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참감사 합니다

하나님 참 감사합니다/고후9:6-15

하나님 참 감사합니다/고후9:6-15
2001-11-21 20:29:17 read : 108

영국의 한 마을에 구두 수선을 하는 윌리엄 캐리라는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가 어느 날 주님을 알게 되고 하나님 앞에 헌신을 하게 되는데 몸과 마음을 다 바친 헌신으로 인하여 그는1786년 되는 해인 25세에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31살의 나이에 그는 인도에 선교사로 나가게 되었는데 깊은 감격 속에서 복음을 전파하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삶에는 불행한 일이 연속적으로 찾아왔습니다.
그가 인도에 도착한지 일년만에 불행히도 총명한 눈을 가졌던 5살짜리 아들을 잃었고 그로 인해 그의 아내는 충격을 받아 정신분열증에 시달리다가 그만 죽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7년 동안 한 사람도 제자를 만들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인도의 영혼을 사랑하는 윌리엄 캐리의 마음에 복음의 열정을 끊임없이 부어 주심으로 인해 인도에 온지 20년 만에 그는 인도 사람을 위한 벵갈어 성경번역을 마쳤습니다.
마침 선교부에서 종이와 잉크와 인쇄기를 보내 주어 성경인쇄 작업을 시작했는데 성경을 찍는 인쇄기가 돌아가는 모습을 그는 감격하며 바라보다가 인쇄하는 시간도 아까워서 그 시간에 윌리엄 캐리는 전도하러 나갔습니다.
그런데 돌아와 보니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져 있었습니다. 인쇄공의 실수로 화재가 나서 그의 20년 수고가 물거품처럼 날아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번역한 원본과 각고의 노력 끝에 만들었던 벵갈어 문법책과 사전이 타 버린 것이지요.

처음에는 그 장면을 목격하고 마음이 떨려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그러나 그는 조용히 잿더미 위로 걸어갔습니다. 그리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를!
\"주님! 저의 20년 수고를 거두어 가셨군요. 그래도 제가 다시 할 수 있는 믿음은 거두어가지 않으셨으니 감사합니다\" 그리고 그는 불안에 젖어 있던 주위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용기를 잃지 맙시다. 이 일은 우리를 전진시키는 한 과정이 될 것입니다\" 그 뒤 그는 더욱 훌륭한 벵갈어 성경을 이전보다 빠르게 만들 수 있었다고 합니다.

용기를 잃지 않고 믿음으로 살아가기만 하면 우리도 윌리엄 캐리처럼 어떠한 환경을 만나든지 간에 범사에 감사하는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 김해삼일교회에서는 다음주일을 추수 감사주일로 지키게 되는데 이는 2001년의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를 기억하여 감사의 예물을 드릴 수 있는 주일입니다.
믿음으로 동참하시는 분에게는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큰 은혜와 큰 축복이 따를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1.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범사에 감사의 생활이어야 합니다.

엡 05:20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여러분이나 저나 이 말씀을 대하면 늘 부담스럽기만 합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범사(凡事)에 라는 말과 항상(恒常) 이라는 말 때문입니다. 감사하라고 하는 말에 범사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으면 우리는 왠지 부담을 느끼게 되고 감사하라는 말 앞에 항상 이라는 수식어가 있으면 기가 죽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는 것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범사라는 말은 어떤 형편에 있든지 어떤 일을 당하든지 무조건 감사하라는 뜻이고 항상 이라는 말은 시종일관 어떤 상황을 만나도 변함 없이 감사하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강도 높은 의미를 가진 감사라는 말씀을 읽으면 가책 받지 아니할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이고 보면 아마 그 가운데 목사인 저 자신이 가장 많은 가책을 받을 것입니다. 항상 감사하지 못한 때가 자주 있기 때문이죠.

감사하려고 무척 노력을 하고 또 감사도 많이 하지만 이 말씀이 요구하는 선(線)에는 아직도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솔직히 저 자신이 숨길 수가 없습니다.
범사에 감사하십시오 항상 감사하십시오 하고 얼마든지 큰 소리로 외칠 수 있지만 진지하게 이 말씀을 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기는 여간 쉬운 일이 아님을 우리 모두가 잘 압니다.

