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의 새벽 - - -진정으로 부요한자 외 5편

6일의 새벽...진정으로 부요한 자외 5편\"|새벽설교
새생명축복

진정으로 부요한 자 외

 

1. 진정으로 부요한 자(눅 12:13-21)
2. 건강한 신앙인의 삶(살전 5:16-24)
3. 축복에 관한 5가지 원리(창 5:1-2)
4. 성경적 성공의 원리(출 13:17-22)
5. 좋은 인생 건축의 원리(마 7:24-27)
6. 말씀을 높이며 살아보십시오(신 6:4-15)

 

첫째날

진정으로 부요한 자

누가복음 12장 13-21절

 

본문의 비유는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라는 명칭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비유는 주님께서 탐심의 문제와 관련해서 들려준 비유입니다.
어떻게 이 비유를 하시게 되었는지 배경을 살펴볼까요?

어느 날 한 사람이 주님께 나와 자기 집안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합니다.
\"선생님! 내 형을 명해서 재산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
그때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너희의 재판관이나 물건 나누는 자가 아니다....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않다...\"

그러면서 본문의 비유를 들려줍니다.
한 부자가 많은 열매를 거두게 되어서 어떻게 할까 생각하다가(16-17절)
곡간을 헐고 크게 지어서 곡식을 쌓아 두겠다고 하고(18절),
이제는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고 결심했습니다(19절).

그때 하나님께서 \"어리석은 자여 오늘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라고 말씀하셨다.
이 어리석은 부자의 모습은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많이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의 모습이라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이 비유가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오늘은 두 가지만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내가 변해야 한다는 교훈

사람이 살면서 문제가 없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참된 알고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갖추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까?
오늘 본문에 나오는 동생처럼 해결하려고 합니다.
문제를 놓고 동생은 주님 앞에 나와서 묻기를 \"내가 어떻게 할까요?\"를 묻지 않고 \"저 사람을 움직여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합니다.

문제 해결의 방법이 이렇게 때문에 문제 해결이 어려워집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는 움직이지 않고 남만 움직이려고 합니다.
사실상 그런 자세 때문에 문제가 더욱 커지는 것을 우리는 보지 않습니까?

있는 자들은 없는 자들에게 \"좀 조용히 해 달라!\"고 합니다.
없는 자들은 있는 자들에게 \"좀 마음을 고치라!\"고 합니다.
그런 식으로 자신은 가만히 둔 채 남만 움직이려고 합니다.
자신에게 중요한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문제입니다

이러한 성향이 집단으로 가면 더욱 힘들어집니다.
그래서 집단 이기주의, 부처 이기주의, 지역 이기주의란 말이 나옵니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문제 해결을 위해 상대방의 변화만을 바랍니다.
이런 방법은 바람직하지 않고 해결을 더욱 요원하게 만듭니다.
남도 변해야 합니다. 그러나 내가 먼저 변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2. 탐심을 버려야 한다는 교훈

사람들이 하는 싸움의 가장 근본 원인은 대개 탐심 때문입니다.
이 탐심의 문제만 정리하면 정말 평안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싸우는 것을 보면 다른 이유를 대지만 대부분 이 탐심 문제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도 이 탐심을 없애는 문제와 관련된 교훈을 많이 하셨습니다.

복음서에는 예수님의 비유 말씀이 40개쯤 나오는데 그 중에서 16개의 비유가 돈과 소유에 관계되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하워드 핸드릭슨이라는 신학자는 그리스도께서는 천국과 지옥에 대한 말씀보다 돈에 대한 말씀을 더 많이 하셨다고 말한 적이 있었습니다.

왜 주님께서 그렇게 돈과 소유의 문제를 강조하셨을까요?
비전을 이루고 사역하는데 돈이 필요하셨기 때문에 그렇게 하셨을까요?
아닙니다. 탐심이 인간의 많은 문제의 근본 원인이고, 참 제자가 되는 문제와 관련해서 이 물질개념이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형제관계, 부부관계가 금가는 이유를 보십시오.
무엇이 가장 큰 문제입니까? 탐심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어떤 부부가 헤어지겠다고 해서 법원을 찾았습니다.
아내가 결혼선물로 준 시계가 롤렉스시계가 아니라고 첫날밤에 남편이 그 일로 친구 보기 민망하다고 투덜거리자 부부 사이에 시비가 붙어 끝내 1년만에 이혼 법정에 서게 된 것입니다.

