아는 사교성을 일컫는 것입니다.

I.Q만 좋다고 성공하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이제는 E.Q와 더불어 M.Q까지 좋아야 성공할 수 있다고 합니다.


감사지수와 불만지수의 관계

그리스도인에게도 3Q가 필요합니다.
F.Q(믿음지수 Faith Quotient), H.Q(소망지수 Hope Quotient), L.Q(사랑지수 Love Quotient)입니다. 이 중에 어느 하나만 부족해도/ 성공적인 신앙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행복한 신앙생활을 위해서는/ 또 하나의 Q가 필요합니다.
바로 G.Q(감사지수 Gratitude Quotient)입니다.

G.Q는 높을수록 좋습니다. 감사지수가 낮은 사람은/ 스스로를 불행하다고 느끼게 됩니다. 감사지수가 낮은 사람은/ 상대적으로 높은 지수가 있습니다. 그건 불만지수입니다. 또한 욕심지수입니다. 감사지수와 불만지수, 감사지수와 욕심지수는 반비례합니다. 감사지수가 높아지면 불만지수와 욕심지수는 낮아집니다. 반면에 불만지수와 욕심지수가 높아지면/ 감사지수는 낮아집니다.

욕심지수가 높은 사람을 소개하겠습니다.
어느 동네에 욕심 많은 사람이 빵집을 했습니다.
이 빵집 주인이/ 아주 잘 익은 빵을 가마에서 막 꺼내는데/ 이웃집 사람이 그 빵의 고소한 냄새를 맡으면서 하는 말이/ “야! 빵 냄새 너무 좋다. 이 빵 냄새를 맡으면 기운이 나고/ 너무 너무 좋다” 고 했습니다.
빵집 주인이 그 이야기를 듣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왜 내가 여태껏 이 생각을 못했지. 저 사람 기분 좋게 한 것은 내 빵인데/ 나는 빵 만드느라 열심히 고생했는데/ 빵 냄새는 저 사람이 맡으니까/ 이제는 빵 먹는 값뿐만 아니라/ 빵 냄새 맡는 값도 받아야 되겠다. 특히 이웃집 사람이 가장 많이 맡았으니까/ 이 사람부터 받아야겠다.’ 이런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웃집 사람에게 찾아갔습니다.
‘그 동안 이웃에 살면서/ 매일 상당한 양의 빵 냄새를 맡았으니/ 냄새 값 주시오’
그랬으니 그 사람이 주겠어요? 안 주겠어요?
여러분 같으면 주겠어요? 당연히 안주지요.
빵집 주인은 망신을 당했으나 거기서 포기하지 않고/ 정식으로 법원에 빵 냄새 대금 청구 소송을 제기하였습니다. 어떤 재판 결과가 나올지 궁금해서/ 동네 사람들이 재판장에 다 몰려 왔습니다.

빵집 주인의 열띤 주장을 다 들은 재판장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일리 있다고 판결을 내렸습니다.
“이웃집 사람은 빵 냄새를 맡아서 기분이 좋았으니/ 빵 냄새 대금으로 100만원을 지금 지불하시오.”
10만원도 아니고 100만을 하라니, 이웃집 사람은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100만원을 주머니에서 꺼내 주었습니다. 빵집 주인은 100만원을 가슴에 끌어안고/ 얼굴에 함박웃음을 띠고/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즐거움으로 가득 찼습니다.

그런데 재판장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말을 이어갔습니다.
“아직 판결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제 빵집 주인은/ 그 100만원을 이웃 사람에게 되돌려주시오.”
빵집 주인은 정색을 하고/ 재판장을 올려다봤습니다. 재판장은 미소를 띠우며 말했습니다.
“이웃 사람은 빵 냄새만 맡았을 뿐/ 빵을 가져오지는 않았습니다. 빵집 주인도 돈을 만지면서 기쁨을 누렸으면/ 이제 다시 그 돈을 돌려주어야 하지 않겠소?”
순간 재판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를 쳤습니다. 터무니없는 욕심을 부렸던/ 그 빵집 주인은 망신을 톡톡히 당했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행복하기를 원합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이 행복해지는 걸/ 하나님이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진정 행복하기를 원하신다면/ 불만지수를 낮추시기 바랍니다. 욕심지수를 최소치로 낮추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감사지수를 높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더 행복하기를 원하신다면/ 지금보다 감사지수를 더 높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매일 행복하기를 원하신다면/ 감사지수를 매일 ‘업그레이드’하시기를 바랍니다.