가령 젊은 나이에 오랜 지병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아무리 기도하고 부르짖어도 고쳐주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병은 점점 더 깊어 가는 자신을 보면서 과연 그 입에서 감사가 나올 수 있겠습니까? 아니면 평생 무거운 십자가를 짊어지고 살아야 될 어린 장애아인 자녀를 갖고 씨름하는 부모가 그 입에서 정말 감사가 나올까요?
혹은 이력서를 수십 통 써 가지고 다니면서 취직을 해보려 하지만 회사에서 면접 한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계속 퇴짜를 맞는 젊은이라면 그 입에서 과연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는 말이 나올 수 있겠습니까? 더 나아가 내가 그런 경우를 당했다면 정말 감사하겠느냐 말입니다.

저나 여러분이나 이런 현실의 입장에서 이 말씀을 대한다면 아무래도 범사에 항상 하나님께 감사의 생활을 한다는 것이 현실성이 없는 이상론에 불가합니다. 그러므로 이런 말씀은 적당히 보고 넘어가는 것이 상책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감사주일을 앞두고 비현실적인 말씀처럼 혹은 이상론처럼 여겨진다고 적당히 보고 넘어가도 괜찮은 것이겠습니까?
아무래도 아니에요. 적어도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란 육신의 관점에 볼 때 비현실적이고 이상론처럼 보일 뿐이지 영적인 차원에서 보면 얼마든지 지킬 수 있는 축복의 말씀입니다

엡 05:20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러니까 적어도 이 말씀 앞에서 우리는 두 가지 영적 원리를 꼭 깨달아야 합니다.
①왜 범사에 감사해야 하느냐 하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때문입니다. 이름이라는 그 의미가 무엇입니까?
마 01: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나 같은 죄인을 이 세상의 죄악에서 건져주신 구세주라는 말이지요. 그러니까 이 세상의 것을 다 잃어버린다 해도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얼마든지 감사하며 살 수 있다는 말입니다.

②왜 범사에 감사해야 하느냐 하면 이 세상의 주인이시고 우리의 아버지 되신 하나님께서 범사에 항상 감사하라고 명령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 이것은 너무 비현실적인 말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하면서 변명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흘만에 예수님을 죽음에서 일으키셨고 그리고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고 그의 옷자락을 믿음으로 붙드는 사람에게는 어떤 죄를 범했든지 어떤 과거를 가졌든지 그 모든 죄를 다 용서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바로 그 하나님께서 나 개인에게 주신 은혜가 얼마나 큽니까? 우리 가정에 베푸신 은혜가 얼마나 놀랍습니까? 가족들에게 건강을 허락하신 은혜가 얼마나 귀하십니까?
물론 이 자리에 계신 성도 여러분 가운데 개인적으로는 슬픔과 고통과 고난을 당하신 분들도 계실 것이고 사업의 부진으로 인하여 힘들게 지내시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는 여러분의 믿음으로 행한 일에 비록 많은 아픔들이 따랐을지라도 나중에는 크게 유익하게 해 주실 것을 믿으십시오.

사실 우리교회도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면 아픔의 순간들도 많았고 속께나 썩이는 분들로 인해 상처의 부분들이 상당부분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난 시간들에 얽매여 괴로워하는 것보다는 모든 일 즉 부정적인 면을 지우고 긍정적이며 유익 된 부분들을 생각하며 살아간다면 여기에서부터 축복된 일과 은혜로운 시간으로 전환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목사인 저는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을 우선 순위에 두고 우리교회를 생각해 보니 금년 한 해가 6년 역사에 제일 좋은 일꾼들로 구성되어져 질적인 면에서는 가장 크게 Upgrade 된 한 해가 아니었는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금년의 추수 감사주일이야말로 우리의 힘을 결집하고 또 11월에 좀 더 전도의 결실을 맺어 12월 2일 첫 주일 김해삼일교회 설립 6주년 기념주일에는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리고 감사의 축제가 되는 그러한 시간들이 되기를 소망하는 바입니다.

