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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심은대로 거두리라
본문 :갈 6:6-10
심은것이 있어야 거둡니다. 많이 심으면 많이 거두고 적게 심으면 적게 거둡니다. 바울 사도는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리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던지 그대로 거두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첫째, 어떤 종류를 심느냐에 따라 심은대로 거둡니다.
무엇을 심든지 심은 대로 거둡니다. 콩을 심으면 콩이 납니다. 마찬가지로 찬송을 심으면 즐거움이 납니다. 또한 기도를 심으면 능력이 나옵니다. 물질은 심은 만큼 주님의 축복을 거둡니다. 새벽기도를 심으면 건강을 거둡니다. 충성봉사를 심으면 형통의 축복을 거둡니다.
둘째, 얼마만큼 심느냐에 따라서 심은대로 거둡니다.
많이 심으면 많이 거둡니다. 조금 심으면 조금 거둡니다. 안 심으면 못 거둡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많이 거두기를 원하면서 적게 심거나, 심지어 전혀 심지 않고도 많이 거두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적게 심고 많이 거두려는 사람을 사기꾼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심지 않고 많이 거두려는 사람은 불한당이라고 부릅니다.
셋째, 어떻게 심느냐에 따라 심은대로 거둡니다.
같은 종류, 같은 양을 심었다 해도 심는 방법에 따라 거두어들이는 것이 다릅니다. 아무렇게나 심었느냐, 정성을 다해 심었느냐에 따라 거두는 것도 엄청난 차이가 납니다. 귀찮아하며 심었느냐, 뜨거운 사랑으로 심었느냐에 따라 거두어 들이는 분량의 차이가 큰 것입니다.
넷째, 어디에다 심느냐에 따라 심은대로 거둡니다.
이 밭에 심고 저 밭에서 거둘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거두려 한다면 하나님께 심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입니다. 오병이어를 가진 어린 아이가 오병이어를 주께 심었더니 5천명이 넘는 많은 사람이 배불리 먹었을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도 배불리 먹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시편 기자는 말하기를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라고 말합니다. 정년 단을 기쁨으로 거두는 2009년 새해의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제목: 하나님 영광 위한 생활
본문: 고전 10:31-33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있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향하여 세상을 살아가는 삶의 가장 고상한 목적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첫째, 하나님의 선하시고 의로우신 뜻을 분별해서 그의 뜻에 맞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입술로만 주여 할 것이 아니라 생활로 하나님의 정의를 택하고 옳은 것을 행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창조의 주인이시고 복의 근원이시라는 것을 믿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뜻이 무엇인지 구분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첫 번째 태도입니다. 짧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부모의 이름을 더럽히지 않아야 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합니다. 주님의 뜻을 분별하며 그 뜻에 순종함으로 하나님이 영광 받으실 수 있도록 행동하시고 봉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둘째, 죄에 빠지거나 실수를 범했을 때 회개하고 돌이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죄인이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원하십니다. 누가복음 15장 7절에 죄인 하나가 회개하고 돌아오면 회개할 것 없는 아흔 아홉 의인보다 더 기뻐하리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면서 하나님께 회개하고 돌아오는 일을 하나님은 무엇보다 기뻐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입니다.
셋째, 많은 사람들에게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유익을 주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다 자기 중심적입니다. 내 중심적이라는 것은 불완전합니다. 다 내 뜻대로 되면 천 명 만 명 요구를 다 맞추는 것이 불가능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 일하면 어떤 일이든 다 할 수 있습니다. 주님 중심으로 모든 것을 생각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주는 그리스도인이 될 때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구원받도록, 하나님의 축복의 사람으로 살 수 있도록 유익하게 돕는 그런 섬김의 자세, 나눔의 자세를 가질 때 하나님께 영광이 될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적어도 하나님의 정의와 선과 사랑에 가깝도록, 그래서 많은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기 위해 힘쓰는 그리스도인은 밀알이요, 소금이요, 빛이요, 향기와 같은 삶을 사는 자들입니다. 헬라인에게나 유대인에게나 이방인에게나 모든 믿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가지고 복음을 전하면서 사랑을 실천할 때 하나님께 영광이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가 한 알의 밀알이 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 힘쓰는 성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제목: 감사의 축복
성경: 골 2:6-7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40년을 보낼 때 주리지 않는 여정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원망과 불평만 했던 것을 보면 감사를 모르는 목이 곧은 백성이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은혜로 구원받은 백성은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고 명령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왜 여기서 감사를 이토록 강조하고 있을까요? 그것은 한마디로 감사에는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할 때 우리에게 어떤 축복이 되는지를 생각해 봅니다.
첫째, 감사는 건강한 신앙인들의 기준이 됩니다. 영적으로 병든 자의 모습을 보면 믿음 가운데 감사를 잊고 살아갑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아무리 많은 것을 축복으로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감사는 커녕 불평만 늘어놓게 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은혜를 많이 입었어도 도무지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면 그 마음 자체가 메마른 마음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불평과 원망보다는 하나님이 주신 은혜 앞에 풍성한 감사의 신앙을 삶으로 건강한 믿음을 소유해 나가시기 바랍니다.
둘째, 감사는 기도응답의 지름길이 됩니다.
바울은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4:6)고 하며 힘들고 어려운 가운데서도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 바라고 감사하며 기도하는 자의 음성을 하나님께서는 속히 응답해 주신다는 것을 권면합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답답하고 괴로워도 감사의 기도로 아뢰면 좋으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형편과 사정을 다 아시고 구하지 않은 것까지도 넉넉하게 응답해 주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셋째, 감사는 행복을 실어오는 수레이며 축복의 열쇠입니다.
