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가지 감사

세 가지 감사/ 빌1:12-18/ 2001-11-18

세 가지 감사
빌1:12-18





이런 말이 습니다. 노래는 부를 때까지 노래가 아니며, 종은 울릴 때까지 종이 아니고, 사랑은 표현할 때까지 사랑이 아니며, 복은 감사할 때까지 복이 아니다. 의미 있는 말이라 생각합니다.

복을 두고 생각해보십시다. 복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무엇인가 좋은 것을 가지거나 누릴 때 그것을 복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복이 되진 않습니다. 참된 복이 되기 위해서는 거기에 기쁨과 만족이 따라야 합니다. 왜 우리가 좋은 것을 가지기를 원합니까? 그것을 통해 기쁨을 얻고 만족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참된 기쁨과 만족은 거기에 감사가 따릅니다. 따라서 내가 소유한 것, 내가 누리는 것이 그것 주신 하나님께 감사가 우러나게 할 때 그것은 내게 있어서 복이 됩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것을 소유하였다하더라도 그것으로 인해 오히려 불평하게 된다면 어찌 그것을 복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복일 수가 없습니다. 적은 것을 가졌고 적은 것을 누렸다 할지라도 나름대로 거기에 감사와 기쁨이 넘칠 때 그것이 바로 참된 복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많은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우리는 복을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것을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해서 감사하지 않고 있습니다. 받은 복을 복되게 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알아야 할 것은 우리에게 감사가 없고 불평 불만이 가득할 때 우리의 마음은 점점 메말라지고 그 심령은 결국 점점 굳어집니다. 그러나 적은 것이라도 받을 바 은혜 감사하며 기뻐할 때 그것이 곧 복이요 그 심령은 점점 기름지며 풍성해집니다. 풍성한 하나님의 은혜의 세계 속을 살게 됩니다.

오늘은 감사절입니다. 저는 감사주일에 대해 감사주일은 하나님 주일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우리가 왜 어버이 주일을 지킵니다. 어버이 주일이 무엇입니까? 부모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는 주일입니다. 부모님 은혜는 항상 기억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기에 부모님 주일을 지켜서라도 부모님 은혜를 헤아립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항상 감사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쉽게 잊어버리기 감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감사주일을 지키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헤아리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감사주일은 하나님 주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감사절을 주셔서 감사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 하신 것 자체가 큰 은혜입니다. 우리는 오늘 이 감사주일을 통해 다시 한번 하나님 앞에 감사의 마음을 되찾아야겠습니다.

그러면 이제 생각해보십시다. 우리는 이 감사주일에 무엇을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겠습니까?

첫째는 받은 바에 대해 감사해야 합니다. 감사란 근본적으로 무엇인가 받았기에 거기에 대해 보답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감사의 기본원리 입니다.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큰 호의를 입었을 때 꼭 감사를 합니다. 자식이 부모에 대해서 감사하고 학생이 스승에 대해 감사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먼저 받았고 은혜를 입었기에 그 받은 바에 대해 감사로 보답을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많은 것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우리가 받은 것은 다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가진 것 누린 것 하나님으로부터 받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은혜를 너무 잘 잊어버립니다. 그래서 감사할 줄 모릅니다.

예수님께서 지상에 계실 때 한번은 나환자 열 사람을 고친 적이 있습니다. 저들은 나환자였기 때문에 가까이 가지 밀리 서서 예수님에게 우리를 긍휼히 여겨 달라고 부르짖었습니다. 주님은 저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열 사람의 나환자가 다 주님의 이 명령에 순종했습니다. 그래서 제사장에게 몸을 보이러 가는 도중에 모두 깨끗함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것은 분명히 열 사람이 나음을 입었는데 예수님께 돌아와 감사를 드린 사람은 그 중에 한 사람밖에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나환자들이 주님께 고쳐달라고 부르짖었을 때 어떤 마음이었겠습니까? 이 병만 고쳐주신다면 정말 감사하겠다고 생각지 않았겠습니까? 아마 병만 고쳐주시면 평생 은혜를 잊지 않겠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 고침을 받았을 때 감사를 한 사람은 열 명 중에 한 사람 뿐이었습니다. 알고 보면 이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는 이유는 은혜를 받지 못해서가 아닙니다. 은혜는 받았습니다. 문제는 은혜 받은 다음 너무 쉽게 잊어버린다는 것입니다. 얼마안가 잊어버립니다.