2. 사도 바울은 범사에 감사하는 생활을 어디에 근거하고 있습니까?

08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사도 바울의 생활을 보면 그의 생활 자체가 언제나 감사의 연속이었습니다. 언제나 하나님께 대한 구원의 감격이 사무쳐 있었고 따라서 그의 매일 매일의 생활이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면서 감사를 표현하는 생활이었습니다. 어떻게 이처럼 감사의 생활을 할 수가 있었으며 그 감사의 원인이 어디에 있었느냐 말입니다.

우리는 보통 모든 것이 다 평안하고 환경이 좋아야만 감사합니다 라는 생활을 할 수 있다 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의 경우는 좋은 환경이나 평안한 생활 때문에 감사한 것은 전혀 아님을 고후 11:23~27절을 밝히고 있습니다.

고후 11:23.....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24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25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 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26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27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또한 사도 바울은 로마에 가서도 대부분 감옥에 있었으며 일생은 거의 핍박과 환난과 곤고의 생활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런 가운데서도 감사의 생활을 하였는데 어떻게 그가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감사의 생활을 할 수가 있었습니까? 그 비결이 어디 있습니까?
우리는 흔히 몸이 건강하면 하나님 앞에 감사하지만 이렇게 병들고 몸이 괴로운데 무슨 감사를 할 수 있습니까 라고 말을 합니다. 또 사업이 잘 되어서 많은 흑자를 내게 되었으면 하나님 앞에 감사 드릴 수 있지만 사업이 그만 부진하여서 많은 손해를 보았는데 무슨 감사를 할 수 있습니까 라고 말을 합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의 감사하는 모습을 보십시오. 그의 몸이 건강해서 혹은 사업이 잘 되어서 감사의 생활을 한 것이 아닙니다. 고후 12장에 보면 자세히는 알 수 없지만 그의 육체 가운데 찌르는 가시가 있었다고 하는 것을 보면 그가 분명히 심한 고통을 당했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육신의 가시를 제거해 달라고 하나님께 세 번이나 간절히 기도했을 때 그가 어떠한 응답을 받았습니까?

고후 12:07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自高)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08 이것이 내게서 떠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09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 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갈라디아교회 성도들에게 편지 한 내용 중에도 그가 병이 나서 다른 곳에 가지 못하고 거기에 머물러 있으면서 전도했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몸이 건강한 사람이 아니었으며 건강하기 때문에 그가 감사와 기쁨의 생활을 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물론 우리 몸이 건강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그러나 적어도 사도 바울의 경우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또한 우리 가정이 다 평안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평안하다면 이것은 하나님께서 가정에 베푸신 은혜이며 축복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아는 대로 사도 바울의 경우는 독신의 은사를 받아 일생을 독신으로 지내다 보니 이 가정에서 오는 아늑한 기쁨을 누리지 못하였습니다.
마 08:20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居處)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는 말씀처럼 일생동안 나그네로서 이곳 저곳을 방랑하며 육신으로는 평안히 쉴 곳이 없는 생활을 했습니다.
그럼에도 날마다 범사에 감사의 생활을 한 것은 세상인 환경에서 오는 조건들을 감사의 기준으로 삼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 범사에 감사하는 그 조건들은 세상의 환경의 요소들이 아니라 내적인 영적인 요소이었던 것입니다.

즉 자기 속 사람이 하나님과 어떻게 아름다운 영적 교제를 나누느냐 에서 찾았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의 감사는 자신의 처한 환경이나, 건강이나, 가정이나, 재산이나, 명예나 지위나, 성공이나 이와 같은 가치 기준에 두지 않았던 것입니다.
영적인 부분 신령한 조건에서 감사의 생활을 누리다 보니 08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라고 고백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3.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호해 주실 줄로 믿을 때 감사의 생활을 하게 됩니다.