시편 100편에서는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할지어다”(4절)라고 노래합니다. 이 말씀은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성전에 들어오는 자는 행복한 사람이며 행복한 성도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은혜를 감사로 연결지어갈 때 하나님은 우리가 드리는 감사의 수레에 더 많은 행복을 얻게 되는 축복의 열쇠가 되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제목 : 기도로 해결하라
성경: 눅 11:9-13
예수님의 생애를 기억하면 친히 제자들에게 기도의 삶을 보여주셨을 뿐만 아니라 기도의 언어를 듣게 하시고 기도의 방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오늘은 꿈과 비전을 향해 달려가는 우리들이 왜 기도해야 하는지를 기억하며 함께 은혜 나누길 원합니다.
첫째, 기도는 구원받은 백성들의 믿음에 대한 고백이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구원받은 백성들이 가진 믿음의 확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구원받은 자녀로 칭함을 받은 증거가 바로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며 대화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아버지 하나님은 자녀된 우리가 기도하는 것을 가장 기뻐하시고 응답해 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그러므로 나 같은 것을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신 믿음의 확신으로 영원한 구원의 소망을 두고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기도는 문제를 해결받는 비결이기 때문입니다.
본문에 “문을 두드리라”는 말씀은 천국문에 가까이 나아가서 문을 두드린다는 신비한 의미가 들어있습니다. 그리고 굳게 닫힌 천국문을 여는 열쇠가 바로 기도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기도해야 하늘의 문이 열리고 하늘 문이 열려야 이 땅의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녀들이 문제를 놓고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께 간구할 때 좋으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의 모든 소원을 이루어 주실 줄 믿고 모든 문제를 기도함으로 해결받게 되기를 바랍니다.
셋째, 기도할 때에 능력을 받고 기적을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본문에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자녀들에게 좋은 것을 주시기 원하고 계신다는 것을 보면 분명 기도하는 자가 하나님을 만나고 기도하는 자리에서 은혜를 받고 능력을 받게 되는 줄 믿습니다. 그 가운데 기도하는 자가 받을 최고의 선물은 바로 성령의 능력인 것입니다. 구하는 자에게 주시고 찾는 자에게 찾게 하시고 두드리는 자에게 열어 하나님의 역사를 보게 하시는 최고의 은혜가 바로 성령의 능력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가 기도함으로 성령의 능력을 받아 2008년을 향한 새로운 꿈과 비전을 향해 힘차게 달려가시기 바랍니다.
제목: 잃은 것을 찾는 비유
본문: 눅 15:3-10
예수님의 비유 말씀 가운데에는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잃어버린 동전, 잃어버린 양, 그리고 잃어버린 아들에 대한 비유는 모두 다 잃어 버렸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세 가지는 서로 다른 특성도 가지고 있는데 잃어버린 동전은 물질, 잃어버린 양은 짐승, 잃어버린 아들은 사람을 가리킨다는 특성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비유들을 통해 주시는 예수님의 가르침은 무엇입니까?
첫째, 잃어버렸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불행한 존재가 되는 것인가를 가르쳐줍니다.
잃어버려진 것들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제 자리를 떠난 존재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잃어버린 양은 잔잔한 시냇가로 인도할 목자를 떠났습니다. 잃어버린 양에게는 안전이 없고 쉼이 없고 가야할 목적지가 없습니다. 사람은 자신의 삶의 자리를 떠나서는 안 됩니다. 삶의 자리를 떠나는 사람은 모든 것을 가진 것 같지만 불안합니다. 그 안에 평안이 없습니다. 잃어버린 동전은 어떻습니까? 어디에다 잃어버렸는지 모른 채 방치된 동전은 그 가치를 상실하게 됩니다. 동전은 주인의 주머니 속에 있어야만 그 가치만큼 쓰일 수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잃어버린 아들은 어떻습니까? 부모와의 관계가 상실되었습니다. 물질 때문에, 쾌락 때문에, 유혹 때문에 자신의 자리를 떠나게 될 때 우리는 그 본연의 관계성마저 상실하게 됩니다. 오늘 우리는 영적 도덕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잃어버린 존재가 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의 있어야 할 그 자리에서 흔들리지 않는 모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둘째, 잃어버린 것을 찾는 사랑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줍니다.
동전을 잃어버린 여자는 등불을 켜고 온 집을 쓸며 온 집안을 청소하여 결국은 잃어버렸던 동전을 찾아냈습니다. 우리는 이 여자와 같이 잃어버린 자들을 찾아 수고하고 헌신하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복음을 선포한 것으로만 전도가 끝났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자기의 발로 찾아올 수 없는 구렁텅이에 빠진 양떼를 목자가 찾아가서 어깨에 메고 돌아왔듯이, 우리 교회는 그들이 복음의 말씀을 받아 하나님의 진리대로 살 수 있도록 그들에게 사랑과 구제와 봉사를 행해야 하겠습니다. 복음 선포도 훌륭하지만 그들을 주님 곁으로 어깨에 메고 돌아와 상처를 싸매어 주고 위로해주는 봉사, 구제가 함께 이루어져야 합니다. 찾는 사랑, 찾아가는 사랑, 참고 용납하는 사랑, 그리고 기다리는 사랑으로 한 사람 한 사람을 하나님 앞에 돌아오도록 봉사하며 사랑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중히 여기는 하나님의 사랑을 잊지 않고 모든 잃어버린 사람들, 그 있어야할 자리를 떠나 방황하는 모든 이들에게 하나님의 복음과 사랑을 전해야 하겠습니다. 모든 잃어버려진 것들이 그 본래의 자리에 돌아와 그 가치가 회복되고 위로 받는 일을 위해 함께 힘쓰시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제목: 아버지의 소원
성경:눅 15:11-32
본문은 집 나간 둘째 아들을 애타게 찾고 있는 아버지의 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소중한 자식인데 그가 집에 돌아오기 전까지 부모는 단 하루도 편히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아버지의 마음을 알아야 합니다. 아버지의 마음이 어떻습니까?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22-23절)고 했습니다. 그 자식이 어떤 자식이었습니까? “아들이 가로되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21절) 남들은 그런 자식도 자식이냐고 할지 모르나 아버지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저 아버지께 돌아온 것 자체만으로도 충분해 하십니다.