가책되는 말씀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에서/ 바울을 통해 매우 강한 어조로/ 감사를 명하시는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우리는 이 말씀을 대할 때/ 마음에 걸리는 단어가 있습니다.
어떤 단어입니까?
“범사에”와 “항상”이란 단어입니다.
사실 그리스도인치고/ 감사치 않는 사람이 있겠습니까마는/ 감사하라는 말 앞에/ “범사”나 “항상”이라는 수식어가 붙으면/ 엄청난 부담을 느낍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범사라는 뜻을 잘 압니다.
‘범사(凡事)’란 말 그대로/ 모든 일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은/ 내가 어떤 일을 당하여도/ 무조건 감사하라는 뜻입니다.
‘항상(恒常)’이란 말 그대로/ 언제나 늘이란 뜻입니다.
그러니까 “항상 감사하라”는 말은/ 어떤 상황을 만나도/ 무조건 감사하라는 뜻입니다.

오늘 주신 말씀 앞에서/ 가책을 받지 아니할 사람은/ 아마 없을 겁니다. 어쩌면 설교자인 제가/ 가장 많은 가책이 됩니다. 사실 저도 범사에 감사하며/ 살지는 못하기 때문입니다. 항상 감사하지는 못하거든요.
물론 감사하려고 노력은 합니다. 의식적으로 감사하려고 애쓰긴 합니다. 하지만 말씀이 요구하는 수준인/ ‘범사에 감사’, ‘항상 감사’에는/ 채 미치지 못합니다. 말씀을 전해야 할 입장에 있는 사람으로서/ 먼저 하나님 앞에서 죄스럽고/ 여러분에게도 부끄러울 뿐입니다.
물론 쉽게 이야기하고/ 적당하게 얼버무리고 넘어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스스로에게 용납되지 않아/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럼 여러분은 어떠세요?
여러분은 입을 떼지 않고 있으니까/ 다들 의인인 것 같은데/ 실제로는 여러분도 ‘범사에 감사’ ‘항상 감사’라는/ 말씀의 저울에 달리면 미달이지요? 여러분, 그렇지 않습니까?

“감사하라” 말이야 쉽죠.
“범사에 감사하라”는 성구 외우기는 쉽죠.
“항상 감사하라” 설교야 할 수 있겠죠.
그러나 정말 감사하기는 어렵습니다.
실제로 범사에 감사하기는 어렵습니다.
항상 감사하며 살기는 너무너무 어렵습니다.

1988년 미국 대통령 선거 때의 일화입니다.
한창 전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을 때/ 중요한 이슈가 사형 폐지론이었다고 합니다. 민주당 후보였던 마이클 듀카키스는/ 사형 폐지론을 주장했습니다. 사형제도는 없애야 된다며/ 전국을 누비면서 유세를 했습니다. 어느 날 CNN의 토크쇼 프로그램에/ 그가 초대를 받았습니다. 그 프로그램은 버나드 쇼가/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듀카키스를 앞에 놓고/ 버나드 쇼가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선생님은 사형제도를 폐지하라고 주장하신다죠?\"
\"네, 그렇습니다.\"
\"참 훌륭한 일을 하십니다. 그런데 제가 하나 묻겠습니다. 선생님, 만약에 선생님의 아름다운 부인이 괴한에게 끌려가서/ 강간을 당한 후 살해 당했다고 합시다. 나중에 그 범인이 잡혔을 때/ 선생님은 여전히 사형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전혀 예상치 못한 질문을 받고서/ 이 사람은 무척 당황했습니다. 머뭇머뭇하고/ 말을 더듬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수천 만 명의 시청자들이 보고 있었는데/ 이 장면에서 그들이 받은 인상이/ 어떤 것이었겠습니까? 자기와 상관이 없으니까/ 사형 제도를 폐지하자고 주장하는 사람이지/ 진짜 자기 일이 되면/ 그런 소리를 할 사람 아니라는/ 인상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 토크쇼 때문에/ 그가 대선에서 패배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남의 이야기는 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내 이야기를 할 때에는/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이 그렇습니다.
젊은 나이에 암으로 죽어가는 남편을 보며/ 부인이 과연 감사할 수 있을까요? 오랜 지병으로 누워있는 시어머니를 보고/ 며느리가 과연 감사할 수 있을까요? 도저히 회복기미를 보이지 않는 장애아들을 보고/ 엄마가 진심으로 감사할 수 있을까요?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그런 경우를 당했을 때/ 정말 감사할 수 있을까요?