판사도 하도 기가 막혀서 신부를 보고 말했습니다.
\"롤렉스시계에 생명을 걸고 행복을 거는 이런 남자하고 살아서 뭐하겠소?
내가 판사로서 할 말이 아니지만 그런 남편과는 헤어지는 것이 낫소.\"

또 이런 이야기도 있습니다.
하루는 링컨 대통령이 산책에서 두 아이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 귀여워 호두 세 개를 동생에게 주었습니다.
그 중에서 동생이 형에게 한 개를 주었습니다.
\"대통령이 내게 주었으니까 내가 두 개 가질래.\"
형이 말을 듣지 않고 고집을 부렸습니다. \"내가 형이니까 두 개 줘!\"

그 전까지 사이좋아 보이던 형제가 대통령 앞에서 싸우고 있었습니다.
링컨이 속으로 생각했다. \"괜히 호두를 주어서 싸움을 붙였군...\"
그때 장관 한 사람이 다가와 물었습니다. \"저 애들이 왜 싸웁니까?\"
대통령이 대답했습니다. \"저 애들은 지금 세계 문제로 싸우고 있소.\"

오늘날 세계 문제는 이 탐심의 문제입니다. 내가 조금 더 먹자는 것입니다.
물론 먹고 입는 것이 중요한 문제이긴 합니다.
그러나 이 문제가 해결되면 괜찮습니까?
아닙니다. 의식주 문제가 해결되면 상대적 빈곤이라는 더 큰 문제가 대두됩니다.
이 문제는 더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 문제 때문에 오늘날 우리 나라 사회가 심한 진통을 겪지 않습니까?

절대적 빈곤에서 오는 고통은 육신의 고통이지만 상대적 빈곤에서 오는 고통은 마음의 고통입니다.
절대적 빈곤에서는 몸이 죽고 상대적 빈곤에서는 기가 죽습니다.

그러나 상대적 빈곤의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어도 문제가 심각합니다.
정신적 빈곤, 도덕적 빈곤, 종교적 빈곤 등이 필수적으로 대두하기 때문입니다.
복지국가라고 하는 나라를 보십시오. 교회가 텅텅 비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잘 살아 보세만이 중요한 것이 아님을 인식해야 합니다.

우리가 정말 하나님 앞에 하나님 자녀답게 사는 것!
물질에 부요한 자 되기보다 하나님 앞에서 부요한 자 되는 것!
그것이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추구해야 할 진정한 부요의 모습일 것입니다.
그러한 믿음을 통해서 다툼이 없는 생애를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둘째날

건강한 신앙인의 삶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24절

 

살전 5장 16-18절 말씀은 우리가 잘 아는 말씀으로 삼행의 신앙을 강조합니다.
말씀은 간단하지만 실천은 굉장히 어려운 말씀이 바로 이 말씀입니다.
그냥 \"기뻐하라! 기도하라! 감사하라!\"고 했으면 괜찮은데 말씀 앞에 한결같이 어려운 조건들이 붙어 있습니다.

기뻐하되 \"항상 기뻐하라!\"고 합니다.
기도하되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한다.
감사하되 \"범사에 감사하라!\"고 합니다.
그렇게 조건이 붙어 있으니까 실천하기가 정말 힘듭니다.
그러나 실천하려고 노력하면 우리의 신앙의 길이는 놀랍도록 깊어질 것입니다.

먼저 우리는 항상 기뻐해야 합니다.
이 말은 기쁘지 않을 때도 기뻐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믿음이 성숙하지 못하면 실천할 수 없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는 특정한 시간에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영적으로 항상 긴장하고 살라는 말입니다.
기도하지 않고 방심하면 적이 쳐들어옵니다.

그리고 우리는 범사에 감사해야 합니다.
비참한 일을 당해도 감사하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19-22절 말씀은 삼불의 신앙이라는 명칭을 붙입니다.
23절 말씀은 사도 바울이 우리가 영육간에 강건하기를 원한다는 말씀인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렇게 만들어 가실 것이라고 확신합니다(24절).
이 말씀에는 우리의 신앙이 건강해지기를 원하는 사도 바울의 음성이 담겨 있습니다.