본문에서 맏아들은 아버지의 마음을 전혀 몰랐습니다. 때문에 아버지가 동생을 환대하고 극진하게 대해주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행동에 대해 분노했습니다. 아버지의 소원이 무엇이며 아버지가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니 말썽을 부리고 엉뚱한 행동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소원은 분명합니다. 32절에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았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니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아버지의 간절한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소원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마음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고 했습니다. 죽었던 자식을 살리는 것입니다. 잃어버린 자식을 다시 찾는 것입니다. 집 나간 자식이 돌아오는 것입니다. 실패한 인생을 성공자로 만드시기를 소원하십니다. 허랑방탕한 생활로 허송세월을 보내는 자가 아버지께 돌아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구원이요, 복음인 것입니다.
따라서 교회와 성도는 하나님의 소원을 이뤄드려야 하겠습니다. 집 나간 동생을 찾고 있는 아버지의 소원하는 마음을 알고 하나님의 소원을 꼭 들어 줄 수 있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제목 : \"부흥의 불을 붙이자\"
성경 딤후 1:6-8
서론
디모데가 장로회에서 안수를 받아 성직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안수를 통해서 하나님의 은사를 받았습니다. 그리하여 그 은사를 계속해서 활용하도록 바울이 디모데에게 상기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불일 듯 하게 하는 것은 사역에 대한 열의가 식어갈 때였기에 바울은 처음 안수 받을 때를 상기시킴으로 자신을 계승해서 사역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격려하는 것입니다.
1.각자가 받은 은사에 불을 붙입시다
본문 6 \"그러므로 내가 나의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붙일듯하게 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하게 하노니\"하였습니다. 열심에 불을 붙여야 하겠습니다. 바울은 말하기를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하였습니다(롬 12:11). 믿음도 은사입니다. 즉 선물이라 그 말입니다. 그러므로 열심히 신앙생활 하여 출 23:25-26에 약속하신 복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물질, 건강, 자녀, 안전하게 사는 복된 한해가 되어야 합니다.
2.전심전력해서 불을 붙입시다
딤전 4:14-15 \"네 속에 있는 은사 곧 장로의 회에서 안수 받을 때에 예언으로 말미암아 받은 것을 조심 없이 말며 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너의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하였습니다. 은사 받은 것을 조심 없이 함부로 취급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은사 속에는
사명이 들어 있고 삶의 의미가 들어 있으며 복도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전심전력을 다하라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불을 붙이라는 것입니다.
기도도 전심전력하고 봉사도 전심전력하고 매사에 전심전력을 다하면 교회는 뜨겁게 부흥이 될 줄로 믿습니다.
3.나 하나에서부터 불을 붙입시다
롬 5:17-19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사망이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왕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이 한 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노릇 하리로다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것 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하였습니다.
성냥 한 개비가 온 산을 다 태울 수 있듯이 나 한사람의 뜨거운 역할이 우리교회를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우리교회에서 한 사람의 역할이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1645년 6월 10일 영국 의회에서는 총사령관 투표가 있었습니다. 크롬웰이 총사령관으로 당선되었습니다. 그래서 영국 역사가 바뀌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91대 90 한 표 차로 당선되었습니다. 하나가 얼마나 중요합니까?
1945년 텍사스 주를 미국 영토에 포함시킬 것이냐 말 것이냐를 놓고 미국 의회가 투표하였습니다. 한 표 차이로 가결되었습니다. 그래서 텍사스 주가 미국 영토에 포함되었습니다. 오늘 날 텍사스가 없는 미국을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심장부가 되었습니다. 하나가 얼마나 중요합니까?
지금 미국은 영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1776년 미국에서 국어를 영어로 할 것이냐 독일어로 할 것이냐를 놓고 투표를 하였습니다. 한 표 차이로 영어가 가결되었습니다. 그 때 한 표 차이가 아니었으면 독일어를 사용하였고 만일 그 때 독일어를 가결하였으면 세계적으로 독일어가 공통어가 되었을 것입니다. 한 사람이 온 세계 역사를 바꾸었습니다.
또 있습니다.
영국 챨스 1세를 사형시킬 것이냐 말 것이냐를 놓고 투표하였습니다. 135명 재판관이 투표에 참석하였습니다. 68대 67로 사형이 가결되어 챨스 1세를 사형시켰습니다. 한 표로 영국 운명이 바뀌었습니다. 한 명이 얼마나 중요하였습니까? 그러므로 나 한사람이 교회 부흥의 불길을 밭이면 우리교회는 부흥의역사가일어날 줄로 믿습니다(롬 6:17-19).아담 한 사람 예수 한 사람의 역할의 결과는 엄청났습니다.
