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의 비밀/고후9:10-15 2001-09-24 10:11:02 read : 88
우리 사회에서도 가끔 시위할 때 보면 사람들이 머리띠에다가 투쟁, 쟁취 라고들 쓴 것을 봅니다. 물론 정당한 요구가 관철되지 않았기에 그렇게 그런 방법을 동원한 것입니 다. 그러나 저는 그것을 보면서 아! 저건 참 잘못한 일이다 싶은 생각이듭니다. 그렇게 투쟁해서 쟁취한 것들 얼마의 돈을 더 얻고, 얼마의 이득을 가지는지 모르나 인간성에 있 어서는 엄청난 손해를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해서 얻은 것이 무엇이든 거기에는 고마워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점점 마음만 황폐해집니다. 쟁취해서 얻은 일에는 행복도 감사도 없습니다. 또 다시 불평입니다. 또 다른 원망으로 이어집니다. 인간성에 입는 손해와 손실은 엄청난 것입니다. 감사가 행복을 낳는 것입니다. 감사가 있어야 행복합니다. 만족과 행복을 가장 빨 리 찾는 비결은 범사에 감사하는데 있다 고 어떤 종교학자는 말합니다. 결국은 감사함 으로만 행복한 것입니다. 많이 가졌다, 적게 가졌다,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감사하 다는 감격이 그 속에 있을 때에 그만큼만 행복한 것입니다. 그 때에만 은혜가 은혜 되고, 행복이 행복될 수 있기때문입니다. 가장 불행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옛날에는 행복했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지난날은 좋았는데 오늘은 불행하다 라는 생각에서 평생을 살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오늘입니다. 믿음과 겸손, 그것을 가진 사람에게만 감사가 있습니다. 교만한 사람은 어떤 형편에서도 감사가 없고, 감사가 없기에 끝까지 불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감 사는 절대적인 것입니다. 이것 때문이요, 저것 때문이요, 이렇게 감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감사하는 자가 되어야 감사합니다. 감사의 체질, 감사의 성품, 감사의 인격이 되고야 감사가 있습니다. 사람 자체가 감 사적 인간이 되지 못하면 어떤 경우에도 원망과 불평뿐입니다. 그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감사는 절대적인 것입니다.
미국 사람들이 일상 생활에서 가장 많이 쓰는 단어 50개중에 감사라는 단어가 28%로 으뜸이라고 합니다. 그들은 신문 한 장을 살 때도, 옷 한벌을 살 때도, 콜라 한병을 살 때 도 감사를 잊지 않는다고 합니다. 특이한 것은 우리 나라에서는 물건을 파는 사람이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 반면에 미 국에서는 물건을 사는 사람이 고맙다고 인사를 한다고 합니다. 이는 감사에 대한 철학 이 있느냐 없느냐를 보여주는 한 예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감사는 찬송과 함께 천국의 언어입니다. 우리가 이 다음에 천국에 가서 할 일은 오직 하나, 그것은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으로 영광돌리는 것 뿐입니다. 천국에서는 불평이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에는 천국의 장엄한 찬송이 허다한데 그것이 전부 감사찬송뿐임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감사의 여러 가지 모습을 살펴보면서 우리는 어떤 감사를 드려야 하는 가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첫째, 우선 감사와 차선 감사를 살펴보겠습니다. 마6:33절에 주님께서는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인의 생의 우선 순위 를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이 말씀에 입각하여 처음 미국 땅에 도착한 청교도들은 맨 먼저 교회를 건축하고 그 다음에 학교를 짖고 맨 마지막에 주택을 지었다고 합니다. 그들은 정말 복 받을 사람들 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나라는 어떻습니까? 신도시개발을 보면 주택을 먼저 짖고 나서 그 다음에 학교 짖느라 법석이며, 교회당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종교부지 조금 내놓고 그나마 생색을 내는 나라입니다. 청교도들과는 정반대의 순서를 따라 살고 있습니다. 그나마 이 만큼 잘 사는 것도 워낙 순교의 피가 흘려진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이웃나라 일본은 종교적으로는 하나님의 축복하고는 먼 나라입니다. 그러나 일본 사람 들이 잘 삽니다. 그 이유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저축을 한다고 합니다. 한사람이 일 년에 평균 9만불(약 1억원)을 저축한다고 합니다. 일본 사람들은 저축부터 하고 남은 것 을 가지고 사는데 비하여 우리 나라 사람은 쓰고 남은 것을 저축한다고 합니다. 우리 나라는 잘 사는 나라에 비할 때 생의 우선 순위들이 여러 가지가 다른다는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감사는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생의 최우선 순위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 것 저것 제하고 남은 것 가지고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먼저 감사부터 해야 합 니다. 감사가 생의 최우선이요, 그 밖의 모든 것이 차선일 때 그 사람의 내일은 하나님께 서 보장해 주실 것입니다. 지금까지 나의 신앙생활에서 감사가 우선 감사였습니까? 차 선 감사였습니까? 깊이 생각해야할 것입니다.