이 시간에는 건강한 신앙이 되기 위해서 필요한 구체적인 태도 몇 가지를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자신의 가치에 대한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사람의 가치는 소유와 용모에 달려있지 않습니다.
그가 얼마나 쓰임 받느냐에 따라 결정됩니다.

사람은 밥만 먹고 사는 것이 아닙니다. 보람을 먹고삽니다.
그래서 나의 행복이 나에게 있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필요로 할 때, 내 가치를 인정해 줄 때 진정한 행복을 느끼게 됩니다.

노처녀들은 걸핏하면 죽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일단 결혼해서 어린아이를 낳으면 그런 소리는 어디로 갔는지 사라져 버립니다.
왜 그럴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비록 세상에 사람이 많지만 자기가 낳은 아이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하고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는 사람은 자기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누구든 한 사람이라도 진정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내가 살아야 할 충분한 이유가 됩니다.
내 눈에는 내가 부족하고 불필요한 존재일지라도 내가 누군가에게는 꼭 필요한 존재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분명히 알아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내가 아무 쓸모 없는 존재라고 스스로 생각하는 그 순간, 내가 고개를 떨구고 있는 그 시간에도 나를 꼭 필요한 존재로 보시는 분이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그분은 바로 우리를 사랑하시고 구원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나는 내 마음대로 우연히 이 땅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필요에 따라 이 땅에 있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가치에 대해 항상 확신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2. 미래의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기다림의 철학! 이것이 필요합니다.
기다림이 없이 가치 있는 일이 이루어지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한 여인이 결혼 생활 10년만에 이혼했습니다.
자신의 생활이 더 이상 견딜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남편의 사랑이 식어지는 것 같더니 어느 날부터는 전화한통 없이 밤늦게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정성껏 저녁을 준비하는데 그런 수고가 소용이 없었습니다.

마침내 남편 기다리기에 지쳤습니다.
그래서 합의 이혼하고 이제는 혼자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참으로 이상했습니다. 저녁마다 마음이 허전합니다.
마치 누군가가 꼭 올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그처럼 자기도 모르게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이런 넋두리를 했습니다. \"그래도 기다릴 사람이 있을 때가 좋았다.\"
그래서 못된 남편일지라도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형편이 낫다고 말합니다.

어려울 때 부족한 것을 메꾸어 가려는 선택을 해야 하지, 부족하기 때문에 깨는 선택을 해서는 안됩니다.
자기의 현재 모습이 부족하지 않은 경우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런 상황에서 부족하다고 다 그 관계를 깨 버리면 남을 관계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현재의 모습에 대해 너무 실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미래를 즐길 수 있어야 합니다.
현재는 좀 괴로워도 괜찮다는 자세가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에게는 약속된 미래가 있기 때문입니다.

3. 여유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인간은 가끔 실패를 경험하고 사는 존재입니다.
그것을 인정하고 사는 길이 건강한 신앙인으로 사는 길입니다.
그런 여유가 없으면 꼭 잘나야 행복한 것 같고, 꼭 유별나야 행복한 것 같습니다.

꼭 유별나야만 행복해 하는 사람이 우리 주위에 있습니다.
어느 부인이 시장에 나가서 좋은 옷을 사 입었습니다.
색상이나 디자인이 특이했습니다.
입고 나갈 때마다 친구들이 칭찬을 했습니다. 기분이 참 좋았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에 보니 친구가 같은 옷을 입었습니다.
이후로는 기분이 상해서 다시는 그 옷을 입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은 영원히 불행한 사람이고, 삶을 힘들게 사는 사람입니다.

내가 좋은 옷을 입어 기쁘면 친구가 같은 옷을 입었을 때에는 더욱 기뻐해야 합니다.
이런 사람이라야 행복할 수 있습니다.
개성도 좋지만 개성이 잘못된 방향으로 흐르면 안됩니다.
살면서 여유를 가져야 건강한 신앙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4.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더 나아가서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특별히 하나님에 대한 사랑에 대한 오해가 없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경외함을 포함한다는 사실을 아십시오.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서워서 두려워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두려움과 사랑은 언제나 공존합니다.
예를 들어, 남편을 사랑하십니까?
남편을 사랑하면 남편의 마음에 아픔을 줄까봐 함부로 말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있어야 하는 사랑의 두려움입니다.
우리에게는 이와 같은 사랑으로 인한 조심스러움이 있어야 합니다.