\"결론\"
받은 은사 곧 직분과 성령의 충만함과 각종 은사를 활용해서 교회 발전에 불을 당기어야 할 것입니다. 기도의 불을 봉사의 불을 헌신의 불을 각 분야에 불을 붙여서 성령의 불길이 활활 타서 부흥과 발전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나 한 사람부터 은혜의 불을 붙이고 헌신과 봉사의 불을 붙여서 의성교회 발전에 원동력이 아니 불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제목 : 그리스도인의 소망
본문 : 롬-15-01-6
사람은 소망이 있으므로 오늘을 인내하며 살아갑니다. 미국의 정치가 스티븐슨은 “희망은 영원한 기쁨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만약 우리에게 소망이 없다면 우리는 내일을 살아갈 수 없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세상이 알지 못하는 확실한 소망이 있습니다. 때문에 이 소망을 붙잡고 살 때 험한 세상을 능히 승리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이 소망이 무엇인지 함께 살펴보도록 합니다.
첫째,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소망입니다.
본문 4절에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위로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성경보다 더 확실한 소망은 없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우리는 말씀을 통해서 만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으로부터 오는 소망은 영원한 것이 없습니다.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소망이 되어야 합니다.
둘째,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소망입니다.
본문 5절에 “이제 인내와 위로의 하나님이 너희로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서로 뜻이 같게 하여 주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야 말로 우리의 참 소망이라고 했습니다. 바로 우리의 소망이 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고 그를 따라가라는 것입니다. 바울 자신도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간다고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늘의 소망을 바라보며 주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셋째, 이웃을 위한 우리의 삶이 소망입니다.
바울은 말하기를 믿음이 강한 우리는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이웃을 향해 이루는 선한 행위는 곧 하늘나라에 가서 받는 상급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고 주님 안에서 성장하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이것은 하늘나라에 받게 될 상급으로 쌓이는 것입니다. 주님도 자신만을 기쁘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죄인을 위해 고난을 받으며 섬김의 삶을 사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소망은 주님을 본받아 이타적인 삶을 사는 것입니다.
제목 : 주의 길을 예비하라
본문 : 마 3:1-13
서론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나기 전 육개월 먼저 온 세례요한이 외치기를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다고 하면서 주의 길을 예비하여 초림하시는 그를 맞으라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지금은 초림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맞이 하는 것이 아니고 재림하실 그를 맞이하기 위하여 회개하고 철저하게 준비하여야 하겠습니다.
1. 회개해야 합니다.
본문 1-2 \"그때에 세례요한이 이르러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가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하였습니다. 이는 초림하시는 주님이나 재림하시는 주님을 맞이하는데는 회개가 제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가 세상에 초림하신 목적이 의인을 부르러 오시지 아니하시고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오신 것입니다(눅 5:32). 그리고 주께서 오셔서 하시는 말씀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마 4:17)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을 맞이하는데는 무엇보다도 믿음으로 회개하는 길만이 그의 길을 예비하는 것입니다.
2. 죄를 자복해야 합니다.
본문 5-7 \"이 때에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강 사방에서 다 그에게 나아와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니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과 사두 개인이 세례 베푸는데 오는 것을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하였습니다. 회개는 느끼고 뉘우치는 것만으로 하는 것이 아니요 진실로 지은 죄를 자복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진정한 회개가 되는 것입니다. 회개의 삼요소는 자신이 죄인인 줄 알아야 하고 그 죄를 슬퍼해야 하며 그 죄를 끊어 버리는 행동이 뒤를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이론적으로만 회개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실제의 회개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것입니다. 솔직히 자복할 때에 그의 길을 예비하는 것입니다(요 1서 1:8-9).
3. 다시는 죄를 범치 말아야 합니다.
본문 8-13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리라...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맺지 못하면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회개하고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생활이 주의 길을 예비하는 길입니다.
결론
세례요한은 초림하실 예수 그리스도를 맞이하고 주의 길을 예비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재림하실 예수를 맞이할 준비를 갖추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회개하여 죄를 자복하고 다시는 죄를 범치 아니하려고 노력을 해야 합니다.
제목 : 깨어 있으라
본문 : 마-24-42-46
잠을 자고 있는 사람은 누가 무엇을 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깨어 있는 사람은 주변의 사리 판단과 전개되는 모든 일들을 질서 있게 처리하면서 생활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약에 신앙이 깨어 있지 않은 상태라면 자기에게 어떤 불행이 오는지, 또 어떤 사탄 마귀가 시험하는지, 천군 천사가 곁에서 축복해주고 보호해주고 있는지, 또 자기가 무엇을 해야 되는지 그것을 알지 못하는 가운데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주님의 재림의 시기가 가까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깨어 있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13:11에 보면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니라”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깨어 있어야 할까요?
첫째, 기도에 깨어 있어야 합니다.
“깨어 있어 기도하라”(마 26:41) 우리는 깨어서 기도해야 합니다. 성도가 기도하는 순간은 깨어있는 순간입니다. 만일 성도가 기도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신앙의 잠을 자고 있는 순간입니다. 마치 마취를 하면 아무 감각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내게서 어떠한 보화가 상실되는지도 모릅니다. 황금같은 세월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르고 나태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도할 때는 항상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시고, 성령의 도우심이 함께 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마태복음 24:17에 보면 “지붕 위에 있는 자는 집 안에 있는 물건을 가지러 내려가지 말며 …”라고 말씀했습니다. 왜 이 말씀을 하셨을까요? 극심한 환난이 임했을 때 도망가기 위해서 집 안에 있는 물건을 가지러 갈 생각보다도 지붕 위에 있으라는 말은 ‘기도하라’는 말입니다. 유대인들이 기도를 주로 많이 하는 곳은 산입니다. 산이 없는 곳에 사는 사람은 바다에서 합니다. 또 바다도 없는 곳에 사는 사람은 지붕 위에 올라가서 합니다. 기도하는 순간을 중단하지 말고, 기도하는 처소를 떠나지 말고, 기도하는 일을 그치지 말라는 것입니다. 깨어 기도해야 할 시간에 영육간에 깊이 잠이 들면 주님의 제자들처럼 시험에 빠져 주님을 부인하는 지경에 이르기도 합니다.