사도 바울이 아덴 전도를 마치고 고린도에 전도하러 갔을 때의 일로서 그곳에는 죄악의 세력이 강성하였고 그래서 전도할 기회도 무척 많았습니다.
반면 강렬하게 대적하는 유대인들로 인하여 바울이 복음의 상당한 위축을 느끼고 있었는데 그때 주님께서 찾아오셔서 이렇게 위로의 말씀을 들려 주셨습니다.
행 18:09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 10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아무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

또 한번은 지중해에서 유라굴라는 큰 풍랑을 만났을 때의 일입니다. 그 배에는 사도 바울을 비롯하여 로마 군인들과 뱃사람 그리고 로마로 호송되어 가는 많은 죄수들 등 인원이 무려 276명이나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러 날 동안 해와 별이 보이지 아니하고 큰 풍랑은 그대로 있어서 구원의 여망이 거의 없어진 절망 상태에 이르렀을 때 하나님의 음성이 사도 바울에게 들려왔습니다.

행 27:22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생명에는 아무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 23 나의 속한 바 곧 나의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24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행선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25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이후부터 사도 바울은 어떤 상황을 만나든지 복음을 증거함에 있어서 위축됨이 없이 담대하게 그리고 감사하면서 증거하게 되었습니다.
빌 04:0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사도 바울은 다메섹에서 주님을 만난 그 순간부터 그분이야말로 자신을 주님의 나라에 이르는 그 날까지 영원히 동행하여 주시는 분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더 나아가 자기의 선교사역의 한 평생도 주님께서 친히 안보 해 주실 줄로 믿었기에 빌 04:0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라고 고백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말씀하고 있는 한, 내 삶에 대한 하나님의 인도가 계속되고 있는 한 풍랑도 핍박도 두려워 할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감사할 환경입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인의 삶 속에 풍랑이 없을 것이라고 하지 않고 그 풍랑 속에도 불구하고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이후부터 바울은 어떠한 환경 즉 역경이든 순경이든 간에 감사의 생활을 권장하고 있습니다.

김해삼일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는 험난한 이 세상의 풍랑 속에서 어떻게 살고 계십니까? 하늘을 바라보시겠습니까? 찬양을 하시겠습니까? 범사에 감사하며 살 수 있도록 마음을 크게 넓혀 봅시다. 부드럽고 좋은 마음을 가집시다.
롬 0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말씀을 맺습니다.

미국에 John Newton 이라고 하는 분이 계셨습니다. 이 분은 젊은 시절 방탕하였던 삶을 살다가 나중에는 노예 무역선의 선장까지 한 극악한 사람인데 그 사람이 그리스도의 은혜로 변화되어 하나님의 일을 하는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는 성경 대상 17:16,17절을 읽고 깨달은 바가 있어서 늘 입버릇처럼 말하기를 나 같은 죄인 살려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나 같은 죄인 살려주신 그 은혜 너무 감격합니다 하면서 그 감격으로 주를 찬양하는 중에 찬송시를 썼습니다. 우리가 즐겨 부르는 찬송 405장입니다

405장 나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1 나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2 큰 죄악에서 건지신 주 은혜 고마와 나 처음 믿은 그 시간 귀하고 귀하다.
3 이제껏 내가 산 것도 주님의 은혜라 또 나를 장차 본향에 인도해 주시리.
4 거기서 우리 영원히 주님의 은혜로 해처럼 밝게 살면서 주 찬양하리라.(아멘)

왜 많은 사람들이 감사하지 못할까요? 다른 사람의 환경과 비교하여 자신의 약한 모습만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교회생활을 하다 보면 불평하고 싶은 일을 가끔 만나게 되는데 연약한 사람들끼리 모였으니 그럴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그래도 감사거리를 찾아보면 감사할 것이 월등히 많이 있습니다.
한 두 가지 불평거리 때문에 그것들을 잊어버리면 안될 것입니다. 환경이 어떠하든지 감사의 심령으로 보면 그 심령에는 천국이 펼쳐집니다. 그러나 불평의 마음으로 보면 그 심령은 고통과 불행에 휩싸이게 됩니다.
우리가 어떤 심령을 가지고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행복이 좌우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