심지어 자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녀를 사랑하십니까?
그러면 그의 마음에 상처를 줄까봐 함부로 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떤 의미에서 사랑과 두려움을 공존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할 때 참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됩니다.
형벌 때문에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요 사랑에서 오는 두려움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과의 사랑의 교류가 있다는 확신을 가지면 결코 신앙이 잘못되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게 됩니다.
이 사랑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항상 승리하는 여러분들이 되길 바랍니다

 


셋째날

축복에 관한 5가지 원리

창세기 5장 1-2절

 

오늘 본문 창세기 5장은 인간 창조 역사를 요약한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인간에 대해서 처음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복을 주신 일>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며 본문을 통해 축복에 관한 5가지 원리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하나님은 기본적으로 인간을 축복하기 원하심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시고 처음 하신 일이 인간을 축복하신 일이라는 말씀은 하나님은 우리가 복된 존재가 되기를 원하고 항상 복된 존재로 살기를 원하신다는 잘 나타내주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무슨 책입니까?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은 이야기가 열거된 책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안에서 인간은 복된 존재라는 사실을 알려 주는 책입니다.

2. 하나님의 축복은 인간의 행위를 뛰어넘는 것임

오늘 본문 말씀 보니까 인간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 위해서 특별히 한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창조하신 그 날에 그냥 복을 주셨습니다.

그 말은 하나님은 우리를 축복하실 때 우리의 행위를 보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행위는 보지 않아도 우리의 인격, 속마음, 태도와 자세는 틀림없이 보실 것입니다.

3. 하나님은 축복을 받는 뚜렷한 공식은 없음

하나님의 축복이 인간의 행위와 관련이 없다는 말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뚜렷한 공식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을 보면 그 공식을 꿰뚫고 있는 것처럼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축복이 어떤 모습으로 오는지에 관한 간단한 공식은 없습니다.
물론 성경을 통해서 축복의 원리는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언제, 어떤 방식으로 축복을 주실 지는 알 수 없습니다.

축복의 예측은 가능하지만 축복은 항상 예측을 뛰어넘는 것입니다.
그처럼 하나님의 축복이란 우리의 생각 이상으로 큰 것입니다.
성경에는 축복을 받은 수많은 인물들이 나옵니다.
그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대장군 여호수아는 여호수아 나름대로 축복 받은 원리가 있고, 반대로 소심한 디모데는 디모데 나름대로 축복 받은 원리가 있습니다.
베드로와 다니엘도 정 반대의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각각 그들 나름대로의 축복 받은 원리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이 원리대로 이렇게 하면 하나님 축복하셔야 합니다.\"라는 그러한 자세로 하나님 앞에 서고자 하는 태도는 잘못된 태도입니다.
항상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서서 은혜를 사모하는 자세를 가지되 하나님의 뜻과 처분에 모든 것을 맡기겠다는 각오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축복하실 때 우리가 무엇인가를 취하려는 자세를 하나님 앞에 서는 것보다
우리가 온전히 맡기는 자세를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을 더 원하십니다.

4. 하나님의 축복은 물질적인 것이 아니고 인격적인 것임

오늘 본문에 나오는 2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삶은 물질적인 축복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2절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삶은 창조주 하나님이 각 사람과 친밀한 관계를 맺으시고 아담과 하와를 지으셨을 때의 모습으로 회복시키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즉 에덴의 삶을 회복시키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물론 에덴에는 물질적 축복, 환경적 축복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에덴의 진정한 축복은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삶은 영혼 차원의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겉으로 보이는 삶에서 축복을 찾지 않고, 보이지 않는 삶의 이면에서 축복을 찾는 것이 바람직한 성경적 축복입니다.