우리에게 무기가 있다면 그것은 기도하는 것입니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기도할 때에 그 기도 속에 하나님의 역사가 함께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특별히 역사해주고 축복해주는 사람은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하나님과 대화하는 순간은 우리의 인성, 육성, 자신의 모든 경험과 여건, 환경, 조건도 다 포기하는 순간입니다. 기도할 때는 오직 하나님만 역사하는 순간이 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 사명에 충성을 다하며 깨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주신 사명에 대해서 반드시 청산할 때를 약속했습니다. 마태복음 25:14~30에 보면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과 두 달란트 받은 사람, 한 달란트 받은 사람 등 달란트 비유가 나옵니다.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과 두 달란트 받은 사람처럼 충성한 사람에게는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마 25:21)라고 칭찬해주셨고, 한 달란트 받은 사람처럼 게으른 사람에게는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마 25:26,30)라고 책망을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항상 자기 일에 충성을 다하고, 자기 사명에 충성하는 자를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10에 보면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고 말씀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자기가 생각하고 자기가 목표를 세운대로 이루어졌으면 주님의 뜻이라고 하고, 자기의 목적이 안 이루어졌을 땐 주님의 뜻이 아니라고 하는데, 이렇게 판단하면 안됩니다. 주님이 말씀하신대로, 주님이 생각하시는대로, 주님이 원하시는 것을 우리가 이룰 때 이것이 바로 충성이 되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충성하는대로 반드시 생명의 면류관 상을 주시고, 더 많은 것을 맡겨주시는 축복(마 25:21)을 주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로마서 12:11에 보면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고 말씀했고, 베드로전서 4:7에 보면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주신 사명을 빼앗겨서는 안됩니다. 또 하나님께 받은 사명을 묻어두면 안됩니다. 하나님께 받은 사명을 활용할 줄 알아야 됩니다. 누가복음 9:62에 보면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라고 말씀했습니다.
셋째, 시험에 들지 않기 위해서 깨어 있어야 합니다.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마 26:41) 마귀는 시험하는 자(마 4:3)라고 했습니다. 기도하는 자에게는 마귀가 틈을 타지 못합니다. 깨어 있어 기도할 때 사탄 마귀가 물러갑니다. 베드로전서 5:8,9에 보면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고 말씀했습니다. 또 에베소서 4:27에 보면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고 말씀했습니다. 사탄은 조금만 틈을 주면 홍수처럼 밀려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시험에 들지 않기 위해서, 시험을 주는 마귀를 대적하여 이기게 하기 위해서 항상 깨어 있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깨어 있는 것 중에 하나는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입니다.
넷째,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슬기로운 자가 되기 위해서 깨어 있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25:1~13에 보면 슬기로운 다섯 처녀와 미련한 다섯 처녀 비유가 나옵니다. 슬기로운 다섯 처녀는 등불과 여분의 기름을 준비한 반면, 미련한 다섯 처녀는 등과 기름을 준비했지만 여분의 기름을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슬기로운 다섯 처녀는 더디 오는 신랑을 맞이했지만, 미련한 다섯 처녀는 기름이 떨어져 기름을 사러 간 사이에 문이 닫힘으로 신랑을 맞이하지 못했습니다. 요한계시록 16:15에 보면 “보라! 내가 도적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라고 말씀했습니다. 이 땅에 재림의 주가 오실 때도 깨어 있는 자가 맞이할 수 있지만, 평소에도 깨어 있는 자가 늘 주님과 동행하게 될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의 재림이 점점 다가오고 있는 이 때에 무관심과 나태, 영적 깊은 잠에 빠져서 그 날을 갑작스럽게 당황해하며 맞이하지 말고, 영적으로 항상 깨어 있어 기도하고, 사명에 충성하며, 시험에 들지 않고 마귀를 대적하며,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슬기로운 성도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제목 : 가버나움에 임하신 예수님
본문 : 막-01-21-28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에서 행하신 다섯 가지 사역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사역은 바로 오늘 우리가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르는 하나님의 백성들로서 행하여야 될 교훈과 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와 사랑을 깨닫게 해줍니다. 주님의 발자취는 모두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고, 또 우리에게 큰 신앙의 교훈을 남겨주신 그런 발자취입니다. 가버나움에 임하신 예수님은
첫째, 주의 날을 성수(聖守)하셨습니다.
“저희가 가버나움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곧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시매”(막 1:21) 주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가신 날은 바로 안식일이었습니다. 엿새 동안은 힘써 일하고, 주의 날에 하나님 앞에 안식하면서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된 것을 하나님 앞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출애굽기 20:11에 보면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일은 복된 날입니다.