인간적으로 볼 때/ ‘범사에 감사’ ‘항상 감사’는/ 현실성이 없는 말씀입니다. 너무나도 비현실적인 말씀입니다. 이상론에 불과한 말씀입니다. 그럼 지키지도 못할 말씀을/ 굳이 왜 하셨는지 모르겠다며/ 대충 넘어가도 괜찮을까요? 아닙니다. 절대로 그래서는 안 됩니다. 왜요?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신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왜 감사해야 하나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가 왜 범사에 감사해야 하는지/ 또 왜 항상 감사해야 하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주님이기 때문입니다.

본문 앞부분을 보세요.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주님이라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예수님이 주님인 것을 안다는 말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고백하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주재권(Lordship)을 인정하는 것을 말합니다.

바울이 로마서 교리부분 말미에서 고백했지요?
로마서 11장 36절을 보세요.
11:36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간다고 믿는 사람들의 입엔/ 언제나 감사가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자기 것을 전부 잃고도/ 욥처럼 고백할 수 있습니다.
욥기 1장 21절을 보세요.
1:21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이건 누구나 할 수 있는 고백은 아닙니다.
아무나 흉내 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진정으로 그리스도의 주재권이 확립된 사람은/ 바울처럼 욥처럼 고백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주재권을/ 얼마나 확립하셨습니까?
여러분이 가진 것의 전부를/ 주님께 위탁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의 모든 소유를/ 주님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만약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여러분은 어떤 일에서도 감사할 수 있고/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할 수 있을 겁니다.


둘째,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 때문입니다.

본문 앞부분을 보세요.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 이름으로는 범사에 감사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내 이름을 걸고 범사에 감사하는 것은 어림도 없습니다. 어쩌면 생각조차 하기 힘듭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범사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이름으로”\'라는 말 대신에/ “믿음으로” “능력으로” “때문에”를 넣으면/ 말씀의 뜻이 더 잘 통할 것 같습니다.
예수님에게는 모든 것이 다 있습니다.
예수님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예수님을 얻으면 다 얻은 것입니다.
예수님이 있으면 다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설령 세상의 것이 좀 부족하다고 해도/ 자기 안에 예수님을 모신 사람은/ 모든 것을 가진 자가 되고/ 반드시 감사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좋은 그리스도인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어떤 환경에서도/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이/ 좋은 그리스도인입니다.
어떤 사람이 훌륭한 하나님의 백성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어떤 상황에서도/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이/ 훌륭한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어떤 사람이 뛰어난 하나님의 자녀입니까?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어떤 현실에서도/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이/ 뛰어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여러분이 그런 그리스도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그런 하나님의 백성/ 그런 하나님의 자녀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 하나님이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본문 뒷부분을 보세요.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이 어떻게/ 우리 아버지가 되셨는지를/ 확실히 알고 믿으면/ 항상 감사할 수 있습니다.
로마서 5장 8절을 기억하시죠?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탕자의 고백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는 고사하고/ 종이 되는 것만도 과분한 존재들입니다. 그런데 아무런 공로 없이/ 우리를 당신의 아들로 딸로 받아주셨습니다. 어떤 공로도 요구하지 않고/ 값없이 당신의 자녀를 삼아주셨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값비싼 대가를 치르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셨습니다.
내가 죽어야 할 저주의 죽음을/ 그리스도께서 감당하셨습니다.
살려주신 것만도 감사한데/ 우리를 그분의 자녀로 삼으셨습니다.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이렇게 노래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합니다.
나를 자녀 삼으신 주
사랑합니다.
나를 자녀 삼으신 주
내 부르짖음 들으시고 감싸주시는
영원히 주 찬양합니다.
내 삶을 다해


넷째, 아버지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본문 뒷부분을 보세요.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이건 다른 사람의 명령이 아닙니다.
우리와 아무 관계도 없는 분의 명령이 아닙니다.
우리 아버지 되신 바로 그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이 명령하시면/ 자녀된 우리는 아무리 어려워도 순종해야 합니다.
아멘입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좋은 아버지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해롭게 하는 명령을 하실 리가 없습니다.
그분이 우리에게 명령을 내리실 때는/ 우리의 유익을 위해서 하십니다.
또 그분이 우리에게 명령하실 때에는/ 그 명령에 순종할 수 있는 힘을 우리에게 주시고/ 은혜를 뒤따라 보내주십니다. 다시 말하면/ 그분은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명령만 하신다는 말입니다.

바울은 이 사실을 알았기에/ 이렇게 권면할 수 있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고전 10:13 중)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면 됩니다.
순종하지 못하겠다는 변명만/ 자꾸 늘어놓으려고 하면 안됩니다.
순종하지 못하는 구실만 찾고 있으면 안됩니다.
순종의 은혜를 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순종하고 싶은 맘이 들게 해 달라고 구하시기 바랍니다.
순종체질이 되게 해 달라고 부르짖기 바랍니다.