축복의 문제를 생각할 때 우리는 항상 이 원리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신앙에 필연적으로 의심이 생기게 됩니다.
\"왜 우리가 믿은 대로 되지 않을까?\"라는 질문을 하면서 가끔 믿는다는 것이 공허한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왜 그런 의문이 생기게 됩니까?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삶이 영혼 차원의 삶이라는 사실을 가끔 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진정으로 축복하시는 부분은 영혼의 부분, 인격적인 부분임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5. 축복된 존재에게도 시련은 찾아옴

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시련을 허락하십니까?
영혼으로 사는 삶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가르쳐 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때에야 우리는 살아가면서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것이라는 점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어려움을 통해서 항상 소중한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그때서야 보이지 않는 삶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에 아름다운 영혼의 대화가 시작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련도 참으로 나에게 고마운 것이라고 느껴야 합니다.
왜냐하면 시련은 영혼의 문제를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가장 필요한 사람은 똑똑한 사람이나 재능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 깊이가 있는 사람, 영혼의 차원에서 사는 사람입니다.
영혼에 하나님의 임재로 가득 찬 삶이 결국 가장 축복된 삶입니다.
이런 삶이 여러분들의 신앙생활에 넘쳐나기를 바랍니다.

 

 

넷째날

성경적 성공의 원리

 

출애굽기 13장 17-22절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는 장면의 처음 부분입니다.
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하는 장면을 보면 몇 가지 성경적인 성공의 원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1. 참된 성공을 위해서는 애굽을 떠나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정말 성공하기를 원합니다.
그것을 위해 제일 먼저 필요한 것이 애굽을 떠나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성공적 힘이 우리 하나님을 위해서 사용되기를 원하지 애굽을 위해서 사용되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난관이 있을지라도 애굽으로 돌아가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염려하시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그것입니다.
애굽으로 돌아가는 순간 우리의 성공은 별로 의미가 없고 전체적으로 보면 오히려 화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늘 본문 17절 말씀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가장 염려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됩니다.
\"바로가 백성을 보낸 후에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울지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전쟁을 보면 뉘우쳐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
여기서 \'블레셋 사람의 땅\'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말합니다.
가나안 땅으로 가는 길은 가까울지라도 하나님께서 그 길로 인도하지 않으신 이유는 가나안 땅으로 가는 길이 일종의 전쟁인데 그 전쟁을 보고 뉘우쳐 \'차라리 애굽으로 돌아가자!\'라는 말이 나올까봐 그 길로 인도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하나님께서 가장 염려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염려를 우리가 정말로 절실히 느낀다면 어떤 일이 있어도 애굽으로 돌아가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끔 신앙생활이 힘들다는 것을 느낍니다.
믿음이 우리들에게 많은 유익을 주었다는 것은 알지만 믿음 생활이 전쟁이고 무거운 짐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절대로 애굽을 바라보아서는 안됩니다.

때로 교회 생활을 하면서도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만나서 실망할 때도 종종 있습니다.
그러나 \"그래도 교회가 좋다!\"라고 해야지 세상으로 향해서는 안됩니다.

가장 근본적인 성공은 애굽에서 가나안으로 가는 것입니다.
이 근본이 흔들려 버리면 다른 성공은 정말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는 성공의 근본적인 개념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성공은 우리가 부자가 되는 것이나 승진하는 것이나 성취하는 것과 같은 올라가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쁜 상황으로부터 탈출하는 것! 그것이 보다 바른 성경적인 성공의 의미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성공을 \'사다리 올라가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적인 성공의 개념은 \'비상구로 탈출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자녀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사실상 우리의 삶에 있어서 이 일처럼 성공적인 일은 없습니다.
이처럼 거지에서 왕자로 신분이 변하는 것이 성공이지 거지에서 부자로 위치가 상승하는 것이 참된 의미의 성공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애굽으로 돌아가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2. 성공을 위해 가는 길에는 반드시 시련이 있습니다.

그 시련은 참으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납니다.
애굽과 같은 세상은 계속 유혹하는 것으로 우리를 시험하고, 어떤 사람들은 시기하고 질투함으로 우리를 시험합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가나안 정탐꾼처럼 부정적인 보고를 하면서 용기는 주지 않고 항상 두려움을 주려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문제는 두려움입니다.
하나님은 두려워하는 자에게 성공의 문을 열지 않습니다.
그래서 먼저 두려움을 없애는 연단 과정을 허락하십니다.