둘째, 먼저 감사와 나중 감사가 있습니다. 대체로 성도들의 감사는 나중감사입니다. 풍년들어 감사하고, 합격해서 감사하고, 귀한 자녀를 얻어 감사하고 집을 장만하고 감사하며, 사업이 잘 돼서 감사합니다. 모두 나중감사입니다. 물론 이런 경우에 당연히 감사해야지요? 그나마 은혜도 모르고 감사할 줄 모르면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이것마저 모르면 동물의 차원으로 전략하고 마 는 겁니다. 그러나 여기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지난 세월에 감사할 만한 일이 있으면 감사하고 없을 때는 감사하지 않는다는 모순이 발생하게 됩니다. 그럴 수는 없는 것입니다. 발명왕 토마스 에디슨 그는 생전에 1,300개 이상의 발명 특허를 얻은 사람입니다.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편리한 것들이 모두 그의 발명에서부터 시작된 것들입니다. 활동 사진기, 축음기, 무선전신기, 전구 등 온 인류에게 크게 기여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초등학교에서 저능아 취급을 받고 정규학교에서 쫓겨난 사람입니다. 하지 만 그 어머니는 그를 위로하고 그에게 소망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젊은 날에 귀머거 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조금도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말년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참으로 감사한 것은 내가 귀머거리가 됨으로써 연구 에 몰두할 때에 잡음이 들리지 않았다. 그것은 나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귀머거리가 되어 답답하지만 연구에 몰두할 수 있으니 하나님이여 귀머거리 된 것을 감사합니다 고 에디슨은 말하고 있습니다. 불행하지만 실패했지만 그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서 내 가 얻게 된 것, 얻은 것 그 소중한 것을 생각할 줄 알기에 감사합니다. 롬8:18절에 보면 생각컨데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따라 우리는 나타날 미래에 대하여 미리 감사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롬8:28절에 보면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 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는 말씀을 보면서 택한 백 성에게는 생노병사, 희노애락이 연합하여 선하게 이루어질 것을 미리 알고 있기 때문에 먼 저 감사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나중 감사에 비하면 먼저 감사는 한층 차원 높은 감사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셋째, 즉시 감사와 나중 감사(지각 감사) 감사할 일이 있으면 시간이 지나기 전에 즉시 감사해야 합니다. 마음에 첫 번째 감동은 성령의 역사요, 두 번째 마음은 내 생각이요, 세 번째 마음은 사탄의 역사입니다. 차일피일 뒤로 미루면 그 감사가 변질되고 맙니다. 그래서 감사를 신선한 목장 우유와 같다고 합니다. 신선한 목장 우유를 그릇에 담아 마시면 몸에 좋으나 그 우유를 그릇에 담아 오래 두면 그릇에 묻어 있는 세균 때문에 우유 전체가 변질되고 마는 것입니다. 눅17:11-19절에 보면 열 명의 나환자가 고침을 받았는데 9명은 각기 제갈 곳으로 갔 으나 한사람은 가던 길을 돌아서서 즉시 예수님에게 달려와 감사를 했습니다. 그 아 홉 명이 감사할 마음에 없었다고 보지 않으나 즉시 감사하지 않은 것을 예수께서 섭섭하 게 생각하셨습니다. 이 고침 받은 나환자 무엇을 감사하겠습니까? 그 좋은 젊은 날 나병으로 세월을 다 보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도 잃었고, 가족도 잃었고, 직업도 잃었습니다. 기술도 없 고, 가진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제 나았다고 해서 무엇을 감사하라는 것입니까? 또 다시 거지가 될 수밖에 없는 이 사람 미래를 생각하면 암담합니다. 생각하면 감사할 게 없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 나환자는 단순한 마음, 깨끗한 마음을 가지고 감사를 드립니다. 이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과거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미래는 하나님께 맡깁시다. 사람의 마음이란 간사해서 감사할만한 일을 뒤로 미루면 반드시 변질되고 마는 것입니다.