그러므로 주의 날을 지킬 때 ①기억을 해야 됩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출 20:8) 어떤 분은 주일을 맞이했는데 교회 종소리를 듣고 교회 가는 사람들을 보고 ‘오늘이 무슨 날이냐?’라고 자기 딸에게 물었답니다. 그 딸이 ‘엄마, 오늘 주일이잖아’라고 대답하자 ‘벌써 돌아왔니?’하고 신경질을 내더랍니다. 참 그리스도인이라면 주일을 기억하고 월요일부터 손꼽아 기다리면서 그 날이 가까울수록 기뻐 찬송하면서 그 날을 맞이할 것입니다. ②거룩히 지켜야 합니다(출 20:8). ③엿새 동안은 힘써 일을 해야 합니다.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출 20:9) ④아무 일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제 칠 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 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출 20:10) 주일에는 아무 일도 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찬송하며, 기도하고, 전도하며, 성도 간에 아름다운 교제를 나누는 생활을 할 때에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축복이 임할 줄 믿습니다.
둘째, 회당에 들어가셨습니다.
“예수께서 곧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막 1:21) 예수님은 주일에 회당에 들어가셨습니다. 회당은 오늘날로 말하면 ‘교회’입니다. 골로새서 1:18에 보면 주님은 ‘교회의 머리’가 된다고 말씀했습니다. 또 에베소서 1:22에 보면 “또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라고 말씀했습니다. 주님은 교회의 권위를 나타내셨습니다. 교회는 만물의 지배를 받는 곳이 아니라 만물을 지배하는 곳입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하나님께서 마지막 이 세상을 통치하실 때 UN본부나 백악관, 청와대 등 세계 왕들이 모이는 그곳에서 역사하시는 것이 아니라 일곱 촛대 사이에 운행하신다고 했습니다(계 2:1). 여기에서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라고 말씀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을 만나는 예배 처소이고, 성도 간에 아름다운 신앙의 교제를 하는 곳이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본부가 되고, 성령님의 임재하심 속에서 사명자를 양성하는 곳이며, 하나님의 백성의 신부로서 부족함이 없도록 단장시켜 주는 곳입니다. 그리고 신앙의 등불을 예비시켜 주는 곳입니다. 또한 교회는 하나님께 택함 받은 거룩한 백성들을 모아 놓은 곳입니다(시 89:7). 그래서 교회의 권위는 이 땅의 어떤 왕의 권세보다도 더 귀한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곧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시매”(막 1:21) 여기에서 예수님이 가르치신 것은 헬라어나 히브리어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기를 힘써야 합니다(딤후 4:2). 우리의 가방 속에는 항상 전도지가 들어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전도지를 전해줄 때 “이 전도지를 읽을 때 반드시 당신에게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고, 형통한 길이 열릴 것입니다. 당신이 이 말씀을 읽고 받아들인다면 지금 이 순간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기적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라고 하면서 항상 상대방에게 소망을 심어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지옥에 갈 사람이 천국에 가게 되는 것입니다.
‘전파한다’는 말은 헬라어에 보면 ‘널리 알린다’라는 뜻입니다.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예수의 소식을 널리 알리는 것입니다. 예수를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예수를 알게 해주고,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에게 복음을 듣게 해주며,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에게 예수를 믿게 하고, 마음 문을 열지 않는 사람에게 마음 문을 열도록 기도하면서 복음을 전해야 됩니다. 예수님이 회당에 들어가셔서 열심히 천국 복음을 선포하셨듯이 우리도 열심히 복음을 전파해야 됩니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 16:15)
넷째, 귀신들을 다 쫓아내셨습니다.
“마침 저희 회당에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이 있어 소리질러 가로되 … 예수께서 꾸짖어 가라사대,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막 1:23,25) 이 말을 듣고 귀신이 큰 소리를 지르며 나갔습니다. 그 당시 귀신들린 자에게서 귀신을 쫓아낼 때는 마술사들이 독특한 도구를 사용하여 주술적 행위를 함으로써 쫓아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오직 자신의 말씀의 권위만으로 귀신을 쫓아내셨습니다. 귀신을 쫓아내는 권세를 나타내신 예수님은 예수를 믿는 우리에게도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권세를 주셨습니다(막 16:17).
다섯째, 가르치는 권세를 나타내셨습니다.
“뭇 사람이 그의 교훈에 놀라니,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막 1:22) 예수님은 자신의 가르침에 권위를 부여하기 위해 저명한 랍비들의 말을 인용하기 바빴던 유대 지도자들의 능력없는 교훈과 달리 회당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놀랄 만큼 가르치는 권세를 나타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도 이러한 권세를 주셨습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 28:18~20)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가버나움 회당에 들어가셔서 주의 날을 거룩히 지키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시며, 귀신들린 사람을 고쳐주시고, 권세 있는 말씀으로 사람들을 가르치신 예수님을 본받아 주일 성수를 잘하고,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힘써 복음을 전하여 많은 사람들이 주께로 돌아오게 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제목 : 끈질긴 사람
본문 : 막-10-45-52
승리란 하루아침에 오는 것이 아닙니다. 어느 순간까지는 반전이 너무나 어렵고 더디고 힘겨운 것처럼 느껴지지만 그 순간을 이겨내고 나면 비약적으로 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치 나이테가 생겨나서 나무의 밑동이 부쩍 자라듯이 이 성장의 사이클은 1년, 3년, 5년, 10년이라는 획을 긋고 찾아오는 것입니다. 피나는 노력과 끈질긴 인내의 결과로 찾아오는 것입니다.
끈질긴 사람만 승리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자녀를 키울 때에 모든 일을 끈질기게 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그런 아이가 인생의 주역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끈질긴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무엇에 그렇게 끈질겨야 할까요?