그런데 두려움을 없애는 연단 과정에는 반드시 희생이 뒤따릅니다.
18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하나님이 홍해의 광야 길로 돌려 백성을 인도하시매...\"
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 길로 돌게 했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광야 40년 시련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초한 것입니다.
만약 그들에게 두려움이 없었고, 가나안의 성공을 취할 수 있다는 건전한 자아상을 가지고 있었으면 그 시련은 없든지 그 시련의 시간이 상당히 단축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공을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건전한 자아상을 가지는 것입니다.
내가 나를 성공적인 사람으로 보고 믿고 행동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성공을 위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한 건전한 자아상이 있으면 성공의 길에 다가오는 시련은 크게 줄어들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노력하고 힘써도 자기가 자기를 인정하지 않으면 절대로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없습니다.
우리는 마음속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그대로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자신이 메뚜기라고 생각하면 계속 광야에 머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긍정적인 자아상을 회복하면 우리는 광야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3. 자녀의 시련 중에는 하나님이 반드시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자녀들을 훈련하실 때 광야로 돌게 하시고 그냥 내버리실까요?
아닙니다. 잠시의 훈련 과정으로 광야의 기간을 허락하셨기 때문에 그 기간 중에서는 더욱 하나님이 자상하게 인도해 주십니다.

오늘 본문 21, 22절 말씀이 바로 그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불기둥과 구름 기둥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친히 인도하십니다.
여기에서 성도의 시련은 하나님의 외면이 아니라 성공으로 나아가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훈련임을 다시 깨닫게 됩니다.

특히 무엇을 위한 훈련입니까?
건전한 자아상을 가지게 하고 능력과 지혜와 용기를 주기 위한 훈련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그런 훈련을 꼭 하셔야 합니까?
나쁜 자아상으로 형성된 두려움은 가장 우리의 성공을 방해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무슨 일을 할 때 왜 포기합니까?
문제 때문에 포기하는 것보다 두려움 때문에 포기합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공을 믿지 않습니다.
성공을 꿈꾸면서도 통계적으로 95%가 믿지 않는다는 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성공을 시도하지만 성공을 믿는 사람은 극히 적습니다.

이 시간에 우리도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어떤 상황에서도 용기와 자신감을 잃지 말고 애굽을 쳐다보지 말고 성공적인 인생을 사는 여러분들이 되길 바랍니다.

 

 


다섯째날 

좋은 인생 건축의 원리

 

마태복음 7장 24-27절

미신을 믿는 사람은 운명과 팔자를 믿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삶이 운명적으로 다 결정이 되었다고 믿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책임적으로 인생을 만들어가기보다는 미래가 어떻게 결정되었느냐를 아는 것에 더 관심을 기울입니다.
그래서 삶의 색채가 항상 수동적이고, 마이너스적이고, 결국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는 가능성이 희박해집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습니다.
그 약속이 너무 뚜렷하기에 \"예정되었다!\"라고 믿는 사람이 있지만 그 예정이란 결정되었다는 예정이 아니고 약속되었다는 예정입니다.

그 하나님의 약속을 넉넉한 기초로 삼아서 말씀을 따라 하루하루의 삶을 건축하는 것이 참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미신의 운명론과 기독교의 예정론은 완전히 다릅니다.
운명론은 \"이미 끝났기 때문에 발버둥치지 말라!\"는 말이고 예정론은 \"앞날의 승리가 약속되었기 때문에 인생을 멋있게 건축해 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집을 다 지어서 나누어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자신의 집을 건축할 수 있는 능력과 자재를 주신 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과 자재를 최대한 활용하면 누구나 멋진 인생의 집을 지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좋은 인생의 집을 건축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오늘 본문을 통해서 4가지가 필요함을 알 수 있습니다.

1. 좋은 설계도가 필요합니다.

이것은 가장 기본적인 것입니다.
건축할 때 설계가 좋아야
1) 더 안전하고 2) 돈이 덜 들고, 3) 더 효율적이고 4) 더 아름답게 됩니다.

인생의 집을 짓는데 있어서도 설계도가 필요합니다.
그 설계도는 무엇일까요? 바로 하나님 말씀입니다.

본문 24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여기서 \'이 말\'은 \'주님께서 하신 말씀\'을 의미합니다.
크게 확대하면 \'이 말\'은 \'하나님 말씀\'을 의미합니다.

성경 말씀을 정말 한 점도 틀리지 않는 하나님 말씀으로 보고 강단에서 선포되는 말씀을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말씀으로 듣는다면 우리의 인생은 확실히 달라질 것입니다.

2. 좋은 시공자가 필요합니다.