어떤 부자 한분이 그만 절망적인 질병에 걸렸습니다. 그래서 큰 대학병원에 입원해서 치료를 받게 되는데 이상하게도 그 질병이 차차 나아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 부자는 너무 기뻐서 5억원을 연구비로 이 병원에 희사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일주 일이 지나자 그 부자는 너무 많다고 생각이 들어서 절반만 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이제 병이 완쾌되어 퇴원 날자가 다가오자 그 부자는 1억원만 내기로 결정합니다. 그때 그의 양심의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이 나쁜놈 죽게 됐을 때는 재산을 다 바쳐도 아깝지 않다고 하더니 살려주니 욕심을 내는구나. 이놈아 퇴원할 때에는 입원비도 깎자고 하겠구나 이런 소리가 들려옵니다. 그는 자신을 뉘우치고 10억원을 병원에 희사하고 퇴 원했다고 합니다. 성도여러분! 감사할 일이 있으면 즉각 감사하십시오. 시간이 지나면 변질되고 맙니다. 처음에 결심 한 그대로 감사하십시오 시간이 지나면 하나님 앞에서 감사헌금을 깎자고 흥정까지 하게 됩니다. 깊이 기억하셔야 합니다.
넷째, 특별감사와 일반감사(비상감사와 통상감사) 바울 사도는 살전5:18절에서 범사에 감사하라 하셨습니다. 범사라는 말은 복합적인 단어로서 좋은 일도 포함되어 있지만 나쁜 일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좋은 일에 감사하 는 것은 통상감사 또는 일반감사라고 할 수 있고, 나쁜 일에도 감사하는 것은 비상감사 또 는 특별감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쁜 일에 감사하는 것은 보통 수준의 신앙으로는 불가 능할 것입니다. 그래서 하박국 선지자는 하박국3:12-18절에서 노래하기를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 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고 했습니다. 이런 경우를 가리켜 비상감사 또는 특별감사 라 하는 것입니다.
주경학자 매튜 헨리는 길 가다가 강도를 만나 지갑을 뺏겼는데 그날 자신의 일기장에 이렇게 기록 했다고 합니다. 이제까지는 강도를 만난 적이 없었음을 감사하며 강도가 내 지갑만 뺏어갔을 뿐 내 목숨을 앗아가지 않았음을 감사하며 그 지갑 안에 큰돈이 들어있지 않았음을 감사하며, 내가 강도 만난 사람이지 강도질을 하지 않았음을 감사한다고 적었습니다.
만일 우리가 강도에게 지갑을 뺏겼다면 어떻게 기록하겠습니까? 하필이면 봉급날에 강 도 당한 것 억울하고, 내 지갑만이 아니라 내 주민등록증과 신용카드까지 가져간 것을 원 망할 것이며, 빌린 돈을 갚으러 가는 길에 강도를 만난 것을 원망할 것이며, 그 많은 사람 중에 하필이면 내가 왜 강도를 만났는가를 원망할 것입니다. 한국 교회사에 비상감사의 대표적인 인물로 손양원 목사를 꼽습니다. 손 목사님은 1948 년 10월 19일 여수반란사건 때 두 아들 동인과 동신이를 잃었습니다. 10월 27일에 두 아 들의 장례식에서 손 목사님은 열 가지를 감사했습니다. 1. 나 같은 죄인의 혈통에서 순교자가 난 것. 2. 허다한 목사와 성도 중에 내 가정에서 순교자가 난 것 3. 3남 3녀 중 가장 뛰어난 장남, 차남을 순교자가 되게 한 것 4. 한 아들로 감사한데, 두 아들의 순교자를 주신 것 5. 두 아들이 공산군 앞에서 최후의 순간까지 전도하다가 순교한 것 6. 곧 미국에 유학을 가게될 두 아들이 미국 아닌 천국에 유학을 가게된 것 7. 내 두 아들을 죽인 공산군을 양자로 삼게된 것 8. 그 두 아들의 순교로 수많은 천국의 아들들이 생길 것을 믿게된 것 9. 이런 상황에서 기쁜 마음, 여유 있는 마음을 주신 것 10. 부모님의 35년 기도. 나환자들의 25년의 기도와 열매로 이와 같은 영광을 주신 것을 감사했다고 합니다. 이런 경우를 비상감사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 기막힌 슬픔이지만 하나님의 섭리라고 생각할 때 감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다섯째, 진정한 감사와 거짓된 감사 즉 정장감사와 위장감사 오늘이 성경 본문은 고린도 교회와 예루살렘 교회 사이에 있었던 일입니다. 