주님은 그 때에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했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고 탄식을 했습니다. 열 사람이 은혜를 입지 아니했느냐 그런데 아홉은 왜 감사하지 않느냐\" 감사하지 아니할 때 주님의 마음이 섭섭하다는 것을 보여주십니다. 감사하지 않을 때 주님 섭섭하게 생각하십니다. 하나님을 섭섭하게 해놓고 어떻게 더 큰 은총을 기대하며 더 큰 복을 받기 원하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바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무엇보다 먼저 구원의 은혜를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영원한 멸망 가운데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었으면 우리는 지금도 죄악 가운데 살다가 결국은 멸망을 당하고 말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우리에게 구원의 은총을 베푸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 되게 하셨고 아버지의 나라를 상속받게 하셨고 이 세상에서 구원받은 백성으로 살게 하셨습니다. 이 은혜를 우리의 모든 것을 다 하나님께 드려도 못다 갚을 엄청난 축복이요 은총입니다.

나아가 금년도 상반기 동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크신 은혜 베푸셨습니다. 건강을 주셨고 먹을 양식을 주셨습니다. 입을 옷, 마실 물을 주셨고 숨쉴 공기를 주셨습니다. 우리가 숨쉬는 공기를 값으로 계산한다면 어떻게 다 계산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거저 주셨습니다. 햇빛도 거저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 광야 같은 세상에서 보호해주셨고 인도해 주셨고 지켜주셨습니다. 시시때때로 필요한 은혜 내려 주셨습니다. 이 모든 것에 대해서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오늘은 하나님은 이 모든 은혜에 대해 공적으로 감사의 예배를 드리는 날입니다. 진실로 받은 바 은혜를 헤아려 감사하는 마음으로 감사의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받았으니 감사해야겠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만 분의 일이라도 보답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오늘 감사 주일에 우리는 무엇보다 먼저 받은 바 은혜를 깊이 헤아려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겠습니다.

그 다음 두 번째는 사랑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감사가 있어야 합니다. 감사의 또 하나의 차원은 사랑하기 때문에 드리는 감사입니다. 우리는 오늘 감사절에 사랑하기에 때문에 드리는 감사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사랑의 가장 뚜렷한 특징 중 하나가 주고 싶은 마음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는 헌신합니다. 아까운 것이 없습니다. 사랑과 희생은 나눌 수 없습니다. 여러분, 아마 O.헨리의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는 단편 소설을 읽어보셨을 줄 압니다. 미국에 델라와 짐이라는 부부가 살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피차에 사랑하지마는 너무 가난했습니다. 가진 것이라곤 부인 델라에게는 훌륭한 머리 칼 뿐이었고 남편 짐에게는 자기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시계 줄 없는 금시계뿐이었습니다. 크리스마스 전날, 부인 델라는 남편 짐을 위하여 선물을 사야겠는데 가진 돈이라고는 $1.87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델라는 나가서 그의 머리칼을 $20을 받고 팔아서 남편의 금 시계줄을 선물로 샀습니다.

남편 짐이 집에 돌아와 머리를 짤라버린 부인을 보고 깜짝 놀라서 발걸음을 멈추었습니다. 한참 후에 짐은 그의 아내를 위해서 준비한 선물을 손에 쥐어 주었습니다. 그 선물은 아내의 머리칼에 꽂을 보석 장식품이었습니다. 그것은 자기의 금시계를 팔아 마련한 선물이었습니다. 결국은 쓰지 못하는 선물들이었지만 남편과 아내는 사랑하는 상대방을 위해 자신의 가장 귀한 것을 아낌없이 기쁨으로 주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사랑은 이렇게 주는 것입니다. 시간도 주고, 물질도 주고, 마음도 줍니다. 내 모든 것을 아낌 없이 줍니다. 정신도 주고, 무조건 줍니다. 요즈음 현대인들은 이기주의적인 사고방식 속에서 사랑도 계산합니다. 내가 이 만큼 나를 사랑했으니 더는 이 만큼 나를 사랑해라. 이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이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아직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는 겁니다. 사랑은 무조건 적이요 사랑은 맹목적인 것입니다. 거저 주고싶고 주고 또 주어도 아까운 것이 없는 마음, 그것이 참 사랑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하나님께 좋은 것으로 드리고 싶습니다. 하나님에게 드리고 싶은 마음은 누가 뭐라도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척도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 드리는 일은 우리에게 가장 귀한 일이요 가장 아름다운 행위입니다.