좋은 시공자가 되기 위해서 필요한 두 가지 기본적인 것이 있습니다.
하나는 설계대로 할 수 있는 실력이 필요하고, 또 하나는 설계대로 하려고 하는 정직함이 필요합니다.

실력이 없으면 보이지 않는 데서 얼마나 차질이 있습니까?
나중에는 보수하고 관리하는 것이 돈이 더 들게 됩니다.
그러나 실력이 있어도 정직하게 하지 않으면 돈이 더 들든지, 아니면 싼 재료를 써서 마찬가지로 얼마 지나지 않아 곳곳에서 수리할 부분이 생기게 됩니다.

그런데 인생의 집을 건축할 때도 좋은 시공자가 필요합니다.
누가 인생의 집을 시공하는 시공자일까요?
인생의 집을 시공하는 시공자는 바로 자신입니다.

그런데 자신 안에는 두 명의 시공자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설계대로 꼼꼼하고 정직하게 최선을 다하려는 시공자가 있고 대충대충 하고, 편한 대로 하고, 보이는 부분만 그럴듯하게 하려는 시공자가 있습니다.
그 중에서 어느 시공업자를 선택하는가 하는 것은 전적으로 자기 자신에 달려 있습니다.

대개의 경우 인생 건축이 망하는 이유는 설계도 때문이 아니라 자기라는 시공자가 좋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그대로 실천하려고 하지 않고 힘들면 안하고, 부담되면 빼고, 제 멋대로 건축을 하기 때문입니다.

본문 24절 말씀을 다시 한 번 보십시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설계도대로 그대로 행하는 자는 튼튼한 집을 지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힘들고 어려워도 하나님 말씀대로 시공하는 분들이 되십시오.
그러면 정말 쓸모 있는 인생의 집을 건축하게 될 것입니다.

3. 좋은 땅이 필요합니다.

설계가 좋고 시공자가 좋아도 땅이 진흙땅이면 안됩니다.
튼튼한 반석 위에 집을 지어야 합니다.
그래서 먼저 건축을 할 때는 항상 기초를 먼저 다집니다.

그런데 인생 건축에 있어서도 기초가 중요한데
그 기초는 무엇이 되어야 합니까? 반석이 되어야 합니다.
반석은 누구를 상징합니까? 바로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그러면 24절에 나오는 \'반석 위에 집을 짓는다\'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예수님의 성품과 예수님의 삶을 닮아야 한다는 말도 되지만 십자가에 죽으시기까지 나를 사랑하셨던 그 사랑을 확신하고 예수님을 정말 영접하고 예수님 안에서 사는 삶을 말합니다.

만약 이 예수님의 은혜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말씀을 듣고 행하는 것 자체만으로는 율법주의가 되고 우리의 삶은 온전한 자유인의 삶을 누리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4. 좋은 감리사가 필요합니다.

감리사는 건축한 후에 잘 지어졌는가를 감독하는 사람입니다.
우리에게는 정말 좋은 감리사가 계신데, 그분은 누구입니까?
바로 우리에게 사명을 주시고 우리를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이십니다.

건축이 다 끝나면 감리사가 감리하고 준공검사를 맡듯이 앞으로 하나님의 준공검사가 있게 될 것입니다.
적당히 시공한 것은 준공검사에 합격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반석 위에서 설계대로 시공하려고 노력한 사람은 합격할 것입니다.

예수 안에서 사랑 받는 자의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분들이 다 되어 하나님의 준공검사에 능히 합격하는 여러분들이 되길 바랍니다.

 

 

여섯째날

말씀을 높이며 살아보십시오

 


신명기 6장 4-15절

축복이 과연 무엇일까요?
많은 사람들이 축복을 원하지만 이 대답은 잘 못합니다.

축복은 욕구를 만족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물욕, 식욕, 성욕, 명예욕, 지식욕과 같은 그러한 욕구는 사실상 이 땅에서 만족시킬 수 없습니다.
바다는 메꿀 수 있어도 사람의 욕심은 메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욕구의 일시적 충족은 축복이 아닙니다.
그러면 기독교에서 말하는 축복은 무엇입니까?
영혼의 깊은 만족감! 이것이 바로 축복입니다.
어떻게 우리는 이러한 축복을 얻을 수 있습니까?