미국의 어느 청년이 청년답지 않게/ 늘 감사하면서 살아갔습니다.
대개의 청년들은/ 꿈과 야망이 크기 때문에/ 현재의 삶이 늘 미흡 하다고 느끼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젊은이가 그렇게 감사하면서 살아가기란/ 사실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이 청년이 교통사고를 당해/ 다리 하나를 절단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절망의 삶을 살았습니다. 할 일도 많고/ 결혼도 해야 할 나이인데/ 한 마디로 죽고 싶었을 겁니다. 없는 다리 한 쪽만 생각하면/ 앞날이 캄캄 했을 것입니다. 그의 입에서는 감사가 사라졌습니다. 이 게 인간의 한계점입니다.

사람은 대개 없어진 다리에 집착합니다. 그러는 사이에 다른 다리는 보이질 않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부터인가/ 청년에게 눈이 뜨이면서/ 다리 하나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청년이 없어진 다리 대신/ 남아 있는 다리를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 젊은이는 다리가 하나 남아있다는 사실에/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인조다리를 했습니다. 그때부터 이 청년은 이 남은 다리를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아프리카 선교사로 나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선교사 훈련을 마치고/ 마침내 그 다리를 가지고/ 아프리카로 갔습니다. 사역을 시작하기도 전에/ 식인종들이 덤벼들었습니다. 이러다가 잡혀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순간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고무로 만든 인조다리를 던져 주었습니다. 식인종들은 그 다리를 물어뜯고 씹어보았지만/ 아무리 씹어도 씹히지 않자/ 그 선교사를 신적 존재로 섬기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선교사가 말하면/ 무슨 말이든지 들었습니다. 그제서야 그는 자신이 한 쪽 다리를 자르게 된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 때 그는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눈물로 감사했습니다.

아마 우리도 그 청년이라면/ 나는 늘 감사하며 살았는데/ 어떻게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겨났단 말인가 하며/ 감사의 줄은 끊어지고/ 불만의 줄만이 팽팽하게 당겨졌을 것입니다. 감사지수는 여지없이 폭락하고/ 불만지수는 폭등하고 말았을 겁니다. ‘아니, 이 다리를 해가지고 선교사로 나가라고’ 하며/ 하나님께 반항했을 겁니다. ‘선교사로 내 보내시려면/ 다리를 온전하게 두었어야 할 것 아니냐’며 대들었을 겁니다. 하지만 이 청년은 그 상황에서/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했습니다. 도저히 순종할 수 없는 것 같은 상황에서/ 기꺼이 순종했습니다.


감사와 믿음

우리는 감사와 연관지어/ 이런 결론을 하나 내릴 수 있습니다.
‘감사하는 것만큼 믿는 것이다’ 라구요.
앞길이 막막합니다. 눈앞이 캄캄합니다. 한치 앞도 분간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말로 기도하는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하나님, 제 앞길이 막막합니다. 눈앞이 캄캄합니다. 한치 앞도 분간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주님이 제 앞에 있는/ 구름을 걷어내 주시고/ 어둠을 내몰아주실 날이/ 다가올 줄을 믿습니다. 이런 고난이 저에게 유익하다고 생각하셔서/ 주신 줄로 알고 감사합니다.”
고난 앞에서 감사할 수 있는 믿음이/ 어디 보통 믿음입니까?
그 사람의 믿음은 대단한 것입니다. 보세요. ‘감사하는 것만큼 믿는 것이다’는 말이 맞지 않습니까?

따라해 보세요.
“감사하는 것만큼 믿는 것이다.”

한 번 더 따라해 보세요.
“감사하는 것만큼 행복할 수 있다.”

포항에는 100평짜리 아파트가 없는 줄로 아는데/ 그런 아파트에 살아도/ 감사가 없으면 행복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스무평 남짓한 아파트에 살아도/ 하나님께 감사 가족끼리 감사가 있으면/ 마냥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런 행복은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고/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습니다.