예루살렘에 흉년이 들어 백성들이 고통을 당하고 있는 이 때 고린도 교회에다 후한 연보를 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를 도와주라는 바울의 간곡한 부탁입니다. 본래 고린도 교회와 예루살렘 교회는 사이가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는 헬라인이고 하나는 유대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동서가 없고 남북이 없다면 진정한 마음으로 연보를 하 여 재난을 당한 사람을 도와주면 도움을 받은 사람 역시 하나님께 진정으로 감사를 할 것이라고 바울은 역설하고 있습니다. 고후9:7절에 보면 각각 그 마음에 정한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할지 말찌 니 하나님은 즐겨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고 했습니다. 고린도 교회가 예루살렘 교회를 위하여 거짓되고 위장된 감사를 하지 않고 진실된 마음 으로 헌금하고 감사를 했다면 이를 가리켜 정장감사 또는 진실한 감사라 할 수 있을 것이 며 마음에는 없는데 사도 바울의 부탁이다 할 수 없이 체면상 감사를 했다면 이는 거짓감 사, 위장감사라 해야할 것입니다. 한상수씨의 「한국민담선」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느 고을에 착한 농부가 살았습니다. 그 해따라 무농사가 잘 되어 아주 기뻐하였는데 특별히 어린아 이만 한 큰 무가 있었습니다. 그가 평생 무농사를 지었지만 이렇게 큰 무는 처음 보았습니다. 착한 농부는 그 무를 가지고 고을 원님을 찾아갔습니다. 어진 원님 덕분에 복을 받아 이렇게 큰 무를 얻게 되 었으니 이 무를 원님께 드린다고 했습니다. 원님은 그 큰 무를 받고 그 농부의 마음씨가 착하고 기특해서 선물을 주려고 했습니다. 최근에 창고에 뭐 들어온 것이 없느냐고 하인에게 물었더니 큰 황소 한 마리가 들어온게 있다고 보고를 받았습니다. 원님은 그 착한 농부에게 황소를 선물로 주었습니다. 그 마을에 악한 농부가 있었습니다. 착한 농부가 무 한 개를 바치고 황소 한 마리를 선물로 받았다는 소문을 듣고 이 악한 농부는 자기가 기르던 큰 황소 한 마리를 원님에게 끌고 가서 자기가 평생에 소를 길렀지만 이렇게 좋은 황소를 처음 보았다며 이게 모두 원 님이 은덕이라고 하면서 원님에게 드린다고 했습니다. 또 원님은 그 농부의 마음씨가 고마워서 최근에 창고에 뭐 들어온 것이 없느냐고 하인 에게 물었더니 큰 무 한 개가 들어온 것이 있다는 보고를 받고 원님은 그 마음씨 나쁜 농 부에게 무를 선물로 주었습니다. 이 악한 농부 생각에는 무 바친 농부가 황소를 얻었으니 자기는 황소를 바쳐서 큰 전답 을 선물로 받을 줄로 알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결과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진실된 마음 으로 드리는 정장감사는 축복이 눈덩이처럼 커지나 거짓된 마음으로 드리는 위장감사 는 있는 것마저 다 잃고 마는 것입니다. 어떤 아이가 유치원에 다니는데 밤에 잠자리에 들면서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렇게 해 주시고 저렇게 해주세요. 하며 소원을 다 구합니다. 그리고는 잘 잘자게 해 주세요 아멘. 앙증맞게 기도합니다. 그런데 기도가 끝나면 이 아니는 꼭 춤을 추면서 노래를 부른답니다. 엄마가 물었습니 다. 얘! 너는 기도한 다음에 왜 노래하고 춤을 추니 아이는 대답합니다. 엄마, 하나님께 너무 슬픈 얘기만 많이 해서 죄송해 그래요. 하나님을 좀 기쁘게 해 드리려고요 아이가 어른보다 훨씬 낫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려야 그것 이 감사입니다. 여러분 오늘만큼 만이라도 제발 무엇을 좀 주세요. 라는 말을 보류합시다. 그리고 하나 님을 기쁘시게 해드리십시다. 진정한 감사야말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하나님께 수없이 감사를 했으나 축복과 거리가 먼 것은 위장감사가 많 았기 때문입니다. 이 감사의 비밀들을 깨닫고 진정한 감사를 드려 하나님의 크신 축복이 충만하시길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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