오늘 본문에서는 축복을 얻는 몇 가지 비결을 교훈해 줍니다.
축복을 얻기 위해서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본문 4-5절 말씀을 보십시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이신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이 본문 말씀은 하나님을 죽도록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사랑 받기보다 오히려 사랑해야 축복을 느끼게 됩니다.
인간은 무엇인가를 사랑해야 사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무엇을 사랑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과연 무엇을 사랑해야 합니까?
우리가 정말 축복된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4절 말씀을 다시 한 번 보십시오. .
4절 말씀을 보면 우리의 사랑의 대상이신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잘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1) 우리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그 누구의 하나님도 아닌 우리의 하나님입니다.
소유격인 \'우리의\' 하나님이라는 말은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하나님이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 모신 우리는 절대로 고독감을 느껴서는 안됩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모신 우리는 절대로 가난하다는 느낌을 가져서는 안됩니다.
하나님보다 더 큰 재산이 이 세상에 어디에 있겠습니까?

2) 오직 하나인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4절의 \'오직 하나\'라는 말은 \'한분\'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이 세상에서 하나님과 비교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말입니다.

3)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15절 말씀을 보십시오.
\"너희 중에 계신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신즉...\"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다른 것을 하나님보다 더 추구하는 것을 싫어하십니다.
우리가 세상의 즐거움을 위해 하나님 멀리하는 것도 싫어하시고, 우리 자신을 하나님보다 더 앞세우는 것도 싫어하십니다.
자신에게 집중하면 실망하고 실패하고 망하게 됩니다.
그러나 진정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는 반드시 하나님이 일으켜 세우십니다.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해 보십시오.
그러한 삶 자체가 정말 축복된 삶입니다.

2. 하나님 말씀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6절 말씀을 보십시오.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말씀을 하나님 말씀으르 듣고 마음판에 새기라는 말입니다.

7-9절 말씀을 보십시오.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하나님 말씀을 생활의 일부로 삼아 가까이 하라는 말입니다.

왜 이렇게 성경에서 자주 말씀의 중요성을 강조합니까?
말씀이 중요하다라고 배웠으면서 실제적으로는 정말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의 토대가 말씀인 줄 알면서 많은 사람들이 감정과 기분의 토대 위에서 신앙생활을 하기 때문입니다.

감정과 기분이 얼마나 자주 변합니까?
많은 사람들의 신앙이 자주 흔들리는 이유는 감정과 기분의 토대 위에 신앙생활을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과 말씀 위에서 인생을 건축해야 합니다.

그런데 말씀을 가까이 하는 삶을 가장 잘 드러내는 것이 있습니다.
성경공부하는 것이나 매일 말씀을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에는 지식욕, 과시욕이 틈탈 수도 있고 의무적, 형식적인 모습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씀을 가까이 하는 삶의 가장 진실한 모습 중의 하나는 자녀들에게 정말 하나님 말씀 소중한 것을 일깨우고 자녀들에게 하나님 말씀이 어떤 공부보다 중요한 것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만약 그것이 없다면 우리는 말씀생활을 다시 한 번 진지하게 성찰하며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7절 말씀처럼 말씀을 자녀에게 가르치라는 말씀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녀를 위해서 가장 소중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들에게 남겨주는 것입니다.
링컨 대통령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최고이자 최대의 선물이다.\"

자녀들에게 남겨 주어야 할 가장 소중한 것은 하나님 말씀이고, 그렇게 사는 것은 우리가 과연 하나님 말씀을 가까이 하는가를 진단할 수 있는 시금석과 같은 태도입니다.

8-9절 말씀을 다시 한 번 보십시오.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말씀을 가까이 하며 살라는 생생한 권고가 있습니다.

현대는 불안한 시대입니다. 예측이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때일수록 더욱 하나님 말씀과 가까워져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하나님 말씀 안에서 참 안식과 평안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말씀을 가까이 하라는 말은 최종적으로 하나님 말씀대로 실천하며 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신데, 우리는 <원망과 짜증>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말씀은 장식처럼 달고 다니는 것이 아니고 실천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진정 하나님 말씀으로 높이고 살면 그 축복의 말씀이 말씀대로 역사하는 놀라운 은총이 있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말씀을 가까이 함으로 더욱 하나님의 축복된 존재가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