보십시오. 한번은 우리 예수님 베다니 시몬의 집에서 식사를 하실 때 마리아가 아주 귀한 향유를 식사하시는 예수님 머리에 부었습니다. 사람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물론 유대인들이게는 귀한 손님이 왔을 때 머리에 기름을 부어 영접하는 관습이 있습니다. 그래서 시편 23 편에도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가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다\"는 고백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놀랐습니다. 그것은 그 기름이 너무나 비싼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자그만치 당시 노동자의 300일 임금에 해당되는 값이었습니다. 이 비싼 향유를 몽땅 예수님의 머리에 부어버렸습니다.

가롯 유다 같은 제자는 보고 화를 내면서 왜 이 비싼 것을 허비하느냐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주면 얼마나 효과적이겠느냐 불평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말씀했습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이 여자를 괴롭게 하느냐? 저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제자들이 볼 때는 허비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 비싼 돈을 머리에 붇고 발에 부어서 다 버린 것입니다. 머리에는 좀 싼 향유 조금만 부어도 되고 발이야 물로 씻는 것이 더 합리적이지요. 물로 씻어야 더 먼지도 잘 씻기지요. 이것이 현대인들의 사고 방식일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주님은 그 여자의 마음을 보셨습니다. 지금 이 여자는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무엇인지 주님께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정성껏 향유를 예비해 주님께 드린 것입니다. 주님은 이 마음을 기뻐 받으셨습니다. 그 마음이 귀하다는 것입니다. 주님에 대한 사랑은 가난한 자에 대한 구제 이상의 것입니다. 구제도 주님께 대한 사랑이 동기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동점심이나 명예심만 만족시킬 뿐 아무것도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주님에 대한 사랑입니다. 오늘 우리가 진정 주님을 사랑한다고 할 때 이 여인과 같이 가장 귀한 것으로 주님에게 드리고 싶은 마음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진정 하나님을 사랑하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의 마음 속에 하나님께 드리고 싶은 마음 있습니다. 오늘 이 감사의 날, 그 드리고 싶은 마음을 물질에 담아 하나님께 드리십시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드리는 감사가 풍성하기를 원하십니다.

마지막 한가지는 깨달음에서 드리는 감사입니다. 깨달음에서 드리는 감사, 이것은 최상의 감사요 가장 성숙한 감사입니다. 지금 내가 처한 형편과 여건은 어려움이지만 그 가운데 혹은 그 배후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를 깨닫고 드리는 감사를 말합니다.

본문의 바울의 경우를 보십시다. 바울은 지금 도마의 감옥에 갇혀있습니다. 바울은 유대인들 때문에 예루살렘에서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 때 여러 가지로 지혜를 모아서 자신의 무죄를 변명했습니다. 그러나 아무 소용이 없었고, 결국은 죄수의 몸으로 황제의 재판을 받기 위해 로마까지 왔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로마의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바울은 평소에 로마에 오고싶어 했습니다. 당시 로마는 세계의 중심이었습니다. 바울은 로마에 복음을 전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로마에 오기는 왔지만 죄수의 몸으로 와서 감옥에 갇혔습니다. 얼마나 답답하고 안타까웠겠습니까? 참으로 불평하고 원망할 수밖에 없는 괴로운 여건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깨달았습니다. 깨닫고 보니 감옥에 갇히므로 평소에는 쉽게 접근할 수 없는 로마의 시위대에게 자기는 지금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시위대가 자기를 지키고 있으니 자연스럽게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감옥에 갇히므로 오히려 로마권력의 핵심세력에게 복음을 전하게 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가 감옥에 들어감으로써 다른 사람들이 용기를 얻어서 열심히 담대한 마음으로 그리스도를 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나는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의 진보다 될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고 하면서 감사하며 기뻐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깨달음에서 오는 감사입니다. 자신은 비록 고통을 당하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역사에 손해나 실패가 아니고 진보임을 깨달았을 때 그는 그 순간 기쁨과 감사를 드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러한 깨달음에서 드리는 감사가 있어야 합니다. 눈앞에 부딪힌 현실은 분명히 어렵습니다. 순탄하지 않습니다. 괴로움이 있고 눈물이 있습니다. 슬픔도 있고 실패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배후에도 하나님의 섭리가 있고 손길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총이 그 괴로움과 고통 가운데도 있다는 말씀입니다.