첫째, 기도가 끈질겨야 응답을 받습니다.
‘바디메오’라는 사람은 기어이 기도응답을 받고 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동네에 예수님이 지나가신다고 하는 소리를 들었을 때에 소리를 질러서 나를 불쌍히 여기어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이 꾸짖었다고 합니다. 이 말은 ‘너 같은 거지가 무슨 일을 한다고 이렇게 야단을 떨고 있느냐’ 하는 조소와 멸시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런 말에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바르게 하려고 할 때에 많은 주변의 시선들이 나를 이상하게 보는 것처럼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주님의 마음이 아닙니다. 우리 주님은 언제나 주님을 찾고 매달리는 사람을 제일로 기뻐하십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을 방해하는 어떤 요소라도 이기는 사람에게 주님은 만나주시고 응답해 주십니다.
둘째, 영혼을 건지는 전도가 끈질겨야 합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가던 길에 머물러 서서 “그를 부르라”고 하십니다. 제자들이 불러옵니다. 그러자 “바로 이때다” 하고 ‘바디메오’는 달려옵니다. 이 모습을 보시고 예수님은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하시면서 결국에 눈을 뜨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본문에서 ‘바디메오’만 열심인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도 한 영혼을 건지시기 위하여 이렇게 열심히 찾으시는 것을 본다면 오늘 우리는 예수님과 같은 끈질긴 마음과 태도로 한 영혼을 건져야 합니다.
제목 : 탐지하라
본문 : 민-13-17-20
본문은 가데스 바네아 바란 광야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12지파를 불러 가나안 땅을 탐지하라고 하였습니다(민13:18). 그것은 이스라엘이 똑똑하고 잘되어서 바란 광야까지 온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은혜임을 상기시키고 믿음을 가지고 가나안에 하나님과 함께 들어가 타락하거나 방종하거나 우상을 섬기지 않고 살도록 하기 위함임을 알아야 했습니다.
40일 동안 탐지하고 돌아온 열두 명의 정탐꾼들은 원로들과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그 땅 거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아낙 자손을 보았는데 그들은 대장부들이었다는 것입니다. 보고서 결론이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한다고 악평하였습니다. 이 말을 들은 회중들은 밤새도록 기도는 하지 않고 울며 곡하였습니다. 모세를 원망하고 여호와가 우리를 망하게 한다면서 애굽으로 돌아가자는 것입니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상황은 변한 것이 없는데 급급한 것만 생각하고 믿음이 없고 소망도 없고 개척정신도 없는 백성들이었습니다(민14:3). 하나님의 심장이 어떠하며 모세의 심장이 어떠했겠습니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세와 아론이 회중 앞에서 엎드려 기도했습니다. 그들이 사는 길은 기도인 것을 교육하는 것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이 옷을 찢고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면, 도와주시면 능히 이긴다는 고백과 함께 “올라가자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약속과 뜻을 믿었고 삶의 방향을 긍정적인 쪽으로 바꾸었습니다.
하나님의 응답은 모세의 기도대로 그들의 죄를 사하신 것이었습니다(민14:20). 그러나 기억할 것은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민14:28) 이 말씀에 따라, 그들이 내 뱉은 말에 따라 그들을 바란 광야에서 살려주셨지만 20세 이상은 들어가지 못하였고 여호수아와 갈렙 외에는 다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두렵고 떨리는 말입니다.
그 분은 창조주이십니다. 그 분은 우리를 붙들고 계십니다. 그 분은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이 없습니다. 우리 신앙의 온도가 변했고 내가 변했지 주님은 변함이 없습니다. 탐지하라는 말씀은 믿음을 가지라는 사랑의 언어입니다.
제목 : 희망을 가져라
성경 사32:1-4
서론
사람은 희망을 가질 때 발전이 있지 절망을 가지면 자살할 가능성이 높은 것입니다.오늘의 성도들이 내세의 희망이 없고 부활의 소망이 없다면 현재 믿고 있는 믿음도 헛되고 세상에 그 어느 사람들 보다 불쌍한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그런데 본문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앗수로의 침략에서 구원을 받으리라는 복된 전망을 보여주시는 것인데 가깝게는 정치적인 왕을 보내주셔서 태평성대를 누리고 멀리는 메시야를 보내주셔서 영원한 평화 속에서 살게 될 것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그래서 그 면에는 희망을 가지고 살자는 것입니다.즉 어제보다 오늘이 더 좋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살고 이 달보다는 내 달이 더 좋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살며 금년보다는 내년이 더 좋아지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살자는 것입니다.그렇게 될 때에 믿음대로 될 줄로 압니다.
1.의로운 시대가 온다는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
본문1\"보라 장차 한 왕이 의로 통치할 것이요 방백들이 공평으로 정사할 것이며\"하였습니다.이는 현재는 세상의 왕들이 백성을 다스리는데 포악하게 다스리어 살기가 매우 어려운 실정을 말하는 것입니다.그런데 가깝게는 하나님께서 히스기야왕과 같은 왕을 보내주시겠다는 것이며 멀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신다는 것입니다.이는 가깝게는 정치적인 왕을 말하고 멀게는 메시야를 말하는 것입니다.그리하여 선량한 왕으로 다소나마 위로를 받게 하시고 또 재림 주를 보내셔서 영원한 평화를 누리게 하신다는 것입니다.그러므로 인생들의 가장 큰 희망은 구약시대는 초림하실 메시야이고 신약시대 사람은 재림하실 메시야를 기다리는 것입니다.그 이유는 재림하신 메시야만 뵙게 되면 그 때부터 영원한 평화가 시작되기 때문 입니다.지금은 성도들이 고통스럽지만 주님만 재림하시면 그 고통은 안개 살아지듯이 없어지고 영원한 즐거움만 찾아오는 것입니다.그러므로 금년도 살기가 고통스럽지만 그래도 낙심하지 말고 좋은 일이 있을 것을 기대하고 살아가야 하겠습니다.그리하여 믿음대로 되시기를 바랍니다.