송명희 시인

송명희 시인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는 뇌성마비로/ 한번도 정상적인 삶을 살지 못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뇌성마비로/ 온 몸이 비비 꼬여서/ 말 한마디를 하려고 하면/ 죽다 살아나는 그런 고통을 겪으면서 해야 할 정도로 일급 장애인입니다. 그가 예수님을 만난 이후에/ 많은 시를 썼습니다. 시집만도 여러 권 냈습니다. 그가 쓴 시 가운데/ 이런 시가 있습니다.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나 남에게 있는 건강 있지 못하나
나 남이 없는 것 있으니
나 남이 못 보는 것 보았고
나 남이 듣지 못한 음성 들었고
나 남이 받지 못한 사랑 받았고
나 남이 모르는 것 깨달았네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가진 것 나 없지만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없는 것 갖게 하셨네

여러분, 잘 생각해 보세요.
그가 무엇 때문에 감사하고 있는 것입니까?
그녀는 뇌성마비로서/ 남들이 가지고 있는 것의/ 90%를 못 가진 자매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이 그의 마음을 가득히 채웠습니다.
그러자 무엇이라고 감사합니까?
남이 갖지 못한 것이/ 자기에게 있다는 것 때문에 감사했습니다.
남에게 있는 것이/ 자기에게 없다는 것 때문에/ 불평하는 우리와는 많은 차이가 나지요?

그럼 자기에게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남이 못 보는 것을 보았고/ 남이 듣지 못한 음성 들었고/ 남이 받지 못한 사랑 받았고/ 남이 모르는 것 깨달았다고 하는데/ 그것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입니다.
그녀는 예수님이 자기 안에 있는 것에 감사(感謝)했고/ 예수님을 볼 수 있는 것에 감격(感激)했습니다. 예수님의 음성을 들 수 있는 것에 감동(感動)했고/ 예수님의 사랑을 받고 있는 것에 감회(感懷)에 젖었으며/ 예수님을 깨닫게 된 것에 감개무량(感慨無量)해 했습니다.

저도 이런 감사의 수준에 도달하기를 원합니다.
저와 한 배를 탄/ 사랑하는 믿음의 식구들도/ 이런 감사의 수준에 이르기를 바랍니다.


나는 확인서를 보내나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그 나라에 이르러 베드로의 영접을 받았습니다. 베드로는 그를 데리고/ 하늘나라의 이곳저곳을 구경시켜 주었습니다.
첫 번째 간 곳은 천사들로 붐비는 거대한 작업실이었는데/ 베드로는 그곳이 \'땅에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온갖 사람들의/ 청원이 접수되는 접수처\'라고 했습니다. 수많은 천사들은/ 세상의 도처에서 보내온 온갖 청원들을/ 분주하게 분류하고 있었습니다.

그 다음 두 번째 도착한 곳에서도/ 천사들이 엄청나게 많은 복을 포장하여/ 지상으로 배달하느라 무척 분주해 하고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그곳이 \'포장 및 발송처\'라고 일러주었습니다. 기도로 청원한 사람들에게 보내줄 은총과 복을 포장하여/ 지상의 그 청원자들에게 발송하는 업무를 맡아보는 곳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다음 세 번째 도착한 곳에서도/ 많은 천사들이 분주히 일을 하는데/ 이곳은 \'반송처\'라는 것이었습니다. 지상으로 보낸 복과 은총의 소포가/ ‘수취인 불명’으로 되돌아온 것을/ 다시 정리하는 곳이라는 겁니다. 간절히 구해서 가장 좋은 것을 보내 주었지만/ ‘그건 내가 구한 게 아니라’고/ ‘그건 내가 갖고 싶은 게 아니라’고/ 받기를 거부한 소포들이 되돌아와 있는 창고였습니다.

끝으로 베드로는 가장 후미진 구석엘 데려갔는데/ 그곳은 놀랍게도 단 한 명의 천사가/ 하릴없이 빈둥대고 있었습니다. 앞의 세 곳과는/ 너무도 대조적인 풍경이라/ 이상한 생각이 들어 물었습니다.
“어째서 이곳은 다른 곳과는 달리 아무런 할 일이 없는 겁니까?”
그러자 베드로는 그곳이 \'확인처\'라고 알려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베드로는 혼잣말처럼 말합니다.
“참으로 서글픈 일이야. 지상의 사람들은/ 부탁한 복을 받고나서/ 확인서를 보내는 일이 없거든...”
“어떻게 확인서를 보내는데요?”
“그야 간단하지. 그저 ‘감사’ 하면 되는거지...”


맺는 말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은 맥추감사절입니다.
특별히 감사를 표현하는 절기입니다.
마음으로 입으로 물질로 표현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감사는 일회성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범사에 감사’ ‘항상 감사’를 원하십니다.
‘범사에 감사’ ‘항상 감사’를 위해서는/ 감사지수를 높여야 합니다.
불만지수와 욕심지수를 최저치로 끌어내리고/ 감사지수를 최고치로 끌어올려야 합니다.

믿음지수인 F.Q 소망지수인 H.Q 사랑지수인 L.Q를 높여서/ 성공적인 신앙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거기에 감사지수인 G.Q를 높여서/ ‘행복한 삶’을 영위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아 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