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의 가치 
금은 그 가치를 잃지 않습니다.
찬양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에 있어서 찬양은 좋은 것과 축복의 상징일 뿐만 아니라
그것은 방어를 위한 우리의 중요한 무기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주무기입니다.
그것을 다시 재생하는데는 심사숙고하는 자세와 단호한 결단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꼭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지옥의 문들을 강타해야 하고, 조소와 반발을 각오해야 하며,
찬양을 회복하기 위해 개인적인 회개가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할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최상의 것 대신에 그보다 못한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되는데
그 최상의 것이 바로 찬양입니다.
그것을 잃은 손해는 누구라도 믿기 어려울 만큼 큰 것입니다.
그것을 회복하기만 하면 수많은 문제거리들이 해결될 것입니다.
찬양의 가치란 원수들이 교회로 하여금 그것을 되찾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그들의 모든 힘을 동원하여 방해할 만큼 굉장한 것입니다.
적당히 양보하여 타협하는 것은 근본적인 죄악인데
이렇게 되면 마귀의 간계에 꼼짝없이 붙잡히게 됩니다.
찬양은 우리의 무기창고에 있는 것 중에서도 적을 대항하는 데 쓰는 주된 무기입니다.
찬양은 곧 힘이요 힘은 찬양입니다.
찬양의 분위기 속에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증가함에 따라
그를 사랑하는 마음이 점점 새로워지고 뜨거워지게 됩니다.
- 잭 테일러 <찬양 중에 거하시는 하나님> /자료ⓒ창골산 봉서방

겸손함과 비굴함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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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시골에 겸손하고 부지런하여 칭찬이 자자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누구나 그를 좋아해서 일이 있을 때마다 그를 찾았습니다.
그 마을에 사는 한 소년도 그를 무척 좋아하면서 그의 가난함을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런데 몇 년 후 이 소년이 성년이 되어 다시 고향을 찾았을 때
그 사람은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의 태도는 예전과 달리 거만스러워졌고 별로 일도 하지 않으면서
마을을 어슬렁거렸습니다.
‘나도 이제 남 못지않게 돈이 있다’는 교만한 모습이었습니다.
가난한 시절에 그 사람이 겸손했던 것은 참 겸손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비굴함이었습니다.
그의 부지런함 역시 가난이 준 구차한 몸부림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절의 비결을 배웠노라”(빌 4:12)
바울이 이렇게 자족할 수 있었던 것처럼 기독교인의 품성은 환경을
초월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자료ⓒ창골산 봉서방 |

성경마침표 쉼표없는이유 
개역 성경이 개정된 시기와 한글 맞춤법에서 구두점이 공식적으로 쓰이게 된 데는 날짜 상의 차이가 있습니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개역 성경이 번역된 것은 1890년대이며, 이것이 오늘날과 같이 개정되어 확정된 것은 1950년대의 일입니다. 한글에서 마침표와 같은 구두점이 사용된 것은 1900년대 이후 단편 소설, 시 등에서 조금씩 나타나다가 신문들이 공식적으로 마침표를 사용하게 된 것이 1960년대 이후더군요.
즉, 한글 개역성경이 만들어지던 당시에는 마침표가 공식적으로 쓰이지 않았던 시기입니다. 그리고 그 당시에 책이나 신문에서 마침표를 사용하지 않은 이유 중에는 지면상의 이유도 있었다고 합니다. 종이를 아낀다는 거죠. 또한 개역성경은 헬라어를 원본으로 한 것이 아니라 1890년대에 이수정과 로스가 번역한 것을 토대로 개정한 것입니다. 즉, 차라리 현재 마침표를 사용하고 있는 현대어 버전의 성경들이 더 헬라어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영어 등 유럽어에서도 애시당초부터 구두점이 발달되어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헬라어만 유독 마침표가 없던 언어가 아니라는 거죠. 그러나 영문판 성경을 보면 쉼표, 마침표가 있습니다. 그리고 개역성경에는 없지만, 현대어, 표준새번역, 현대인의 성경, 공동번역, 그리고 킹제임스 성경에는 마침표가 있습니다.그러므로 결론적으로 이야기 하자면 개역성경이 나올 무렵 우리글에는 마침표 사용이 일반화되어 있지 않았다고 보면 ?求求?.
출처 ; bthebest박사님 글입니다. /자료ⓒ창골산 봉서방

자기부정 
1) 신앙생활에 있어서 자기부정은 필수조건이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존하고 자신을 그에게 맡기는 생활을 한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과 자기라는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기 위해 자기를 부인해야 한다
2)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의 가르침은 자기부정을 강조하고 있다.
이것은 그의 제자가 되는 가장 중요한 조건으로 언급되고 있다(마10:38이하, 눅
9:23-24, 14:27,33).
3)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생각을 버리고 육신의 욕망에서 벗어남으로써 하나님만이 자신 안에 살아서 지배하도록 해야 한다.
칼빈은 \"하나님이 행동하도록 자리를 내어드리기 위해 그리스도인은 그의 일을
쉬어야 한다\"고 말했다.
4) 그리스도인은 자기부정을 통하여 복을 받는다.
자기부정은 단순한 자기거부나 포기의 문제가 아니라 주님께 주권을 돌리는 복된 삶을 위한 결단이다.
이것은 자신의 모든 소원, 욕심까지도 포기하는 것이며, 이웃을 사랑하는 가운데서 나타나는 것이며, 이러한 자기부정의 능력은 그리스도 안에서만 있다.
자기부정에 대한 신약의 개념
1) 부정적 요소 - 자기 자신의 생명이나 재산 혹은 행복을 거절하는 것이다
(마19:16-30).
2) 긍정적 요소 - 그리스도께 자신을 맡기는 행동의 첫단계이다.
이는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한 필수적 조건이 된다.
그리스도인은 자기부정을 통하여 그의 인격을 실현할 수 있다.
하나님 앞에서의 자기부정은 이기적인 자기를 극복함으로써 진정한 자아를 찾을 수 있으며 더 높은 차원의 자기긍정의 삶으로 나아갈 수 있다. /자료ⓒ창골산 봉서방

순종 
1) 순종은 신앙생활의 중요한 원리이다.
무엇보다 순종은 효과적인 기도생활을 위해 필요하다(요일3:22).
2)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은 평안과 행복의 비결 가운데 하나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므로 그리스도인은 온전히
순종의 삶을 살아야 한다(삼상15:22, 참조;호6:6, 마9:13, 12:7, 막12:33).
3) 그리스도는 순종의 모범이셨다(요6:38-39, 히5:8).
그리스도의 정신은 순종의 정신이다.
성도는 그리스도의 순종을 본받는 가운데서 영적으로 성장하게 된다.
4)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순종은 완전한 순종이 아니다.
주님은 성도의 연약함과 실패의 가능성을 잘 아신다.
주님의 은혜와 사랑에 감사하는 순종의 자세를 살피신다.
하나님은 최선의 태도로 순종하는 것을 보시고 만족해 하신다(마25:21).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순종하기 위해 먼저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하고 하나님께 능력을
구하여 기쁜 마음으로 신실하게 순종해야 한다. /자료ⓒ창골산 봉서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