2.평화로운 시대가 온다는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
본문2\"또 그 사람은 광풍을 피하는 곳 폭우를 가리우는 곳 같을 것이며 마른 땅에 큰 바위 그늘 같으리니\"하였습니다.사람이 바다로 배를 타고 나가다가 큰 광풍을 만났다고 생각해 봅시다.그 처지가 어떠하겠는가 말입니다.그런데 구원자가 나타나서 바다를 잔잔하게 하고 광풍을 막아준다는 것입니다.예수 그리스도 당시에 제자들이 배를 타고 항해하는데 큰 풍랑을 만났습니다.그 때에 주무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깨워서 구원을 요청하여 주께서 바다를 꾸짖으시니 바다가 잠잠하여 이들의 두려움이 물어 갔습니다.세상에는 비록 바다에 가서 배를 타지 아니하여도 풍랑과 같은 어려움은 너무나도 많이 있습니다.그런데 주님께서 오셔서 성도들의 집에 계시면 아무런 걱정이 없습니다.그리고 세상의 종말이나 개인적으로 죽음이 찾아올 때는 주께서 지배하시는 세계에서 살기 때문에 더욱 평안하게 사는 것입니다.그러므로 세상 사는 동안에 주님을 모시고 평안하게 살고 주님께서 재림하시면 영원한 평안이 있음을 기억하고 그날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반드시 그날은 오고야 맙니다.
3.신령한 시대가 온다는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
본문3-4\"보는 자들은 눈이 감기지 아니할 것이요 듣는 자의 귀가 기울어질 것이며 조급한 자의 마음이 지식을 깨닫고 어눌한 자의 혀가 민첩하여 말을 분명히 할 것이라\"하였습니다.이는 하나님의 은혜로 신령한 생활을 말하는 것입니다.바울사도는 기록하기를\"우리가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하단 예언하니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고전13:9-12)하였습니다.그렇습니다.지금은 구원은 받았으나 누리는 구원은 아니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나 완전한 천국의 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의 자녀답게 사는 것은 아닙니다.그래서 지금은 완전한 구원을 바라보고 사는 것입니다.그리고 영생복락을 기다리면서 사는 것입니다.그러나 우리가 세상을 떠나고 주님을 만나면 그 때에는 신령한 생활이 시작되는 것입니다.이것이 바로 우리들의 희망인 것입니다.그날을 바라고 삼가 조심하고 준비하여 기다리는 것입니다.
\"결론\"
금년에는 우리 모두가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정치적으로도 의로운 사람이 잘 산다는 희망을 가지고 살아야 하겠고 답답했던 환경이 평안한 환경으로 변경되기를 바라며 육신만으로 살던 우리가 신령한 생활로 이어지는 놀라운 역사가 있기를 바라고 살아야 하겠습니다.
제목 : 성육신의 의미
본문 : 사-61-01-3
하나님께서 허무와 혼란의 무질서에 빠져 사는 불쌍한 인간들을 보시고 회복시켜 주시고자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신 것이 성육신의 사건입니다. 따라서 모든 성도들은 대림절 기간을 믿음으로 준비해서 뜻있는 성탄절을 맞이해야 하겠기에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신 성육신의 의미를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첫째, 성육신은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러 오신 사건입니다.
본문 “가난한 자”(1절)는 경제적인 가난과 영적인 빈곤에 처한 모든 사람들을 향하여 물질의 가난 때문에 원망하며 운명을 저주하는 사람들과 물질의 풍요함 가운데서도 헛된 욕망에 빠져 방황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구원을 이루는 아름다운 소식을 듣게 하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둘째, 성육신은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시려 오신 사건입니다.
주님의 오심은 해결할 수 없는 죄악 때문에 아파하며 애통해 하는 자들에게 소망의 빛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번 성탄절을 바로 맞이하기 위해서는 대림절 기간에 통회하는 심령을 가지고 모든 죄를 회개하는 시간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주님께서 우리들 심령에 오셔서 용서를 선언해 주시고 모든 질병과 마음의 상처를 고쳐주실 것입니다.
셋째, 성육신은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주기 위해서 오신 사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430년, 바벨론에서 70년간의 포로생활에서 자유를 주셨습니다. 이처럼 수많은 세월을 사탄의 종노릇하며 죄악의 사슬에 묶여 포로생활을 하던 우리들에게 참 자유를 주시기 위해서 독생자 예수님께서 친히 이 땅에 내려오신 것입니다.
넷째, 성육신은 슬픔 대신 기쁨과 찬송을 주시려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사건입니다.
주님은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며 그에게 화관을 주어 찬송의 옷(2절)을 입혀 주신다고 했습니다. 때로는 사람의 위로도 우리에게 힘이 되지만 우리 주님이 주시는 위로는 삶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항상 우리 곁에 머물면서 도와주시고 가르쳐주시며 평안과 기쁨의 삶을 살도록 이끄시기 위해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을 기다리고 대망하는 자로서 부끄러움이 없는 믿음으로 준비하며 소망을 전하는 귀한 성도가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