송명희라는 여자가 있습니다. 여러분 중에서도 이 자매의 책을 읽은 분이 많이 계실 줄로 생각합니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잘못되어 인큐베이터에 자랐습니다. 의사로부터는 사형신고를 받았습니다. 돌이 되었을 때 선천성 뇌성 마비라는 판정을 받았습니다. 사고 능력은 괜찮았지만 육체는 발육을 하지 못했습니다. 얼굴은 찌그러지고 온 몸과 사지는 비틀어져 있으며 거동도 제대로 못합니다. 23살이 될 때까지 한 번도 방문 밖을 나가보지 못했습니다. 글을 한 자 쓰려면 마치 온몸을 오그려 피를 토해내듯이 글을 만들어 내어야 합니다. 종이는 방바닥에 펼쳐놓고 왼발로 종이가 움직이지 않도록 적습니다. 그리고는 온 몸을 방바닥에 눕히고는 종이를 향해 몸을 피틉니다. 왼쪽 둘째와 셋째 손가락 사이에 연필을 끼우고 글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여자가 그리스도를 만났습니다. 생이 변화되었습니다. 시를 썼습니다. 어느 목사님에게 그것이 발견되어 책이 되었습니다. 내용이 너무나 놀라운 감사와 찬송이 넘치고 있었습니다. 제가 이 자매의 간증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휠체어에 앉았는데 온 몸을 비틀어져 있었습니다. 말 한마디를 하려면 온 몸을 비틀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 입술에서 나오는 말들은 참으로 아름다웠습니다. 감사와 찬송이 넘치고 있었습니다.

여자로서는 누구보다도 존재가치를 상실한 사람입니다. 아니 인간으로서 존재가치를 상실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만나서 깨달고 보니 자신의 그 모든 고통과 슬픔 속에도 하나님의 은혜는 풍성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시예는 주님의 사랑과 주님의 은총이 아름다운 감동으로 넘쳐흐르고 있습니다. 자신에게 고통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자신에게는 몸에 고통을 주셨지만 다른 사람에게보다 더 큰 은혜를 주셨기에 공평하신 하나님이라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깨달음에서 드려지는 감사인 것입니다. 고통이 크면 은혜도 더 큰 법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어떤 환경에 있습니까? 어떤 처지에 있습니까? 괴롭고 어렵습니까? 그래서 별로 감사할 마음이 없으십니까? 깨달아야 합니다. 지금 내게 임한 하나님의 그 사랑의 손길을 깨달아야 합니다. 지금 내게 역사하시는 그 능력의 섭리를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서 감사해야 합니다.

17세기 전반기, 독일은 전쟁 중이었고 기아와 흑사병이 만연했습니다. 이 때 독일의 아이런버그 시에 마틴 링카르트는 목사님이 살고 있었습니다. 목사님이 살고 있던 도시도 전쟁으로 거의 폐허가 되었고 거기에 흑사병이 휩쓸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공포에 쌓여 있었습니다. 목사님은 많은 경우 하루에 장례식을 50번이나 치루었습니다. 가족들마저도 손수 장례식을 치루어야 했습니다. 하루 하루가 죽음과 파괴만 다가오는 소망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는 어둡고 절망적인 시기였습니다. 그러나 목사님은 그러한 시기에 66개의 찬송과 성곡을 썼습니다. 앞서 예배를 시작할 때 우리가 부른 20장. \"다 감사드리세\" 찬송가가 그 중 하나입니다. 슬픔이 어두움만이 그를 둘러싸고 있을 때 링카르트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다 감사드리세 온 맘을 주께 바쳐. 그 섭리 놀라와 온 세상 기뻐하네 . 예로부터 주신 복 한없는 그 사랑. 선물로 주시네 이제와 영원히.

오늘은 감사절입니다. 받은 바 은혜를 헤아려 감사하십시다. 주님 사랑하는 마음으로 마음과 정성을 드리십시다. 무엇보다 깨닫고 감사하십니다. 은혜는 넘치고 있습니다. 진실로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여러분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 감사의 예배를 드리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받은 바 은혜를 헤아릴 수 있게 하옵소서. 주님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장 좋은 것으로 드리게 하시고, 깨닫지 못한 은혜를 깨닫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이 한 시간 풍성한 감사로 하나님 앞에 영광 돌리는 저희들 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